탈북자 신동혁은 불완전한 영어로 글을 쓴다. 그의 페이스북을 팔로워하는 1만 3천여 명의 독자 대부분이 영어를 사용하는 서양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서양 독자를 '확보'한 것은 자신이 북한에서 가장 악명 높은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나 자란 후 최초로 탈출한 탈북자이자 어린 시절 어머니와 형을 북한 당국에 밀고해 사형되게 했다는 충격적 고백을 담은 자서전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 블레인 하든이 집필한 신씨의 자서전은 전 세계 24개국에 출판됐고 이후 신동혁은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전 세계를 누비며 북한 인권 탄압을 고발했다. 그의 증언이 UN 북한인권위원회 출범에도 기여했을 정도니 그는 북한 인권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서양 엘리트들 사이에서 꼭 만나보고 싶은 1순위의 인물이 된 것이다. 



이런 그가 지난 1월 자신이 탈출 수기 중 일부 증언을 날조했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악명 높은 14호 수용소가 아닌 18호 수용소 출신이라 밝힌 것이다. 이는 단순히 수용소 숫자의 차이가 아닌, 신씨 자서전에 등장한 그의 극적인 증언 중 상당수가 거짓이란 것을 의미한다. 18호 수용소는 경제범, 혹은 북한 사회에서 성분이 좋지 않은 하층 시민을 모아둔 격리 거주지역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는, 태어나 23세까지 바깥세상은 모른 채 수용소에서 자랐고 북한 당국의 고문과 세뇌로 어머니와 형까지 사형시킨, 서양 중산층 지식인 사이에서 동정과 분노를 일으킨, 그의 존재 기반이 흔들린다는 뜻이다. 그는 증언을 번복하며 "이제 난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없애는 일을 더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신동혁씨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 중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며 고백의 이유를 밝혔는데, 그 역시 자신의 이야기가 서양 언론과 독자에게 이 정도의 열광과도 같은 반응을 지속해서 이끌어내리라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 후엔,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을 알리려는 선의의 의도든, 자신의 명예와 물욕을 위해서든 한번 올라탄 거짓말의 수레를 타고 달리다 이제야 내려온 것이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강렬했고 대중은 매혹됐다.




그러나 사실 탈북자의 거짓말은 인간의 거짓말이 그렇듯 새로운 것이 아니다. 탈북자 출신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10년 전에도 14호 수용소 출신 탈북자라 주장하며 "그곳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쇳물을 부어 죽인다"고 거짓 간증을 한 여성이 있었고 그 여성은 거짓 간증으로 번 돈으로 현재 미국에서 잘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인간의 경험은 원래 불안정하며 자신을 위해 기억을 왜곡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것이 우리의 속성일진데, 거주 및 이동의 자유도 없이 대부분 한 지역에서 살아온 가난한 탈북자들이(북한에서 비교적 이동이 가장 자유롭고 여유로운 평양 시민들의 탈북 비율은 매우 낮다)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알긴 어려운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탈북자가 방송에 출연해 북한의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자신의 이야기가 모든 북한 사람들의 삶을 대변한다는 듯, 혹은 신씨처럼 어머니와 형이 처형된 곳에서 살아남아 삼엄한 북한의 경비를 뚫고 한국으로 탈출했다는 이야기들이 계속 그들과 언론을 통해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엔 비극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살아갈 탈북자들의 생존 문제가 걸려있다. 탈북자 최초로 미국 테드(TED) 무대에 오른 이현서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테드는 그녀를 '초청'하지 않았다. 다만 테드 오디션의 참가를 권유했는데 그 절차는 이렇다. 500명의 청중 앞에서 그녀를 포함해 14개국의 참가자가 자신의 강연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다. 이후 전 세계 테드 시청자에게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영상의 강연자가 미국 본 무대에 설 수 있다. 이런 치열한 경쟁에서 탈북 수기와 북한의 열악한 인권 현실을 전달한 이현서씨의 강연이 1등을 한 것이다.




이런 그녀의 '오디션 성공기'처럼 탈북자들의 이야기도 1등, 혹은 신씨의 것처럼 가장 극적이거나 종편 방송에 나오듯 실감이 나지 않으면 대중에게서 외면당한다. 비극은 곳곳에 널려 있는데, 인간이 동정할 비극의 감정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에선 수 초 마다 새로운 난민과 실향민이 발생한다. 유엔난민기구는 작년 6월 발표한 연간글로벌난민 보고서에서 2차 대전 후 최초로 전 세계 강제 이주민 수가 5천만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이 중 전 세계에서 난민지위를 받거나 난민에 처한 탈북자 수는 1천 166명에 불과하니, 탈북자들은 시리아, 팔레스타인, 수단, 콩고 등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전 세계 난민들과 비극의 경쟁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국내 최고의 북한 전문가로 꼽히는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북한 전문 외신 NK NEWS 기고문에서 “슬프게도, 영양부족과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 교묘하게 제도화된 성폭행은 지구상의 가난한 곳 어디에나 존재한다”며 "평범한 탈북자들의 진실한 이야기는 대중들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극적이지 않으며 자신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처지인 사람들과 경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수용소들에서 대규모 인권 침해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실제 그곳에서 삼엄한 경비를 뚫고 탈북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그들을 제외한 탈북자들 대부분은 경제적 이유로 탈북하게 되는데, 이런 물질적인 동기가 북한 뉴스를 소비하는 "서구의 중산층 지식인들에게 세속적이고 천박한 것으로 비춰진다"며 이런 환경 속에서 탈북자들은 종종 이야기를 과장하거나 지어내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북한 뉴스를 소비하는 서구 중산층은 미국에 집중돼 있는데 지난 7년간 '전략적 인내'로 일관해온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정책으로 부시 정부 때 넘쳐난 북한 뉴스들이 이란 핵 협상, 팔레스타인, '이슬람 국가'등으로 대체된 경향을 보여, 북한에 대한 관심도가 더 떨어진 상태다.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차별받는 현실도 이들의 거짓말에 이유를 보탠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2013년 탈북자 2,355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탈북자의 월평균 소득은 141만 4,000원으로 한국 전체 임금 수준에 절반 정도였고, 실업률은 국내 평균의 3배 정도 높은 9.7%였다.게다가 취업한 탈북자 5명 중 1명이 일용직 근로자라 근로 환경도 매우 불안정하다. 



같은 해 북한 인권정보센터가 조사한 결과에선 조사 대상 탈북자 중 63.5퍼센트가 300만 원에서~2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즉 불안정한 직장, 낮은 임금, 많은 부채로 탈북자들의 지갑 사정을 정리할 수 있는데 이는 현재처럼 경기 침체가 계속된다면 탈북자 중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높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신분을 조선족으로 가장하고 취업한 탈북자들의 증언들은 한국 사회에서 이들을 향한 경제적 차별뿐 아니라 사회적 차별도 만연해 있음을 드러낸다.



신동혁의 최근 페이스북의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고문의 흔적을 사진으로 공유하고 있다. 비록 증언 중 일부는 거짓이지만, 자신이 고문받은 사실, 북한은 인권 탄압 국가란 사실은 틀림없는 진실이라는 것이다. 이효선씨도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북한에 관한 진실"이란 글에서 신씨의 주장 중 일부는 거짓이지만, 북한이 인권 탄압 국가란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다시 한 번 전 세계의 관심을 촉구했다. 



필자도 이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북한은 전 세계에 얼마 남지 않은 3대 세습 봉건 국가이자, 인권 탄압 국가이다. 어떤 정책이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지, 혹은 일부 탈북자 주장이 진실한지를 판단함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탈북자들의 몸에 남아 있는 고문의 흔적처럼 북한에 관한 변함 없는 사실도 존재한다.



2012년 대선, 신동혁은 자신의 트위터에 "생애 첫 투표를 했다. 민주주의를 경험한 역사적 순간, 내 손은 떨렸다"는 글을 썼다.(물론 영어로) 당시 그의 탈북 수기를 진실이라 믿었던 필자는 그의 말에 감동했다. 나에겐 태어나는 순간부터 함께한 민주주의이지만, 북한에서 탈출해 첫 투표를 한 그의 마음을 생각하니 내 심장이 떨렸다. 그리고 지금, 그의 증언이 거짓임을 알게 된 순간에도 내 심장의 떨림은 조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크게 변함은 없다. 그가 자유란 '거창한' 이유든 혹은 '세속적'인 돈을 위해서건 목숨을 걸고 무엇인가를 얻어낸 용감한 인간이란 사실은 변치 않는다.



역사의 흔적을 남긴 위인들을 살펴보면 당시 이들을 움직인 동기 역시 개인적인 영달과 세속적 이유가 많았고 명분은 후대가 덧붙여 주었다. 탈북자가 진실을 말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생존을 위해서건, 관심을 위해서건, 혹은 남한 사람은 알지 못하는 더 큰 대의를 위해서건. 그러나 거짓은 곧 드러나기 마련이다. 어렵겠지만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라 전하고 싶다. 이미 그 진실은 충분히 강력하며, 명분이 필요하다면 이는 역사가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기 때문이다. 


저작자 표시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1 : 댓글 15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