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4월 17일 금요일 오후. 


엘리자베스 워런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매사추세츠주 존 F.케네디 건물의 로비로 들어선다. 테드 케네디 연방 상원의원을 만나러 왔다. 주어진 시간은 15분. 워런의 목표는 공화당 주도로 진행된 파산법 개정을 막기 위한 케네디의 지지를 얻어 내는 것. 



1980년대부터 정부의 규제 완화로 월스트리트의 대형 은행은 유색 인종, 저소득층, 저학력자, 고령자를 

겨냥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카드 대출을 남발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남은 문제는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채무자의 파산으로 인한 일말의 손해. 대형 은행은 파산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려 했다. 삶의 끝자락에 몰린 수백만 채무자의 파산이 지연될수록 은행의 이자 수입은 증가할 것이다. 



면담은 워런의 설득으로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워싱턴의 실력자 케네디는 워런에게 약속한다. 파산법 개정 반대 운동을 이끌겠다고. 확답을 들은 워런은 보좌관의 눈치를 살피며 사무실을 나와 감격에 찬 울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1995년부터 시작된 싸움은 2005년까지 이어졌다. 10년간 워런은 책을 쓰고, 강연 하고, 코미디 방송에 출연하고 정책을 만들며 파산법 개정을 지연시켰다. 2005년 하원에서 302 대 126, 상원에서 74 대 25란 압도적인 지지로 업계의 법안이 통과되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기 전까지 싸웠다.





워런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백만의 사람이 재정 파탄에 이르렀는데도 이기지 못했다. 우리가 이기지 못했다고? 제기랄, 심지어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어떻게 백전백승의 인생을 살 수 있는가?" 워런의 자서전 <싸울 기회> 표지에 큼지막하게 적힌 문구다. 패배란 살풍경이 익숙한 독자를 유혹하는 이 문장은 원전엔 없는 말이다. 워런은 세상과 치열하게 싸웠지만 대부분 패배했다. 승리는 2012년 매사추세츠주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연방 상원의원 선거를 기록한 책의 마지막 장에만 담겨 있다. 워런은 스콧 브라운 당시 현직 상원의원을 8퍼센트 차이로 따돌렸다. 자신을 감격게 한 테드 케네디의 빈자리를 7년이 지나 스스로 채운 것이다. <싸울 기회>는 '백전백승'를 한 승리자의 기록이 아닌 수많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은 워런의 분투기다.




각주까지 548페이지에 달하는 <싸울 기회> 속에는 많은 일화가 담겨 있다. 그중 1998년 워런과 케네디의 만남을 끄집어낸 건, 이 이야기 속에 워런의 특징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싸울 기회>를 읽기 전, 티머시 가이트너 전 미국 재무장관의 회고록 <스트레스 테스트>를 읽었던 영향도 있었다. 가이트너에게서 사변적 해결책과 완벽에 가까운 경제학적 논리, 미국 재부무 엘리트 관료로 성장한 워싱턴 인사이더의 모습이 풍겼다면, 워런에게선 현실 문제에 천착한 연구자, 열정적인 운동가, 파산의 문턱에 서있는 시민들을 만나며 결국 하버드 교수 자리에 오른 아웃사이더의 맹렬함이 느껴졌다



책의 문체에도 차이가 있다가이트너는 논리를 바탕으로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워런의 책은 독자의 가슴에 불을 댕기려는 연설가와 대화하는 느낌이다.  사람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모두 워싱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잦은 의견 충돌을 겪었다. 각자의 책에서도 서로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주로 워런의 책이 가이트너에 대해 비판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워런은 부시 정부의 재무장관 헨리 폴슨이 도입하고 오바마 정부의 재무장관 가이트너가 주도한 부실자산구조프로그램(TARP)의 의회 감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자본 부족에 시달리던 대형 은행을 위해 마련된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은 그들이 살아온 여정만큼이나 판이했다. <싸울 기회>에서 워런은 가이트너를 가르켜 "장관은 눈이 덮인 산 정상에 있는데 나는 사막을 기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세상과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은 그렇게 달랐던 것이다"라고 회고한다. 가이트너는 워런에 대해 "당내 자유파 중 가장 열렬하고 유창한 비판자"라며 그녀의 비판을 일정 부분 수긍했지만, 그녀가 불공정하며 불투명하다고 비판한 TARP와 '스트레스 테스트'에 대해선 금융위기를 극복한 유일했고 최선의 정책이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싸울 기회>에 드러난 워런은 상투적인 통념에 기대 편안한 연구를 하지 않았다. 파산법 연구를 시작한 1980년대부터 현실 문제에 천착했고 사람을 만났다. 당시 학계와 정치권에서 파산자는 "빚을 떼어먹은 어딘가 구린 데가 있는 사람" 이거나 "흥청망청 돈을 낭비한 무책임한 사람"이라 여겨졌다. 워런은 파산을 앞둔 사람들을 만나러 직접 법정을 찾았다. 통념과 달리 판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대부분의 사람은 탄탄한 중산층 출신이었다. 워런은 파산자 중 90%는 실직과 의료문제, 가족 해체란 세 가지 이유로 본인의 의사완 상관없이 그 자리에 섰다는 것을 증명했다. 통계청 등 각종 정부 기관 자료를 연구해 현대 중산층 가정의 파산이 증가한 이유를 과소비로 꼽는 '과소비 신화'에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2003년 매킨지에 다니던 첫째 딸 아멜리아와의 공동 저서 <맞벌이의 함정>에서 워런은 2000년 맞벌이 중산층 가정이 1970년대 홀벌이 중산층 가정보다 더 궁핍한 살림을 꾸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 원인은 명품 선글라스와 나이키 신발 탓이 아니었다. 30년째 이어진 임금 정체와 필수적 지출인 의료비와 교육비의 증가, 정부 규제 완화로 치솟은 은행의 이자 때문이었다. 





워런에게서 '운동가적 열정'이 느껴지는 건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으로 치환하는 그녀의 특성 때문이다. <싸울 기회>에서 워런은 파산법 연구를 하며 만났던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혼자 살던 80대 할머니가 은행 직원의 소개로 주택담보대출을 변동 금리로 바꾼 후 폭등한 금리를 감당치 못해 길거리에 나앉은 이야기, 이혼 후 불행한 재혼에 중병까지 겹쳐 파산한 40대 여성의 이야기. 조용히 자신의 연구실로 찾아와 부모님의 파산을 서럽게 이야기하던 학생의 이야기. 워런은 정계에 나서기 전부터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논리로 무장한 관료들이 고통 받는 미국의 중산층을 단순한 통계와 숫자로 정의하는 것을 꺼렸다. TARP 의회 감독위원회 위원장 재직 시절엔 TARP 자금이 대형 은행에만 쏠려 소규모 지역 은행의 도산이 잇따르자 "그렇게 잃어버린 기회를 생각할 때마다 아직도 좌절감에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자영업자, 실직자, 이것은 그저 종이에 적힌 숫자가 아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잃은 수백만 명의 사람이다"고 회고한다.


 

마지막으로 아웃사이더적 기질. 2009년 초, 미국 경제가 대공황과 대침체의 갈림길에 섰던 시점에서 워런은 TARP 감독 위원장의 권한으로 오바마 정부의 구제금융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일류 자문 업체와 함께 정부의 구제금융 거래 내용을 분석한 결과 미국 정부는 은행의 부실 자산 매입을 위해 100달러를 쓸 때마다 그 대가로 66달러 가치의 자산을 받아왔단 사실이 밝혀졌다. TARP 거래는 매입 액면가 그대로 이뤄진다는 헨리 폴슨 장관의 말이 거짓이었던 것이다. 언론은 재무부가 국민 세금으로 금융위기를 초래한 대형 은행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론이 들끓었다.오바마 정부의 지지율은 떨어졌다.



워런은 이때 래리 서머스 당시 백악관 경제위원장(전 하버드 총장으로 워런의 상사이기도 한)의 초대로 단둘이 저녁 식사를 하며 '경고'를 받았다고 했다. 다이어트 콜라를 연신 들이켜던 서머스는 워런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웃사이더는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인사이더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요. 하지만 인사이더끼리는 절대로 깨서는 안 되는 한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인사이더끼린 서로 비평하지 않는다는 규칙이지요" 오바마의 핵심 참모이자 가이트너의 멘토이며 차기 미국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로 꼽히던 서머스의 날 선 비판에도 워런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워런은 TARP의 불투명성과 불공정함, 대형은행의 무차별적인 주택 압류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정부를 지속해서 비판했다. 워런은 자신이 대형은행이 제공하는 인사이더의 안락함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다며 "그 클럽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주는 공짜 소다주를 마시지 않을 수 있었고 외부에서 금융 시스템을 연구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내겐 성역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티머시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워런의 <싸울 기회>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책이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인물이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을 두고 상반된 의견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이트너는 결과론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를 대처한 정부의 정책이 옳았다고 말한다. TARP과 스트레스 테스트로 은행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사라져 뱅크런을 막았다. 정부는 이자까지 쳐서 TARP 자금을 모두 회수했다. 분명 한계는 존재하지만 현 체재(Status Quo) 유지를 위해선 그게 최선이었다. 거시적 관점에서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에 필연적 현상이며 대공황의 교훈을 배운 정부라면 구제금융은 불가결한 선택이었다. 이것이 가이트너의 주장이다.   





하지만 워런은 가이트너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만 옳았을 뿐 나머진 모두 틀렸다고 주장한다. 워런은 당시엔 "아무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랐으며 그 위험은 고스란히 납세자가 졌다"며 과정의 철저한 불공정성을 지적한다. 만약에라도 헨리 폴슨과 가이트너 장관의 정책이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면 되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았을 것이란 뉘앙스다. 워런은 연준이 주도한 '스트레스 테스트'는 감독 기관에 충분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불투명한 정책이었다고 비판했다. 소수 장관과 대형은행 CEO에게 미국의 미래를 맡기는 건 무책임한 처사란 것이다. 또한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대형은행의 무차별적 주택 압류를 정부가 성실히 저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 정부의 모습을 "거대한 산불을 안약으로 끄겠다고 하는 것"이라 비유했다. 2009년 2분기 GDP가 -0.4%를 기록하며 감소세가 완연히 꺾여 안정세를 되찾았다는 정부의 낙관적 주장에 워런은 10%가 넘는 실업률 해결을 위한 대책을 요구했다. 워런은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역사와 함께하는 필연적 현상이 아닌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가 초래한 인위적 현상이라 주장한다. 자본에 대한 상식적 규제만 가능하다면 미국 경제는 오랜 기간 공황 없이 안정성을 유지할 것이란 논지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워런의 열정만큼 가이트너의 논리도 빈틈이 없다. 물론 워런의 주장도 논리적으론 나무랄 데가 없다. 어렵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나의 선택이 결정이 옳다는 보장도 없다. 나 역시 평생을 함께해 온 경험과 편견의 소산물이다. 옳다는 말은 우스운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스트레스 테스트>를 읽으며 생겼던 고민이 <싸울 기회>를 통해 약간이나마 해소됐다. 논리만큼 중요한 것은 그 논리에 바탕을 둔 동기이며 태도란 생각이 들었다. (가이트너의 동기가 악하단 뜻은 아니다) 워런의 태도와 삶에 매력을 느꼈다. 기자로서 종요로이 생각할 점들이 많았다. 기존의 체재와 통념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도전 의식. 학문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로 나아가 세상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는 성실함. 인사이더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그들의 성역을 넘나드는 아웃사이더의 자유로움까지. 공부를 하면 할수록 관료의 논리에 포섭돼 길을 잃고 방황하던 나의 머릿속이 조금은 명료해진 느낌이다. 기자는 매일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 최선의 방법은 논리와 지식이란 눈 덮인 산 정상에 있기보단 열정을 품고 뜨거운 사막 속을 걸어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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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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