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예술을 믿지 않는다. 


인구 천 만의 나라 벨라루스 언론인 출신인 그녀의 홈페이지엔 "지난 20년간 5권의 책을 쓰며 난 예술이 인간의 많은 것을 담는 데 실패했다고 선언한다"는 글귀가 걸려 있다. 문학도 예술의 일부라면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이 부정한 분야에서 정점에 올랐다.



문학을 부정한 언론인이 어째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까. 역설적이게도 알렉시예비치의 글에 담긴 지독한 

문학성 때문이다. 인생의 진실은 고통에 있다는 문학적 서사의 뼈대는 유지하지만, 허구를 실제 삶의 기록으로 대신한 그 문학성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자신의 첫 번째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알렉시예비치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릴 테니까." 그러나 같은 책에서 그녀는 "모든 것은 문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러시아 문학이 삶의 비밀인 고통과 잇닿아 있음을 언급한다. 평단은 알렉시예비치가 '목소리 소설'이란 새로운 문학 분야를 개척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의 목소리가 스스로 삶을 말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답할 뿐이다.




 



알렉시예비치의 이런 '역설성'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쟁 중 키가 자랄 만큼 어렸고 다리 사이로 떨어지던 피를 부상으로 보고했던 소녀의 목소리에서 터져 나오는 참혹한 전쟁의 모습. 거기엔 기록과 기억, 죽음과 아름다움, 운명과 선택, 삶과 문학의 역설이 담겨 있다.




"남자들로는 부족한 거요? 무엇 때문에 여자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거죠? 그건 다 여자들의 환상이란 말이오"



제2차 세계대전 때 참전한 소련 여성만 100만 명이 넘는다. 저격수와 소총수, 공병대 지휘관과 간호사로 참전한 그녀들에게 아무도 전쟁의 기억을 묻지 않았다. 모두들 그네들이 평범한 여자로 돌아가길 바랐다. 


알렉시예비치는 남자의 기록과 여성의 기억은 다르다고 믿었다. 여자의 목소리를 찾아다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름을 날린 여자 저격수를 만나러 가는 길. 알렉시예비치는 저격수가 일하는 공장의 남자 상사에게 핀잔을 듣는다. 여자들의 목소리가 전하는 전쟁은 "환상"이란 핀잔. 알렉시예비치는 이렇게 답한다.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목소리다. "나는 비록 여자지만 수영을 잘했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구하고 싶었어. 옆에서 누군가 물위로 떠 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 사람을 힘껏 붙잡았어...뭔가 차갑고 미끈한 게 만져지더군. 부상당한 병사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내가 데리고 나온 게 사람이 아닌 거야. 글쎄 상처 입은 커다란 물고기더라니까. 사람 키만큼이나 커다란 물고기. 흰 철갑상어였어. 죽어가고 있었지. 나는 녀석 옆에 털썩 주저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 어찌나 속상하고 화가 나던지 눈물이 났어. 이렇게 물고기까지 고통을 당하는 게 너무 속상해서”





똑같은 전쟁을 기억하는 다른 방식. 알렉시예비치는 기록을 기억으로 대체하려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참전 여성은 같은 여성들에게 모욕을 당했다. "젊은 몸뚱이로 내 남편에게 살살 꼬리나 친 전선의 암캐"란 소릴 들으며 "이미 치르고 온 전쟁에 견줘 결코 가볍지도 쉽지도 않은 또 다른 전쟁"을 겪어야 했다. 알렉시예비치는 그 여성의 목소리가 스스로 이야기하길 바랐다. 그녀는 기록과 기억은 같지 않음을, 진실은 "위대한 이야기와 영웅적 사례"가 아닌 "냄새나는 속옷과 평범하고 작은 사람"에 있음을 믿었다. 




"여자들은 무슨 말을 해도, 심지어 죽음을 언급할 때조차도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다는 것을(정말이다!), 아름다움은 여자를 여자로서 존재하게 하는 이유였다"



난 아름다움을 갈구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여자를 갈구할 뿐. 그러나 여자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갈구한다. 가을 길 낙엽처럼 흔한 죽음의 폐허 속에서도 여자들은 아름다워지고 싶었다. "아직은 더 예쁘고 싶었는데...나는 전쟁 내내 다리를 다칠까 봐 겁이 났어. 나는 다리가 예뻤거든", "나는 두 손에 거울을 꼭 쥐었어. 행여 거울이 얼까 봐. 저녁때 보니까 뺨이 동상에 걸렸더라고", "내가 전쟁터에서 예뻤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 그곳에서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이 지나가 버렸어. 다 타버렸지. 그리고는 순식간에 늙어버렸어" 




세 여성의 다른 목소리는 모두 같은 것을 바라본다. 독일군을 죽이고 돌아온 그 날 밤에도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고 싶었다. 전쟁은 어린 소녀를 강간하는 남성의 본능엔 관대했지만, 눈썹을 물들이고 귀걸이를 차는 여자의 본능엔 야멸찼다. 전장엔 남자의 욕망 어린 몸짓과 쾌락의 냄새만이 코끝을 찔렀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너온 한 여자는 회상한다. "아 끝까지 살아남기만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질까? 이처럼 처절한 고통을 이겨냈으니.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미워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사람 앞엔 모든 길이 놓여 있다. 고결한 곳으로 향하는 길과 비열한 곳으로 향하는 길, 천사로부터 짐승에 이르는 길"



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함께했다. 테러 조직 ISIS는 지난주 금요일 파리에서 129명의 사람을 죽였다. 지금도 인간은 전쟁 중이다. 전쟁이 운명이란 말엔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그때부터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한다. 인생에 주어진 무수한 선택지가 사라진다. 시대의 목격자가 시대의 부산물로 변해버린다. 



"한 병사가 포로를 구타했어요. 나는 그 짓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말렸죠. 그 병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어요. 그건 그의 영혼에서 터져 나오는 아우성 같은 것이었으니까. 나한테 욕을 퍼붓더군요. 있는 욕, 없는 욕, 욕이란 욕은 다 해댔죠. '이년아 벌써 잊었느냐. 저놈들이 한 짓을 벌써 잊어버렸느냐고. 이 쌍년이' 하지만 포로를 때릴 순 없었어요. 그렇게 우리는 각자 자기 행동을 결정해야 했고, 그건 중요한 일이었어요"



"용서하는 게 쉬웠을 거로 생각해? (독일의) 멀쩡하고 새하얀 벽돌 지붕의 집들을 보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 같으냐고. 장미가 탐스럽게 핀 집들...나도 그들이 고통스럽기를 바랐어. 당연히...그들의 눈물을 보고 싶었지. 한순간에 착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기까지 나는 수십 년이 걸렸어. 



인간은 선택할 때 더욱 인간다워진다. 여성을 강간하지 않고 포로를 구타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증오를 용서로 대체하는 과정, 그 과정에 진실이 있다. 그렇다고 증오를 비난하진 않는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엔 독일군뿐 아니라 스탈린을 향한 소련인들의 서릿발 가득한 증오의 편린들이 담겨 있다



그 증오만큼 이 책에는 전쟁의 처참한 현실들이 적혀있다. 무자비한 고통이 있다.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이런 대목을 만날 땐 책을 덮고 고개를 들어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기억나느냐고? 오도독, 오오독 소리. 그 소리가 기억나.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사방에서 오도독하는데 연골이 으스러지고 뼈마디가 뚝뚝 부러져나가는 소리, 짐승의 울음과 같은 처절한 비명들..." 





비극이 이어질수록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너졌다. 삶과 문학이 잇닿는 지점에서 인간은 고통을 내뱉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문학보다 문학적이기에 남은 책장들이 아쉬웠다. 알렉시예비치는 침묵하던 소련의 여자들을 찾아갔다.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스탈린과 함께한 소련의 역사엔 빵 한 조각보다도 의미 없는 무수한 훈장만이 가득했다. 남자는 '전쟁을 신화화'함으로써 그 허무에 맞섰다. 소련의 여자는 '전쟁 후 또 다른 전쟁'을 치르며 숨죽여 기다렸다. 알렉시예비치는 그 여자의 목소리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네들은 많이도 울었다. 소리도 질렀다. 내가 떠나고 나면 그네들은 심장약을 먹었다. 구급차가 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와달라고 부탁했다. "와요. 꼭 다시 와야 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침묵하고 살았어. 40년이나 아무 말도 못 하고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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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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