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독일인은 선택을 요구받는다.



"여러분의 조국이 볼셰비키에게 넘어가길 원한다면 공산주의자에게 투표하세요. 여러분이 자유로운 독일인으로 남길 원한다면 나치에게 투표하세요"



나치의 선거 표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7년 전 독일은 히틀러를 택했다. 공산주의를 반대했다. 강요라 생각지 않았다. 극단적인 것은 급진적인 것으로 대체돼야 한다 생각했다. 정치를 환멸했다. 



사회민주당은 대안을 제시하려 했고 나치는 지배하려 했다. 독일인은 지배받길 택했다. 나치는 독일 대중이 지지한 대중운동이었다. 



1932년 독일 선거 당시 모습.



미국 정치학자 알렉산더 해밀턴은 대중을 "거대한 야수"라 일컫는다. 이 거대한 야수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멀스멀 길들었다. 전쟁을 일으켰다. 유대인을 학살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유대계 미국인 기자 밀턴 마이어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지 10년이 지난 1955년, 전직 나치

남성 당원 10명을 인터뷰한 저작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를 출간한다. 지인의 도움으로 독일 소도시에서 1년간 머무르며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히지 않은 채 재단사, 경찰, 은행원, 교사 등 평범한 직업을 지닌 독일인을 만났다. 마이어는 자신의 동족을 학살한 나치란 악의 근본을 찾으려 했고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나치즘이 단순히 무기력한 수백만 명 위에 군림하는 악마적인 소수 독재가 아니라 오히려 대중운동이란 사실을 난생처음으로 깨달았다. 적극적인 기쁨의 함성과 외침을 곁들여 가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들(독일인)은 나치즘을 원했다. 그들은 나치즘을 가졌다. 그들은 나치즘을 좋아했다"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이 떠오른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으로 압송된 아이히만의 공개 재판을 지켜본 건 이로부터 6년 후인 1961년이다. 밀턴 마이어는 당시 나치의 본질에 가장 근접해 있었다. 그의 책은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고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밀턴 마이어는 '악의 평범성'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면서 한계다. 그는 악의 평범성에 집중하기보단 나치즘이 독일 사회로 스며든 과정을 추적하며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문제는 그것이 독일에만 머물렀다는 데 있다. 



마이어는 나치즘의 탄생을 악의 점진성과 익숙함, 그리고 습관화로 설명한다. 그는 만약 히틀러가 1932년부터 유대인을 학살했다면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조금씩 그러나 빠른 속도로 국가주의와 반유대주의를 표출한 히틀러의 사상에 독일 사회가 젖어버려 1943년 전쟁을 수행하던 독일인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묵인하거나 지지했다. 그가 인용한 동료 독일 언어학자의 이야길 들어보자.



"여기서 벌어진 일이란 국민이 점차 조금씩, 조금씩 습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조치에 의해 통치되는 일에 습관화되고 비밀리에 내려진 결정을 받아들이는 일에 습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1943년 유대인 가스 학살이 1933년 비유대인 상점에 독일인 사업체란 표지를 붙인 직후 일어났다면 모두가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어요. 이 두 가지 사건 속에는 수백 가지에 달하는 단계가 거쳐 갔는데 그중 일부는 차마 인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은근했고, 그 각각은 당신이 그 다음번 단계에 깜짝 놀라지 않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담당했죠"





나치는 대중운동이었다. 대중이 자신의 가치체계가 흔들리는 '충격'을 맞는다면 히틀러라도 봉기를 맞기 마련이다. 130명이 살해된 11.13 파리 테러 후 프랑스인의 국기 소비와 군대 지원이 갑작스레 증가한 것처럼, 악이 돌연 다가온다면 대중은 자각하며 연대하고 맞선다. 하지만 마이어는 나치즘의 확장이 이와 달랐다고 말한다. 독일의 대중은 '충격과 과도함'을 기다리며 일상에 퍼져가는 나치의 정신을 용인했으나 막상 과도함의 도래를 자각할 때가 되자 변해 버린 세상에 익숙해져 체념해 버린다는 분석이다.



언어학자는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자살과 가치관의 조정, 부끄러움 세 가지 뿐이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해 많은 독일인은 부끄러움을 택한 "초라한 종류의 영웅"으로 전락했다고 토로한다. 왜 '초라한 영웅'이냐고? "부끄러움은 내가 위협을 받으면 언제든지 내던져버릴 수 있는 얕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인간은 이것밖에 안 되는 존재인가. 밀턴 마이어가 인터뷰한 전 나치 당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이 회의는 더욱 깊어진다. 그들이 마이어에게 공통으로 되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이 짧고도 강력한 질문에 마이어는 속 시원히 반박하지 못한다. 그는 오히려 미국이 독일과 비슷한 상황에 부닥쳤을 경우 미국인도 독일인과 비슷한 선택을 할 것이란 두려움에 휩싸인다(하지만 결론에선 독일의 특수성을 부각하며 모순을 드러낸다)



그런 마이어에게 이 질문에 대한 해답, 인간의 행동에 대한 일종의 방향을 제시한 것은 전쟁 당시 유대인을 숨겨줬다가 감옥살이를 한 동료 화학공학자와의 '후회'였다. 마이어가 유대인이란 점에서, 아니 그저 인간이란 점에서 그 화학공학자는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국민 총동원령이 내려진 해 히틀러에게 충성맹세를 한 자신을 후회했다. 아래는 마이어와 그 화학 공학자의 일문일답이다.



밀턴 마이어: 당신이 선서를 거부했다면 당신은 나중에 유대인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겁니다. 



화학공학자: 맞아요



밀턴 마이어:그래도 후회를 하신다고요?



화학공학자: 선서라는 것은 확실하고도 즉각적인 악이었던 반면 나중에 제가 유대인을 돕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을 돕겠단)선은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인 반면 악은 이미 뚜렷한 사실이었습니다.



밀턴 마이어: 실제로 돕지 않으셨습니까?



화학공학자: 나치가 학살한 유대인의 숫자를 3백만 명이라 가정하고(마이어는 6백만 명이라 주장) 제가 천 명을 구했다고 해보죠. 제가 말하는 핵심은 제가 만약 충성 선서를 하지 않았다면 3백만 명 전부를 구할 수도 있었을 거란 점입니다.



밀턴 마이어: 당신이 충성 선서를 거부했다면 정권이 전복되기라도 했을 것이란 말인가요?



화학공학자: 제가 만약 1935년에 선서를 거부했더라면 그건 결국 독일 전역에서 저와 같은 사람 수천 수만명이 선서를 거부했단 의미였을 겁니다. 이들의 거부는 결국 수백만 명의 마음을 움직였을 거예요. 그랬다면 정권이 전복되었을지도 모르고 최소한 나치가 애초에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일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화학공학자의 답변이 이상적이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화학공학자가 선서를 거부했더라면 감옥에 가 유대인을 살리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의 답변에 마이어의 마음이 요동쳤음이 책에서도 느껴졌다.



당시 독일 대중은 불확실한 선의 도래를 믿으며 즉각적이고 확실한 악을 수용했다. 결국 그 악은 독일을 휘감았고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켰다. 물론, 역사의 필연일지도 모른다. 최근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독자들에게 '과거로 돌아가 아기 히틀러를 죽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42%가 '예'라고 답했고 30%가 '아니라'고 답했다. 



개인적으로 이 질문엔 히틀러가 전쟁의 근원이 아닐 수도 있단 뉘앙스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란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서 히틀러의 자리를 대체할 대중적 지도자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란 뉘앙스 말이다. 



마이어는 진정 수레바퀴를 돌린 것은 쇼펜하우어가 '짐승 같은 진지함'이라 부른 태도로 나치를 대한 독일의 야수들이라 말한다. 야수란 독일의 7천만 대중이다. 그들이 바랐기에 히틀러가 탄생했고 열광했기에 나치는 창궐했다. 악을 처음부터 거부하지 못한다면 산에서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불어나 우리의 일상을 덮칠 것이다. 그땐 이미 늦어버려 평범하지 않은 악을 평범한 듯 묵인해야 한단 것이 마이어의 분석이다. 






앞선 부분에서 마이어가 '악의 평범함'에만 집중하지 않은 것이 이 책의 한계라 지적했다. 마이어는 전직 나치 당원들과 인터뷰할 땐 자신이 유대인임을 숨겼다. 그러나 책 후반부에선 그러지 못했다. 



마이어는 책 속에서 인터뷰한 나치 당원을 "개돼지"라 부르기도 독일인에겐 "시민의 용기가 결여되어있다"고 일반화하기도 "히틀러 따위에 싫증을 내지 않는 사람들을 독일인뿐이었을 것이다"란 인종주의적 발언도 서슴지 않으며 독일인만을 전적으로 비난한다. 



책 서문과 전반부에서 드러난 악에 대한 철학적 통찰은 책 후반부에서 독일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전환되며 저자의 시대적, 민족적 한계성을 드러낸다. 이런 측면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밀턴 마이어가 악의 평범함과 그 스며듬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이 책은 아직도 전쟁이 끊이질 않은 현대 사회에 유효한 영속성을 지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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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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