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과거로부터 어떤 본질적인 것을 배울 수 있는가. 인간은 역사로부터 일말의 통찰을 얻을 수 있는가.

인간은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보는 편이다. 무인자동차가 도로를 누비고 하늘에 미사 분자를 입사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시대. 새로 출시된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에 신기술이 무려 14개나 탑재된 그 '새로운 시대'에 인간의 정체(停滯)를 더욱 실감한다. 히틀러를 추동하던 나치가 트럼프에 열광하는 이반젤리컬(evangelical)로 갈음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신기술이 초래할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의 출현은 인간의 본질과 무관하다 생각한다.





로버트 쉴러의 <비이성적 과열>은 시장의 거품과 붕괴를 다룬 책이다. 그는 2000년 미국 닷컴 버블의 붕괴와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측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다. 그의 책을 읽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쉴러는 이 책에서 시장의 투기적 광풍을 조성하는 건 합리적 경제학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펀더멘털'이라 말한다. 그는 인간이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웠다는 인식 그 자체가 비이성적 과열의 중요한 요소라 지적한다. 



"사람들이 어떤 본질적인 사실을 배웠거나 배우고 있는 중이라 추론해선 안 된다. 대중들이 어떠한 사실을 막 배웠다는 인식은 가격 상승이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자극하며 주택가격의 커다란 상승을 지지하고 있다"



인간이 과거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웠다. 그래서 더 똑똑해졌다. 시장 가격은 현명해진 시장 참여자들 덕에 효율적으로 변했다. 현재의 가격이 과거보다 높은 것은, 인간의 무지함이 초래했던 비효율성 때문이었다. 즉 지금의 가격은 정당하다. 쉴러는 이 논리 구조가 투기적 열풍을 초래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중이 "가장 기본적인 사실도 배우지 못했다"고 단언한다. 쉴러는 인간을 합리적인 주체라 생각지 않는다. 행동경제학 혹은 행태재무학이라 불리는 그의 연구에서 인간의 시장 참여를 촉발하는 것은 '야성적 충동'이라 가정한다.





그런 가정 속에서 쉴러는 인간의 합리성에 반기를 드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주가가 고점을 찍었을 때 시장의 낙관을 확신하던 이들이, 하락장에선 그 낙관을 비관으로 대체하는 모습. 거품이 낀 투기적 광풍은 인간의 희망적 사고가 만들어낸 집단적 합의일뿐이란 사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시장에 합리적 분석에 근거한 것이 아닌 주식 시장의 내림세가 유도한 자본의 이동이란 그 단순함. 



쉴러는 1800년대부터 축적된 경제 자료와 다양한 심리학적 연구를 제시하며 인간을 합리적 주체라 가정한 경제학이 인간을 과대평가 했다고 지적한다. 그에게 있어 시장의 거품은 다단계 사기에 불과하며, 인간의 행동은 현상이 닥치기 전엔 예측이 불가하고 "비이성적 과열과 비이성적 비관론으로부터 사회를 온전히 보호하긴 불가능하다"란 견해를 내놓는다. 



1871년-현재까지 미국 주식 시장 가격 변화와 S&P 500 기업 수익률 



1871년-현재까지 쉴러의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 RATIO)



단, 책 말미에서 짧게나마 과열의 열풍을 제한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자신이 2000년 3월 닷컴 버블이 최고점을 찍던 순간 이 책의 초판을 출간했듯 전문가들의 용기 있는 제언이 필요하다는 점. 개인 투자자는 저축을 늘리고 투자를 다각화해야 한다는 것. 중앙은행은 통화정책 유연화를 통해 시장의 신용경색과 경착륙을 예방하고 정부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사회보장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피터 브뤼겔의 작품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니, The Blind leading the Blind>


'거품 감별사'로 유명한 그지만 사실 그의 연구 초점은 거품의 붕괴 예측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거품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예측 불가능한 시기에 언젠간 끝나게 될" 거품의 무리 짓기에 참여하는 인간의 행태였다. 그는 이를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형국"이라 설명한다. 



거품의 촉발 요인은 다양하나 거품이 꺼지는 이유는 단선적이다. 무엇이든 영원할 수 없다는 것. 다단계 사기의 실체가 밝혀지는 것은 영원히 투자자를 구할 수 없어서다. 주식이 폭락하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건 영원한 수요란 없기 때문이다. 거품의 필연적인 종말을 알기에 쉴러는 그 구렁텅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인간에 집중했다. 무엇이든 영원할 수 없으나 인간의 무지만은 영원하다는 그 사실에 매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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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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