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11.25 여자가 전쟁을 만났을 때
  2. 2015.11.17 태도는 논리를 넘어설 수 있는가
  3. 2015.11.08 가이트너가 구해낸 세상 (1)

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예술을 믿지 않는다. 


인구 천 만의 나라 벨라루스 언론인 출신인 그녀의 홈페이지엔 "지난 20년간 5권의 책을 쓰며 난 예술이 인간의 많은 것을 담는 데 실패했다고 선언한다"는 글귀가 걸려 있다. 문학도 예술의 일부라면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이 부정한 분야에서 정점에 올랐다.



문학을 부정한 언론인이 어째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까. 역설적이게도 알렉시예비치의 글에 담긴 지독한 

문학성 때문이다. 인생의 진실은 고통에 있다는 문학적 서사의 뼈대는 유지하지만, 허구를 실제 삶의 기록으로 대신한 그 문학성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자신의 첫 번째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알렉시예비치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릴 테니까." 그러나 같은 책에서 그녀는 "모든 것은 문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러시아 문학이 삶의 비밀인 고통과 잇닿아 있음을 언급한다. 평단은 알렉시예비치가 '목소리 소설'이란 새로운 문학 분야를 개척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의 목소리가 스스로 삶을 말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답할 뿐이다.




 



알렉시예비치의 이런 '역설성'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쟁 중 키가 자랄 만큼 어렸고 다리 사이로 떨어지던 피를 부상으로 보고했던 소녀의 목소리에서 터져 나오는 참혹한 전쟁의 모습. 거기엔 기록과 기억, 죽음과 아름다움, 운명과 선택, 삶과 문학의 역설이 담겨 있다.




"남자들로는 부족한 거요? 무엇 때문에 여자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거죠? 그건 다 여자들의 환상이란 말이오"



제2차 세계대전 때 참전한 소련 여성만 100만 명이 넘는다. 저격수와 소총수, 공병대 지휘관과 간호사로 참전한 그녀들에게 아무도 전쟁의 기억을 묻지 않았다. 모두들 그네들이 평범한 여자로 돌아가길 바랐다. 


알렉시예비치는 남자의 기록과 여성의 기억은 다르다고 믿었다. 여자의 목소리를 찾아다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름을 날린 여자 저격수를 만나러 가는 길. 알렉시예비치는 저격수가 일하는 공장의 남자 상사에게 핀잔을 듣는다. 여자들의 목소리가 전하는 전쟁은 "환상"이란 핀잔. 알렉시예비치는 이렇게 답한다.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목소리다. "나는 비록 여자지만 수영을 잘했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구하고 싶었어. 옆에서 누군가 물위로 떠 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 사람을 힘껏 붙잡았어...뭔가 차갑고 미끈한 게 만져지더군. 부상당한 병사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내가 데리고 나온 게 사람이 아닌 거야. 글쎄 상처 입은 커다란 물고기더라니까. 사람 키만큼이나 커다란 물고기. 흰 철갑상어였어. 죽어가고 있었지. 나는 녀석 옆에 털썩 주저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 어찌나 속상하고 화가 나던지 눈물이 났어. 이렇게 물고기까지 고통을 당하는 게 너무 속상해서”





똑같은 전쟁을 기억하는 다른 방식. 알렉시예비치는 기록을 기억으로 대체하려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참전 여성은 같은 여성들에게 모욕을 당했다. "젊은 몸뚱이로 내 남편에게 살살 꼬리나 친 전선의 암캐"란 소릴 들으며 "이미 치르고 온 전쟁에 견줘 결코 가볍지도 쉽지도 않은 또 다른 전쟁"을 겪어야 했다. 알렉시예비치는 그 여성의 목소리가 스스로 이야기하길 바랐다. 그녀는 기록과 기억은 같지 않음을, 진실은 "위대한 이야기와 영웅적 사례"가 아닌 "냄새나는 속옷과 평범하고 작은 사람"에 있음을 믿었다. 




"여자들은 무슨 말을 해도, 심지어 죽음을 언급할 때조차도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다는 것을(정말이다!), 아름다움은 여자를 여자로서 존재하게 하는 이유였다"



난 아름다움을 갈구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여자를 갈구할 뿐. 그러나 여자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갈구한다. 가을 길 낙엽처럼 흔한 죽음의 폐허 속에서도 여자들은 아름다워지고 싶었다. "아직은 더 예쁘고 싶었는데...나는 전쟁 내내 다리를 다칠까 봐 겁이 났어. 나는 다리가 예뻤거든", "나는 두 손에 거울을 꼭 쥐었어. 행여 거울이 얼까 봐. 저녁때 보니까 뺨이 동상에 걸렸더라고", "내가 전쟁터에서 예뻤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 그곳에서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이 지나가 버렸어. 다 타버렸지. 그리고는 순식간에 늙어버렸어" 




세 여성의 다른 목소리는 모두 같은 것을 바라본다. 독일군을 죽이고 돌아온 그 날 밤에도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고 싶었다. 전쟁은 어린 소녀를 강간하는 남성의 본능엔 관대했지만, 눈썹을 물들이고 귀걸이를 차는 여자의 본능엔 야멸찼다. 전장엔 남자의 욕망 어린 몸짓과 쾌락의 냄새만이 코끝을 찔렀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너온 한 여자는 회상한다. "아 끝까지 살아남기만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질까? 이처럼 처절한 고통을 이겨냈으니.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미워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사람 앞엔 모든 길이 놓여 있다. 고결한 곳으로 향하는 길과 비열한 곳으로 향하는 길, 천사로부터 짐승에 이르는 길"



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함께했다. 테러 조직 ISIS는 지난주 금요일 파리에서 129명의 사람을 죽였다. 지금도 인간은 전쟁 중이다. 전쟁이 운명이란 말엔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그때부터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한다. 인생에 주어진 무수한 선택지가 사라진다. 시대의 목격자가 시대의 부산물로 변해버린다. 



"한 병사가 포로를 구타했어요. 나는 그 짓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말렸죠. 그 병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어요. 그건 그의 영혼에서 터져 나오는 아우성 같은 것이었으니까. 나한테 욕을 퍼붓더군요. 있는 욕, 없는 욕, 욕이란 욕은 다 해댔죠. '이년아 벌써 잊었느냐. 저놈들이 한 짓을 벌써 잊어버렸느냐고. 이 쌍년이' 하지만 포로를 때릴 순 없었어요. 그렇게 우리는 각자 자기 행동을 결정해야 했고, 그건 중요한 일이었어요"



"용서하는 게 쉬웠을 거로 생각해? (독일의) 멀쩡하고 새하얀 벽돌 지붕의 집들을 보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 같으냐고. 장미가 탐스럽게 핀 집들...나도 그들이 고통스럽기를 바랐어. 당연히...그들의 눈물을 보고 싶었지. 한순간에 착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기까지 나는 수십 년이 걸렸어. 



인간은 선택할 때 더욱 인간다워진다. 여성을 강간하지 않고 포로를 구타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증오를 용서로 대체하는 과정, 그 과정에 진실이 있다. 그렇다고 증오를 비난하진 않는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엔 독일군뿐 아니라 스탈린을 향한 소련인들의 서릿발 가득한 증오의 편린들이 담겨 있다



그 증오만큼 이 책에는 전쟁의 처참한 현실들이 적혀있다. 무자비한 고통이 있다.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이런 대목을 만날 땐 책을 덮고 고개를 들어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기억나느냐고? 오도독, 오오독 소리. 그 소리가 기억나.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사방에서 오도독하는데 연골이 으스러지고 뼈마디가 뚝뚝 부러져나가는 소리, 짐승의 울음과 같은 처절한 비명들..." 





비극이 이어질수록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너졌다. 삶과 문학이 잇닿는 지점에서 인간은 고통을 내뱉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문학보다 문학적이기에 남은 책장들이 아쉬웠다. 알렉시예비치는 침묵하던 소련의 여자들을 찾아갔다.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스탈린과 함께한 소련의 역사엔 빵 한 조각보다도 의미 없는 무수한 훈장만이 가득했다. 남자는 '전쟁을 신화화'함으로써 그 허무에 맞섰다. 소련의 여자는 '전쟁 후 또 다른 전쟁'을 치르며 숨죽여 기다렸다. 알렉시예비치는 그 여자의 목소리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네들은 많이도 울었다. 소리도 질렀다. 내가 떠나고 나면 그네들은 심장약을 먹었다. 구급차가 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와달라고 부탁했다. "와요. 꼭 다시 와야 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침묵하고 살았어. 40년이나 아무 말도 못 하고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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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4월 17일 금요일 오후. 


엘리자베스 워런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매사추세츠주 존 F.케네디 건물의 로비로 들어선다. 테드 케네디 연방 상원의원을 만나러 왔다. 주어진 시간은 15분. 워런의 목표는 공화당 주도로 진행된 파산법 개정을 막기 위한 케네디의 지지를 얻어 내는 것. 



1980년대부터 정부의 규제 완화로 월스트리트의 대형 은행은 유색 인종, 저소득층, 저학력자, 고령자를 

겨냥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카드 대출을 남발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남은 문제는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채무자의 파산으로 인한 일말의 손해. 대형 은행은 파산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려 했다. 삶의 끝자락에 몰린 수백만 채무자의 파산이 지연될수록 은행의 이자 수입은 증가할 것이다. 



면담은 워런의 설득으로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워싱턴의 실력자 케네디는 워런에게 약속한다. 파산법 개정 반대 운동을 이끌겠다고. 확답을 들은 워런은 보좌관의 눈치를 살피며 사무실을 나와 감격에 찬 울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1995년부터 시작된 싸움은 2005년까지 이어졌다. 10년간 워런은 책을 쓰고, 강연 하고, 코미디 방송에 출연하고 정책을 만들며 파산법 개정을 지연시켰다. 2005년 하원에서 302 대 126, 상원에서 74 대 25란 압도적인 지지로 업계의 법안이 통과되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기 전까지 싸웠다.





워런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백만의 사람이 재정 파탄에 이르렀는데도 이기지 못했다. 우리가 이기지 못했다고? 제기랄, 심지어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어떻게 백전백승의 인생을 살 수 있는가?" 워런의 자서전 <싸울 기회> 표지에 큼지막하게 적힌 문구다. 패배란 살풍경이 익숙한 독자를 유혹하는 이 문장은 원전엔 없는 말이다. 워런은 세상과 치열하게 싸웠지만 대부분 패배했다. 승리는 2012년 매사추세츠주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연방 상원의원 선거를 기록한 책의 마지막 장에만 담겨 있다. 워런은 스콧 브라운 당시 현직 상원의원을 8퍼센트 차이로 따돌렸다. 자신을 감격게 한 테드 케네디의 빈자리를 7년이 지나 스스로 채운 것이다. <싸울 기회>는 '백전백승'를 한 승리자의 기록이 아닌 수많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은 워런의 분투기다.




각주까지 548페이지에 달하는 <싸울 기회> 속에는 많은 일화가 담겨 있다. 그중 1998년 워런과 케네디의 만남을 끄집어낸 건, 이 이야기 속에 워런의 특징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싸울 기회>를 읽기 전, 티머시 가이트너 전 미국 재무장관의 회고록 <스트레스 테스트>를 읽었던 영향도 있었다. 가이트너에게서 사변적 해결책과 완벽에 가까운 경제학적 논리, 미국 재부무 엘리트 관료로 성장한 워싱턴 인사이더의 모습이 풍겼다면, 워런에게선 현실 문제에 천착한 연구자, 열정적인 운동가, 파산의 문턱에 서있는 시민들을 만나며 결국 하버드 교수 자리에 오른 아웃사이더의 맹렬함이 느껴졌다



책의 문체에도 차이가 있다가이트너는 논리를 바탕으로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워런의 책은 독자의 가슴에 불을 댕기려는 연설가와 대화하는 느낌이다.  사람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모두 워싱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잦은 의견 충돌을 겪었다. 각자의 책에서도 서로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주로 워런의 책이 가이트너에 대해 비판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워런은 부시 정부의 재무장관 헨리 폴슨이 도입하고 오바마 정부의 재무장관 가이트너가 주도한 부실자산구조프로그램(TARP)의 의회 감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자본 부족에 시달리던 대형 은행을 위해 마련된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은 그들이 살아온 여정만큼이나 판이했다. <싸울 기회>에서 워런은 가이트너를 가르켜 "장관은 눈이 덮인 산 정상에 있는데 나는 사막을 기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세상과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은 그렇게 달랐던 것이다"라고 회고한다. 가이트너는 워런에 대해 "당내 자유파 중 가장 열렬하고 유창한 비판자"라며 그녀의 비판을 일정 부분 수긍했지만, 그녀가 불공정하며 불투명하다고 비판한 TARP와 '스트레스 테스트'에 대해선 금융위기를 극복한 유일했고 최선의 정책이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싸울 기회>에 드러난 워런은 상투적인 통념에 기대 편안한 연구를 하지 않았다. 파산법 연구를 시작한 1980년대부터 현실 문제에 천착했고 사람을 만났다. 당시 학계와 정치권에서 파산자는 "빚을 떼어먹은 어딘가 구린 데가 있는 사람" 이거나 "흥청망청 돈을 낭비한 무책임한 사람"이라 여겨졌다. 워런은 파산을 앞둔 사람들을 만나러 직접 법정을 찾았다. 통념과 달리 판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대부분의 사람은 탄탄한 중산층 출신이었다. 워런은 파산자 중 90%는 실직과 의료문제, 가족 해체란 세 가지 이유로 본인의 의사완 상관없이 그 자리에 섰다는 것을 증명했다. 통계청 등 각종 정부 기관 자료를 연구해 현대 중산층 가정의 파산이 증가한 이유를 과소비로 꼽는 '과소비 신화'에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2003년 매킨지에 다니던 첫째 딸 아멜리아와의 공동 저서 <맞벌이의 함정>에서 워런은 2000년 맞벌이 중산층 가정이 1970년대 홀벌이 중산층 가정보다 더 궁핍한 살림을 꾸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 원인은 명품 선글라스와 나이키 신발 탓이 아니었다. 30년째 이어진 임금 정체와 필수적 지출인 의료비와 교육비의 증가, 정부 규제 완화로 치솟은 은행의 이자 때문이었다. 





워런에게서 '운동가적 열정'이 느껴지는 건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으로 치환하는 그녀의 특성 때문이다. <싸울 기회>에서 워런은 파산법 연구를 하며 만났던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혼자 살던 80대 할머니가 은행 직원의 소개로 주택담보대출을 변동 금리로 바꾼 후 폭등한 금리를 감당치 못해 길거리에 나앉은 이야기, 이혼 후 불행한 재혼에 중병까지 겹쳐 파산한 40대 여성의 이야기. 조용히 자신의 연구실로 찾아와 부모님의 파산을 서럽게 이야기하던 학생의 이야기. 워런은 정계에 나서기 전부터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논리로 무장한 관료들이 고통 받는 미국의 중산층을 단순한 통계와 숫자로 정의하는 것을 꺼렸다. TARP 의회 감독위원회 위원장 재직 시절엔 TARP 자금이 대형 은행에만 쏠려 소규모 지역 은행의 도산이 잇따르자 "그렇게 잃어버린 기회를 생각할 때마다 아직도 좌절감에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자영업자, 실직자, 이것은 그저 종이에 적힌 숫자가 아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잃은 수백만 명의 사람이다"고 회고한다.


 

마지막으로 아웃사이더적 기질. 2009년 초, 미국 경제가 대공황과 대침체의 갈림길에 섰던 시점에서 워런은 TARP 감독 위원장의 권한으로 오바마 정부의 구제금융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일류 자문 업체와 함께 정부의 구제금융 거래 내용을 분석한 결과 미국 정부는 은행의 부실 자산 매입을 위해 100달러를 쓸 때마다 그 대가로 66달러 가치의 자산을 받아왔단 사실이 밝혀졌다. TARP 거래는 매입 액면가 그대로 이뤄진다는 헨리 폴슨 장관의 말이 거짓이었던 것이다. 언론은 재무부가 국민 세금으로 금융위기를 초래한 대형 은행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론이 들끓었다.오바마 정부의 지지율은 떨어졌다.



워런은 이때 래리 서머스 당시 백악관 경제위원장(전 하버드 총장으로 워런의 상사이기도 한)의 초대로 단둘이 저녁 식사를 하며 '경고'를 받았다고 했다. 다이어트 콜라를 연신 들이켜던 서머스는 워런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웃사이더는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인사이더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요. 하지만 인사이더끼리는 절대로 깨서는 안 되는 한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인사이더끼린 서로 비평하지 않는다는 규칙이지요" 오바마의 핵심 참모이자 가이트너의 멘토이며 차기 미국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로 꼽히던 서머스의 날 선 비판에도 워런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워런은 TARP의 불투명성과 불공정함, 대형은행의 무차별적인 주택 압류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정부를 지속해서 비판했다. 워런은 자신이 대형은행이 제공하는 인사이더의 안락함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다며 "그 클럽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주는 공짜 소다주를 마시지 않을 수 있었고 외부에서 금융 시스템을 연구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내겐 성역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티머시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워런의 <싸울 기회>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책이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인물이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을 두고 상반된 의견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이트너는 결과론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를 대처한 정부의 정책이 옳았다고 말한다. TARP과 스트레스 테스트로 은행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사라져 뱅크런을 막았다. 정부는 이자까지 쳐서 TARP 자금을 모두 회수했다. 분명 한계는 존재하지만 현 체재(Status Quo) 유지를 위해선 그게 최선이었다. 거시적 관점에서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에 필연적 현상이며 대공황의 교훈을 배운 정부라면 구제금융은 불가결한 선택이었다. 이것이 가이트너의 주장이다.   





하지만 워런은 가이트너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만 옳았을 뿐 나머진 모두 틀렸다고 주장한다. 워런은 당시엔 "아무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랐으며 그 위험은 고스란히 납세자가 졌다"며 과정의 철저한 불공정성을 지적한다. 만약에라도 헨리 폴슨과 가이트너 장관의 정책이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면 되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았을 것이란 뉘앙스다. 워런은 연준이 주도한 '스트레스 테스트'는 감독 기관에 충분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불투명한 정책이었다고 비판했다. 소수 장관과 대형은행 CEO에게 미국의 미래를 맡기는 건 무책임한 처사란 것이다. 또한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대형은행의 무차별적 주택 압류를 정부가 성실히 저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 정부의 모습을 "거대한 산불을 안약으로 끄겠다고 하는 것"이라 비유했다. 2009년 2분기 GDP가 -0.4%를 기록하며 감소세가 완연히 꺾여 안정세를 되찾았다는 정부의 낙관적 주장에 워런은 10%가 넘는 실업률 해결을 위한 대책을 요구했다. 워런은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역사와 함께하는 필연적 현상이 아닌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가 초래한 인위적 현상이라 주장한다. 자본에 대한 상식적 규제만 가능하다면 미국 경제는 오랜 기간 공황 없이 안정성을 유지할 것이란 논지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워런의 열정만큼 가이트너의 논리도 빈틈이 없다. 물론 워런의 주장도 논리적으론 나무랄 데가 없다. 어렵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나의 선택이 결정이 옳다는 보장도 없다. 나 역시 평생을 함께해 온 경험과 편견의 소산물이다. 옳다는 말은 우스운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스트레스 테스트>를 읽으며 생겼던 고민이 <싸울 기회>를 통해 약간이나마 해소됐다. 논리만큼 중요한 것은 그 논리에 바탕을 둔 동기이며 태도란 생각이 들었다. (가이트너의 동기가 악하단 뜻은 아니다) 워런의 태도와 삶에 매력을 느꼈다. 기자로서 종요로이 생각할 점들이 많았다. 기존의 체재와 통념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도전 의식. 학문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로 나아가 세상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는 성실함. 인사이더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그들의 성역을 넘나드는 아웃사이더의 자유로움까지. 공부를 하면 할수록 관료의 논리에 포섭돼 길을 잃고 방황하던 나의 머릿속이 조금은 명료해진 느낌이다. 기자는 매일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 최선의 방법은 논리와 지식이란 눈 덮인 산 정상에 있기보단 열정을 품고 뜨거운 사막 속을 걸어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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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가이트너는 말한다. 내가 옳았다고. 나의 정책이 미국 경제를 위기의 수렁에서 구했다고.



<스트레스 테스트>는 금융 위기와 함께 한 그의 재무장관 시절(2009년 1월~2013년 1월)이 담긴 회고록이다. 하지만 다른 회고록과 달리 가이트너의 기록엔 네개의 적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쏟아진다. 그가 겨냥한 적들이란 첫째:빌 클린턴 정부가 물려준 흑자 재정을 8년간 낭비한 공화당. 둘째:뉴욕타임스를 비롯해 흑백논리에 매몰된 하이에나 같은 언론. 셋째:월가의 도적적 해이를 지적할뿐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를 포괄하지 못하는 운동가들. 마지막으로 위기의 심각성을 모른 채 은행가에 구약성격적 심판론만 제기한 대중들이다.






작심하고 쓴 듯한 저서에서 가이트너는 자신이 주도한 정부의 두 가지 프로그램으로 위 네개 집단의 논리를 갈파한다. 그 두 가지 프로그램이란 줄도산 위기에 처한 대형 은행의 부실 자산을 매입한 '부실자산구제금융프로그램(TARP)'과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 상황을 가정하고 은행의 재정 안정성을 평가한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가이트너는 이 정책들의 결과로 미국 경제가 2009년 6월 대공황을 빠져나왔다고 말한다. 

같은 해 12월엔 자신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경제의 뇌관이라 보고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TARP 자금 전액을 상환했다. 이로서 미국 경제는 대침체에서 탈출했단 주장이다.



가이트너는 "일부의 방화범들이 채찍을 피해가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구해내야 했다"고 말했다. 은행가를 처벌하고 그들의 탐욕에 심판을 내리는 것이 당장은 매력적 방안이나 "재앙 속에서 진정한 과업은 재앙을 끝내는 것"이라 말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선 방화범을 처벌할 것이 아니라 먼저 불을 꺼야 했단 것이다. 2009년 경제 위기는 도덕적 심판론을 주장하기엔 그 규모가 너무나 컸다. 이럴 땐, 직관엔 배치되나 '탐욕스러운 은행에 세금을 투입해 신용을 투입하는 정책'만이 유일한 해답이라 주장한다.




2009년 5월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가 실시된 후, 은행에 대한 불신은 정부의 보증으로 사그라들었다. 또한, 평가 대상 중 다수의 은행이 정부의 보증 없이 민간에서 부족한 자본을 확충했다. 같은 해 1분기 -5.4%성장한 미국 경제는 2분기 -0.4%수준으로 회복하며 안정을 찾았다. 당시 가이트너는 오바마 정부가 10%가 넘는 실업률 때문에 당당히 '위기 탈출' 선언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책을 출간한 시점인 2014년 실업률은 6%대였다. 지난 달 미국 노동부 고용 지표를 보면 실업률은 5%까지 하락했다. 선물 시장에서 연내 금리 인상 확률은 72%까지 상승했다. 이런 실증적 결과와 함께 논리로 무장한 가이트너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에게 감탄하고 설복된다. 뉴욕타임스는 좌파 포퓰리즘 언론으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벌인 청년들은 무식한 대중으로, 그의 정책에 반기를 든 공화당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위기 속에서 선거만 생각하는 혐오스러운 정치꾼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가이트너만이 옳고 나머진 모두 틀렸단 것일까? 만약 그의 말이 맞다면, 2009년 앨리자베스 워런이 주재하고 가이트너가 출석한 TARP 의회 감독위원회에서 그의 뒤편으로 "우리의 돈을 돌려달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던 코드핑크 NGO 회원들은 뭘하고 있었단 말인가. 가이트너의 말처럼 곧 미국 정부가 그들의 요구를 "이자를 포함하여 이행하게 될 것"인데 말이다. 가이트너는 회고록에서 "위기란 과학보다는 기술, 분명한 흑백이기보다는 회색으로서, 검증된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절대 부동의 원칙보다는 융통성과 창의력, 겸손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전혀 겸손하지 않은 확신에 가득찬 주장엔 일견 거부감이 들었다. 그의 논리와 내 경험이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2009년 당시 난 미국에서 언론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3시간 떨어진 미주리의 한 시골 마을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던 삼촌은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영난을 겪었다. 매출은 자츰 줄어들었고 삼촌은 최저 임금을 주던 직원들의 해고 여부를 두고 고민했다. 한국에서 등록금을 송금해 주시던 부모님 역시 금융 위기 후 원화 가치가 급락해 은행에서 빚을 내 등록금을 부치셨다. 당시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동기들도 몇몇 보였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제쳐두고라도 당시 삼촌은 가이트너와 오바마에게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을 떠나던 2012년에도 삼촌의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물론, 그가 조언을 구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말처럼 가이트너가 "골드만삭스 CEO 목에 칼을 긋는다고 해도 대중은 또 다른 피에 굶주릴 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구해낸 세상이 주유소를 운영하던 삼촌과, 삼촌에게서 최저 임금을 받던 백인 저학력 노동자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문학적인 세금을 투입해 은행을 살려냈고 대공황에서 벗어났다고 하자. 하지만 최근 앵거스 디턴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서 드러난 것처럼 고졸 이하 백인 남성 10만 명당 사망률이 1999년 이후 30% 이상 가파르게 늘어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답답했다. 고졸 이하 백인 남성은 흑인, 히스패닉계와 함께 금융위기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인구 계층이다.




물론 다시 가이트너의 논리로 돌아오면 답은 쉽다. 정부가 은행의 부실자산을 매입하지 않아 망하게 내버려 뒀다면 미국 경제는 유럽이나 일본처럼 더 큰 수렁에 빠져 백인 남성의 사망률이 지금보다 가파르게 증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책에서 밝힌 것처럼 미국 자본주의엔 "시스템 개선을 위한 노력에도 다음 위기가 또 찾아올 것"이다. 이는 정부가 어차피 또 무너질 시스템에 천문학적 세금을 들였단 뜻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탐욕과 낙관이 허망과 비관으로 순환되며 굴러가는 이 불안정하고 불안한 체재를 유지하려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가이트너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면, 그가 "좌파 선동가"라 지칭한 버니 샌더스 민주당 대통령 예비 후보처럼 정부의 정책을 방해하는 무책임한 여론 선동가처럼 보일까. 내가 미국 유권자라면 버니 샌더스보다 힐러리 클린턴에게, 테드 크루즈보단 젭 부시에게 마음이 갔을 것이다. 단숨에 모든 것을 뒤집을 기세인 '혁명'에 찬동하기 보단 가이트너의 점진적인 개혁이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이트너가 자신감 가득찬 목소리로 역설한 '금융위기 이후의 세상'이 별로 멋져 보이지도, 그 세상을 구해준 것이 그리 고맙지도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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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