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12.20 '위안부'는 '위안부'를 억압한다. (2)
  2. 2015.12.12 영원한 것은 인간의 무지뿐 (1)
  3. 2015.12.04 악은 우리를 체념하게 한다 (2)

이창래 프린스턴대 교수의 장편 소설 '척하는 삶'(1999)은 한국계 일본인 군의관의 시선으로 전쟁 속에 놓인 조선인 위안부 문제를 다룬다. 책을 펼치며 참상 속에 놓인 군의관의 헐떡거림이나, 일본군에게 참혹히 범해진 위안부 소녀의 절규를 맞이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작가는 미국 작은 시골 마을에서 백인 이웃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가는 일본인 노인 닥터 히타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히타는 전쟁의 기억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전 일본인 군의관 고로의 두 번째 이름이다.



조선인 위안부 문제를 서구 사회 수면 위로 끌어올린,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영문 소설 '척하는 삶'의 내용 대부분은 평범한 노인 히타의 삶으로 채워져 있다. 



조그마한 의료용품 가게를 운영하며 두루두루 존경받는 현자 같은 노인. 히타는 자신이 전쟁과 위안부의 참상을 목격하지도 않은 양, 서양 소설에 등장하는 하나의 평범한 인물인 '척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랬기에 그를 존경하는 이웃 주민은 왜 히타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한국인 여자아이를 입양했고 왜 번번이 사랑에 실패하는지 알지 못한다. 전쟁의 죄책감이 강박을 낳고 결국 그 강박이 딸과의 불화로 이어지는 필연적 운명에 대해서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이웃들은 모든 이유가 히타 안에 있음에도 자신들이 규정한 히타를 벗어난 모든 것의 원인을 히타 밖에서 찾는다. 전지적 시점의 관점이란 특권을 누린 독자만이, 책 후반부에 드러난 고로로서 히타의 기억을 경험하고 전쟁과 위안부란 비일상적 경험이 한 인간에게 미친 영속적인 영향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을 떠올린 건, 최근 논란이 된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 때문이다. 박 교수는 책에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위안부의 이미지, 즉 수요집회에 참여하는 투사로서의 할머니와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소녀의 모습이 전쟁 당시 실제 위안부와는 많이 달랐다고 주장해 한국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박 교수의 주장을 따라가면 당시 조선인 위안부의 평균적 나이는 20세가 넘었고 10세 소녀들은 예외적인 경우였다. 일본군에 납치당한 위안부는 소수에 불과했다. 



위안부 대부분은 조선인 포주와 인신매매단이 납치한 저소득층 여성들이다. 박 교수는 일본군이 위안부의 근본적인 수요를 초래했고 용인했기에 사죄의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부장적 사회를 굳건히 유지하며 여성의 영속적 저계급을 초래한 조선 사회와, 자국 여성을 수익 수단으로 간주한 채 일본에 협력한 조선의 협력자들에게 비판의 화살을 가한다.



박 교수는 일본군을 악마화 하고 위안부를 주체성 없는 완벽한 수동적 피해자로 묘사하는 것은, 위안부에 동참한 조선의 수많은 매춘업자와 그녀들을 지켜내지 못한 가부장적 사회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란 입장을 피력한다. 



또한 이는, 제국주의적 모순, 1965년 한,일 협정에서 식민지 사죄를 요구하지 못한 냉전 체제 속 한국 정부의 한계를 덮는 효율적이고 편리한 국가주의적 발상이라 말한다. 박 교수는 이것이 위안부를 위안부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들어 역설적으로 생존했든 혹은 이미 숨을 거둔 위안부 할머니를 억압하고 있단 논지를 펼친다.



박 교수는 또한, 전쟁 당시 조선인 위안부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기존 시각관 판이한 견해를 제시하며 또 다른 논란도 촉발한다. 조선인 여성이 일본 제국주의란 "보조적인 강제성"에 희생자라 말하면서도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이 침략한 타국 여성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렸고 전쟁의 폭격 속에서 일본군과 함께 숨을 거둔 '제국의 위안부'란 것이다.  



박 교수는 "전쟁터에서 강간의 대상이 된 '적의 여자'와 위안부는 군과의 관계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였다"고 말한다.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이 승전을 거뒀던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지역 여성들과 달리 "두 번째 일본인"의 지위를 누렸다고 주장한다



책에선 일본 식민지의 일원으로서 전쟁에 참여했고 일본 군인과 사랑에 빠지거나, 그들을 전쟁의 동지로 생각했거나, 그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제공했거나, 일본군 병사를 동정하는 위안부들의 목소리들도 담담히 적어 내려간다

  


이런 주장 역시 한국 사회가 위안부를 기억하는 방식과 완연히 배치된다. 위안부란 단어 앞에 '제국의'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권력자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작년 6월 박 교수는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위안부 할머니 아홉 명에게 고소를 당한다. 당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형사 고소, 2억 7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접근 금지와 <제국의 위안부>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8개월 후 법원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원고 측 주장 일부를 받아들여 원고 측에서 수정 신청한 53곳 중 34곳을 삭제하지 않고는 <제국의 위안부> 출간을 금지했다.



접근 금지 요청은 기각됐으며 민사 소송은 16일 1심 재판이 끝났고, 형사 소송은 검찰이 지난달 18일 박 교수를 기소해 1월 중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법원 판결 후 재출간된 <제국의 위안부> 2판엔 34곳에서 문맥과 문맥을 잘라 놓는 여과 없는 숨김표(O)가 등장한다. 



박 교수는 법원의 삭제 명령이 반영된 '제국의 위안부' 2판을 내놓으며 '제국의 위안부'란 표현이 조선인 위안부를 제국주의의 협력자나 친일파로 묘사하려는 뜻이 아니었음을 밝힌다. 



위안부의 근원적 수요를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죄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나 "일본이라는 고유명에 대한 집착은 국가와 남성과 지배층 일반의 책임" 추궁을 어렵게 만들어 결국 책임의 물타기를 초래한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우리 안의 위안부는 그저 가녀린 소녀 아니면 노구를 이끌고 투쟁하는 투사일 뿐"이며 "그건 그녀들 자신의 모습이 아닌 우리가 원한 위안부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이런 식민지의 모순을 이해해야만 위안부의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단 것이 그 요지다



이어,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현재의 '부정확한 이해'는 위안부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했던 지한파마저도 돌아서게 했다는 주장을 덧붙인다. 



박 교수의 주장처럼 이런 다층적 이해는 꼬일 대로 꼬여버린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박 교수가 말하듯이 위안부에 대한 총체적 책임이 결국 그 수요를 창출한 일본군 제국주의에 있다면, 그들에게 협력한 조선의 협력자들을 단죄하는 것은 오히려 총체적 책임자인 일본군에게 일종의 면죄부로 작용하진 않을까.

 


'척하는 삶'에서 고로(히타)는 싱가포르 일본 군기지로 끌려온 조선인 위안부 여성의 건강 관리를 맡았다. 고로는 그중 유별나게 아름답고 고귀해 보인 끝애라는 조선인 여성을 사랑했다. 넷째이자 막내 여자 아이로 태어나 부여 받은 '끝애'란 성의 없는 이름. 박 교수가 위안부의 요인으로 지적한 조선의 가부장적 사회 구조가 드러난단 측면에서 소설은 현실과 맞닿아 있다. 



고로는 끝애를 구해내지 못한다. 끝애는 자살을 원했다. 고로는 억지로 그녀를 구해내려 했다. 하지만 실패한다. 일본군 장교와 병사는 끝애를 윤간한 후 그녀가 자살하기 전 살해한다. 끝애는 고로를 착한 일본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죽여 달라고 했다. 그런 고로는 끝애와 서양 소설에 등장하는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싶었다.    



결국 고로는 히타로 이름을 바꾸고 미국 시골 마을에 정착한다. 사죄의 의미였을까. 평생을 결혼하지 않은 그였지만 고로는 한국인 소녀를 입양해 열심히 키운다. 불화로 두 부녀는 갈라서지만 소설 말미에서 작가는 두 사람 사이에 화해의 기운을 살짝이나마 드러낸다. 



'제국의 위안부'는 박 교수를 비난하는 이들의 주장과 달리 조선인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표현치 않았다. 그렇다고 위안부의 이미지를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간 소녀로서 한정치도 않는다. 



일본군과 위안부가 "국민동원이라는 국가 시스템 속에서 함께 움직여진 장기말,한 마리의 개미들"이란 화두를 던지지만 "위안부가 군인과의 관계에서 희생자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단정한다. 



그럼에도 박 교수는 위안부 속에는 한국과 조선이 기억하길 원치 않았던 다양한 모습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이 '동지적 관계'든 '전우로서의 관계'든 연인으로서의 관계'든 말이다. 



그녀는 위안부 문제에 감정을 가진 한국과 일본 독자에게 1인칭 관점을 넘어 전지적 관점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조선인 위안부의 다층적 모습을 이해하는 것이, 한국과 일본이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라 말하고 있다.


저작자 표시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1 : 댓글 2

인간은 과거로부터 어떤 본질적인 것을 배울 수 있는가. 인간은 역사로부터 일말의 통찰을 얻을 수 있는가.

인간은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보는 편이다. 무인자동차가 도로를 누비고 하늘에 미사 분자를 입사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시대. 새로 출시된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에 신기술이 무려 14개나 탑재된 그 '새로운 시대'에 인간의 정체(停滯)를 더욱 실감한다. 히틀러를 추동하던 나치가 트럼프에 열광하는 이반젤리컬(evangelical)로 갈음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신기술이 초래할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의 출현은 인간의 본질과 무관하다 생각한다.





로버트 쉴러의 <비이성적 과열>은 시장의 거품과 붕괴를 다룬 책이다. 그는 2000년 미국 닷컴 버블의 붕괴와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측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다. 그의 책을 읽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쉴러는 이 책에서 시장의 투기적 광풍을 조성하는 건 합리적 경제학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펀더멘털'이라 말한다. 그는 인간이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웠다는 인식 그 자체가 비이성적 과열의 중요한 요소라 지적한다. 



"사람들이 어떤 본질적인 사실을 배웠거나 배우고 있는 중이라 추론해선 안 된다. 대중들이 어떠한 사실을 막 배웠다는 인식은 가격 상승이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자극하며 주택가격의 커다란 상승을 지지하고 있다"



인간이 과거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웠다. 그래서 더 똑똑해졌다. 시장 가격은 현명해진 시장 참여자들 덕에 효율적으로 변했다. 현재의 가격이 과거보다 높은 것은, 인간의 무지함이 초래했던 비효율성 때문이었다. 즉 지금의 가격은 정당하다. 쉴러는 이 논리 구조가 투기적 열풍을 초래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중이 "가장 기본적인 사실도 배우지 못했다"고 단언한다. 쉴러는 인간을 합리적인 주체라 생각지 않는다. 행동경제학 혹은 행태재무학이라 불리는 그의 연구에서 인간의 시장 참여를 촉발하는 것은 '야성적 충동'이라 가정한다.





그런 가정 속에서 쉴러는 인간의 합리성에 반기를 드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주가가 고점을 찍었을 때 시장의 낙관을 확신하던 이들이, 하락장에선 그 낙관을 비관으로 대체하는 모습. 거품이 낀 투기적 광풍은 인간의 희망적 사고가 만들어낸 집단적 합의일뿐이란 사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시장에 합리적 분석에 근거한 것이 아닌 주식 시장의 내림세가 유도한 자본의 이동이란 그 단순함. 



쉴러는 1800년대부터 축적된 경제 자료와 다양한 심리학적 연구를 제시하며 인간을 합리적 주체라 가정한 경제학이 인간을 과대평가 했다고 지적한다. 그에게 있어 시장의 거품은 다단계 사기에 불과하며, 인간의 행동은 현상이 닥치기 전엔 예측이 불가하고 "비이성적 과열과 비이성적 비관론으로부터 사회를 온전히 보호하긴 불가능하다"란 견해를 내놓는다. 



1871년-현재까지 미국 주식 시장 가격 변화와 S&P 500 기업 수익률 



1871년-현재까지 쉴러의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 RATIO)



단, 책 말미에서 짧게나마 과열의 열풍을 제한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자신이 2000년 3월 닷컴 버블이 최고점을 찍던 순간 이 책의 초판을 출간했듯 전문가들의 용기 있는 제언이 필요하다는 점. 개인 투자자는 저축을 늘리고 투자를 다각화해야 한다는 것. 중앙은행은 통화정책 유연화를 통해 시장의 신용경색과 경착륙을 예방하고 정부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사회보장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피터 브뤼겔의 작품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니, The Blind leading the Blind>


'거품 감별사'로 유명한 그지만 사실 그의 연구 초점은 거품의 붕괴 예측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거품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예측 불가능한 시기에 언젠간 끝나게 될" 거품의 무리 짓기에 참여하는 인간의 행태였다. 그는 이를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형국"이라 설명한다. 



거품의 촉발 요인은 다양하나 거품이 꺼지는 이유는 단선적이다. 무엇이든 영원할 수 없다는 것. 다단계 사기의 실체가 밝혀지는 것은 영원히 투자자를 구할 수 없어서다. 주식이 폭락하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건 영원한 수요란 없기 때문이다. 거품의 필연적인 종말을 알기에 쉴러는 그 구렁텅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인간에 집중했다. 무엇이든 영원할 수 없으나 인간의 무지만은 영원하다는 그 사실에 매료됐다. 


저작자 표시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1

1932년 독일인은 선택을 요구받는다.



"여러분의 조국이 볼셰비키에게 넘어가길 원한다면 공산주의자에게 투표하세요. 여러분이 자유로운 독일인으로 남길 원한다면 나치에게 투표하세요"



나치의 선거 표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7년 전 독일은 히틀러를 택했다. 공산주의를 반대했다. 강요라 생각지 않았다. 극단적인 것은 급진적인 것으로 대체돼야 한다 생각했다. 정치를 환멸했다. 



사회민주당은 대안을 제시하려 했고 나치는 지배하려 했다. 독일인은 지배받길 택했다. 나치는 독일 대중이 지지한 대중운동이었다. 



1932년 독일 선거 당시 모습.



미국 정치학자 알렉산더 해밀턴은 대중을 "거대한 야수"라 일컫는다. 이 거대한 야수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멀스멀 길들었다. 전쟁을 일으켰다. 유대인을 학살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유대계 미국인 기자 밀턴 마이어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지 10년이 지난 1955년, 전직 나치

남성 당원 10명을 인터뷰한 저작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를 출간한다. 지인의 도움으로 독일 소도시에서 1년간 머무르며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히지 않은 채 재단사, 경찰, 은행원, 교사 등 평범한 직업을 지닌 독일인을 만났다. 마이어는 자신의 동족을 학살한 나치란 악의 근본을 찾으려 했고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나치즘이 단순히 무기력한 수백만 명 위에 군림하는 악마적인 소수 독재가 아니라 오히려 대중운동이란 사실을 난생처음으로 깨달았다. 적극적인 기쁨의 함성과 외침을 곁들여 가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들(독일인)은 나치즘을 원했다. 그들은 나치즘을 가졌다. 그들은 나치즘을 좋아했다"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이 떠오른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으로 압송된 아이히만의 공개 재판을 지켜본 건 이로부터 6년 후인 1961년이다. 밀턴 마이어는 당시 나치의 본질에 가장 근접해 있었다. 그의 책은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고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밀턴 마이어는 '악의 평범성'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면서 한계다. 그는 악의 평범성에 집중하기보단 나치즘이 독일 사회로 스며든 과정을 추적하며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문제는 그것이 독일에만 머물렀다는 데 있다. 



마이어는 나치즘의 탄생을 악의 점진성과 익숙함, 그리고 습관화로 설명한다. 그는 만약 히틀러가 1932년부터 유대인을 학살했다면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조금씩 그러나 빠른 속도로 국가주의와 반유대주의를 표출한 히틀러의 사상에 독일 사회가 젖어버려 1943년 전쟁을 수행하던 독일인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묵인하거나 지지했다. 그가 인용한 동료 독일 언어학자의 이야길 들어보자.



"여기서 벌어진 일이란 국민이 점차 조금씩, 조금씩 습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조치에 의해 통치되는 일에 습관화되고 비밀리에 내려진 결정을 받아들이는 일에 습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1943년 유대인 가스 학살이 1933년 비유대인 상점에 독일인 사업체란 표지를 붙인 직후 일어났다면 모두가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어요. 이 두 가지 사건 속에는 수백 가지에 달하는 단계가 거쳐 갔는데 그중 일부는 차마 인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은근했고, 그 각각은 당신이 그 다음번 단계에 깜짝 놀라지 않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담당했죠"





나치는 대중운동이었다. 대중이 자신의 가치체계가 흔들리는 '충격'을 맞는다면 히틀러라도 봉기를 맞기 마련이다. 130명이 살해된 11.13 파리 테러 후 프랑스인의 국기 소비와 군대 지원이 갑작스레 증가한 것처럼, 악이 돌연 다가온다면 대중은 자각하며 연대하고 맞선다. 하지만 마이어는 나치즘의 확장이 이와 달랐다고 말한다. 독일의 대중은 '충격과 과도함'을 기다리며 일상에 퍼져가는 나치의 정신을 용인했으나 막상 과도함의 도래를 자각할 때가 되자 변해 버린 세상에 익숙해져 체념해 버린다는 분석이다.



언어학자는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자살과 가치관의 조정, 부끄러움 세 가지 뿐이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해 많은 독일인은 부끄러움을 택한 "초라한 종류의 영웅"으로 전락했다고 토로한다. 왜 '초라한 영웅'이냐고? "부끄러움은 내가 위협을 받으면 언제든지 내던져버릴 수 있는 얕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인간은 이것밖에 안 되는 존재인가. 밀턴 마이어가 인터뷰한 전 나치 당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이 회의는 더욱 깊어진다. 그들이 마이어에게 공통으로 되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이 짧고도 강력한 질문에 마이어는 속 시원히 반박하지 못한다. 그는 오히려 미국이 독일과 비슷한 상황에 부닥쳤을 경우 미국인도 독일인과 비슷한 선택을 할 것이란 두려움에 휩싸인다(하지만 결론에선 독일의 특수성을 부각하며 모순을 드러낸다)



그런 마이어에게 이 질문에 대한 해답, 인간의 행동에 대한 일종의 방향을 제시한 것은 전쟁 당시 유대인을 숨겨줬다가 감옥살이를 한 동료 화학공학자와의 '후회'였다. 마이어가 유대인이란 점에서, 아니 그저 인간이란 점에서 그 화학공학자는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국민 총동원령이 내려진 해 히틀러에게 충성맹세를 한 자신을 후회했다. 아래는 마이어와 그 화학 공학자의 일문일답이다.



밀턴 마이어: 당신이 선서를 거부했다면 당신은 나중에 유대인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겁니다. 



화학공학자: 맞아요



밀턴 마이어:그래도 후회를 하신다고요?



화학공학자: 선서라는 것은 확실하고도 즉각적인 악이었던 반면 나중에 제가 유대인을 돕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을 돕겠단)선은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인 반면 악은 이미 뚜렷한 사실이었습니다.



밀턴 마이어: 실제로 돕지 않으셨습니까?



화학공학자: 나치가 학살한 유대인의 숫자를 3백만 명이라 가정하고(마이어는 6백만 명이라 주장) 제가 천 명을 구했다고 해보죠. 제가 말하는 핵심은 제가 만약 충성 선서를 하지 않았다면 3백만 명 전부를 구할 수도 있었을 거란 점입니다.



밀턴 마이어: 당신이 충성 선서를 거부했다면 정권이 전복되기라도 했을 것이란 말인가요?



화학공학자: 제가 만약 1935년에 선서를 거부했더라면 그건 결국 독일 전역에서 저와 같은 사람 수천 수만명이 선서를 거부했단 의미였을 겁니다. 이들의 거부는 결국 수백만 명의 마음을 움직였을 거예요. 그랬다면 정권이 전복되었을지도 모르고 최소한 나치가 애초에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일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화학공학자의 답변이 이상적이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화학공학자가 선서를 거부했더라면 감옥에 가 유대인을 살리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의 답변에 마이어의 마음이 요동쳤음이 책에서도 느껴졌다.



당시 독일 대중은 불확실한 선의 도래를 믿으며 즉각적이고 확실한 악을 수용했다. 결국 그 악은 독일을 휘감았고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켰다. 물론, 역사의 필연일지도 모른다. 최근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독자들에게 '과거로 돌아가 아기 히틀러를 죽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42%가 '예'라고 답했고 30%가 '아니라'고 답했다. 



개인적으로 이 질문엔 히틀러가 전쟁의 근원이 아닐 수도 있단 뉘앙스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란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서 히틀러의 자리를 대체할 대중적 지도자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란 뉘앙스 말이다. 



마이어는 진정 수레바퀴를 돌린 것은 쇼펜하우어가 '짐승 같은 진지함'이라 부른 태도로 나치를 대한 독일의 야수들이라 말한다. 야수란 독일의 7천만 대중이다. 그들이 바랐기에 히틀러가 탄생했고 열광했기에 나치는 창궐했다. 악을 처음부터 거부하지 못한다면 산에서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불어나 우리의 일상을 덮칠 것이다. 그땐 이미 늦어버려 평범하지 않은 악을 평범한 듯 묵인해야 한단 것이 마이어의 분석이다. 






앞선 부분에서 마이어가 '악의 평범함'에만 집중하지 않은 것이 이 책의 한계라 지적했다. 마이어는 전직 나치 당원들과 인터뷰할 땐 자신이 유대인임을 숨겼다. 그러나 책 후반부에선 그러지 못했다. 



마이어는 책 속에서 인터뷰한 나치 당원을 "개돼지"라 부르기도 독일인에겐 "시민의 용기가 결여되어있다"고 일반화하기도 "히틀러 따위에 싫증을 내지 않는 사람들을 독일인뿐이었을 것이다"란 인종주의적 발언도 서슴지 않으며 독일인만을 전적으로 비난한다. 



책 서문과 전반부에서 드러난 악에 대한 철학적 통찰은 책 후반부에서 독일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전환되며 저자의 시대적, 민족적 한계성을 드러낸다. 이런 측면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밀턴 마이어가 악의 평범함과 그 스며듬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이 책은 아직도 전쟁이 끊이질 않은 현대 사회에 유효한 영속성을 지녔을 것이다.

저작자 표시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2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