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다시 달리기를 시작 합니다. 종종 달리기에 관한 개인적인 소견이나 기록들을 블로그에 담을 예정 입니다. 이번 겨울 한국에 가있는 동안 친구들과 2011년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올해까지 헤프 마라톤 (Half-Marathon)을 완주하고, 한 친구 녀석은 중급정도의 기타 실력을 키우고 마지막 녀석은 약 70페이지 가량의 단행본을 내는 것 입니다.

2011년 12월에 다시 한번 계획들을 점검하기로 했는데, 만약 달성을 못했을 경우엔 무시무시한 벌칙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오늘부터 다시 무너진 몸과 마음을 달리기로 다듬어야 할 듯 합니다. 달리기에 관해 경험이 많으신 분들의 조언을 구합니다.

우선 첫 한달동안은 마라톤 온라인 (http://marathon.pe.kr/) 에서 제공한 초보자 4주 10KM 달리기 프로그램을 충실히 따라갈 예정 입니다. 바뻐도, 일주일에 4회는 밑에 있는 계획에 맞추어서 뛰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를 위한 일이라 생각 되네요.

아 그리고, 역시 달리기의 시작은 '신발을 사는 것' 아닐까요? 깔끔하게 운동화 2켤레 구입했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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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들은 제가 종종 '삼촌'을 주제로 글을 쓰신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저에게 집도 구해주시고, 유학생활 초기 참 어려울수 있는 시기를 여기 계신 삼촌 덕에 아주 무사히 잘 넘겼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제가 미국에 오기 전까지, 여기 계신 '지영이' 삼촌과 제사 떄문에 일년에 한 두번 보는 것이 고작 이었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이제 미국에 온지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지영이 삼촌과 저는 둘 도 없는 가족, 형제가 되기엔 나이차가 많이 나지만 조카와 삼촌보단 더 가까운 그런 허물없이 지낼수 있는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늦은 설날 세배를 받기전 준비중이신 어른분들.

소파: 왼쪽부터, 수진이 고모 시어미니, 지영이 삼촌, 수진이 고모의 삼촌
위: 큰숙모, 작은 숙모, 수진이 고모

지난 주말 삼촌집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삼촌의 일상들을 사진으로 찍어 보았습니다. 사촌 동생중 한명이 많이 아펐다가 이제 완치가 되 온가족이 모여 파티도 열었고, 늦은 설날 맞이를 하며 가족들로부터 세배돈도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모든 가족이 모여 옛날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자랑없이 행복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가족들이 많아도 가끔은 외롭다는 삼촌. 전 제 할일을 묵묵히 하며 응원할 것입니다.

*각 사진을 클릭하시면, 사진 설명을 보실수 있습니다.
*모니터 전체로 사진을 보고싶으신 분은 여기 링크를 클릭 :http://bit.ly/f1Lt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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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할길 이라는 저서를 지은 M.스캇 펙에 따르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자기애와 자만감은 분명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기애는 우리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나 자만감은 항상 자신에 대해 좋은 감정만을 가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애란 총체적인 자신의 대한 이해이며 책임이다.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것을 이해하고 책임지고 용서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자기애이다. 그러나 자만감은 만약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 자신을 자존심을 다치게 하면 그것을 고치려하기 보다는 부정하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충분히 자신을 알고 받아들지이 못한 사람은 자기애보다 자만감을 가지기 쉽고, 이로인해 자신을 사랑하는데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남들이 만들어낸 자만감과 나르시스즘을 지키려고 많은 에너지를 잘못되게 쏟고 있는 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수 없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어찌 자신을 버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무릎을 꿇을수 있겠는가? 이점에서 나는 아직까지도 자기애보다는 자만감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부족한 내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겠고 난 내가 아직도 참 잘난놈인줄 안다. 실제론 그러지 못해도 그러니 난 번번히 사랑에 실패한다.
 
내 사랑의 패턴은 대략 이렇다. 누군가 마음에 들면 시작은 참 적극적이다. 모르는 여성의 전화번호를 따본적도 있고, 전혀 모르면서도 과감히 데이트 신청을 하거나 케이크를 준적도 있다. 그래서 한 두번 데이트를 한다. 이렇게 서로가 조금씩 호감을 갖는 상태에서 (아직 좋아하지는 않은 상태)에서 난 갑자기 여성에게 연락을 끊는다. 그 여자의 단점만을 보고, 또 "아 이 사람 그렇게 이쁘지도 않네" 라며 관계를 중단한다. 난 이런 경우가 정말 많았다. 딱 한번 정말 좋아했던 여성이 있어 내 자존심을 다 버리고 다가선적이 있지만 그 한번을 빼고는 대부분이 이랬다.
 
그렇다면 난 왜이랬을까? 그것은 간단히 말해 어릴떄부터 이모와, 숙모들에게 들은 과도한 칭찬으로 인해 생긴 나의 자만감을 보호하려는 의지와, 용기라는 것에 대한 잘못된 생각 그리고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희생도 담보하지 않으려는 유아적인 발상이 만들어낸 삼중주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사랑에 대한 선택은 그 어떤 면에서도 나에게 이롭지 않았다. 즉 자기애와는 거리가 멀었던 행동이라는 것이다. 조금더 자세히 내 자신을 살펴보자.
 
                                     발렌타인 데이, 사랑이 찡그리고 있다.

첫째로 난 남의 거절이 싫었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남이 나를 거절할듯 하면 난 그들을 먼저 거절해 버렸다. 옛 여자친구와 헤어진 원인중 하나도 여자친구의 말 한마디가 많은 영향을 미친듯 하다. "난 우리가 헤어질것 같으면 먼저 너를 찰꺼야" 라고 했던 한 여자친구, 이 말을 듣고 꽤 오랜시간 우린 사귀다 헤어졌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먼저 여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했다. 난 미치도록 거절이 싫다. 난 남이 거절할수 없을만큼 대단한 사람이라고도, 훌륭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했던것 이다.(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랬기에 그런 자만감을 보호하기 위해서 난 어쩔수 없이 항상 먼저 여자에게서 연락을 끊었다
.

 
둘재로 난 용기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난 남자라면 무조건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용기없는 남자는 또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용기라는 것은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설령 내가 용기있지 않은 선택을 하게될 상황에 직면하면 난 여자에게서 연락을 끊었다. 용기 없는 내 자신이 내 자만감을 다치게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스캇펙 박사는 무엇이 진짜 용기있는 행동인지에 대해 그의 저서 '끝나지 않은 여행'에서 이렇게 묘사하였다. "용기란 잘하는 척 하는 것이고, 부끄럽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없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또는 고통을 무릎쓰고 앞으로 전진하는 능력이다."라고 말이다. 그렇다 인간에게 있어서 두려움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의 본질이다. 두려움 없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할수 있겠는가? 난 내 두려움 그자체를 두려워 했다. 루즈벨트는 잊어달라, 저 문장은 나의 내적 상태만을 묘사할 뿐이다.
 
셋쨰로 난 내 행동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다. 난 한편으로 이 사람이 날 좋아할까 한편으로는 두려워 했다. 그후로 난 그 사람을 책임져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난 그 부담감이 싫었다. 난 그저 내가 하고싶은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았다. 스캇펙 박사는 진정한 정신건강이란 현실에 충실하려는 지속적인 과정이라고 말하였고, 또한 현실에 대해 책임을 진 댓가가 바로 건강한 정신이라고 하였다. 난 한편으로는 그것을 의식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내가 사랑으로 인해 질 책임감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였다. 그 어떤 희생도 하고싶지 않았다. 난 항상 새로운 사람과 새롭게 시작할수 있을줄 알았지만 내 모든 과거는 날 괴롭히고 놓아주질 않았다. 결정을 내려야 할떄 그 어떤 대안이 희생을 동반한다고 해도 내 던져서는 안된다라는 스캇펙 박사의 말이 더욱더 내 가슴에 깊이 박히는 이유이다.
 
이런 3가지 이유로 또 다른 이유들로 난 최근 계속해서 사랑에 실패하고 있다. 내 자신을 보호하고 책임질려는 것이 아니라, 내 자만감만을 보호하기 위해 난 사랑에 일부러 실패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어떤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또 기존의 결정을 번복할때도 현실과 내 자신보다 내 머리속에 있는 가상의 자존심이 중요한 결정 요소인것도 부정하지 않을수 없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난 어릴때부터 엄마가 "너한테 참 실망했다" 라는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난 항상 잘나야 하고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켜드려야 했기 떄문이다. 무엇을 위해서나면 나의 자만감과, 엄마의 자존심을 위해서 그랬다. 엄마의 자존심은 둘째치고라도 나의 자만감은 내 인생에서 버려야할 것이다.  난 두려움이 있어도 없는척 조금더 과감해 질 필요가 있고, 가끔은 기꺼이 나를 위해 내 자존심을 내 던지고 한 여인에게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 난 사랑을 위해 공부는 희생하고 부모님께 거짓말도 해야될때가 올 것이다.
 
아무렴 어떠리 그 어떤것도 나의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건 나의 자만심이 아닌 진정 내 자신을 위해서일떄 더욱더 그렇다.
 
 
 
P.S 이 글을 다 읽으신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M.스캇펙 박사의 3부작 "아직도 가야할길", 끝나지 않은 여행, 그리고 저 너머에"의 일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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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 미국 중서부를 중심으로 총 38개의 주 전지역에 미국 역사상 최악의 눈폭풍이 몰아 닥쳤습니다. 현재 제가 살고 있는 미주리 주도 그 눈 폭풍에 중심에 있는데요, 초등학교 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공립학교의 수업이 취소 되었고, 정말 집 앞에 나가는 것도 벅찬 하루 였습니다. 그 눈폭풍의 현장 사진들중 학교 친구들이 올려준 귀엽고 재미있는 것들을 골라 여러분과 공유 합니다. 

                                          골프를 치고 있네요..이런 폭설에서도..

                               눈 속에서 웃고 있는 미국 우체국 자동차^^

                                          눈 사람을 만든 미국 학교 친구들,

                                                   강아지 너무 귀엽죠^^?

                        폭설속에서, 집안에 갇혀 음악을 즐기고 있는 룸메이트형^^


출처는 제가 일했던 MyMissourian.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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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국 중서부를 중심으로 총 38개의 주 전지역에 미국 역사상 최악의 눈폭풍이 몰아 닥쳤습니다. 현재 제가 살고 있는 미주리 주도 그 눈 폭풍에 중심에 있는데요, 초등학교 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공립학교의 수업이 취소 되었고, 정말 집 앞에 나가는 것도 벅찬 하루 였습니다. 그 눈폭풍의 현장 사진들을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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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가 살고 있는 미주리주 지역을 포함한, 미국 중서부 전 지역의 미국 역사상 최악의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총 38개의 주에 40cm, 50cm 를 넘어 사람의 무릎까지 오는 눈보라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오바마 대통령 또한 이런 긴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 연방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겠다 고 밝혔지만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미주의 전 방송사는 이번 스톰이, "생명을 위협하는 눈보라"라며 모든 시민들에게 안전히 집에 머물러 있을것을 당부했습니다. 물론 거침없는 눈보라 때문에, 기자들 또한 "눈이 온다"라는 같은 사실만 열심히 떠들뿐 자신들만의 느긋한 휴가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전 사재기가 한국에서만 있을줄 알았는데 미국도 똑같습니다. 현재 같은 미주리주에서 살고 계신 작은 숙모님은 "월마트에 갔더니 계란과 우유가 동났다."라며, 미국인들이 사재기를 하고 있다고 울상이셨습니다. 현재 까지도 앞이 안보일정도로 눈이 쏟아지고 있고, 이 눈보라가 이번주까지 계속될 예정인데 숙모님 집에 음식은 안떨어져야 할텐데 말입니다.

 
<미국도 사재기는 한국과 똑같습니다, 저희 학교 학생이 월마트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물론 눈이 와도 어김없이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국 아저씨도 있습니다.
-출처 AP


이런 눈보라의 제 사촌동생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부터 제가 다니는 대학교 까지 모든 곳이 폐쇄 되었습니다. 대학교의 경우, 어제 오후 2시 30분쯤 부터 학교 총장의 단체 메일로 학교의 모든 곳을 일시 폐쇄한다며 눈보라가 올 것으로 예상된 오늘 화요일과 (2/1)과 의 전 수업을 취소 하였습니다. 이런 학교 폐쇄와 같은 심각한 상황에서, 12살짜리 제 사촌동생부터, 25살 먹은 저를 포함한 제 친구들은 모두 페이스북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지긋지긋한 수업이 취소되 너무 즐겁다는 것이죠.ㅎ

                           <페이스북을 통해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친구들.>

물론 비싼 수업료를 낸 대학의 수업을 못듣는 상황이 아주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저 또한 오랜만에 신나는 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어제 저녁 룸메이트형과, 김치전에 맥주 한잔하며 실컷 TV를 보았고, 오늘 점심은 김밥과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지금은 오븐에 감자를 굽고 율무차 한잔을 마실려 하니 이런 천국이 없는 셈이죠. 하지만 저와 같이 이런 눈보라에 느긋한 휴가를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더 많습니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열창하는 룸메이트 형, 풍유를 즐기고 있는중>


제 친한 친구 녀석은 새벽 6시부터 학교에 까페테리아에서 일을 하기 위해 눈보라를 헤쳐 걸어 나갔고, 어제 새벽에는 학교 내에선 강도 사건이 일어나 경찰이 모든 학교 학생들에게 당부를 표한 상태 입니다. 또한 이번 겨울 한국에 일이 있으셔서 잠깐 나가셨다가 오늘 돌아오신 큰 숙모님은 비행기가 취소되어 현재 시카고에서 발이 꽁꽁 묶여 있으신 상태 입니다. 발이 다치셔서 목발을 짚으시고, 캐리어를 3개나 들고 오셨다는데 공항에서 하루 종일 지새게 생기셨어요.

  <학교 교수님께서 찍어 올려주신 사진...이 정도로 눈이 계속 옵니다.>


하지만 이런 미국 사상 최악의 눈보라 속에서도 제가 정말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미국 대학과 정부의 발빠른 대책 입니다. 저희 학교의 경우 눈이 하나도 오지 않았던 어제 오후 2시 반 쯤, 총장이 전 학생들에게 메일을 보내 오늘 학교를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눈은 오늘 (2월 1일) 새벽부터 떨어졌는데, 눈이 오기 약 10시간 가량 전 부터 학생들을 대피시킨 것 입니다. 또한 오늘까지도 계속해서 눈보라가 치자, 다시 한번 오늘 오후 2시 경 전 학생들에게 수요일 (2월 2일) 수업도 취소되었다고 알려주었어요.  정말 발빠른 대처였고, 모든 학생들이 눈이 오기전 다 안전하게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돌아갈수 있었습니다.최근 몇 달전, 잠깐의 폭우에 물바다가 되고 도심이 혼란에 빠졌던 서울의 그것과는 참 많이 다른 모습이었죠.


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눈보라는 계속해서 몰아 칩니다. 눈이 오니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서 안락하게 글을 쓰며 공부하는 것이 참 즐겁긴 한데 이것도 하루 이틀이겠죠? 한 3일쯤 후에는 아마 '투덜 투덜'하며 운전을 하고 학교에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모습이 절로 상상 되네요.

미국인들의 사재기 때문에 곧 집에 있는 음식이 떨어지실지도 모르는 작은 숙모와, 시카고 공항에서 하루 종일 묶고 계신 큰 숙모님에게 짧은 기도를, 그리고 이런 눈보라 속에서도 자신들의 할일을 묵묵히 하고 계실 수많은 미국의 노동자들에게 경의를.....

마지막으로 눈보라를 헤치며 편지를 배달하고 계실 우체국 아저씨께는 따뜻한 율무차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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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이면, 동네 구석 구석으로, 시간이 조금 더 나면 차를 몰고선 20~3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사진 촬영을 나갑니다. 사진을 찍다보면 사진기 안에 있는 프레임의 자신을 맡기게 되고 이런 '몰입'의 경험이 제가 가진 외로움을 덜어 주죠.

오늘은, 미주리의 한 시골 촌구석 멕베인 이라는 곳을 다녀 왔어요. 백인들 밖에 살지 않는 곳, 농사와 막노동 만이 존재하는 곳, 그리고 기독교 중심의 도시인 미주리 콜롬비아에서 일요일 오후 3시면, 동네 술집이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바로 멕베인 (McBaine) 입니다.

           맥베인의 유일한 술집이라 볼수 있는 'Lucy'라는 곳으로 가는 길입니다.

일요일 오후에도 붐비는 멕베인의 술집 이름은 '루씨'라는 곳이에요. 아주머니 한분과 아저씨 한분이 운영을 하시는 곳인데, 저도 딱 한번 가보았어요. 말 그대로 햄버거와 감자 튀김 그리고 맥주를 파는 곳 입니다. 작년에 한번 들렸었을때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하얀 티셔츠에 맥주를 한병 손에든 백인 남성이 저에게 대뜸 이렇게 물어 봤었죠.

 "너 오바마 좋아해?" 전 이렇게 대답했어요. "음..오바마가 하는 정책 중에 동의할만한 것도 그렇지 않은것도 있어." 그랬더니 바로 "흥! 오바마는 우리나라를 망치고 있어!"라고 말하더군요.  (물론 대화 자체는 이렇게 여성적이지 않았어요-_- Fuck 등이 섞여있는 문장이 다분 했죠.) 분명 이 사람도 중산층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일테고 (제 편견일수도..), 공화당보다는 오바마의 정책이 이에게 큰 혜택을 줄 텐데도 오바마를 이렇게 증오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에겐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멕베인의 유일한 술집 루씨!


이 술집을 지나 전 멕베인의 동네 안으로 깊숙히 들어 갔습니다. 정말 미국의 시골중 시골 답게 을씨년스러운 집들부터, 고철과 잡동사니로 만들어진 집들까지 별 희한한 것들이 다 있었어요. 오늘 KBS 다큐멘터리 3일을 보았는데, 서울의 마지막 달 동네 중계동 백사마을의 정겨운 모습 보다 이 동네는 오히려 으스스 하기만 했습니다. 거기서 아주 고철덩어리로 만들어진 집을 한채 발견했어요. 그리고 여기 집 주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데런 집에 있던 수많은 고철덩어리들>


데런은 많이 뚱뚱하고 온 얼굴에 턱수염으로 가득한 사람 이었어요. 그는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술에 만취한 상태였는데, 그가 알아채기 전에 몰래 집 밖을 몇장 찍어 놓은 것이 있어서 사진를 과감히 포기하는 척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 아저씨는 '데런'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는데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사람을 만나 반갑다. 게다가 수천마일 떨어진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니....술에 취해 있어 너무 미안하다.. 한달쯤 지나 다시 돌아온다면 같이 바베큐나 해먹자.."라구요.. 전 한달후 이 아저씨를 다시 찾아 갈까요?....조금 겁이 납니다. 왜 겁이 나냐구요?..총 맞을까봐요..


멕베인을 벗어나 자동차로 조금더 달리면 미주리에서 가장 크고, 미국에선 두번째로 큰 나무인 Giant Oak라는 나무를 만나게 됩니다. 200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녀석인데 정말 든든해 보였어요. 200년 동안 어떻게 혼자 살아 왔을까 라는 생각에 순간 연민의 감정도 스쳤습니다. 아니..나무를 볼떄는 그 크기에 압도되어 그런 연민의 감정이 들었을리 없죠.사진을 찍고 집에와서 다시 보니..그런 마음이 들더군요.

<200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킨 나무 Giant Oak>


저에게 가족과, 저를 사랑해주는 친구들, 그리고 곧 언젠가는 만나게될 저의 그녀가 있는 것처럼 나무에게도 따뜻한 햇살과 구름, 그리고 자신에 곁에서 쉬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곁에 있겠죠.


안 그러면 이 나무가 어떻게 200년을 살아 왔을까...싶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그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24년의 삶을 살아왔을까 싶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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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좀 많이 아프시다. 내가 중학생때, 약 11년전쯤 혀암 수술을 하셨고, 그 이후로 계속 쇠약해지셔서 지금은 병상에 누워 계시는것과 허리를 피고 앉아 일어나시는것 이 두 가지의 행동 밖에는 할수 없을 지경에 이르셨다. 의사는 수술후 5년 이상 생존하는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지만 11년쨰 살아 계시니 지금 할머니의 건강에 불만을 가지는 것은 과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수 있다. 하지만 과욕이란 이런 상황에서 쓰는 말이 아니다.

나를 '장손'이라고 끔찍히 아껴주셨던 할머니의 건강에 인간이 바랄수 있는 탐욕의 끝을 보여 준다해서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할머니는 내가 7살때 부모님이 회사에 가시고 너무 외로운 나머지 내가 살던 잠원동에서 할머니 집이 있는 논현동까지 걸어간 나를 위해 생선을 구워 주셨고, (그리고 엄마 아빠를 혼내셨다. 이때만 해도 할머니는 참 기력이 창창 하셨다.) 13살쯤..손가락이 문에 끼여 다쳤을때 나를 위해 직접 달려와 주셨던 분이다.

그리고 이렇게 부모가 아플수록 자식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고 키웠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자식이 부모를 돌보고 키워야 하는것이 인간사의 순리 아니던가.

하지만 우리아빠와 나 그리고 삼촌들을 포함한 집안의 남자들은 이상하게 여자들에게, 특히 당신 들의 엄마에게) 넉살과 애교가 별로 없어서
할머니에게 용돈을 드리고 병원비를 대는 것, 그리고 할머니집에 찾아가 잠깐 할머니의 얼굴을 본후에 마루에 나와 TV를 보는것 정도만 하고 계신다.

물론 앞에서 말한 여러가지 '것'들이 절대 쉬운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엔 생각보다 부모와 인연을 끊고 사는 자식들이 많다. 그렇기에 우리 아버지와 삼촌들은 사실 대단한 효자들이다. 매번 할머니를 생각하고, 집안이 넉넉하곤 어렵건 할머니에게 드릴 용돈을 빠뜨리는 삼촌들은 없다. 돈이 조금 넉넉한 삼촌은 수십, 수백만원짜리 '송이 버섯'을, 돈이 조금 넉넉하지 않은 삼촌도 자신의 한도내에서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애교없는 삼촌들의 역할을, 내가 사랑하는 고모들이 해오셨다.(물론 고모들 또한 재정적인 지원을 함께 한다.) 한 고모는 당신의 인생의 정말 많은 부분을 포기하며 할머니를 병간호 하고 계시고, 또 다른 고모는 매번 오실때마다 할머니의 몸 모든 부분을 주물러 주며 매일 누워 있어 '어디 굳은 부분은 없는지' 걱정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고모는 먹고사는 일이 만만치 않으셔서 자주 오시지는 못하지만, 한달에 별로 되지 않는 휴일을 쪼개가며 할머니집을 찾는다. 마지막에 언급한 고모가 가장 눈물이 많으신 편이다.

하지만 가끔 고모들도 힘들때가 있다. 아니 가끔이 아니라 자주 힘드시겠지만..그리고 그런 고모들의 빈자리를 이제는..

손녀들이, 내 사촌 동생들이 채우고 있다. 나도 삼촌들과 별반 다를게 없어서 할머니에게 애교를 피우지 못한다. 머 아주 가끔 뽀뽀를 해드릴떄가 있지만 정말 가끔이다. 그리고 나의 빈자리를 이제 7살, 4살 먹은 동생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서현이와 수현이가 할머니의 침대 위에서 재롱을 떨고 있다.

분명 한 세대가 지났지만, 아직까지 우리 집안에는 부모를 공양하는 남녀간의 역할이 철저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언제쯤 이 장벽이 허물어질지는..

아마 나의 결심에 달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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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24시간에 긴 여정을 뚫고, 한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오늘 한숨도 자지 못하고, 수업과 미팅 그리고 내일은 기사 아이디어 회의까지..조금은 지친다..이젠 이럴때마다 한국에서 만난 선배가 해주었던 말을 되새기려 한다..

"멋 진 후배! 난 꼭 그가 기자가 되었으면 해. 그럼 희망에 더 가까워 질거같아. 나 역시 그에게 많은 영감을 받고 다시 한번 초심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서로가 느슨해질 때 채찍질도 해줄 수 있는 그런 관계 되었으면 해. 고마워...서로에게 자양분이 되자..."
-선배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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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다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겠지....

그 어느곳에도 정착을 하지 못한체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떠돌이 생활이 적응될만도 한데, 다시 또 한국을 떠난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참 섭섭하게 또 쓸쓸하게 하네..

남들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것이 유학이고, 타고 싶어도 타지 못하는게 국제선 비행기라는데...물론 나도 이런 푸념을 늘어 놓는 것이 '배부른 소리'인 줄은 알고 있지.하지만 오늘 한국에서 머무르는 마지막 밤, 세상에서 가장 처량한 사람인척 약한소리 하는것에

그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군대는 해병대도, 특전사 부대도 아닌 '자대'래... 자신이 속해있는 부대가 다른 어느 그것보다 제일 힘들다는 우스개 소리지.. 분명 이재용의 풍족과, 홍익대 청소 아주머니가 처해있는 삶의 무게는 다를 테지만, 이 두사람 모두 자신의 인생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지 모를 일이야...

                                      곧 떠나게 될 내 방에서 난 글을 쓰고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살때 그리고 새벽 방안에 앉아 어두운 바깥 창문을 쳐다보며 스스로의 인생을 한탄하는 순간, 세상은 평등하고 공평해 진다고 생각해. 딱 그 순간 만큼은..

지금 난 내 방 안 서울 톨게이트가 바라보이는 야경아닌 아경을 바라보고 있어..그리고 내 머리속은 계속해서 나에게 묻고 있어. "한달 동안의 한국은 어땠어? 그리고 좋았어?

한달동안의 한국?

나 첫 2주는, 신종플루에 걸렸고 기대했던 사랑의 마음을 접었잖아. 그 모든것이 내 머리속에 환상일 뿐이었잖아. 기대했던 가족 여행은 나 때문에 신종플루에 걸린 아빠의 건강때문에 취소 되었잖아. 남은 2주? 사람들과 만나 마시고 먹느라 살도 엄청 찌고 맞던 옷도 이제 맞지 않게 되어 버렸어.....

아프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사람을 만날수 있었을 텐데, 친구들도 좀 더 보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도 보냈으면 좋았을뻔 했잖아. 사랑하는 사촌동생들을 조금더 보고 같이 놀아줬어야 했어. 영어 공부도 좀 더했어야 했고, 운동도 했어야 했어. 한국에 있는 친구들 오랜만에 보는데 조금더 멋진 모습으로 만났어야 했어. 피곤에 쩔어 다크서클은 축축 처지고 도대체 넌....

클럽에도 한번 가볼껄, 강남역에 있는 수많은 이쁜 여자 중 한명에게 말이라도도 걸어보고 싶었는데...정말 재미있는 여러 경험들을 했어야 하는데, 엄마 아빠에게 요리도 더 해주고 같이 더 많이 놀러도 갈껄.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또 사랑할껄...

그런데도 좋았서?

응..........사실 이렇게 말하지만 한달동안 한국에서 있었던 시간 너무 행복하고 좋았어...
너무 떠나기가 싫어 이렇게 불평하는 거야...


잠시지만 정말 모두 안녕.





P.S 아까 가족들과 함께 집에 오는길, 눈발이 흩날렸었다.
나는 외쳤다. "눈이나 펑펑 쏟아져라, 비행기 딜레이나 되게"

그리고 지금 난 그 눈밭들이 내 아쉬움마저 모두 묻어버릴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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