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피가 금요일 리비아 군중들에게 직접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에는 3가지 의도가 있는 듯 합니다. 첫쨰는 언론에서 제기된 자신의 건강에 관한 의혹을 벗어내려는 시도. 둘쨰는 이미 리비아의 동부 지방을 장악한, 시민 혁명군을 폭도로 매도하려는 의도. 셋쨰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압력에 저항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카다피는 이번주 목요일과, 금요일 연달아 대국민 연설을 했습니다. 목요일 대국민 연설은 전화 목소리를 통해 이루어 졌는데, 이땐 "엘리자베스 여왕도 영국은 57년 동안 점령했다며" 자신의 40년 독재를 정당화 하는 발언을 했었습니다. 참고로 말씀 드리면 카다피는 리비아를 40년 동안 장악해오며, 자신의 나라에 시민들을 죽이기 위해 해외 용병을 고용하는 독재자 입니다.

                                      코너에 몰린 리비아의 독재자 카디피

카다피의 금요 연설, 중요 내용을 영상과 함께 번역해서 보내 드립니다. 이 모든 내용은 알자지라의 보도를 참고 했습니다.


<카다피 군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다.>





카디피가 위에 영상을 통해 연설한 중요 내용을 번역해서 올립니다.

"필요하다면 우린 어떠한 반동도 이겨낼수 있다. 필요하다면 시민들을 무장해서라도 말이다."-오마르 카다피


"난 시민들 바로 가운데에 있다, 우리는 싸울 것이다, 만약 그들 (카다피에 저항하는 시민 세력군)이 원한다면 우린 그들을 패배시킬 것이다. 우린 해외의 어떤 압력도 무너뜨릴 것이다."-오마르 카다피

"춤추고, 노래하고 준비하라. 이것이 바로 정신이며 영혼이다. 다른 아랍 미디어의 선전에 속는것 보단 이렇게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훨씬더 났다."-오마르 카다피


여기 카다피 영상에 나오는, 카다피의 열렬한 지지자들에 대해, 브루킹스 연구소에 타리크 요세프가 설명한 내용 또한 번역해서 올립니다.

"이 영상에 나오는 대부분의 리비아 시민들은, 카다피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어떠한 지도자들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은 카다피가 무너지려 할떄, 같이 무너질 사람들이다."

"난 이들이 카다피를 지지하는 것에 대해 놀랍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카다피가 리비아를 위한 지도자 라고 생각한다. 정말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카다피가 리비아에 수많이 해방된 도시들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연설은 카다피가 해외의 압력으로부터 저항하고 스스로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가진 연설이다. 하지만 카다피의 자식들이 인정하듯 이미 리비아의 동부지방은 카다피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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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동안 이루어진 이집트 시민 혁명은 30여년간 권좌를 지키고 있었던 독재자 호사니 무바락을 몰아냈습니다. 독재자 무바락이 물러나던날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와 타하르 광장을 뒤덮은 수십만명의 시민들은 눈물을 훔치고 연인을 껴안듯 포옹하며 30년 생에 최고의 축제를 즐겼습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여러 세계 정상들 또한 '이집트 인이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라며 그 축제에 경탄과 축하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18일의 혁명에는 그만큼의 댓가가 따랐습니다. 국제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 Watch)에 따르면 약 297명이 시위 도중 사망하였다고 밝혔으며 이집트의 인권운동가는 정부의 방해로 정확한 통계가 잡히지 않고 있지만 그 사망자 수는 900명에 달할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필자는 미국 시간으로 2월 14일 (월요일), 필자와 같은 학교에 재학중인 이집트계 미국인 메리엄 알세이드(Mariam Elsayed)를 만나 이집트 혁명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알세이드는 이번 이집트 혁명에서 사촌 오빠, 아미드 이합 (Ahmed Ehab)을 잃었습니다. 이합은 시위 첫날 경찰로부터 머리에 총알 5발을 맞고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시위 3주전 결혼을 하였고 같이 1월 25일 신혼 여행을 막 다녀온 부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필자와 인터뷰를 한, 이집트계 미국인 메리엄 알세이드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내 이름은 메리엄 알세이드 (Mariam Elsayed) 이고 현재 미주리 콜롬비아 주립대학 국제 학부 4학년이다. 알라바마에서 태어났고, 국적은 미국과 이집트 국적 2가지를 모두 갖고 있다. 부모님은 학부를 이집트에서 석사 박사과정은 알라바마에 있는 미국 대학에서 마치셨다. 난 영어와 아랍어 모두다 할수 있다. 미국인과 이집트 인이라는 두가지 정체성 모두를 가지고 산다.


일년에 이집트에는 몇번이나 가는가?

일년에 2번 정도 간다. 여름에는 2~3개월, 겨울에는 3주 정도. 가족들을 보러 또 친구들을 보러 간다. 여름 방학동안 카이로에 있는 미국 대학 (American University)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었다.


카이로는 어떤 도시인가?

카이로에는 약 2천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람도 엄청 많고, 교통 체증도 심하다. 매우 큰 도시이다.


최근 호사니 무바락이 시민 혁명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기분이 매우 좋다. 사실 난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살아서 독재자가 나라를 어떻게 통치하는지를 많이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이집트에 갈때마다 가난한 사람들, 실업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신문과 방송사 또한 정부에게 조정당했고, 도시 곳곳에 비밀 경찰이 있었다. 과거 친척 중 1명은 시위 도중 비밀 경찰들에게 잡혀 간적도 있다.

무바락이 집권한 30년동안 한 짓 들을 생각한다면 현재 이집트인들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집트에는 민주주의가 없었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에 투표하는 사람은 매우 적었지만, 항상 무바락이 엄청난 차이로 승리했었다. 이제 드디어 이집트 시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칠수 있다.


           알세이드는 이집트 인과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모두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무바락의 사퇴가 상당히 갑작스러웠다. 그 소식은 어떻게 접했는가? 또 접한후에는?

인터넷을 통해 처음으로 소식을 들었다. 이집트 혁명동안 CNN, BBC 월드뉴스, 알자지라, 휴핑턴 포스트등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무바락이 물러난 소식을 듣자마자 부모님께 전화하였고, 어머니는 뛸듯이 기뻐하셨다. 사실 어머니가 매우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펴인직접 트위터 계정을 만드시고 이집트 혁명의 관련된 지도자들을 모두 팔로잉 하시고 트윗을 주목해서 보셨다

 

무바락이 물러날것이라 예상했는가?

분명 9월 전에는 물러날것이라 생각했다. 물러난 것 자체는 놀라지 않았지만 그가 사퇴를 발표한 시기는 놀랐었다.

 

이집트에 있는 가족들도 시위에 참여했는가?

결혼을 하고 3주만에 돌아온 사촌 오빠 (Ahmed Ehab) 시위 첫 날 (1 25일) 참여 하였다가 경찰로부터 머리에 총 5발을 받고 살해 당했다. 정부는 오빠의 죽음 또한 조작하려 하였다. 정부는 병원 의사에게 사고사로 처리 하라고 종용하였으나 우리 모든 가족들이 노력해서 진실을 밝혀냈다.사실 사촌 오빠는 이틀 정도 실종상태 였다. 이집트에 있는 가족들은 카이로의 모든 병원들을 찾에 해매었고, 결국 사촌 오빠의 시신을 찾아내었다.

가족이 오빠를 찾아냈을때 오빠는 코마상태였다. 사실 이미 죽은 몸이 었다. 이슬람의 문화에선 사람을 죽자 마자 최대한 빨리 묻어줘야 하지만 다치고 죽은 사람들이 병원에 너무 많아서 병원에 처리도 매우 늦었다.


        알세이드의 사촌 오빠 아미드 이합은 결혼을 한지 3주만에 시위중 세상을 떠났다.


사촌 오빠의 소식을 들었을때 기분이 어떠했는가?

어릴때 매우 친했다. 나이가 들고 오빠가 결혼을 해 자주 보지 못하긴 했지만 너무 슬펐고 힘들었다.


사촌 오빠의 죽음이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었는가?

오빠 죽음은 우리 가족에게 정의를 바라게 하였다. 오빠의 억울한 죽음을 이야기 하고 알리는 것이 우리 가족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그가 왜 죽었는지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리고 싶다.


사촌 오빠의 부인은 어떻게 지내시는가?

그저..조용히 혼자 지내고 계시는듯 하다. 매우 우울한 상태 이시다.

 

시위에서 가족이 죽는 것은 예상했던 일인가?

전혀 예상 못했다. 무바락이 나쁜 독재자인것은 알고 있지만 가족중 1명이 죽으니 더욱더 실감이 나더라.


무바락은 이집트인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나?

무바락은 한순간도 나라에 영웅으로 존경받지 못했다. 그는 나라에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 무바락은 아무도 존경하지 않았다. 시위 도중 무바락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있었는데 이는 무바락이 돈을 주고 고용한 이들이다. 돈을 주고 산 것이다.


왜 무바락을 몰아내는데 30년이나 걸렸는가? 그렇게 나쁜 독재자인데 말이다.

무바락은 정말 가혹했다. 그리고 사실 시민들의 저항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다만 한번도 미디어가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다. 수십년의 시위동안 사람들은 감옥에 갇히고 죽음을 당했다. 최근 튀지니 혁명으로 인해 이집트인 들또한 우리도 해낼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긴듯 했다.

 

무바락이 집권한동안 이집트가 어떠했는지 이야기해 줄수 있겠는가?

경제는 매우 안좋았다. 무바락이 국가의 써야할 돈을 가로채서, 점점더 이집트의 경제가 어려워 졌다고 생각한다.이집트의 나라빚은 어마어마 하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이집트에는 얼마만큼의 자유가 있었나?

매우 제한적인 자유가 있었을 뿐이다. 두려움 때문에 자유는 보장 받지 못했다. 경제가 어려워 아주 좋은 교육을 받은 대학생들에게도 기회는 찾아 오지 않았다. 이것도 이번 시민 혁명에 젊은 사람들이 참가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집트에는 기독교인이 약 10% 정도 되고 나머지가 모두 무슬림으로 알고 있다. 이집트에 종교적 갈등은 없는가? 1 1일 교회를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로 31명이 죽었다. 이집트내에 종교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

우선 1 1일 자산 폭탄 테러는 계속 조사중인데, 이 테러 뒤에 무바락 정부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 1, 정부에 저항하는 시민 혁명의 바람을 누르고 이를 무슬림과 크리스찬의 분쟁으로 덮기 위한 정부의 협잡 이었다. 이집트내에서 무슬림과 크리스찬은 매우 사이가 좋고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무바락은 무슬림 근본주의 세력을 두려워 하지 않았는가?

아주 소수지만 무슬림 근본주의 세력이 이집트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매우 소수이고 현실적으로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이는 무바락이 서방을 속이고 두려움울 부풀려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위한 전략 이었다. 다음 대선에서 미국 미디어가 두려워 하는 무슬림 형제단이 선거에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난 무슬림이지만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관계를 걱정하지 않는다. 이슬람 또한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을 가르친다.

무바락은 무슬림을 두려워 했는데 이건 서방을속이기 위해 겁을 주기 위해..무슬림 형제단이 선거를 이길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크리스찬과 무슬림간의 관계는 걱정하지 않는다. 무슬림도 관용을 가르친다.

 

당신은 미국인이고 또 이집트인 이다. 이번이집트의 혁명은 이집트의 시민들의 이익과 달리 미국에 외교이익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번 이집트 혁명은 이집트 인들에게 매우 중요한다. 사실 미국의 뉴스는 미국에 관점에서 이집트의 혁명이 왜 미국에게 문제가 되는지, 무슬림 형제단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집트에 관계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현재 이집트 인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절대 아니고 논의되어야할 우선순위도 아니다. 즉 많은 이집트 인들은 미국이 우려하고 있는 여러 사실들에 대해 별 관심도 없다는 뜻이다.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이 끊어지거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이집트를 지배할것이란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집트 인들은 이런것들을 걱정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아직까지도 많은 서방세력들이 이슬람에게 가지는 근본적인 불신감 과 오해가 작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집트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가?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 무바락보단 나을 것이다. 이집트 시민은 민주주의를 필요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사촌오빠의 죽음은 혁명을 위해 어쩔수 없는 또는 가치가 있는 죽음이었을까?

글쎼..이건 너무 힘든 질문이다. 어떤 죽음에도 가치가 있다고 말할수 있을까? 난 그럴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것도 죽음을 정당화 하지 못한다. 난 그가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사람의 소중한 목숨 어떻게 혁명과 비교 될수 있을까..답하기 힘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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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ypt 박태인의 이집트 보고서 미국시간 2월 11일 아침 8시 30분 기준

이집트 국민과, 미국 그리고 세계의 예상을 뒤엎고 이집트의 독재자 호사니 무바락은 2월 10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자신은 9월 이전에 사퇴하지 않을것이라 밝혔습니다. 무바락은 9월 이전에 사퇴 하는 것은 "외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이라며, 다시한번 자신의 안중에는 이집트 시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공연히 밝혔네요. 호사니 무바락의 대국민 담화 이후의 이집트 현황을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호사니 무바락의 사퇴 거부 대국민 담화 (무바락의 계획)

이집트의 독재자 호사니 무바락은 지난 목요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즉각적인 사퇴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다만 자신의 일부 권력을 부통령 오마르 술레이만에게 이양하고 올해 치루어질 9월 대선때까지는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사를 표했는데요, 이에 이집트 국민들은 격노 하고 있습니다. 호사니 무바락은 이번 연설에서 여러 계획들과 명언? 들을 남발했습니다.

우선 9월 대통령 선거에 관해서는

첫쨰로 곧 다가올 9월 대선을 위해 헌법을 수정,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수 있는 자격 요건을 대폭 낮추겠다. 둘째로 자신은 다음 대선에 참가하지 않겠다. 셋째로 다음 대통령 선거는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루도록 하겠다. 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모든 조건은 시민들이 현재의 거리 시위를 중단하는 것 입니다.

#무바락의 대국민 연설에 대한 미국의 반응

많은 이집트 인들의 기대와 마찬가지로 미국또한 무바락이 이번 대국민 담화를 통해 즉각적인 사퇴의사를 밝힐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심지어 목요일 아침 무바락의 연설이 있기전 CIA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하는 아침 브리핑에서 "무바락의 사퇴가 예견된다" 라고 까지 밝혀서 전세계에 망신을 사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긴급 조치법 폐지에 관한 무바락의 발언

또한 호사니 무바락이 이번 연설을 통해 자신이 집권한 1981년 부터 실시된 이집트 긴급 조치 법을 폐지 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단 조건이 시민들이 시위를 중단한다는 전제 하에서 입니다. 긴급조치법이란, 거리에서 수명 이라도 같이 몰려다니면 안된다는 것, 두번째로는 범죄자로 의심되는 경우 경찰이 재판없이 용의자를 감옥에 집어 넣을수 있게 한 법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이집트 인들은 무바락에 이런 발언들을 불신하고 있습니다.왜냐하면 무바락이 이런 발언은 한것은 어제 뿐만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2006년 에도 무바락은 긴급 조치법을 폐지한다고 밝혔지만 법을 폐지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재개 시켰습니다.


#무바락 대국민 담화 이후 이집트 시민들의 반응

이집트 시민들은 무바락이 "부통령 술레이만에게 일부 권력을 양도한다."라는 발언에 대해 "독재자가 다른 독재자에게 권력을 주는 것 뿐"이라며, 거리 시위 18일째 이후 최대 규모의 반무바락 시위로 맞섰습니다. 이집트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무바락과 그의 내각 인사들의 즉각적인 사퇴 입니다.

#무바락 대국민 담화후 이집트 군부의 반응.

군부는 무바락의 연설이 있었던 바로 다음날, 무바락을 지지한다 라고 밝혔습니다. 아직까지도 군부는 그 어떤 폭력 행사도 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고 있지만 공식적인 입장으로는 무바락 편에 선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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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를 30여년 동안 독재했던 호사니 무바락 대통령이 오늘 갑작스럽게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를 부통령 오마르 술레이만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밝혔는데요.영어 번역이 되어있는 알자지라의 동영상과, 이집트 국민의 반응이 담긴 동영상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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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인의 실시간 이집트 보고서
<중부 시간, 2월 10일 오후 5시>

미국 시간으로 2월 10일, 이집트의 대통령 호사니 부마락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자신은 다음 대통령 선거가 있을 9월 까지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권좌에서 물러나길 거부한다는 이집트 독재자 호사니 무바락>


이에 이집트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무바락의 연설후
이집트
카이로의 거리를 실제 동영상으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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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인의 실시간 이집트 보고서
<중부 시간, 2월 10일 오후 5시>

미국 시간으로 2월 10일, 이집트의 대통령 호사니 부마락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자신은 다음 대통령 선거가 있을 9월 까지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일부의 권력을 부통령인 오마르 술레이만에게 양도할 것이라고 밝혔네요.

                              <권좌에서 물러나길 거부하는 이집트 무바락 대통령>


[이집트 대통령 호사니 무바락의 2월 10일 대국민 연설 -영어 번역 되어 있습니다.]
출처: 알자지라




오늘로 이집트 시민들이 카이로 거리로 뛰쳐나온지 18일이 되었고, 시위는 갈수록 격렬해 지고 있습니다. 이집트 인들은 호사니 무바락이 오늘 대국민 연설을 통해 권좌에서 당장 사임 할 것이라 기대 했었습니다.

호사니 무바락은 대국민 연설에서 "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밝혔는데요, 이로서 과거 이집트와 미국의 우호적인 관계는 종결된 것으로 봐도 될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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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주 동안 이집트에선 30여년간 나라를 지배해 왔던 독재자 호사니 무바락을 몰아내기 위한 시민들의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30여년간의 독재를 받았던 과거와 달리 현재의 시민들의 혁명에 대한 열기는 그 어느떄보다 뜨겁습니다. 독재자 무바락은 올해 9월 다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대국민 선언을 했지만 시민들은 그가 당장 권좌에서 내려오기를 갈망 합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87년 과거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 선언 이후 에 일어났던 6.3항쟁을 보는듯 합니다.

이집트는 일반적으로 생각되어 지는 것보다 국제적인 역학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국가 입니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미국에게는 중동의 안정과 이스라엘의 보호를 위해 더할나이 없이 필요한 외교 최우선 대상 국가 입니다. 미국이 이집트에 원조한 군비는 매년 10조원 정도로 이집트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미국으로부터 군비 지원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중 한곳 입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이집트의 숨막히는 상황들을 지켜보며 여러분께 이 소식을 꼭 전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가능하면 매일 이집트의 시민 시위 관련 소식을 알리는 게시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한번 썼던 글이 계속 업데이트 될수도 있으니 유심히 보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본 리포팅은 미국 공영 방송 라디오 NPR을 참고했습니다.


                                    <이집트를 30여년간 지배해온 호사니 무바락>

날짜와 시간은 미국 중부시간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정보를 퍼가시더라도 꼭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이집트 국제 보도, 미국 시간으로 2월 9일 밤 7시 25분 기준, 한국 시간으론 2월 10일 아침 10시 25분 기준]


주인장 트위터: www.twitter.com/tellyoumore

2 9일  #이집트의 크리스찬

이집트 인구 중 약 10%는 콥트 교회 교인들 입니다. 이집트에도 많은 크리스찬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번 이집트 시위에서 크리스찬과 무슬림은 서로를 보호해 주고 기도해 주면서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최근 콥트 교인들이 무바락의 갑작스러운 몰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무바락이 집권하는 동안 이집트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은 정부로부터 수많은 견제를 받았는데, 무바락이 갑작스럽게 물러나게 되면 이집트가 이란과 같은 무슬림 근본 국가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입니다. 시위가 있기전 까진 이집트에서 콥트 교인들과 무슬림들의 충돌이 제법 있어 왔습니다. 지난 1 1일에는 한 콥트 교회에 무슬림 테러 세력 자살폭탄 공격으로 20여명 가량이 사망 했었습니다.


2 9일 #이집트 노동자 파업

시민들과 더불어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열악한 노동조건, 불만족 스러운 임금이 이유 입니다. 현재 이집트의 안티 무바락 시위가 일어난 주된 요인으로는 이집트의 열악한 경제 상황 때문입니다. 이번 노동자의 파업으로 인해 이집트의 시위는 강력한 모멘텀을 얻었습니다.


2 8일 #이집트 부통령 발언


이집트의 부통령 ….이집트는 민주주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무바락 정권이 준비 없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미국 정부는 이 발언에 현 상황에 매우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이라고 비판 하였습니다. 이 발언 이후 이집트 시민의 시위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계속해서 #Egypt 시위 관련 뉴스

#부마락 정부의 시민 유화 정책, 포퓰리즘 정책

무바락 정부는 현재까지 시민들의 시위에 대항해 여러 유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600만명의 공무원 월급을 일시적으로 15% 인상 하고 정부 지원금을 통해 생필품 가격을 안정 시키는 것입니다. 미국 공영 라디오에 따르면 이런 포퓰리즘 정책은 독재자들이 즐비한 중동 국가에서 국민의 불만을 안정화 시키기 위해 매우 자주 쓰이는 정책입니다.  이 정책의 맹점은 장기적으로 국가의 빚을 늘리고, 경제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같이 석유가 풍부한 국가의 경우는 예외로 하더라도, 조단이나 예맨같은 나라의 경우 이런 독재자의 포퓰리즘 정책이 나라의 경제를 휘청거리게 합니다.

이집트의 시민 시위가 2주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바락 정부는 시민들에게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반 강요를 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기세는 꺽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있었던 튀지니 혁명의 경우 약 한달가량의 시민 시위가 독재자를 물러나게 했습니다. 무바락이 물러나게 하기 위해서도 약 한달은 걸릴듯 합니다.

 

#이집트 호사니 무바락과 미국의 외교 관계

이집트의 무바락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미국과 최고로 단단한 동맹 관계를 자랑했습니다.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맺은 평화 협정 ( 30여년 전부터) 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고, 다른 중동 국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미국이 이집트에게 지원한 군비는 매년 약 20조원 정도로 이집트는 미국에게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군사 원조를 받고 있습니다. 1위는 단연 이스라엘 입니다.

 

#이집트 헌법 이슈.

최근 이집트의 헌법이 가장 큰 이슈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헌법으로는 만약 무바락이 물러날 경우 60일 내에 대통령 재선거를 실시해야 하는데, 현재 대통령 선거에 후보를 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당은 이집트에 많아야 2개 정도 밖에 존재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물론 그 중 한 당은 무바락당입니다. 즉 헌법을 수정하기 전까지는 무바락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헌법을 수정해야 하는데 이집트의 시민 혁명 세력에게 그 플랫폼이 완성되어 있는지는 불확실 합니다.


#이집트 군부가 침착한 진짜 이유


여러 세계 언론에서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이라크 군부에 태도에 많은 칭찬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현재까지 이라크 정부는 시위들과의 충돌을 최소화하고, 경찰과 시민간의 충돌을 중재하고 있는 상황 입니다. 종종 시위에 지쳐 피곤한 시민들은 탱크에 기대 잠을 자는등, 시민과 군부의 관계는 상당히 좋은편 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숨겨진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NPR의 보도에 따르면 이집트의 군부는 시민을 적으로 돌리면 안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는 잦은 전쟁후 늘어난 군사력을 충당할 재정을 마련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집트 군부는 여러 사업에 뛰어들어 이집트인들에게 여러 생필품, 음식, 전자기기등을 팔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군부의 기업화입니다. 군부가 시민들을 적으로 돌리는 순간 이들의 상품 불매 운동이 일어날 것은 아주 뻔한 일입니다. 경제적인 이유가 군부의 폭력성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여행산업.

이번 이집트의 시위로 인해, 이집트 국가 수입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여행산업이 급속히 수축하고 있습니다. 피라미드에 파리만 날리고 있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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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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