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래 프린스턴대 교수의 장편 소설 '척하는 삶'(1999)은 한국계 일본인 군의관의 시선으로 전쟁 속에 놓인 조선인 위안부 문제를 다룬다. 책을 펼치며 참상 속에 놓인 군의관의 헐떡거림이나, 일본군에게 참혹히 범해진 위안부 소녀의 절규를 맞이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작가는 미국 작은 시골 마을에서 백인 이웃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가는 일본인 노인 닥터 히타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히타는 전쟁의 기억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전 일본인 군의관 고로의 두 번째 이름이다.



조선인 위안부 문제를 서구 사회 수면 위로 끌어올린,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영문 소설 '척하는 삶'의 내용 대부분은 평범한 노인 히타의 삶으로 채워져 있다. 



조그마한 의료용품 가게를 운영하며 두루두루 존경받는 현자 같은 노인. 히타는 자신이 전쟁과 위안부의 참상을 목격하지도 않은 양, 서양 소설에 등장하는 하나의 평범한 인물인 '척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랬기에 그를 존경하는 이웃 주민은 왜 히타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한국인 여자아이를 입양했고 왜 번번이 사랑에 실패하는지 알지 못한다. 전쟁의 죄책감이 강박을 낳고 결국 그 강박이 딸과의 불화로 이어지는 필연적 운명에 대해서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이웃들은 모든 이유가 히타 안에 있음에도 자신들이 규정한 히타를 벗어난 모든 것의 원인을 히타 밖에서 찾는다. 전지적 시점의 관점이란 특권을 누린 독자만이, 책 후반부에 드러난 고로로서 히타의 기억을 경험하고 전쟁과 위안부란 비일상적 경험이 한 인간에게 미친 영속적인 영향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을 떠올린 건, 최근 논란이 된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 때문이다. 박 교수는 책에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위안부의 이미지, 즉 수요집회에 참여하는 투사로서의 할머니와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소녀의 모습이 전쟁 당시 실제 위안부와는 많이 달랐다고 주장해 한국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박 교수의 주장을 따라가면 당시 조선인 위안부의 평균적 나이는 20세가 넘었고 10세 소녀들은 예외적인 경우였다. 일본군에 납치당한 위안부는 소수에 불과했다. 



위안부 대부분은 조선인 포주와 인신매매단이 납치한 저소득층 여성들이다. 박 교수는 일본군이 위안부의 근본적인 수요를 초래했고 용인했기에 사죄의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부장적 사회를 굳건히 유지하며 여성의 영속적 저계급을 초래한 조선 사회와, 자국 여성을 수익 수단으로 간주한 채 일본에 협력한 조선의 협력자들에게 비판의 화살을 가한다.



박 교수는 일본군을 악마화 하고 위안부를 주체성 없는 완벽한 수동적 피해자로 묘사하는 것은, 위안부에 동참한 조선의 수많은 매춘업자와 그녀들을 지켜내지 못한 가부장적 사회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란 입장을 피력한다. 



또한 이는, 제국주의적 모순, 1965년 한,일 협정에서 식민지 사죄를 요구하지 못한 냉전 체제 속 한국 정부의 한계를 덮는 효율적이고 편리한 국가주의적 발상이라 말한다. 박 교수는 이것이 위안부를 위안부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들어 역설적으로 생존했든 혹은 이미 숨을 거둔 위안부 할머니를 억압하고 있단 논지를 펼친다.



박 교수는 또한, 전쟁 당시 조선인 위안부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기존 시각관 판이한 견해를 제시하며 또 다른 논란도 촉발한다. 조선인 여성이 일본 제국주의란 "보조적인 강제성"에 희생자라 말하면서도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이 침략한 타국 여성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렸고 전쟁의 폭격 속에서 일본군과 함께 숨을 거둔 '제국의 위안부'란 것이다.  



박 교수는 "전쟁터에서 강간의 대상이 된 '적의 여자'와 위안부는 군과의 관계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였다"고 말한다.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이 승전을 거뒀던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지역 여성들과 달리 "두 번째 일본인"의 지위를 누렸다고 주장한다



책에선 일본 식민지의 일원으로서 전쟁에 참여했고 일본 군인과 사랑에 빠지거나, 그들을 전쟁의 동지로 생각했거나, 그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제공했거나, 일본군 병사를 동정하는 위안부들의 목소리들도 담담히 적어 내려간다

  


이런 주장 역시 한국 사회가 위안부를 기억하는 방식과 완연히 배치된다. 위안부란 단어 앞에 '제국의'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권력자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작년 6월 박 교수는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위안부 할머니 아홉 명에게 고소를 당한다. 당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형사 고소, 2억 7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접근 금지와 <제국의 위안부>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8개월 후 법원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원고 측 주장 일부를 받아들여 원고 측에서 수정 신청한 53곳 중 34곳을 삭제하지 않고는 <제국의 위안부> 출간을 금지했다.



접근 금지 요청은 기각됐으며 민사 소송은 16일 1심 재판이 끝났고, 형사 소송은 검찰이 지난달 18일 박 교수를 기소해 1월 중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법원 판결 후 재출간된 <제국의 위안부> 2판엔 34곳에서 문맥과 문맥을 잘라 놓는 여과 없는 숨김표(O)가 등장한다. 



박 교수는 법원의 삭제 명령이 반영된 '제국의 위안부' 2판을 내놓으며 '제국의 위안부'란 표현이 조선인 위안부를 제국주의의 협력자나 친일파로 묘사하려는 뜻이 아니었음을 밝힌다. 



위안부의 근원적 수요를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죄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나 "일본이라는 고유명에 대한 집착은 국가와 남성과 지배층 일반의 책임" 추궁을 어렵게 만들어 결국 책임의 물타기를 초래한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우리 안의 위안부는 그저 가녀린 소녀 아니면 노구를 이끌고 투쟁하는 투사일 뿐"이며 "그건 그녀들 자신의 모습이 아닌 우리가 원한 위안부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이런 식민지의 모순을 이해해야만 위안부의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단 것이 그 요지다



이어,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현재의 '부정확한 이해'는 위안부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했던 지한파마저도 돌아서게 했다는 주장을 덧붙인다. 



박 교수의 주장처럼 이런 다층적 이해는 꼬일 대로 꼬여버린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박 교수가 말하듯이 위안부에 대한 총체적 책임이 결국 그 수요를 창출한 일본군 제국주의에 있다면, 그들에게 협력한 조선의 협력자들을 단죄하는 것은 오히려 총체적 책임자인 일본군에게 일종의 면죄부로 작용하진 않을까.

 


'척하는 삶'에서 고로(히타)는 싱가포르 일본 군기지로 끌려온 조선인 위안부 여성의 건강 관리를 맡았다. 고로는 그중 유별나게 아름답고 고귀해 보인 끝애라는 조선인 여성을 사랑했다. 넷째이자 막내 여자 아이로 태어나 부여 받은 '끝애'란 성의 없는 이름. 박 교수가 위안부의 요인으로 지적한 조선의 가부장적 사회 구조가 드러난단 측면에서 소설은 현실과 맞닿아 있다. 



고로는 끝애를 구해내지 못한다. 끝애는 자살을 원했다. 고로는 억지로 그녀를 구해내려 했다. 하지만 실패한다. 일본군 장교와 병사는 끝애를 윤간한 후 그녀가 자살하기 전 살해한다. 끝애는 고로를 착한 일본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죽여 달라고 했다. 그런 고로는 끝애와 서양 소설에 등장하는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싶었다.    



결국 고로는 히타로 이름을 바꾸고 미국 시골 마을에 정착한다. 사죄의 의미였을까. 평생을 결혼하지 않은 그였지만 고로는 한국인 소녀를 입양해 열심히 키운다. 불화로 두 부녀는 갈라서지만 소설 말미에서 작가는 두 사람 사이에 화해의 기운을 살짝이나마 드러낸다. 



'제국의 위안부'는 박 교수를 비난하는 이들의 주장과 달리 조선인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표현치 않았다. 그렇다고 위안부의 이미지를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간 소녀로서 한정치도 않는다. 



일본군과 위안부가 "국민동원이라는 국가 시스템 속에서 함께 움직여진 장기말,한 마리의 개미들"이란 화두를 던지지만 "위안부가 군인과의 관계에서 희생자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단정한다. 



그럼에도 박 교수는 위안부 속에는 한국과 조선이 기억하길 원치 않았던 다양한 모습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이 '동지적 관계'든 '전우로서의 관계'든 연인으로서의 관계'든 말이다. 



그녀는 위안부 문제에 감정을 가진 한국과 일본 독자에게 1인칭 관점을 넘어 전지적 관점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조선인 위안부의 다층적 모습을 이해하는 것이, 한국과 일본이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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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과거로부터 어떤 본질적인 것을 배울 수 있는가. 인간은 역사로부터 일말의 통찰을 얻을 수 있는가.

인간은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보는 편이다. 무인자동차가 도로를 누비고 하늘에 미사 분자를 입사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시대. 새로 출시된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에 신기술이 무려 14개나 탑재된 그 '새로운 시대'에 인간의 정체(停滯)를 더욱 실감한다. 히틀러를 추동하던 나치가 트럼프에 열광하는 이반젤리컬(evangelical)로 갈음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신기술이 초래할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의 출현은 인간의 본질과 무관하다 생각한다.





로버트 쉴러의 <비이성적 과열>은 시장의 거품과 붕괴를 다룬 책이다. 그는 2000년 미국 닷컴 버블의 붕괴와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측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다. 그의 책을 읽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쉴러는 이 책에서 시장의 투기적 광풍을 조성하는 건 합리적 경제학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펀더멘털'이라 말한다. 그는 인간이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웠다는 인식 그 자체가 비이성적 과열의 중요한 요소라 지적한다. 



"사람들이 어떤 본질적인 사실을 배웠거나 배우고 있는 중이라 추론해선 안 된다. 대중들이 어떠한 사실을 막 배웠다는 인식은 가격 상승이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자극하며 주택가격의 커다란 상승을 지지하고 있다"



인간이 과거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웠다. 그래서 더 똑똑해졌다. 시장 가격은 현명해진 시장 참여자들 덕에 효율적으로 변했다. 현재의 가격이 과거보다 높은 것은, 인간의 무지함이 초래했던 비효율성 때문이었다. 즉 지금의 가격은 정당하다. 쉴러는 이 논리 구조가 투기적 열풍을 초래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중이 "가장 기본적인 사실도 배우지 못했다"고 단언한다. 쉴러는 인간을 합리적인 주체라 생각지 않는다. 행동경제학 혹은 행태재무학이라 불리는 그의 연구에서 인간의 시장 참여를 촉발하는 것은 '야성적 충동'이라 가정한다.





그런 가정 속에서 쉴러는 인간의 합리성에 반기를 드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주가가 고점을 찍었을 때 시장의 낙관을 확신하던 이들이, 하락장에선 그 낙관을 비관으로 대체하는 모습. 거품이 낀 투기적 광풍은 인간의 희망적 사고가 만들어낸 집단적 합의일뿐이란 사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시장에 합리적 분석에 근거한 것이 아닌 주식 시장의 내림세가 유도한 자본의 이동이란 그 단순함. 



쉴러는 1800년대부터 축적된 경제 자료와 다양한 심리학적 연구를 제시하며 인간을 합리적 주체라 가정한 경제학이 인간을 과대평가 했다고 지적한다. 그에게 있어 시장의 거품은 다단계 사기에 불과하며, 인간의 행동은 현상이 닥치기 전엔 예측이 불가하고 "비이성적 과열과 비이성적 비관론으로부터 사회를 온전히 보호하긴 불가능하다"란 견해를 내놓는다. 



1871년-현재까지 미국 주식 시장 가격 변화와 S&P 500 기업 수익률 



1871년-현재까지 쉴러의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 RATIO)



단, 책 말미에서 짧게나마 과열의 열풍을 제한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자신이 2000년 3월 닷컴 버블이 최고점을 찍던 순간 이 책의 초판을 출간했듯 전문가들의 용기 있는 제언이 필요하다는 점. 개인 투자자는 저축을 늘리고 투자를 다각화해야 한다는 것. 중앙은행은 통화정책 유연화를 통해 시장의 신용경색과 경착륙을 예방하고 정부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사회보장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피터 브뤼겔의 작품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니, The Blind leading the Blind>


'거품 감별사'로 유명한 그지만 사실 그의 연구 초점은 거품의 붕괴 예측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거품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예측 불가능한 시기에 언젠간 끝나게 될" 거품의 무리 짓기에 참여하는 인간의 행태였다. 그는 이를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형국"이라 설명한다. 



거품의 촉발 요인은 다양하나 거품이 꺼지는 이유는 단선적이다. 무엇이든 영원할 수 없다는 것. 다단계 사기의 실체가 밝혀지는 것은 영원히 투자자를 구할 수 없어서다. 주식이 폭락하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건 영원한 수요란 없기 때문이다. 거품의 필연적인 종말을 알기에 쉴러는 그 구렁텅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인간에 집중했다. 무엇이든 영원할 수 없으나 인간의 무지만은 영원하다는 그 사실에 매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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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독일인은 선택을 요구받는다.



"여러분의 조국이 볼셰비키에게 넘어가길 원한다면 공산주의자에게 투표하세요. 여러분이 자유로운 독일인으로 남길 원한다면 나치에게 투표하세요"



나치의 선거 표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7년 전 독일은 히틀러를 택했다. 공산주의를 반대했다. 강요라 생각지 않았다. 극단적인 것은 급진적인 것으로 대체돼야 한다 생각했다. 정치를 환멸했다. 



사회민주당은 대안을 제시하려 했고 나치는 지배하려 했다. 독일인은 지배받길 택했다. 나치는 독일 대중이 지지한 대중운동이었다. 



1932년 독일 선거 당시 모습.



미국 정치학자 알렉산더 해밀턴은 대중을 "거대한 야수"라 일컫는다. 이 거대한 야수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멀스멀 길들었다. 전쟁을 일으켰다. 유대인을 학살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유대계 미국인 기자 밀턴 마이어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지 10년이 지난 1955년, 전직 나치

남성 당원 10명을 인터뷰한 저작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를 출간한다. 지인의 도움으로 독일 소도시에서 1년간 머무르며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히지 않은 채 재단사, 경찰, 은행원, 교사 등 평범한 직업을 지닌 독일인을 만났다. 마이어는 자신의 동족을 학살한 나치란 악의 근본을 찾으려 했고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나치즘이 단순히 무기력한 수백만 명 위에 군림하는 악마적인 소수 독재가 아니라 오히려 대중운동이란 사실을 난생처음으로 깨달았다. 적극적인 기쁨의 함성과 외침을 곁들여 가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들(독일인)은 나치즘을 원했다. 그들은 나치즘을 가졌다. 그들은 나치즘을 좋아했다"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이 떠오른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으로 압송된 아이히만의 공개 재판을 지켜본 건 이로부터 6년 후인 1961년이다. 밀턴 마이어는 당시 나치의 본질에 가장 근접해 있었다. 그의 책은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고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밀턴 마이어는 '악의 평범성'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면서 한계다. 그는 악의 평범성에 집중하기보단 나치즘이 독일 사회로 스며든 과정을 추적하며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문제는 그것이 독일에만 머물렀다는 데 있다. 



마이어는 나치즘의 탄생을 악의 점진성과 익숙함, 그리고 습관화로 설명한다. 그는 만약 히틀러가 1932년부터 유대인을 학살했다면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조금씩 그러나 빠른 속도로 국가주의와 반유대주의를 표출한 히틀러의 사상에 독일 사회가 젖어버려 1943년 전쟁을 수행하던 독일인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묵인하거나 지지했다. 그가 인용한 동료 독일 언어학자의 이야길 들어보자.



"여기서 벌어진 일이란 국민이 점차 조금씩, 조금씩 습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조치에 의해 통치되는 일에 습관화되고 비밀리에 내려진 결정을 받아들이는 일에 습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1943년 유대인 가스 학살이 1933년 비유대인 상점에 독일인 사업체란 표지를 붙인 직후 일어났다면 모두가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어요. 이 두 가지 사건 속에는 수백 가지에 달하는 단계가 거쳐 갔는데 그중 일부는 차마 인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은근했고, 그 각각은 당신이 그 다음번 단계에 깜짝 놀라지 않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담당했죠"





나치는 대중운동이었다. 대중이 자신의 가치체계가 흔들리는 '충격'을 맞는다면 히틀러라도 봉기를 맞기 마련이다. 130명이 살해된 11.13 파리 테러 후 프랑스인의 국기 소비와 군대 지원이 갑작스레 증가한 것처럼, 악이 돌연 다가온다면 대중은 자각하며 연대하고 맞선다. 하지만 마이어는 나치즘의 확장이 이와 달랐다고 말한다. 독일의 대중은 '충격과 과도함'을 기다리며 일상에 퍼져가는 나치의 정신을 용인했으나 막상 과도함의 도래를 자각할 때가 되자 변해 버린 세상에 익숙해져 체념해 버린다는 분석이다.



언어학자는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자살과 가치관의 조정, 부끄러움 세 가지 뿐이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해 많은 독일인은 부끄러움을 택한 "초라한 종류의 영웅"으로 전락했다고 토로한다. 왜 '초라한 영웅'이냐고? "부끄러움은 내가 위협을 받으면 언제든지 내던져버릴 수 있는 얕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인간은 이것밖에 안 되는 존재인가. 밀턴 마이어가 인터뷰한 전 나치 당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이 회의는 더욱 깊어진다. 그들이 마이어에게 공통으로 되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이 짧고도 강력한 질문에 마이어는 속 시원히 반박하지 못한다. 그는 오히려 미국이 독일과 비슷한 상황에 부닥쳤을 경우 미국인도 독일인과 비슷한 선택을 할 것이란 두려움에 휩싸인다(하지만 결론에선 독일의 특수성을 부각하며 모순을 드러낸다)



그런 마이어에게 이 질문에 대한 해답, 인간의 행동에 대한 일종의 방향을 제시한 것은 전쟁 당시 유대인을 숨겨줬다가 감옥살이를 한 동료 화학공학자와의 '후회'였다. 마이어가 유대인이란 점에서, 아니 그저 인간이란 점에서 그 화학공학자는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국민 총동원령이 내려진 해 히틀러에게 충성맹세를 한 자신을 후회했다. 아래는 마이어와 그 화학 공학자의 일문일답이다.



밀턴 마이어: 당신이 선서를 거부했다면 당신은 나중에 유대인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겁니다. 



화학공학자: 맞아요



밀턴 마이어:그래도 후회를 하신다고요?



화학공학자: 선서라는 것은 확실하고도 즉각적인 악이었던 반면 나중에 제가 유대인을 돕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을 돕겠단)선은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인 반면 악은 이미 뚜렷한 사실이었습니다.



밀턴 마이어: 실제로 돕지 않으셨습니까?



화학공학자: 나치가 학살한 유대인의 숫자를 3백만 명이라 가정하고(마이어는 6백만 명이라 주장) 제가 천 명을 구했다고 해보죠. 제가 말하는 핵심은 제가 만약 충성 선서를 하지 않았다면 3백만 명 전부를 구할 수도 있었을 거란 점입니다.



밀턴 마이어: 당신이 충성 선서를 거부했다면 정권이 전복되기라도 했을 것이란 말인가요?



화학공학자: 제가 만약 1935년에 선서를 거부했더라면 그건 결국 독일 전역에서 저와 같은 사람 수천 수만명이 선서를 거부했단 의미였을 겁니다. 이들의 거부는 결국 수백만 명의 마음을 움직였을 거예요. 그랬다면 정권이 전복되었을지도 모르고 최소한 나치가 애초에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일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화학공학자의 답변이 이상적이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화학공학자가 선서를 거부했더라면 감옥에 가 유대인을 살리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의 답변에 마이어의 마음이 요동쳤음이 책에서도 느껴졌다.



당시 독일 대중은 불확실한 선의 도래를 믿으며 즉각적이고 확실한 악을 수용했다. 결국 그 악은 독일을 휘감았고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켰다. 물론, 역사의 필연일지도 모른다. 최근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독자들에게 '과거로 돌아가 아기 히틀러를 죽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42%가 '예'라고 답했고 30%가 '아니라'고 답했다. 



개인적으로 이 질문엔 히틀러가 전쟁의 근원이 아닐 수도 있단 뉘앙스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란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서 히틀러의 자리를 대체할 대중적 지도자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란 뉘앙스 말이다. 



마이어는 진정 수레바퀴를 돌린 것은 쇼펜하우어가 '짐승 같은 진지함'이라 부른 태도로 나치를 대한 독일의 야수들이라 말한다. 야수란 독일의 7천만 대중이다. 그들이 바랐기에 히틀러가 탄생했고 열광했기에 나치는 창궐했다. 악을 처음부터 거부하지 못한다면 산에서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불어나 우리의 일상을 덮칠 것이다. 그땐 이미 늦어버려 평범하지 않은 악을 평범한 듯 묵인해야 한단 것이 마이어의 분석이다. 






앞선 부분에서 마이어가 '악의 평범함'에만 집중하지 않은 것이 이 책의 한계라 지적했다. 마이어는 전직 나치 당원들과 인터뷰할 땐 자신이 유대인임을 숨겼다. 그러나 책 후반부에선 그러지 못했다. 



마이어는 책 속에서 인터뷰한 나치 당원을 "개돼지"라 부르기도 독일인에겐 "시민의 용기가 결여되어있다"고 일반화하기도 "히틀러 따위에 싫증을 내지 않는 사람들을 독일인뿐이었을 것이다"란 인종주의적 발언도 서슴지 않으며 독일인만을 전적으로 비난한다. 



책 서문과 전반부에서 드러난 악에 대한 철학적 통찰은 책 후반부에서 독일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전환되며 저자의 시대적, 민족적 한계성을 드러낸다. 이런 측면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밀턴 마이어가 악의 평범함과 그 스며듬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이 책은 아직도 전쟁이 끊이질 않은 현대 사회에 유효한 영속성을 지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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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예술을 믿지 않는다. 


인구 천 만의 나라 벨라루스 언론인 출신인 그녀의 홈페이지엔 "지난 20년간 5권의 책을 쓰며 난 예술이 인간의 많은 것을 담는 데 실패했다고 선언한다"는 글귀가 걸려 있다. 문학도 예술의 일부라면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이 부정한 분야에서 정점에 올랐다.



문학을 부정한 언론인이 어째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까. 역설적이게도 알렉시예비치의 글에 담긴 지독한 

문학성 때문이다. 인생의 진실은 고통에 있다는 문학적 서사의 뼈대는 유지하지만, 허구를 실제 삶의 기록으로 대신한 그 문학성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자신의 첫 번째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알렉시예비치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릴 테니까." 그러나 같은 책에서 그녀는 "모든 것은 문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러시아 문학이 삶의 비밀인 고통과 잇닿아 있음을 언급한다. 평단은 알렉시예비치가 '목소리 소설'이란 새로운 문학 분야를 개척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의 목소리가 스스로 삶을 말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답할 뿐이다.




 



알렉시예비치의 이런 '역설성'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쟁 중 키가 자랄 만큼 어렸고 다리 사이로 떨어지던 피를 부상으로 보고했던 소녀의 목소리에서 터져 나오는 참혹한 전쟁의 모습. 거기엔 기록과 기억, 죽음과 아름다움, 운명과 선택, 삶과 문학의 역설이 담겨 있다.




"남자들로는 부족한 거요? 무엇 때문에 여자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거죠? 그건 다 여자들의 환상이란 말이오"



제2차 세계대전 때 참전한 소련 여성만 100만 명이 넘는다. 저격수와 소총수, 공병대 지휘관과 간호사로 참전한 그녀들에게 아무도 전쟁의 기억을 묻지 않았다. 모두들 그네들이 평범한 여자로 돌아가길 바랐다. 


알렉시예비치는 남자의 기록과 여성의 기억은 다르다고 믿었다. 여자의 목소리를 찾아다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름을 날린 여자 저격수를 만나러 가는 길. 알렉시예비치는 저격수가 일하는 공장의 남자 상사에게 핀잔을 듣는다. 여자들의 목소리가 전하는 전쟁은 "환상"이란 핀잔. 알렉시예비치는 이렇게 답한다.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목소리다. "나는 비록 여자지만 수영을 잘했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구하고 싶었어. 옆에서 누군가 물위로 떠 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 사람을 힘껏 붙잡았어...뭔가 차갑고 미끈한 게 만져지더군. 부상당한 병사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내가 데리고 나온 게 사람이 아닌 거야. 글쎄 상처 입은 커다란 물고기더라니까. 사람 키만큼이나 커다란 물고기. 흰 철갑상어였어. 죽어가고 있었지. 나는 녀석 옆에 털썩 주저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 어찌나 속상하고 화가 나던지 눈물이 났어. 이렇게 물고기까지 고통을 당하는 게 너무 속상해서”





똑같은 전쟁을 기억하는 다른 방식. 알렉시예비치는 기록을 기억으로 대체하려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참전 여성은 같은 여성들에게 모욕을 당했다. "젊은 몸뚱이로 내 남편에게 살살 꼬리나 친 전선의 암캐"란 소릴 들으며 "이미 치르고 온 전쟁에 견줘 결코 가볍지도 쉽지도 않은 또 다른 전쟁"을 겪어야 했다. 알렉시예비치는 그 여성의 목소리가 스스로 이야기하길 바랐다. 그녀는 기록과 기억은 같지 않음을, 진실은 "위대한 이야기와 영웅적 사례"가 아닌 "냄새나는 속옷과 평범하고 작은 사람"에 있음을 믿었다. 




"여자들은 무슨 말을 해도, 심지어 죽음을 언급할 때조차도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다는 것을(정말이다!), 아름다움은 여자를 여자로서 존재하게 하는 이유였다"



난 아름다움을 갈구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여자를 갈구할 뿐. 그러나 여자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갈구한다. 가을 길 낙엽처럼 흔한 죽음의 폐허 속에서도 여자들은 아름다워지고 싶었다. "아직은 더 예쁘고 싶었는데...나는 전쟁 내내 다리를 다칠까 봐 겁이 났어. 나는 다리가 예뻤거든", "나는 두 손에 거울을 꼭 쥐었어. 행여 거울이 얼까 봐. 저녁때 보니까 뺨이 동상에 걸렸더라고", "내가 전쟁터에서 예뻤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 그곳에서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이 지나가 버렸어. 다 타버렸지. 그리고는 순식간에 늙어버렸어" 




세 여성의 다른 목소리는 모두 같은 것을 바라본다. 독일군을 죽이고 돌아온 그 날 밤에도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고 싶었다. 전쟁은 어린 소녀를 강간하는 남성의 본능엔 관대했지만, 눈썹을 물들이고 귀걸이를 차는 여자의 본능엔 야멸찼다. 전장엔 남자의 욕망 어린 몸짓과 쾌락의 냄새만이 코끝을 찔렀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너온 한 여자는 회상한다. "아 끝까지 살아남기만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질까? 이처럼 처절한 고통을 이겨냈으니.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미워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사람 앞엔 모든 길이 놓여 있다. 고결한 곳으로 향하는 길과 비열한 곳으로 향하는 길, 천사로부터 짐승에 이르는 길"



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함께했다. 테러 조직 ISIS는 지난주 금요일 파리에서 129명의 사람을 죽였다. 지금도 인간은 전쟁 중이다. 전쟁이 운명이란 말엔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그때부터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한다. 인생에 주어진 무수한 선택지가 사라진다. 시대의 목격자가 시대의 부산물로 변해버린다. 



"한 병사가 포로를 구타했어요. 나는 그 짓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말렸죠. 그 병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어요. 그건 그의 영혼에서 터져 나오는 아우성 같은 것이었으니까. 나한테 욕을 퍼붓더군요. 있는 욕, 없는 욕, 욕이란 욕은 다 해댔죠. '이년아 벌써 잊었느냐. 저놈들이 한 짓을 벌써 잊어버렸느냐고. 이 쌍년이' 하지만 포로를 때릴 순 없었어요. 그렇게 우리는 각자 자기 행동을 결정해야 했고, 그건 중요한 일이었어요"



"용서하는 게 쉬웠을 거로 생각해? (독일의) 멀쩡하고 새하얀 벽돌 지붕의 집들을 보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 같으냐고. 장미가 탐스럽게 핀 집들...나도 그들이 고통스럽기를 바랐어. 당연히...그들의 눈물을 보고 싶었지. 한순간에 착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기까지 나는 수십 년이 걸렸어. 



인간은 선택할 때 더욱 인간다워진다. 여성을 강간하지 않고 포로를 구타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증오를 용서로 대체하는 과정, 그 과정에 진실이 있다. 그렇다고 증오를 비난하진 않는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엔 독일군뿐 아니라 스탈린을 향한 소련인들의 서릿발 가득한 증오의 편린들이 담겨 있다



그 증오만큼 이 책에는 전쟁의 처참한 현실들이 적혀있다. 무자비한 고통이 있다.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이런 대목을 만날 땐 책을 덮고 고개를 들어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기억나느냐고? 오도독, 오오독 소리. 그 소리가 기억나.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사방에서 오도독하는데 연골이 으스러지고 뼈마디가 뚝뚝 부러져나가는 소리, 짐승의 울음과 같은 처절한 비명들..." 





비극이 이어질수록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너졌다. 삶과 문학이 잇닿는 지점에서 인간은 고통을 내뱉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문학보다 문학적이기에 남은 책장들이 아쉬웠다. 알렉시예비치는 침묵하던 소련의 여자들을 찾아갔다.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스탈린과 함께한 소련의 역사엔 빵 한 조각보다도 의미 없는 무수한 훈장만이 가득했다. 남자는 '전쟁을 신화화'함으로써 그 허무에 맞섰다. 소련의 여자는 '전쟁 후 또 다른 전쟁'을 치르며 숨죽여 기다렸다. 알렉시예비치는 그 여자의 목소리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네들은 많이도 울었다. 소리도 질렀다. 내가 떠나고 나면 그네들은 심장약을 먹었다. 구급차가 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와달라고 부탁했다. "와요. 꼭 다시 와야 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침묵하고 살았어. 40년이나 아무 말도 못 하고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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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4월 17일 금요일 오후. 


엘리자베스 워런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매사추세츠주 존 F.케네디 건물의 로비로 들어선다. 테드 케네디 연방 상원의원을 만나러 왔다. 주어진 시간은 15분. 워런의 목표는 공화당 주도로 진행된 파산법 개정을 막기 위한 케네디의 지지를 얻어 내는 것. 



1980년대부터 정부의 규제 완화로 월스트리트의 대형 은행은 유색 인종, 저소득층, 저학력자, 고령자를 

겨냥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카드 대출을 남발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남은 문제는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채무자의 파산으로 인한 일말의 손해. 대형 은행은 파산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려 했다. 삶의 끝자락에 몰린 수백만 채무자의 파산이 지연될수록 은행의 이자 수입은 증가할 것이다. 



면담은 워런의 설득으로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워싱턴의 실력자 케네디는 워런에게 약속한다. 파산법 개정 반대 운동을 이끌겠다고. 확답을 들은 워런은 보좌관의 눈치를 살피며 사무실을 나와 감격에 찬 울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1995년부터 시작된 싸움은 2005년까지 이어졌다. 10년간 워런은 책을 쓰고, 강연 하고, 코미디 방송에 출연하고 정책을 만들며 파산법 개정을 지연시켰다. 2005년 하원에서 302 대 126, 상원에서 74 대 25란 압도적인 지지로 업계의 법안이 통과되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기 전까지 싸웠다.





워런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백만의 사람이 재정 파탄에 이르렀는데도 이기지 못했다. 우리가 이기지 못했다고? 제기랄, 심지어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어떻게 백전백승의 인생을 살 수 있는가?" 워런의 자서전 <싸울 기회> 표지에 큼지막하게 적힌 문구다. 패배란 살풍경이 익숙한 독자를 유혹하는 이 문장은 원전엔 없는 말이다. 워런은 세상과 치열하게 싸웠지만 대부분 패배했다. 승리는 2012년 매사추세츠주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연방 상원의원 선거를 기록한 책의 마지막 장에만 담겨 있다. 워런은 스콧 브라운 당시 현직 상원의원을 8퍼센트 차이로 따돌렸다. 자신을 감격게 한 테드 케네디의 빈자리를 7년이 지나 스스로 채운 것이다. <싸울 기회>는 '백전백승'를 한 승리자의 기록이 아닌 수많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은 워런의 분투기다.




각주까지 548페이지에 달하는 <싸울 기회> 속에는 많은 일화가 담겨 있다. 그중 1998년 워런과 케네디의 만남을 끄집어낸 건, 이 이야기 속에 워런의 특징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싸울 기회>를 읽기 전, 티머시 가이트너 전 미국 재무장관의 회고록 <스트레스 테스트>를 읽었던 영향도 있었다. 가이트너에게서 사변적 해결책과 완벽에 가까운 경제학적 논리, 미국 재부무 엘리트 관료로 성장한 워싱턴 인사이더의 모습이 풍겼다면, 워런에게선 현실 문제에 천착한 연구자, 열정적인 운동가, 파산의 문턱에 서있는 시민들을 만나며 결국 하버드 교수 자리에 오른 아웃사이더의 맹렬함이 느껴졌다



책의 문체에도 차이가 있다가이트너는 논리를 바탕으로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워런의 책은 독자의 가슴에 불을 댕기려는 연설가와 대화하는 느낌이다.  사람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모두 워싱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잦은 의견 충돌을 겪었다. 각자의 책에서도 서로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주로 워런의 책이 가이트너에 대해 비판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워런은 부시 정부의 재무장관 헨리 폴슨이 도입하고 오바마 정부의 재무장관 가이트너가 주도한 부실자산구조프로그램(TARP)의 의회 감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자본 부족에 시달리던 대형 은행을 위해 마련된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은 그들이 살아온 여정만큼이나 판이했다. <싸울 기회>에서 워런은 가이트너를 가르켜 "장관은 눈이 덮인 산 정상에 있는데 나는 사막을 기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세상과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은 그렇게 달랐던 것이다"라고 회고한다. 가이트너는 워런에 대해 "당내 자유파 중 가장 열렬하고 유창한 비판자"라며 그녀의 비판을 일정 부분 수긍했지만, 그녀가 불공정하며 불투명하다고 비판한 TARP와 '스트레스 테스트'에 대해선 금융위기를 극복한 유일했고 최선의 정책이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싸울 기회>에 드러난 워런은 상투적인 통념에 기대 편안한 연구를 하지 않았다. 파산법 연구를 시작한 1980년대부터 현실 문제에 천착했고 사람을 만났다. 당시 학계와 정치권에서 파산자는 "빚을 떼어먹은 어딘가 구린 데가 있는 사람" 이거나 "흥청망청 돈을 낭비한 무책임한 사람"이라 여겨졌다. 워런은 파산을 앞둔 사람들을 만나러 직접 법정을 찾았다. 통념과 달리 판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대부분의 사람은 탄탄한 중산층 출신이었다. 워런은 파산자 중 90%는 실직과 의료문제, 가족 해체란 세 가지 이유로 본인의 의사완 상관없이 그 자리에 섰다는 것을 증명했다. 통계청 등 각종 정부 기관 자료를 연구해 현대 중산층 가정의 파산이 증가한 이유를 과소비로 꼽는 '과소비 신화'에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2003년 매킨지에 다니던 첫째 딸 아멜리아와의 공동 저서 <맞벌이의 함정>에서 워런은 2000년 맞벌이 중산층 가정이 1970년대 홀벌이 중산층 가정보다 더 궁핍한 살림을 꾸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 원인은 명품 선글라스와 나이키 신발 탓이 아니었다. 30년째 이어진 임금 정체와 필수적 지출인 의료비와 교육비의 증가, 정부 규제 완화로 치솟은 은행의 이자 때문이었다. 





워런에게서 '운동가적 열정'이 느껴지는 건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으로 치환하는 그녀의 특성 때문이다. <싸울 기회>에서 워런은 파산법 연구를 하며 만났던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혼자 살던 80대 할머니가 은행 직원의 소개로 주택담보대출을 변동 금리로 바꾼 후 폭등한 금리를 감당치 못해 길거리에 나앉은 이야기, 이혼 후 불행한 재혼에 중병까지 겹쳐 파산한 40대 여성의 이야기. 조용히 자신의 연구실로 찾아와 부모님의 파산을 서럽게 이야기하던 학생의 이야기. 워런은 정계에 나서기 전부터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논리로 무장한 관료들이 고통 받는 미국의 중산층을 단순한 통계와 숫자로 정의하는 것을 꺼렸다. TARP 의회 감독위원회 위원장 재직 시절엔 TARP 자금이 대형 은행에만 쏠려 소규모 지역 은행의 도산이 잇따르자 "그렇게 잃어버린 기회를 생각할 때마다 아직도 좌절감에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자영업자, 실직자, 이것은 그저 종이에 적힌 숫자가 아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잃은 수백만 명의 사람이다"고 회고한다.


 

마지막으로 아웃사이더적 기질. 2009년 초, 미국 경제가 대공황과 대침체의 갈림길에 섰던 시점에서 워런은 TARP 감독 위원장의 권한으로 오바마 정부의 구제금융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일류 자문 업체와 함께 정부의 구제금융 거래 내용을 분석한 결과 미국 정부는 은행의 부실 자산 매입을 위해 100달러를 쓸 때마다 그 대가로 66달러 가치의 자산을 받아왔단 사실이 밝혀졌다. TARP 거래는 매입 액면가 그대로 이뤄진다는 헨리 폴슨 장관의 말이 거짓이었던 것이다. 언론은 재무부가 국민 세금으로 금융위기를 초래한 대형 은행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론이 들끓었다.오바마 정부의 지지율은 떨어졌다.



워런은 이때 래리 서머스 당시 백악관 경제위원장(전 하버드 총장으로 워런의 상사이기도 한)의 초대로 단둘이 저녁 식사를 하며 '경고'를 받았다고 했다. 다이어트 콜라를 연신 들이켜던 서머스는 워런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웃사이더는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인사이더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요. 하지만 인사이더끼리는 절대로 깨서는 안 되는 한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인사이더끼린 서로 비평하지 않는다는 규칙이지요" 오바마의 핵심 참모이자 가이트너의 멘토이며 차기 미국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로 꼽히던 서머스의 날 선 비판에도 워런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워런은 TARP의 불투명성과 불공정함, 대형은행의 무차별적인 주택 압류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정부를 지속해서 비판했다. 워런은 자신이 대형은행이 제공하는 인사이더의 안락함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다며 "그 클럽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주는 공짜 소다주를 마시지 않을 수 있었고 외부에서 금융 시스템을 연구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내겐 성역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티머시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워런의 <싸울 기회>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책이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인물이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을 두고 상반된 의견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이트너는 결과론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를 대처한 정부의 정책이 옳았다고 말한다. TARP과 스트레스 테스트로 은행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사라져 뱅크런을 막았다. 정부는 이자까지 쳐서 TARP 자금을 모두 회수했다. 분명 한계는 존재하지만 현 체재(Status Quo) 유지를 위해선 그게 최선이었다. 거시적 관점에서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에 필연적 현상이며 대공황의 교훈을 배운 정부라면 구제금융은 불가결한 선택이었다. 이것이 가이트너의 주장이다.   





하지만 워런은 가이트너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만 옳았을 뿐 나머진 모두 틀렸다고 주장한다. 워런은 당시엔 "아무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랐으며 그 위험은 고스란히 납세자가 졌다"며 과정의 철저한 불공정성을 지적한다. 만약에라도 헨리 폴슨과 가이트너 장관의 정책이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면 되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았을 것이란 뉘앙스다. 워런은 연준이 주도한 '스트레스 테스트'는 감독 기관에 충분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불투명한 정책이었다고 비판했다. 소수 장관과 대형은행 CEO에게 미국의 미래를 맡기는 건 무책임한 처사란 것이다. 또한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대형은행의 무차별적 주택 압류를 정부가 성실히 저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 정부의 모습을 "거대한 산불을 안약으로 끄겠다고 하는 것"이라 비유했다. 2009년 2분기 GDP가 -0.4%를 기록하며 감소세가 완연히 꺾여 안정세를 되찾았다는 정부의 낙관적 주장에 워런은 10%가 넘는 실업률 해결을 위한 대책을 요구했다. 워런은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역사와 함께하는 필연적 현상이 아닌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가 초래한 인위적 현상이라 주장한다. 자본에 대한 상식적 규제만 가능하다면 미국 경제는 오랜 기간 공황 없이 안정성을 유지할 것이란 논지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워런의 열정만큼 가이트너의 논리도 빈틈이 없다. 물론 워런의 주장도 논리적으론 나무랄 데가 없다. 어렵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나의 선택이 결정이 옳다는 보장도 없다. 나 역시 평생을 함께해 온 경험과 편견의 소산물이다. 옳다는 말은 우스운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스트레스 테스트>를 읽으며 생겼던 고민이 <싸울 기회>를 통해 약간이나마 해소됐다. 논리만큼 중요한 것은 그 논리에 바탕을 둔 동기이며 태도란 생각이 들었다. (가이트너의 동기가 악하단 뜻은 아니다) 워런의 태도와 삶에 매력을 느꼈다. 기자로서 종요로이 생각할 점들이 많았다. 기존의 체재와 통념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도전 의식. 학문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로 나아가 세상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는 성실함. 인사이더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그들의 성역을 넘나드는 아웃사이더의 자유로움까지. 공부를 하면 할수록 관료의 논리에 포섭돼 길을 잃고 방황하던 나의 머릿속이 조금은 명료해진 느낌이다. 기자는 매일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 최선의 방법은 논리와 지식이란 눈 덮인 산 정상에 있기보단 열정을 품고 뜨거운 사막 속을 걸어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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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가이트너는 말한다. 내가 옳았다고. 나의 정책이 미국 경제를 위기의 수렁에서 구했다고.



<스트레스 테스트>는 금융 위기와 함께 한 그의 재무장관 시절(2009년 1월~2013년 1월)이 담긴 회고록이다. 하지만 다른 회고록과 달리 가이트너의 기록엔 네개의 적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쏟아진다. 그가 겨냥한 적들이란 첫째:빌 클린턴 정부가 물려준 흑자 재정을 8년간 낭비한 공화당. 둘째:뉴욕타임스를 비롯해 흑백논리에 매몰된 하이에나 같은 언론. 셋째:월가의 도적적 해이를 지적할뿐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를 포괄하지 못하는 운동가들. 마지막으로 위기의 심각성을 모른 채 은행가에 구약성격적 심판론만 제기한 대중들이다.






작심하고 쓴 듯한 저서에서 가이트너는 자신이 주도한 정부의 두 가지 프로그램으로 위 네개 집단의 논리를 갈파한다. 그 두 가지 프로그램이란 줄도산 위기에 처한 대형 은행의 부실 자산을 매입한 '부실자산구제금융프로그램(TARP)'과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 상황을 가정하고 은행의 재정 안정성을 평가한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가이트너는 이 정책들의 결과로 미국 경제가 2009년 6월 대공황을 빠져나왔다고 말한다. 

같은 해 12월엔 자신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경제의 뇌관이라 보고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TARP 자금 전액을 상환했다. 이로서 미국 경제는 대침체에서 탈출했단 주장이다.



가이트너는 "일부의 방화범들이 채찍을 피해가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구해내야 했다"고 말했다. 은행가를 처벌하고 그들의 탐욕에 심판을 내리는 것이 당장은 매력적 방안이나 "재앙 속에서 진정한 과업은 재앙을 끝내는 것"이라 말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선 방화범을 처벌할 것이 아니라 먼저 불을 꺼야 했단 것이다. 2009년 경제 위기는 도덕적 심판론을 주장하기엔 그 규모가 너무나 컸다. 이럴 땐, 직관엔 배치되나 '탐욕스러운 은행에 세금을 투입해 신용을 투입하는 정책'만이 유일한 해답이라 주장한다.




2009년 5월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가 실시된 후, 은행에 대한 불신은 정부의 보증으로 사그라들었다. 또한, 평가 대상 중 다수의 은행이 정부의 보증 없이 민간에서 부족한 자본을 확충했다. 같은 해 1분기 -5.4%성장한 미국 경제는 2분기 -0.4%수준으로 회복하며 안정을 찾았다. 당시 가이트너는 오바마 정부가 10%가 넘는 실업률 때문에 당당히 '위기 탈출' 선언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책을 출간한 시점인 2014년 실업률은 6%대였다. 지난 달 미국 노동부 고용 지표를 보면 실업률은 5%까지 하락했다. 선물 시장에서 연내 금리 인상 확률은 72%까지 상승했다. 이런 실증적 결과와 함께 논리로 무장한 가이트너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에게 감탄하고 설복된다. 뉴욕타임스는 좌파 포퓰리즘 언론으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벌인 청년들은 무식한 대중으로, 그의 정책에 반기를 든 공화당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위기 속에서 선거만 생각하는 혐오스러운 정치꾼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가이트너만이 옳고 나머진 모두 틀렸단 것일까? 만약 그의 말이 맞다면, 2009년 앨리자베스 워런이 주재하고 가이트너가 출석한 TARP 의회 감독위원회에서 그의 뒤편으로 "우리의 돈을 돌려달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던 코드핑크 NGO 회원들은 뭘하고 있었단 말인가. 가이트너의 말처럼 곧 미국 정부가 그들의 요구를 "이자를 포함하여 이행하게 될 것"인데 말이다. 가이트너는 회고록에서 "위기란 과학보다는 기술, 분명한 흑백이기보다는 회색으로서, 검증된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절대 부동의 원칙보다는 융통성과 창의력, 겸손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전혀 겸손하지 않은 확신에 가득찬 주장엔 일견 거부감이 들었다. 그의 논리와 내 경험이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2009년 당시 난 미국에서 언론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3시간 떨어진 미주리의 한 시골 마을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던 삼촌은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영난을 겪었다. 매출은 자츰 줄어들었고 삼촌은 최저 임금을 주던 직원들의 해고 여부를 두고 고민했다. 한국에서 등록금을 송금해 주시던 부모님 역시 금융 위기 후 원화 가치가 급락해 은행에서 빚을 내 등록금을 부치셨다. 당시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동기들도 몇몇 보였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제쳐두고라도 당시 삼촌은 가이트너와 오바마에게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을 떠나던 2012년에도 삼촌의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물론, 그가 조언을 구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말처럼 가이트너가 "골드만삭스 CEO 목에 칼을 긋는다고 해도 대중은 또 다른 피에 굶주릴 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구해낸 세상이 주유소를 운영하던 삼촌과, 삼촌에게서 최저 임금을 받던 백인 저학력 노동자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문학적인 세금을 투입해 은행을 살려냈고 대공황에서 벗어났다고 하자. 하지만 최근 앵거스 디턴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서 드러난 것처럼 고졸 이하 백인 남성 10만 명당 사망률이 1999년 이후 30% 이상 가파르게 늘어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답답했다. 고졸 이하 백인 남성은 흑인, 히스패닉계와 함께 금융위기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인구 계층이다.




물론 다시 가이트너의 논리로 돌아오면 답은 쉽다. 정부가 은행의 부실자산을 매입하지 않아 망하게 내버려 뒀다면 미국 경제는 유럽이나 일본처럼 더 큰 수렁에 빠져 백인 남성의 사망률이 지금보다 가파르게 증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책에서 밝힌 것처럼 미국 자본주의엔 "시스템 개선을 위한 노력에도 다음 위기가 또 찾아올 것"이다. 이는 정부가 어차피 또 무너질 시스템에 천문학적 세금을 들였단 뜻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탐욕과 낙관이 허망과 비관으로 순환되며 굴러가는 이 불안정하고 불안한 체재를 유지하려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가이트너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면, 그가 "좌파 선동가"라 지칭한 버니 샌더스 민주당 대통령 예비 후보처럼 정부의 정책을 방해하는 무책임한 여론 선동가처럼 보일까. 내가 미국 유권자라면 버니 샌더스보다 힐러리 클린턴에게, 테드 크루즈보단 젭 부시에게 마음이 갔을 것이다. 단숨에 모든 것을 뒤집을 기세인 '혁명'에 찬동하기 보단 가이트너의 점진적인 개혁이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이트너가 자신감 가득찬 목소리로 역설한 '금융위기 이후의 세상'이 별로 멋져 보이지도, 그 세상을 구해준 것이 그리 고맙지도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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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 연구원 '중국경제 위기의 본질은 낙후된 금융' 정리



3가지 이유로 중국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1. 상하이 지수 폭락 2. 실물 경기와 동 떨어진 당국의 7% 성장률 발표. 3. 예상치 못한 위안화 평가 절하. 


명목 달러 기준 세계경제의 13%를 차지하고 세계경제 성장의 30%를 기여하던 중국 경제의 위기감이 번지자 한국을 포함해 중국에 의존해 온 신흥 국가들의 경제 성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상하이 지수 폭락의 원인


올해 5천 포인트까지 치솟은 상하지 지수는 8월 하순 기준 올해 상승 분을 다 잃었다. 6월 12일 주가가 정점을 찍었을 때 상하이 A주식의 PER은 25배, 음성적인 레버리지 차입은 투자 원금의 4.5배 수준. 같은 날, 중국 증권 규제 당국은 장외 차입자금 투자 금지를 발표했고 차입투자시 적정수준인 1.3배를 못 맞춘 깡통개미들의 주식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며 증시가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 



이런 표면적인 이유 외에 2013년 그림자금융 규제가 강화되고 부동산 시장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GDP 193%에 달하는 중국 내 통화량(M2)이 증권 시장으로 과도하게 몰린 점, 중국 인민일보를 비롯해 언론들이 주식 투자를 부추긴 점, 중국 당국이 국영 기업 등의 부채 감축을 위해 주식 투자 광풍을 용인한 점, 홍콩 투자자들의 월경 투자를 허용한 후강통 등이 도입된 점도 상하지지수의 급등과 폭락을 야기한 요소로 작용했다 볼 수 있음. 



지수 폭락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


그러나, 중국 가계 평균 주식비율이 10%미만으로 추산돼 향후 국내 소비에 미칠 파장은 제한적이며, 외국 자본도 7.7%정도이며 대부분 해외적격투자자, 즉 중장기 투자자라 세계 금융 위기로 번질 가능성도 제한적.



상하지 지수 폭락보다 중요한 중국 실물 경제 침체


보고서는 주식 시장의 폭락이 중국 실물 경제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됐다고 지적. 중국 통계청은 2분기 7% 턱걸이 성장을 달성했다고 발표했으나 리커창 지수(물동량, 전기사용량, 신규대출증가율)와 너무 동떨어진 성장률이란 비판이 제기되며 통계조작이란 비판을 받음. 보고서는 7% 성장률과 실물 경제의 주요 지표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다는 표현을 사용. *사견:루치르 샤르마 모건 스탠리 신흥국 담당은 중국 경제의 실질 성장률을 4~5%로 확신하는 칼럼을 WSJ에 기고.



저자는 중국의 전기사용량, 화물물동량의 증가세가 현저히 둔화된 이유로 에너지 6대 소모업종의 부진을 들음. 그런 상황에도 7% 성장이 가능했던 건 전자상거래 활성화, 6월 1조 5천억 위안에 달하는 SOC투자, 팽창적 통화정책 때문이었다며 턱걸이 성장이란 점을 강조.



위안화 평가절하가 중국 수출 증가에 미칠 영향은 불확실


달러대비 4% 하락한 위안화 절하가 중국 수출에 미칠 긍정적 영향력은 불확실. 한국 아세안 등 수출경쟁국들의 통화도 동반하락했으며 수출 부문에 투입되는 수입재 가격의 상승, 미국 소비자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가격탄력성이 낮은 점도 위안화 가치 하락이 미칠 긍정적 효과를 감쇄하는 요인. 그러나 저자는 위안화 절하가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당국의 시장개입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중국 금융시장의 선진화라는 측면에서 높게 평가할 부분이라 지적. 시스템이 환율변동제에 보다 가까워지며 달러 유출 압박 > 위안화 유동성 축소 > 위안화 재발행의 악순환이 끊겨 중국 인민은행의 통화 정책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러나 저자는 중국의 지준율 인하와 팽창정책에도 실제 부담금리가 6%에 달하는 정책과 실물의 괴리로 제조업 등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인구 고령화와 정부 재정 부담 속에 금융 선진화를 통한 투명하고 효율적인 금융시스템 개혁이 차후 중국 성장을 이끌어갈 주요 발판이라 조언.



*사견

최근 중국 경제의 변동성이 커진 것은 과잉투자와 과다부채로 외형적 성장을 이뤄온 중국 경제의 부정적 측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 불안감이 만연하고 당국의 통계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투자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바라보는 건 공산당의 움직임. 증시 개입, 위안화 절하, 지준율 인하 등 중국 공산당의 갑작스런 시장 개입이 투자가들에겐 중국 실물 경제 위기의 시그널로 읽힘. 인민은행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위안화 평가 절하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점과 앞으로 이어질 미국 금리 인상 리스크는 중국 경제의 변동폭을 현재와 같이 이어갈 수도. 



중국 경제 인구 고령화와 투자 감소, 내수 소비 시장으로의 전환은 중국 수출에 의존하며 3~4% 성장을 해온 한국 경제엔 치명타. 한국 경제 역시 내수, 서비스업 위주의 전환을 통해 해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봇물. 그러나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 없인 내수 경제 활성화는 무용지물이라는 점. 현재와 같이 청년 세대가 높은 주거비 부담을 가지며, 중장년층 세대는 부동산 없인 노후 대책 마련이 어렵다는 딜레마 속에서 임금 피크제뿐 아니라 다양한 정책을 통한 돌파구 마련이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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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뉴스가 주최한 공화당 예비 대선후보 TV 토론회. 2천4백만 명의 시청자가 몰릴 만큼 대단한 관심을 끌었고, 그 중심엔 도널드 트럼프가 있습니다. 미국 언론은 물론 국내 언론까지도 트럼프 효과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건, 그의 발언들이 직설적이며 자극적이라 뉴스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 트럼프보다 더욱 기억에 남는 건, 동성결혼과 낙태에 관한 공화당 예비 대선후보들의 태도였습니다. 



2008년과 2012년 미국 대선과 비교해, 동성결혼을 대하는 공화당 후보와 유권자의 유연함은 확연히 늘어났고, 낙태에 관해선 더욱 보수적인 견해을 취했습니다.



공화당이 동성결혼을 껴안으며 부동층 유권자(산토끼)를 끌어들이고, 낙태를 강경히 반대하며 보수 기독교 유권자(집토끼)를 잡으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여기, 제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던 한 장면입니다.



 

폭스뉴스 토론 사회자 메건 켈리가 오하이오주(州) 주지사 존 케이식에게 묻습니다. “만약, 아들과 딸이 동성애자라면,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당신의 입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직설적인 질문입니다. 폭스뉴스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방송사이며 후보들에게 “어떻게 하면 힐러리를 이길 수 있겠는가?”에 관한 방법을 노골적으로 묻지만, 토론 중 쉬운 질문은 마지막 소감을 물을 때 빼곤 없었습니다.


 

케이식 주지사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저는 전통적인 결혼을 지지하지만, 이미 대법원의 판결은 내려졌고 따를 것입니다. 사실, 최근 한 친구의 동성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하여,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제 딸이 동성애자라도 전 딸을 사랑하고 아낄 것입니다. 우리 미국인은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이런 '진보적'인 답변보다 더 놀라운 건, 토론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케이식의 답변을 듣고 박수를 쳤단 사실입니다. 2012년 대선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막판까지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 선언을 미뤘습니다.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주(州) 주지사는 동성결혼을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4년 전, 토론장에서 케이식주시사가 이런 발언을 했다면 청중에게 야유를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케이식은 환호를 받았고 유력한 부통령 카드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는 동성결혼에 관해 급격히 변화된 미국 여론을 반영한다고 보입니다.



출처:퓨 리서치



2015년 현재, 과반수가 넘는 미국 시민(55%)이 동성결혼을 찬성하며 반대는 39%에 불과합니다. 오바마가 망설였던 2012년 당시 48%의 국민이 동성결혼을 지지했고 43%가 반대했으니 3년 만에 10% 정도 오른 것입니다. 종교를 기준으로 분류할 때, 무신론자 10명 중 8명이, 남부 근본주의 기독교인을 제외한 백인 기독교인 10명 중 6명이, 천주교인 중 57%가 동성결혼을 찬성합니다.


공화당이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고선 대선 승리가 어렵습니다.



이번엔, 토론 중 낙태 이슈에 관한 장면입니다.


 

40대 초반에 나이에 초선 연방 상원의원으로 대선에 도전장을 낸 마르코 루비오. 2007년 오바마를 떠올리게 하는 그는 공화당의 미래라 불리는 유력 대권 주자입니다. 일부 미국 정치 평론가들은 루비오(대통령)-케이식(부통령) 카드로 대선 승리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번에도 사회자 메건 켈리가 묻습니다.


 

“당신은 강간(rape)과 근친상간(incest)을 당한 여성의 낙태는 지지합니다. 아이의 잘못 없이 수정이 폭력적으로 이뤄졌다고 하여 낙태를 허용하는 건 정당합니까?”



루비오의 답변입니다. “전 낙태의 예외적인 허용을 지지한다고 말한 적이 절대로 없습니다” 



‘강간과 근친상간을 당한 여성의 낙태도 안 된다‘는 뉘앙스의 발언이었고 루비오는 청중들에게 환호를 받았습니다. 루비오의 강점은 신선함과 유연함으로 꼽히지만, 낙태에 대해 극단적인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최근 갤럽 조사에서 강간/근친상간 시에도 낙태를 반대하는 미국인은 20% 초반에 불과) 



사실 루비오의 발언엔 약간의 거짓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는 강간을 당한 여성의 낙태를 지지하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단지 공개 석상에서 '낙태 지지 발언'을 안 했을 뿐입니다. 이런 루비오의 어중간한 입장은 공화당 예비 대선후보들이 처한 딜레마를 드러냅니다. 



당내 경선 승리를 위해선, 보수적인 당원들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특히 투표 참여율과 조직력이 뛰어난 남부 개신교인의 지지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사회적 이슈에 관해 보수적 입장을 보여야 합니다. 



동성결혼을 거부하기엔, 대선에서 부담이 크니 낙태 이슈에서 강경한 입장을 취해 집토끼를 끌어모으는 모양새입니다. 동성결혼의 반동으로 공화당 후보들의 낙태에 관한 입장이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토론을 벌인 10명의 후보 중 루비오의 발언에 반대하거나 '자신은 낙태 이슈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가졌다고 밝힌 후보는 없었습니다. 



동성결혼과 비교할 때 미국 유권자들이 낙태에 가진 입장은 상당 기간 일정합니다. 퓨 리서치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미국 시민 중 51%가 모든 종류에 낙태에 찬성하며 42%가 반대하는데 오랫동안 이 수치를 유지해 왔습니다. 찬반과 관계없이 낙태를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는 미국인은 49%로 찬반이 팽팽히 맞섭니다. 갤럽 조사에서도 낙태 찬성이 50%, 낙태 반대가 44%로 퓨 리서치 조사와 큰 차이가 없으며 1998년 조사 결과와 2015년 결과의 수치가 거의 비슷합니다.





특히 퓨리서치에 따르면 골수 공화당 지지자인 기독교 근본주의자 중 75%가 낙태를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로 생각합니다. 이는, 당내 경선에서 승리할 때까진 공화당 후보들의 낙태 반대 입장이 더욱 강경해질 것임을 뜻합니다. 공화당원들이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을 린 없으니, 당내 대선후보로 뽑힌 후에 보다 유연한 태도로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엔 최근 공개된 미국 가족계획협회(Planned Parenthood) 임원들의 대화를 몰래 촬영한 동영상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족계획협회는 연방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는 여성단체(낙태 옹호 및 지원)인데, 영상에서 협회의 임원들이 의학 연구용으로 유산된 태아의 조직을 제공하는 문제에 대해 대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상이 공개된 후, 공화당과 기독교 단체들은 가족계획협회가 ‘태아의 조직을 불법거래’하고 있다며 국정조사를 원하고 있고, 가족계획협회와 힐러리를 비롯한 민주당 측에선 해당 단체가 ‘태아의 조직을 불법으로 거래한 사실이 없다“며 공화당이 여성의 건강 선택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동성결혼 이슈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하는 보수적 기독교도들이 낙태 이슈로 새로운 활력을 찾아 세력을 결집하고 있습니다. 



이는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에게 양면의 칼입니다. 낙태를 ‘여성의 건강 선택권’으로 보는 힐러리는 공화당 후보들의 낙태 반대 입장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이들을 여성 권리에 반하는 극단주의자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이런 전략은 힐러리가 여성의 입장만을 지지하는 ‘여성 후보’로 보여 후보의 확장력을 약화할 위험성도 존재합니다.


 

분명한 건, 앞으로 이어질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 동성결혼은 주요 이슈가 아니란 점입니다. 이는 두 정당에새로운 숙제를 안겨줍니다. 



민주당은 동성결혼을 넘어서, 젊은 유권자를 비롯한 집토끼 지지 세력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이슈를 찾아야 하고, 공화당은 낙태를 통해 집토끼 유권자를 보듬으면서도, 극단적 입장을 피해 실제 대선에서 중도층 유권자와의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트럼프보다 더욱 중요한 미국 대선의 새로운 변화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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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판별사’로 알려진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투기적 거품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가격 상승 가능성에 대한 소식이 투자자들의 열광을 자극하고, 그런 열광이 심리적 전염을 통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퍼지는 상황”



그는 투자자가 자산 가치에 의문을 품지만, 투기꾼의 흥분과 타인에 대한 부러움에 투기적 시장을 벗어나기 어려운 밴드웨건 효과에 빠진다고 지적합니다. 심리적 거품이 투기꾼을 계속 불러 모으고, 그 투기꾼들이 가격 상승을 합리화한단 것입니다. 



최근 폭락과 급등을 반복한 중국 주식시장의 모습을 다룬 뉴욕타임스의 기사에선, 실러가 정의한 투기적 거품의 모습을 그대로 빼쏜 중국인들의 일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식 거래가 새로운 스포츠로 변해버린 풍경. 농민, 가정주부, 대학생, 공장 근로자 등 수백만명의 중국인들이 주식 거래장으로 변한 주민 센터에서 북새통을 이루며 주식의 등락을 무작스럽게 관람하는 모습. 주식이란 도박을 지켜보며 신난 얼굴로 카드 도박을 하는 아주머니의 손끝에서 중국 주식시장의 거품이 중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 전반에 미칠 엄청난 파급력을 상상케 합니다.



지난 2분기에 중국 내 개설된 주식계좌가 3천8백만 개라 하니, 성실히 일하면 공정한 경쟁 하에 성공할 수 있다는 중국의 ‘권위주의적 메리토크라시’ 철학에도 서서히 금이 가는 형국입니다. 



문제는 한때 5천 포인트 넘게 솟아오르던 중국 증시의 추세가 ‘상승장’에서 ‘하락장’으로 급변했단 것입니다. 27일 8.48%나 떨어진 건 물론, 당국의 안간힘에도 하락 추세가 멈추질 않습니다. 이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주식시장에 뛰어든 중국인 대부분이 도박판에서 ‘패배’한다는 걸 뜻합니다. 소수의 승자라도 있다면, 실패자의 우매함을 탓하겠지만, 모두가 실패한다면 시장, 즉 정부를 탓하는 것이 투자자의 속성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합니다.



이런 투기적 광풍이 정권에 부담을 주진 않을까 우려했는지, 중국 관영언론 차이나 데일리는 “재앙은 마지막 시험대를 제공했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탐욕은 위험한 것”이라며 투기적 투자자들을 비판하고 증시가 아닌 안정적인 채권 투자를 권고했습니다. 또한 추후 정부의 개혁으로 증시가 폭락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증시가 폭락하는 것은 개혁 때문이 아닌 개혁을 하지 않아서"라며 "개혁을 탓하지 말라”는 경고도 전했습니다. 



중국은 미국에 이은 세계 2대 경제 대국입니다. 이런 경제 규모로 7% 성장을 하는 건 사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엔 세계 최고 수준에 소득 불평등이 잠복해 있습니다. 루이스 전환점을 찍은 중국 경제라 중국 대졸자들도 한국 청년처럼 취업난에 허덕입니다. 평생 성실히 일해도, 초고성장 기간 투자와 투기의 틈새에서 돈을 쓸어 담은 부모 세대와 그 자녀인 푸얼다이를 따라잡긴 어렵습니다. 계급 상승 사다리가 무너진 것입니다. 그런 현실에서, 놀라운 상승세를 보인 증시는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상당한 기대감을 심어줬습니다. 물론 폭락한 시장은 언젠간 안정세를 찾고, 다시 상승할 것입니다. 시장의 장기적 가치를 고려치 않은 중국 당국의 무분별한 자금 투입이 소정의 성과를 거둘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광폭의 등락 속에서 자신의 주머니를 지키고 살아남을 투자자가 그리 많진 않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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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위클리 비즈 아웃사이드 칼럼 "투기적 거품에 끝이란 없다. 잠시 꺼졌다 다시 부풀어 오를뿐"

뉴욕타임스 "Stock Downturn Hits Chinese Investors in the Heart, Not Just the Wallet"

차이나 데일리:"Disaster is Providing ultimate 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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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후루사토(ふるさと) 세금이 있다. 후루사토는 한국말로 고향(故鄕)이니 고향세란 뜻이다. 단어에 세금이 붙지만, 정확히는 세금감면 제도다. 자신의 고향 혹은 자신이 원하는 시골 마을에 특정 액수를 기부하면 소득세와 주민세를 기부 액수와 가깝게 감면해준다. 기부를 받은 지방 소도시는 기부자에게 지역 특산물을 답례로 제공한다. 조금만 에돌면이 일본의 독특한 세금감면 제도에서 그리스와 유로존 위기의 본질을 읽을 수 있다. 



후루사토 세금(이하 후루사토)은 아베 총리가 2007년 1차 내각 시, 지방과 도시의 격차를 줄이는 방안으로 제안했고, 이듬해 시행돼 2012년에만 10만 6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이유로, 세금 혜택도 크지만,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고향 경제를 되살린다는 보람이 꼽힌다. 최근엔 기부자에게 소고기와 고급 해산물 등을 제공하는 지방 소도시간의 경쟁이 과열돼 일본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자체적인 절제'를 요구할 만큼, 후루사토 열풍이 대단하다. 



기부자에게 제공하는 지방 소도시의 특산물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성공한 정책 사례로 꼽은 이 후루사코의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바로 애국심. 일본인이 일본인을 돕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사는 도시에 쓰여야 할 세금이, 나의 고향 혹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방 소도시에 쓰여도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다. 또한, 지방 경제가 살아나면 결국 일본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라, 그 혜택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믿음도 있다. 한 국가, 한 국민이란 의식은 후루사토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기본 뼈대다. 우리가 내는 세금 대부분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쓰인다. 



하지만 유럽엔 그런 의식이 없다. 독일인은 독일인이고, 그리스인은 그리스인이다.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독일 사업가가 그리스 아테네 연금 생활자를 위해 후루사토를 할 이유는 없다. 청년 실업률이 20~40%에 달하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와 그리스보다 못 사는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 시민들은 사실 도울 여유도 없다.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세금으로 부도 위기에 처한 말레이시아를 돕자는 후보가 있다면, 참으로 황당할 것이다. 한국인이 말레이시아를 타국으로 생각하는 것과 유럽인이 그리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리스를 제외한 유럽연합 국가들의 지도자는 자국민에게 유럽연합을 지키려 그리스를 위한 후루사쿠를 설득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이를 뉴욕타임스는 "네덜란드가 동부 코네티컷 주가 되어 남부 앨라배마 주(그리스)를 돕는 것"이라 지적했다. 문제는 지금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 시민들에게, 유럽연합이란 거대한 대의는 공허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2011년 유로존 위기가 본격화될 당시, 브뤼셀 비영리 언론단체에서 일하며 유럽연합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만난 많은 사람들 중 중 자신을 "유럽 시민(European Citizen)"이라고 소개한 사람은 없었다. 함께 근무하던 스코틀랜드인은 자신이 영국이 아닌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강조할 만큼 유럽인들의 국가별 정체성은 단단하다. 1993년 유럽연합이 출범하고 2002년 유로화가 도입됐을 땐 제러미 리프킨의 낙관적 저작 '유러피언 드림'의 주장처럼 미국의 세기는 가고 유럽의 시대가 올 것 같았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유럽 시민들을 배제한 채, 독일을 끌어안고 미국을 겨냥한 유럽 엘리트 정치인만의 작품이었다. 



물론 현재로선, 그리스 치프라스 정권의 치킨 게임이 일단락되고, 트로이카와의 구제 금융 협상이 시작돼 그렉시트의 고비는 일견 넘긴 듯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리스를 위한 유럽연합의 '후루사토'가 지속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후루사토가 지키려는 유럽의 통합은 실업에 허덕이는 유럽 청년들과 5년간의 긴축 재정으로 GDP가 25%나 감소한 그리스 시민이 감내할만한 것인가. 



트로이카라 불리는 채권단은 2010년부터 현재까지 그리스에 2,330억 유로를 지원했고 이번 달 협상이 체결되면 3년간 최대 860억 유로(약 108조원)를 제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각자의 애국심으로 거리로 나선 각국의 유럽인들은 외친다. 우리는 서로의 후루사토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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