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에세이를 모으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왜 투표하는지에 관해 묻고 그 이유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대세론과 심판론 그리고 인적 쇄신이라는 정당들의 허울뿐인 변화속에 개개인의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이번 총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쓰고싶은 만큼의 분량을 적어 필자에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Parktaeinn@gmail.com


4.11 총선전 마지막 에세이.


우리 모두가 투표하는 서로 다른 이유

by 박태인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것도 유권자. 그를 심판하는 것도 유권자의 몫이다.



투표하다 몸살이 났다. 학교에서 자동차로 7시간 정도 떨어진 시카고 재외국인 투표 일정이 만만치 않았다. 숙소비와 기름값으로 돈도 제법 썼고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밀린 학교 일도 산더미였지만 막상 투표소에 들어서 기표 용지를 받으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느 후보와 정당을 찍을지 결심한 상태였지만 기표소에서 다시 한번 오랜 고민을 했고 4년에 딱 한 번 뿐인 기회에 신중히 내가 가진 한 표를 행사했다.


재외국인 투표를 하는 약 10분의 시간 동안 세월이 참 쏜살같다는 생각을 했다. 유학을 오기 전 집 앞 3분 거리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총선에 참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느덧 19대 총선, 다시 한번 투표를 하는 난 졸업을 앞두고 있고 4년의 유학 생활 동안 나 자신을 비롯해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의 조국은 끝도 모를 후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고 부자인 사람들은 더욱 부자가 되었다. 미래를 저당 잡힌 친구들은 고시에 매달렸지만 대부분 떨어졌고 곧 군대에 입대할 우리는 아무것을 가지지도 붙잡지도 못한 체 곧 서른 살이 돼 있을 것이다. 난 이렇게 엄습해오는 불안감과 압박감에 대처하는 최선의 행위가 투표라고 생각한다. 난 투표를 통해 내가 어떤 가치관을 지닌 시민이며 어떤 세상을 꿈꾸며 공부하는 학생인지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그렇다면 나에게만 투표가 이렇게 특별한가? 그렇지 않다. 2월 말부터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한국 과 외국에 거주하는 각계각층의 유권자를 찾아 ‘내가 투표하는 이유’에 관한 에세이를 부탁했다. 정치인들의 불필요한 소음과 격렬한 갈등 속에 들리지 않는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공명시키고 싶었다. 지금까지 총 18분이 귀한 시간을 쪼개 나에게 자신들만의 이유를 보내왔고 이 지면을 통해 그분들의 목소리를 공유하고자 한다.

“부정부패의 상징인 아프리카 정치인보다 한국 정치인이 더 부끄럽다.”는 튀니지 거주자 육숙희 씨는 매번 생각 없이 1번만을 찍어왔던 시절을 뒤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위해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공공 정책을 공부하는 박소령씨는 “공정한 규칙에 기반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국가를 위해 투표한다고 말했고 성북동에서 티티카카 까페를 운영하는 게이 김기민 씨와 평택의 사는 레즈비언 김경희 씨는 성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정당을 위해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림대학교에서 등록금을 대출받아 다니는 김민성 씨는 저소득층 등록금 대출 금리를 완화해 줄 정치인에게, 대학원에서 여성 인권을 공부한 고혜리 씨는 “여성의 권리를 올바로 파악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한다고 말했고 교회 개혁 운동을 이끄는 샘솟는 교회 신형진 목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편파적인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를 오타쿠라고 부르는 장한솔 씨는 자유로운 문화를 허용하고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투표한다고도 말했다.

투표권이 없는 미국인도 에세이를 보내왔다. 서울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벤저민 씨는 자신에게 만약 투표권이 있다면 “문법과 암기 중심의 한국 영어 교육을 새로 디자인하는 정치인(물론 단 하루만이 아닌)”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자신만의 우주에서 산다. 그리고 그 우주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그러니 각자가 투표하는 이유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매번 총선 때마다 근거가 불분명한 인적 쇄신론과 색깔론에 묻혀 이런 개별 유권자들이 바라는 정책과 이슈들이 묻혀왔고 이번 총선도 예외는 아닌 듯 보인다.

이럴 때 일수록 유권자는 스스로에게 묻고 자신의 목소리를 드높여야 한다. 그리고 투표해야 한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바삐 흐르는 시간 속에서 4년에 한 번뿐인 소중한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묻는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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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에세이를 모으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왜 투표하는지에 관해 묻고 그 이유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대세론과 심판론 그리고 인적 쇄신이라는 정당들의 허울뿐인 변화속에 개개인의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이번 총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쓰고싶은 만큼의 분량을 적어 필자에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Parktaeinn@gmail.com


"자연스레’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뜨거운 햇볕이 쬐고, 가을이면 단풍이 들고, 겨울이면 하얀 눈이 내리 듯, 투표도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By 윤자주(@jajooyoon)

경희대학교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학과 08학번





사실 ‘나는 왜 투표하는가.’에 대한 질문 자체가 웃기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뜨거운 햇볕이 쬐고, 가을이면 단풍이 들고, 겨울이면 하얀 눈이 내리 듯, 투표도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투표를 ‘자연스러운 일’로 여기는 것에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는 대전제가 있다. 그런데 MB정부 들어서, 이 대전제가 조금 아니 많이 흔들리는 것 같다. ‘자연스러운 일’이 ‘자연스러웠던 일’로, 과거형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뿐일까?

필자가 대학에 갓 입학한 2008년 4월 들끓던 촛불보다 이를 뭉갠 국가의 폭력을 잊지 못한다.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광우병의 위험성과 축산 농가의 피해를 지적하며 사회 각계 각층은 우려를 표했고, 결국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총도 칼도 없는 촛불로 무장한 시민들의 국가를 향한 표현이었다. 이러한 표현을 현 정부는 방패과 곤봉을 든 경찰특공대를 앞장세우며 무차별적으로 진압했다. 표현의 자유를 가진 시민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근현대사 교과서의 흑백 증거 사진이 아닌,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볼 수 있다니. 21세기에 소통보다는 권력의 공포로 국민을 다스리는 정치가 다시 온 것이다.


MB 정부가 출마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윤도현, 김제동을 TV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기이한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KBS 전 사장 정연주 배임혐의 기소, 유명 경제 블로거 미네르바 체포 및 구속, 광우병에 대해 다룬 PD수첩 제작진 기소, 전교조 해임 등 많은 사건들이 시민사회에 엄청난 공포감을 조성했다. 점점 국민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표기관격인 언론도 권력 공포를 피하진 못했다. 여론을 올바르게 형성할 의무가 있는, 권력에 대한 파수견(Watch Dog)의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은 권력에 온갖 아양을 떠는 애완견이 되고 말았다. KBS 9시 뉴스엔 ‘심층취재 - 공연장 박수 이럴 때 쳐야’라는 리포트가 나왔다고 한다. 언론의 타락과 더불어 그 수준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역사를 두려워하는 MBC, KBS, YTN 방송 3사의 파업이 환영 받고, ‘뉴스타파’, ‘이슈 털어주는 남자’, ‘제대로 뉴스데스크’, ‘리셋 KBS뉴스 9’ 등 대안 언론의 파장이 커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필자는 현 정부를 실패한 정부라고 본다. 어느 정부나 완벽한 정부는 없고 공약을 그대로 실천한 정부도 없다는 것을 안다. 임기가 1년이나 남은 정부를 실패했다고 판단한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것의 근본인 성품 즉 도덕성을 철저히 무시한 정부이기 때문이다. ‘작은 정부, 큰 시장’, ‘경제살리기’를 모토로 열심히 홍보했고, 다수의 국민들은 기업가 출신인 그의 경제 능력에 기대었다. 능력중심사회를 열창하던 그의 업적으로는 고소영중심의 투명한 인사시스템, 세금을 죽이고 환경을 죽이는 4대강 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예산안 날치기 통과, 디지털 시대 새 정치 장을 연 선관위 디도스 공격, 아랍에미리트에서의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 수주 성공과 함께 받은 자이드 환경상 상금 50억을 개인 통장에 빼돌린 살뜰한 생활력, 한미 FTA 협상 아닌 협상 등을 들 수 있겠다.



*뉴스타파 8회. 민간인 사찰, 임태희와 이동걸.


그리고 이 모든 업적을 단숨에 능가할만한 민간인 사찰 사건, 또 이러한 민간인 사찰을 전 정부에 뒤집어 씌우려는 시도. 투명한 공직사회를 위한 감찰 보고와 정부 현안 보고를 사찰이라고 국민을 교란시키는 현 정부에 대해 더 이상 분노할 가치도 없다고 느꼈다.

필자는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그리고 그 생명인 공정한 선거를 얻기 위해 목숨 바친 희생에 충실하고 싶다. 그리고 모든 것의 근본인 성품이 갖춰진 사람에게 표를 던지고 싶다. 성품을 근거로 한 사람을 통해 더 많고 다양한 ‘우리’가 두려움에 떨지 않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근본적인, 상식이 통하는, 자연스러운 우리 사회를 만드는 힘은 투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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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에세이를 모으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왜 투표하는지에 관해 묻고 그 이유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대세론과 심판론 그리고 인적 쇄신이라는 정당들의 허울뿐인 변화속에 개개인의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이번 총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쓰고싶은 만큼의 분량을 적어 필자에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Parktaeinn@gmail.com


"사실 에드먼드 벌크가 말한 이 한 구절이 나를 투표장으로 이끈다고도 할 수 있다. 선의 방관만이 악을 꽃 피운다”
(The only thing necessary for triumph of evil is for good men to do nothing)"



*박지호씨의 트위터 프로필 사진


By 박지호(@jh_justice)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간사

경실련 홈페이지 바로가기www.ccej.or.kr


나는 왜 투표하는가: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의 정의와 안녕을 위해 투표를 한다.”

‘나는 왜 투표를 하는가?’ 라는 자문을 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니 사실 자신이 사회에 의한 직접적 피해를 입기 전까지 투표장에 빠지지 않고 나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쉽사리 자신의 입장과 과거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공동체의 정의(justice)와 안녕을 위해 투표를 한다. 투박하다 못해 고루하기까지 한 대답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있는 정의란 단지 마이클 샌덜의 책 제목에 적힌 정의, 그리고 단어 자체의 정의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화 이후 10년 가까이 축적되어 온 ‘내가 정의(defined)내린 정의(justice)’를 의미하는 것이다(이를 설명하기엔 지면이 불필요하게 길어질 듯하여 생략한다). 나는 이 정의를 토대로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 그 구성원들이 안녕하길 바라며 투표를 하는 것이다.



사회적 배경

사회가 병들어 있다. 우리가 태어난 순간에도, 기초교육을 받던 사춘기 시절 그때에도, 고등교육을 받으며 취업에만 몰두하고 있던 그 순간에도 사회는 병들어 있었다. 아니 더욱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병이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김상조 교수의 종횡무진 한국경제 특강.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있는 사회보다는 시장자본주의사회 속에서 자신을 조금 더 중요시하며 살아왔다. 사람들의 가치관을 획일적으로 만들고 타인에게 무관심한 개인주의를 팽배하게 하는 데는 시장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미 구조 자체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사회는 많은 병들이 급속하게 악화되고 시작하였고 결국 그 고름이 터져 공동체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주기 시작하였다. 경제위기는 중산층의 몰락을 가져왔다. 경제가 파탄나자 국가는 성장일로의 정책을 택하기 시작하였다. 과거회귀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대의제 하에서 투표 참여를 통해 사회를 바로 잡고자 하는 사람들은 국가가 잘 살게 되면 그 구성원이 잘 살게 되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효과, 이른바 ‘낙수효과’를 꿈꾸며 그런 국가에 힘을 실어 주었다.



*낙수효과의 진실은 무엇인가?


스스로 자신들이 입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선택을 한 것이다. 정부와 국회를 점령한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통제가 불가능했다. 국가의 정책은 거시적인 국가 경제와 신임도의 상승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는 결국 일부 대기업들과 경제적 기반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분노와 참여

나는 분노하였다. 정치외교를 전공하며 스스로 최상위 학문으로써 사회정의를 위해 유일무이한 요소와 수단으로 생각했던 정치가 오히려 사회를 망치는 부정적인 역할만을 도맡아서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미숙한 참여였다. 촛불이 모여 있는 곳으로 뛰어 나갔다. 하지만 처음 달려나간 날 그 자리에서 느낀 실망감에 하지만 그곳에서도 실망만을 안고 왔다. 개인주의가 팽배했던 사회 속에서 살았던 우리는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방법조차 알고 있지 못했다. 구호만 난무하고 비난만 늘어놓는 사람들은 결국 강제 해산되거나 연행되었다.



결국 나는 다시 이론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회를 치료하고 공동체를 위한 국가를 만드는 방법은 투표 이외에 그 어떤 방법도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20대와 30대는 개인주의의 팽배 속에서 투표장으로 향하질 못하였다.



나는 진정한 참여를 꿈꾸었다. 그래서 학업을 마친 후 민간연구소를 거쳐 시민단체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곳은 나와 같은 이유가 아니더라도, 개인주의,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깨어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민주화 이후 경제성장과 정치적 외연성장 속에서 공동체의 안녕을 위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다.



작별과 만남



나는 지금 참여하고 있는 시민단체에서 새로운 정치참여를 깨닫게 되었다. 정치참여를 통해 사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익숙한 것들과의 작별이 이루어져야 한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취업해야 해서’ 라는 핑계,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과의 작별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를 잠시 내려놓고 공동체를 바라보며 투표에 참여해야한다.



이는 곧 새로운 정치와의 만남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 만남이 가져온 사회변화는 내려놓았던 나에게 다시 혜택으로 돌아온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왔다. 나는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를 내려놓고 투표에 참여한다. 하지만 이 양보와 내려놓음은 곧 내가 만든 사회에 의해 다시 일으켜 세워진다.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글이 너무 엉망이라 내가 투표장에 나가는 이유를 이해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사실 Edmund Burke가 말한 이 한 구절이 나를 투표장으로 이끈다고도 할 수 있다.



“선의 방관만이 악을 꽃 피운다”
(The only thing necessary for triumph of evil is for good men to do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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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에세이를 모으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왜 투표하는지에 관해 묻고 그 이유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대세론과 심판론 그리고 인적 쇄신이라는 정당들의 허울뿐인 변화속에 개개인의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이번 총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쓰고싶은 만큼의 분량을 적어 필자에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Parktaeinn@gmail.com


"사회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과 동등하게 혹은 조금이라도 더 생각할 줄 아는 "의외의 정치인" 들에게 저는 투표하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의외의 정치인"을 제시해 보자면 문재인과 노무현입니다."


By 이준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민주주의에서 투표는 그 사회 구성원들 간의 합의(consensus)를 이끌어내는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즉 투표라는 절차를 통해 당선된 사람이 시행하는 정책은,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법적·절차적 정당성을 갖습니다. 하지만 이번 정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처럼, 진정으로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제가 투표를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자질이 바로 이것입니다. 진정으로 사회 구성원의 동의를 도출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말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진정한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이익과 동시에 그들의 이익도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물론 선거철이 되면, 많은 정치인들은 위와 같은 행위를 하는 척 가장을 하고 국민들 앞에 섭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모습이다. 고 노무현 국회의원이 3당 합당에 반대하며 "이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중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생각 그 자체는 자신의 입신양명과 사리추구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가끔가다 좀 "의외의 정치인"들도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정치인으로써 당선이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이익을 완전히 배제했다는 뜻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이라면 자신의 이익도 포기할 줄 아는 배포를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회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과 동등하게 혹은 조금이라도 더 생각할 줄 아는 "의외의 정치인" 들에게 저는 투표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사회구성원들의 이익은 다를 수 있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도 모르는데, 어떤 후보자가 "의외의 정치인"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간단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혹은 직관적으로 보더라도, 어떤 정책이 반드시 옳았던 적도 없고 반드시 틀렸던 적도 없습니다. 즉 어떤 정책을 시행하든 그 효과는 예측이 불가능하며, 특정 집단에게는 이익일 수 있지만 다른 집단에게는 큰 손해일 수 있습니다.



*이준범 씨는 공동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의외의 정치인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꼽았다.


결국 후보자가 제시하는 정책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행정학적으로 보아도, 후보자의 신분에서 제시했던 정책과 당선자의 신분에서 시행하는 정책이 확연히 다르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책이 아니라, 당선자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인가(개인적 성품이나 사고방식에 근거한)가 더 핵심적 요소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정책적 측면보다 당선자가 보여주는 개인적 행동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결정적인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후보자의 행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개인적 차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징성"까지 갖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그 사람이 소외된 계층과 관련된 발언을 많이 하고 관련된 행동을 많이 한다면, 그 사회는 약자중심의 "사회적 상징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정반대로 나아간다면, 정반대의 "사회적 상징성"을 갖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집단을 중심으로 "사회적 상징성"을 나타내려는 사람을 뽑아야 하느냐가 문제인데, 저는 그 초점이 사회적 약자에게 맞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합의의 과정에 있어서, 동일한 손해가 발생할 시 강자가 느끼는 효용의 감소분이
사회적 약자의 그것보다 더 작기 때문입니다. 즉 약자에게 초점을 맞출 때 상대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덜 어렵게 도출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약자에게 진정으로 따뜻한 손길을 내밀 줄 아는 후보자가(물론 관련된 정책을 펴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 정책의 효과는 의문시 될 수 있지만, 약자중심의 사회적 상징성을 갖는 것이 사회적 합의에 보다 바람직하므로) 당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제각각이기에 많은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의외의 정치인"을 제시해 보자면 문재인과 노무현입니다.


*문재인 후보 캠프다이어리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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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에세이를 모으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왜 투표하는지에 관해 묻고 그 이유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대세론과 심판론 그리고 인적 쇄신이라는 정당들의 허울뿐인 변화속에 개개인의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이번 총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쓰고싶은 만큼의 분량을 적어 필자에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Parktaeinn@gmail.com


"나는 투표한다. 한국의 정치를 위해 다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도록 다들 이젠 정치적 불만이 아니 자신의 일상을 더욱 즐길 수 있도록."


By 김소영 (@Akimpopo)

런던에서 활동중인 디지털 마케터 

 


언젠가 영국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며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몇몇 정치적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특히나 BBC 뉴욕타임스 에서 까지도 조명을 받았던 정봉주 전 의원의 관련 기사를 읽고 외국인 친구들 모두 한국이라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다들 쇼크를 받은 듯했다. 심지어 내가 앞으로 트위터를 통해 외국미디어들에게도 한국의 정치 관련 뉴스를 적극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고 하자 혹시 그러다 너도 어떤 불이익을 당하는 아니냐는 걱정들을 했다. 내가 내 생각을 그리고 한국의 정치뉴스를 트위터로 전달하려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도 사람들을 걱정하게 할 만큼 현재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기엔 뭔가 비상식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듯하다. 의문점이 많은 사건에 대해 의혹 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게 되고 사람들은 티브이 속의 뉴스들과 신문들을 불신하게 되었고 진실을 말하려 하는 사람들은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이상한 요지경 세상 속 이다.

 
나는 지금 정말 민주주의 나라의 국민인 것일까? 정말 뭔가 가슴이 답답해진다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사진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턴가 많은 사람들의 트윗 블로그 등 소셜 미디어의 주제가 정치가 되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저녁모임에서도 직장인들의 회식자리에서도 심지어 어린 학생들까지 불만을 쏟아내고 울분을 토해낸다. 몇몇 유명 연예인들은 자신의 본업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정치 관련 사회 활동을 보이기도 하고 그로 인한 방송정지등의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정치적인 소신을 드러낸다. 방송국과 신문사의 기자들은 언론 통제 장악에 반대하며 자신이 소속된 언론사의 뉴스 프로그램 제작을 거부하고 파업에 나섰다. 우린 어쩌다 자신의 생업과 본업 외에 이리도 어렵고 멀게도 느껴질 있는 정치에 이토록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정봉주 전 의원에 수감에 팬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출처:오마이뉴스 


그건 비상식적이고 정의에 어긋나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있는 현재 한국 정치의 현실 때문이지 아닐까. 그리고 그로인해 발생한 사회적 병폐들이 오랜 염증처럼 곪을데로 곪다가 펑하고 터져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염증들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과 세상의 즐거운 이야기들보다 정치에 대한 불만, 답답함, 분노 등을 시위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해 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비난하고 못마땅해하는 정치인들을 뽑은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자신들을 국회의원 혹은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에선 그렇게 수도 없다. 그들을 국민의 대표로 뽑은 이들은 바로 우리이다. 우리의 투표로 그들은 자리와 파워를 갖게 되었고 우리를 대표해 정책을 정하고 법을 정한다. 내가 국민 투표에 의해 뽑혀 직접 정치인이 되지 않는 이상 자신이 원하는 정책들이 실행될 있도록 내가 할수 있는 가장 파워풀한 액션은 바로 투표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끼리 불평을 토해내고 더욱 스마트한 솔루션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론 실제 정책을 바꾸기엔 부족하다. 우리가 실제적 영향력을 발휘할 있는 내가 원하는 정책들이 실현되게 해줄수 있는 정치인에게 투표로 힘을 보태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의 정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감옥에 가고 경찰에 끌려가고 자신의 생업의 옷을 벗고서라도 사람들에게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사람들을 더욱 깨어나게 하고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하려는 그들의 희생과 용기의 원동력은 바로 사람들의 투표권이지 않을까. 만약 국민들이 한국 정치를 위해 정말 있는 아무것도 없다면 아무 희망 없는 그런 막막한 세상에 자기 자신을 무모히 던지려는 사람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정치인이라는 뺏지를 얻게 되면 실제 정치적 결정권을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힘을 실어주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의 투표권인 것이다.

*사진출처:오마이뉴스  


그래서 투표하는 이유를 이렇게 풀어 써내려 가고 싶다. 


나는 투표한다. 나는 언론파업을 하고 있는 많은 진정한 언론인들이 그들의 지식과 재능을 활용해 세상이 더욱 투명해지고 모든 국민에게 진실된 뉴스를 들려줄 있는 세상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나는 투표한다 재미있는 입담과 좋은 연기를 보여주시던 그분들이 공정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정치보다 그들의 멋진 연기가 담긴 많은 좋은 작품들을 보기 위해 그들의 입담이 담긴 즐거운 프로그램들을 자주 보 기위해. 나는 투표한다. 대학생들이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반값등록금을 위해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닌 도서관과 캠퍼스에서 자신의 학생의 본분인 공부와 캠퍼스의 낭만을 정치에 대한 근심 걱정 없이 누릴 있도록. 나는 투표한다.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 시위를 하다 경찰에 해산당하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사회의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세상에서 잘못된 사람들이 벌을 받는 당연한 세상의 진리를 보고 싶기때문에. 나는 투표한다. 칼바람이 몰아치던 뼛속까지 시린 추운 겨울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고 얼어붙었던 살이 찢어지는 사람들의 사진들을 보고 마음 아파하며 이상 눈물 흘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투표한다 한국 정치 상황에 비판적인 외신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대신 언젠가 나의 투표로 더욱 공정하고 상식적인 세상이 온다면 당당히 한국은 성숙 된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있도록. 나는 투표한다 소셜 미디어들과 우리의 일상 대화가 정치에 대한 불평과 분노로 가득 채워져 있는 아닌 모두들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할 있고 더욱 즐거운 대화를 통해 각자의 일상을 더욱 즐길수 있도록. 나는 투표한다. 다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란 쉽지 않은 길을 걷고 계신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게하기 위해서 나는 투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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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에세이를 모으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왜 투표하는지에 관해 묻고 그 이유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대세론과 심판론 그리고 인적 쇄신이라는 정당들의 허울뿐인 변화속에 개개인의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이번 총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쓰고싶은 만큼의 분량을 적어 필자에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Parktaeinn@gmail.com


"항상 우리가 불만스러웠던 것은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를 대표하지 못하는, 소수의 엘리트층이 우리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판검사, 변호사, 의사, 고위공무원 등 그분들은 우리들이 접근할 수 없는 세상에 있던 분들이라 우리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By 김규식

성균관대 경영학과 4학년.



총선이 약 삼주 앞으로 다가왔다. 현 정부는 출범할 때부터 이전의 정권과는 다르게 큰 기대감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현 세상에서 자본의 논리가 정치, 사회, 환경 등 모든 분야를 지배하기 때문에 자본의 맛을 봤던 대기업 사장 출신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한국의 대통령직은 레알마드리드 감독직처럼 독이 엄청나게 든 성배이기 때문에 엄청난 리스크가 있는 자리라 그런지 현 정부도 국민들에게 이전정부가 그래왔던 것처럼 국민들에게 비난과 실망의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다.


이와 같은 찬스를 야권이 놓칠리 없고, 5년간 누려왔던 주지육림의 꿀맛같던 기회를 야권에게 내줄 수 없는 여권 역시 정권 굳히기 빳떼루 자세에 안 들어갈리 없다. 3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여야 모두 전략 공천이니 뭐니 하면서 ‘인재’님들을 영입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명숙 대표는 전략공천으로 세명의 신선한 여검사를 영입했고 새누리당은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인류최대의 미스테리한 이야기를 했던 장승수 변호사를 영입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번 공천을 통해 영입된 인사 중 40%정도가 법조계 출신이라 한다. 전략적인 공천의 거진 절반을 법조계인들이 차지하는 걸 보니 역시나 사법고시라는 한국의 전통적인 출세의 지름길이 새삼 더 조악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새롭고 신선한 인물들이 공천된 것은 사실이다. 이전의 구태의연하고 타성에 젖어있던 구 정치인들보다 이들이 신선한 것은 인정한다. 그러면 이러한 신선한 인물들은 선거에 나갈 것이고, 신선한 얼굴을 들고 다니며 유세를 하며 지역언론에선 새로운 얼굴이 달덩이처럼 아주 훤칠하다면서 쌍수를 들고 빵빠레를 울릴 것이다.


그러면 우리, 여기서 ‘우리’라는 말이 중요한데, 우리는 이 새로운 인물들에게 표를 던져줄 것이고 이 새로운 얼굴들은 5년간 그 지역뿐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정을 운영하고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님으로서 소임을 다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항상 ‘우리’가 불만스러웠던 것은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를 대표하지 못하는, 소수의 엘리트층이 ‘우리’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엘리트 ‘그들’은 판검사, 변호사, 의사, 고위공무원 등 일반적인 ‘우리’들이 접근할 수 없는 세상에 있던 분들이라 ‘우리’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손으로 그들을 뽑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선거에 나온 사람들이 우리를 대변하지 못하므로 투표를 거부하는 것이 정답일까? 그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우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그들을 뽑을 수 밖에 없도록 그들을 내보낸 정당에 문제가 있다. 통합진보당은 과연 우리 사회의 진보를 생각이나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새누리당은 도대체 어떠한 새 부대에 우리 사회라는 새 술을 담아야 하는지 기본적인 계획이나 갖고있는지 걱정스럽다. 


비례대표제는 지역색을 없애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정계에 진출하도록 도입된 제도이다. 그렇다면 비례대표제는 정말 기존의 정치환경에선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에게 정치참여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고, 그리하여 대다수의 우리의 목소리가 대통령의 침실까지 들리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역시나 대한민국 정치는 좋은 것을 갖다주면 엉망으로 만드는 데 일인자임이 다시 한번 증명됐는데 이번에 비례대표제로 얼굴을 올린 새로운 얼굴님들을 살펴보면 역시나 고위공무원, 대학교수, 판검사님들 투성이다.


이번엔 그나마 지역색을 희석하려고 많이 노력한 것 같다. 하지만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 눈에 보인다. 비례대표제가 이처럼 또다른 소수의 그들만을 위한 기득권 유지체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대의제는 모든 사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기에 몇몇의 대표를 뽑아 민의를 반영하도록 한 것이기 때문에 대의제는 항상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정치적 시도가 있었고 그 중 하나가 비례대표제인데 오히려 우리사회의 비례대표제는 대의제의 한계를 더욱 도드라지게 보이는 섹시하지만 건강에는 해로운 하이힐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의 멋지고 아름다운 정당이라는 여인들께서 얼마나 더 섹시하게 보이려고 하이힐을 이렇게 건강에 무리가 갈때까지 신고다니는지 두고보겠다. 하이힐은 계속 신으면 디스크가 온다는데 이미 이런 여인들의 뇌새적인 유혹을 기다리는 우리 사회는 디스크가 아니라 만성 중추질환을 앓고있다. 하이힐을 벗고 맨발로 열심히 민의를 반영하며 뛰어다니는 정당의 모습을 과연 볼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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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에세이를 모으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왜 투표하는지에 관해 묻고 그 이유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대세론과 심판론 그리고 인적 쇄신이라는 정당들의 허울뿐인 변화속에 개개인의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이번 총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쓰고싶은 만큼의 분량을 적어 필자에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Parktaeinn@gmail.com


"덜 나쁘다고 여기는 쪽을 향해야 하는 지긋지긋한 '차악적 선택'은 이번 투표에도 어김없이 내 심기를 괴롭히겠지만 장차 그리 되었으면 하는 공정한 사회를 그리며 작고 응달지고 신음하는 쪽에 내 신성한 표를 심고자 한다."


By  유용선 (@Homoscripto)

(저술가, 국어교육) 

유용선 씨가 교장 선생님을 맡고 계신 독서학교 사이트 바로가기 http://penguide.kr/



나는 투표의 힘을 믿을 수 없어 투표한다.


'이상향'이란 문자 그대로 너무 이상적이어서 완벽하게 현실로 구현되지 않은 곳을 뜻한다.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는 인간이 꿈꾸는 대표적인 이상향이다.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고 할 때의 그 국민은 어떤 때에는 보편타당한 슬기로운 감시자이지만 때로는 무언가에 현혹된 탐욕스럽고 우둔한 무리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그 아수라의 얼굴을 한 군중의 주권을 이상으로 삼는 무모한 사상이다.


숱한 사람과 숱한 조직이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나처럼, 혹은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처럼 문학에 발을 걸치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 현상은 참으로 눈여겨볼 만하다. 거기 인간의 본성이랄 수 있는 아이러니와 부조리가 생생하게 숨을 쉬고 있으니까.


투표에서 국민투표로, 국민투표에서 우리나라의 국민투표로 이야기의 범위를 좁혀 보자.


대한민국 헌법이 국민투표 개념을 지니게 된 것은 1954년 제2차 헌법개정에서 주권의 제약과 영토의 변경을 가져올 중대사항을 결정하는 방법으로서 도입되면서부터이다. 이후 대한국민은 1962년12월 17일 최초로 국민투표를 치룬다. 알다시피 5.16 군사정변 다음해의 일이다. 그 후로 우리나라는 헌법을 고칠 때나 유지하고자 할 때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친다. 지금은 너무나도 악명 높은 유신헌법도 국민이 투표로써 확정(1972년)하고 유지(1975년)시켰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이 행정 · 입법 · 사법의 3권 모두를 대통령에게 집중시킨 헌법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여타 다른 나라의 대통령(President)과 성격이 크게 달라진 결정적 계기가 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투표가 민주주의의 상극인 독재를 공고히 하는 데 쓰인 것이다. 하긴 꽃의 용도가 감상만 있는 건 아니다. 투표가 적장의 시신에 얹힌 꽃이 된 경우라고나 할까. 암튼 이 후유증은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번에는 국민투표 가운데 인물선출을 위한 투표, 즉 '선거'로 이야기의 범위를 한번 더 좁혀 보자. 
우리가 투표로 선출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직책은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은 법을 만들고 수정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놀랍지 않은가. 편법과 탈법의 대명사 같은 국회의원이 무려 법을 만들고 수정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국회의원을 선출할 때는 투표로써 법을 만들고 수정하는 일을 간접적으로 하는 셈이다.


직선제가 도입된 뒤로는 대통령도 직접 뽑고, 지방의회 제도가 설립되어 시, 군, 구 단위 지역의 장도 직접 뽑는다. 그런데 희한하다. 선거철에 나오는 후보들은 선거운동 기간에는 머슴인 양 굴지만 일단 선출되고 나면 어김없이 군림하려 한다. 후보만 그러면 다행인데, 뽑아준 작자들 또한 스스로 긴다. 봉건적인 상하 의식이 뿌리 깊어 선거철은 그저 억눌린 심정을 잠시 한풀이하는 기간 같다. 투표를 무기처럼 이야기하는 모습이 마치 가시 몇 개로 호랑이도 맞서 싸울 듯이 구는 장미 같아 안쓰럽기 짝이 없다.


나는 투표의 힘을 믿지 않는다. 투표의 주체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혜와 순수를 아직(!) 믿지 않는다. 한미FTA 같은 중요한 사안을 국민합의 없이 이끌고 가서 발효시키는 정부도 믿을 수 없지만, 국민투표로 맡겨졌을 때 TV와 신문의 선동으로부터 자유롭게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할 국민이 많으이라고도 믿지 않는다. 선거권이 20세부터라는 불합리도 모순 같아서 영 못마땅하다. 헌법 전문을 읽어보라. 우리나라는 유관순으로 애국을, 4.19로 정의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그 연령대 학생들은 선거권조차 없다. 이념과 생계에 물들지 않은 10대 후반의 깨끗한 눈이 참여하는 투표라면 지금보다는 진일보한 모습을 띨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늘 있다. 그들 연령과 늘 함께 생활하기에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투표의 힘을 믿지 못하여 더욱 열심히 투표에 참여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지금 바람직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입으로는 민주와 자유를 표방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말과 행위와 생각에 있어 봉건성이 가득하다. 게다가 남북한이 처음 분단될 당시와 상황이 크게 바뀐 지금에 와서조차 남과 북은 각각의 구성원을 광신적인 추종과 병적인 콤플렉스로 몰아넣고 있다. 양측의 권력 정점에 있는 이들은 그 광신과 콤플렉스로부터 자양분을 얻고 고목으로 뿌리를 내렸다. 이러한 생태는 바뀌어야 한다.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으로 선정된 울산과학대 김순자 지부장. 출처:울산노동뉴스 


울산노동뉴스 김순자 지부장 인터뷰 바로 가기 ☞http://bit.ly/FTJwMa


생태계에선 돌연변이 소수가 멸종의 위기에 대처한다. 생태계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했을 때에는 이 돌연변이가 생존에 더 적합해진다고 한다. 내가 하는 투표는 돌연변이의 지향성을 닮았다. 지금은 아니지만 장차 그리 되었으면 하는 이상향이 내 돌연변이 선택의 기준점이자 종점이다. 법률을 제정하거나 수정하려는 투표에서는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활기찬 방향을 지향하고, 인물을 선출하려는 투표에서는 정치적인 힘이 없어 억울한 상황을 겪는 소수자나 약자를 위해 현장에서 현장으로 뛰어다니는 봉사형 인물을 지향한다.


투표 성향이 그렇다 보니 육식동물처럼 비대해진 여당과 제1야당의 권력 주고받기에 보내는 내 시선은 평상시 그다지 곱지 못하다. 생경한 이념을 앞세우느라 정작 생활현장의 땀과 눈물과 피를 닦아주지 못해온 중간 크기의 세력도 별로 곱게 보지 않는다.


이번 선거에는 돌연변이 투표에 기쁨이 되는 일이 있어 흥미롭다. 진보신당에서 청소노동자가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다고 하니, 정당투표라는 제도를 잘 이용하면 소위 운동권이 아닌 실제 노동자 계급 출신 의원을 우리 사회가 획득(?)하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할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이는 4월 총선이, 조금 멀리는 연말의 대선이 내 머릿속을 시끄럽게 하겠지만 짜증내지 않고 조금이라도 맑고 밝은 눈으로 돌연변이의 역할을 수행하려 한다. 덜 나쁘다고 여기는 쪽을 향해야 하는 지긋지긋한 '차악적 선택'은 이번 투표에도 어김없이 내 심기를 괴롭히겠지만 장차 그리 되었으면 하는 공정한 사회를 그리며 작고 응달지고 신음하는 쪽에 내 신성한 표를 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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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에세이를 모으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왜 투표하는지에 관해 묻고 그 이유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대세론과 심판론 그리고 인적 쇄신이라는 정당들의 허울뿐인 변화속에 개개인의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이번 총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쓰고싶은 만큼의 분량을 적어 필자에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Parktaeinn@gmail.com


"이번 총선, 대중문화를 즐기며 살아온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지향하는 문화가 합법적으로 보호받고 키워질수 있도록 표를 행사할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By 장한솔

26년동안 혼자놀아 혼자놀기의 달인이 된 사람. 학교공부보다 게임,만화로 더 배운게 많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친구. 청소년기를 서양/동양에서 비슷한 기간을 보내고나니 어느새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때론 너무 자유로워서 몰매도 맞지만...




나는 재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 투표한다


길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짧다기도 말하기 그런 나의 26년간의 생활을 돌아보면,나는 소위 말하는범생 길을 걷고 있지는 않았다. 1990년도 후반, 중학교 시절 당시에 한창 일본 애니메이션이 물밀 듯이 몰려들어 친구들과 함께 학교 TV 틀어보던 기억도 생생하고, 고등학교 생활이 한창일 RPG게임만들기에 심취해서 밤에 불꺼놓고 몰래 모니터불빛 찾아가며 만들었던 기억도 있다. 요즘 한창은 만화 배우기에 열심이다. 먼저 자기 소개를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이번 총선이 나에게 있어서 나는 이런게 재밌고 즐겁다!라고 자유롭게 외칠수 있는 사회가 되길 희망하기 때문이다.


*관악갑 김성식 의원. 셧다운제 반대 토론.


재미있는 것은, 내가 한창 빠졌었던 취미생활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지탄과 멸시를 받아왔다. 만화의 경우는 역사가 상당히 오래 되었다. 대통령 영부인께서 말씀하셨던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폭력 웹툰이라고 규정지으면서 압박을 가하는 것까지, 대중문화에 대한 핍박은 언제나 있었다.게임은 어떤가. 마약으로까지 치부받으면서 연간 6.5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을 온갖 규제로 막고 있다.



대표적으로 개인이 개발하는 독립형 게임,속칭 인디게임에 대한 심의를 강화하여 시장 자체에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다.또한 셧다운제, 쿨다운제 등을 도입하여, 비단 청소년만을 게임에서 접속하는 것을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 해외 게임관련 기업정책에 반하여 성인들까지 피해를 입었던 경우도 있다.다른 한편으로는 언론을 통하여 대대적으로 게임을 비롯한 대중문화에 대하여 안좋은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역사상 이렇게 국가가 발벗고 나서서 문화산업을 통제했던 시기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로 끝난 군정 이후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수뇌부가 국가를 통제했던 당시 문화산업을 통제하는 원동력은 국민의 획일화와 듣는 국민 양성이었다면, 지금의 문화산업 통제는 학부모님들의 게임 만화 없애면 우리자식이 공부 열심히 하겠지라는 염원이 원동력이다. 그리고 국가,아니 자세하게 말하자면 정부가 바램을 통해 자신들의 이득을 착실하게 취하고 있다.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지킨다는 미명 하에, 만화/게임을 포함한 각종 문화 콘텐츠를 친정부적 또는 특정 정당의 이익으로 환원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여성가족부 셧다운제 실시에 반대하는 청년들이 여성가족부 청사 앞에서 밤샘 게임 시위를 하고있다.


하지만 정말 게임,만화 같은 대중문화가 통제되고 그들 말마따나 정서에 좋고 건전한문화만이 남게 된다면,정말 폭력이 사라지고 문화적으로 성숙해질까? 나의 개인적인 경험담을 잠깐 풀어보자면, 나는 학창 시절의 힘든 시기를 게임과 만화 같은 대중문화를 통해 해소했다. 게임을 하거나 만화를 보게 되면, 마치 내가 상황속에 있는 같았고,결과적으로 주인공은 나의 심리를 대변하며 갈등을 풀고 나는 그에 따라 만족감을 느낀다.그게 대중문화의 능력이다. ?대중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하게끔 만들어야 상업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대리만족 대중문화의 힘이다.



그리고 특히나 학업,취업난에 시달리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물론 대리만족의 그물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있을 것이고, 여기서 정부는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문화 통제의 정당성을 말한다.하지만, 청소년이 자라는 동안 돌봐주고 가르쳐야 책임이 있는 것은 그들의 부모이다. 당연히 부모는 자녀가 어떠한 문제에 있는지 알아야 책임도 있다.게임을 많이 하던, 마약을 하던 술을 마시던 그것은 철저한 부모의 권한으로서 통제되어야 한다. 정부가 이러한 부모의 책임을 대신 해줘야 한다는건, 다시 말해 부모들이 우리 아이를 통제할 책임이 없으니 정부에서 대신 주시오라고 말하는것과 같다. 물론, 책임이 없으면 권리도 없다.



현재의 정부처럼 대중문화 컨텐츠를 철저히 통제하는 사회 아래에서는, 건강한 문화 소비가 있을수 없다. 합법적으로 구매가 불가능하다면 당연히 불법적으로 구매를 하게 된다.어떠한 콘텐츠에나 수요는 반드시 있으니까. 그리고 수요는 국내에서 충족되지 못하면 해외에서 구해질 수밖에. 일본 만화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파고든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그리고 물론 공급 시장도 작아져, 결국 머지 않은 미래에 국산 게임 또는 만화를 찾아보기 힘들지 모른다.아니,벌써 만화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웹툰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당연히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게 것이다.불법적인 굳이 찾아서 하지?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사회에서 만화 또는 게임 콘텐츠 소비가 곱게 보일리 없다.

             


나는 이번 총선이 나처럼, 비단 게임 또는 만화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대중문화를 즐기며 살아온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지향하는 문화가 합법적으로 보호받고 키워질수 있도록 표를 행사할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훗날, 나의 표로 인해 내가 소중히 할수 있는 나만의 문화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아지고, 같이 즐겨질 있다면 너무나 즐거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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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에세이를 모으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왜 투표하는지에 관해 묻고 그 이유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대세론과 심판론 그리고 인적 쇄신이라는 정당들의 허울뿐인 변화속에 개개인의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이번 총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쓰고싶은 만큼의 분량을 적어 필자에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Parktaeinn@gmail.com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적어도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정당에 투표를 하는 것이 제일 현실적인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진보신당의 당원이고, 진보신당에 투표한다.."


By @dogsori1

두 아이의 아빠. 안산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저임금)출판편집업자.

독소리님 블로그 ☞ http://zizilei.blogspot.com/


*진보신당은 비례대표 1번으로 김순자 울산연대노조 울산과학대지부장을 지정했다. 그녀의 첫번쨰 공약은 청소 노동자를 위한 휴게소 설치 의무화이다.

나는 39세, 두 아이의 아빠고 직장인이다. 직장 중에서는 급여나 회사 규모, 안정성 뭘로 봐도 아마 별로 안좋은 축에 속할 거다. (어쩌면 남들도 나처럼 못사는 것으로 보아 보통 수준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보신당 당원이다.


‘나는 왜 투표하는가?’출근길에 트윗을 보고, 자리에 앉아 오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질문은 무슨 의미지?”였다. 설마 ‘왜 투표를’하느냐에 대한 질문인가? 그렇다면 의회주의가 어쩌고 저쩌고 .. 에 대해 정당 운동의 필요성을 말하라는 건가? 하지만 지금은 그걸 별로 문제삼는 분도 없고 이 질문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건 진보신당의 역사 때문일 텐데 그 역사에서 비롯된 또 다른 질문이 연이어 일어난다.


‘진보신당 당원은 왜 진보신당에 투표를 하느냐?’ 통상적으로 어떤 당 당원이 그 당을 찍는 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보신당에서는 필요했었다. 진보를 위해 다른 당을 찍어야 한다는 주장과 진보신당 당원은 진보신당을 찍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던 때가 있었다. 참 희한한 논란이었는데, 지금은 다행히 그런 토론을 벌일 사람이 별로 없다. 불행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각자 자신이 찍을 수 있는 당으로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진보신당에 남았지만, 다른 길을 택하신 분들도 인간적으로는 존중한다.) 하여간 진보신당원은 아주 정상적인 질문을 보고도 복잡한 기억을 되새겨야 하는 약간은 불쌍한(ㅜㅜ) 존재임을 새삼 깨달았다.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출연편.


나는 왜 진보신당에 투표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아주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첫머리에서 밝혔듯이, 내 삶의 조건은 아직은 나쁘지 않지만 썩 좋은 편도 아니다. 아직은 먹고 살만하지만 앞을 생각하면 답이 없다. 애들은 또 어떻게 키워야할지.. 아이들이 좀더 커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으려면 내가 돈을 많이 벌어 기득권을 향유하거나, 세상이 바뀌는 수밖에 없다.


사업 감각이 부족한 나로서는 노동자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데, 노동자가 돈을 많이 벌기란 로또 맞는 것보다 힘들지 않을까? (애를 낳기 전에는 그래도 저축을 좀 했는데 ...)


그러니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은 로또를 맞거나 vs 세상이 바뀌거나 둘 중 하나인데,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것은 세상이 바뀌는 쪽이다. (로또에게 표를 줄 일이 없으니 어느 쪽이든 세상이 바뀌는 걸 바라야 한다.) 따라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적어도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정당에 투표를 하는 것이 제일 현실적인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진보신당의 당원이고, 진보신당에 투표한다.


지극히 문제적인 현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다른 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진보신당은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고, 세상에 영향을 줄 힘을 가진 정당은 다른 당이라고... 맞는 말이다. 문제는 그 당들이 세상을 바꿀 힘은 있을지 몰라도 세상을 바꿀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영향을 줄만큼 큰 정당들이 FTA를 추진할 의지를 가졌다는 사실은 정말 현실적이기는 하나, 이건 나와 대다수 국민이 곤궁한 삶에 처하게 되는 원인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다시 반론이 온다. 좋은 FTA와 나쁜 FTA의 차이, 고뇌에 찬 쌍용차 매각 명령과 철면피같은 쌍용차 구조 조정의 차이, 동북아 균형자로서 발언권을 의식한 자주적 파병 명령과 굴종적 한미동맹을 위한 파병 찬성의 차이 같은 것, 또 국가와 민족을 위한? 대추리 폭력 진압과 안보장사를 위한 구럼비 폭력 진압의 차이 ...... 물론 전문가적 식견에서 살펴보면 차이가 있기는 할 것이다. 완전히 똑같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사장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구조조정을 하건 시시덕거리며 구조조정을 하건 내 목이 날아가는 건 매 한가지. 내가 그 차이를 심각히 고려해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런 역사적 경험은 ‘조금은 낫다는 그들이 아무리 나를 위해 고뇌하고 배려하는 척 하더라도, 결정의 순간이 오면 그 나쁘다는 놈들과 같은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방증이 아닐지.


다시 왜 진보신당에 투표하는가?


기러기가 그리는 V자는 그 무리의 기러기들이 모두 마음속으로 V자를 그리며 그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날기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기러기들은 단순히 시야를 확보하고 공기 저항을 줄이며, 서로 비행에 방해가 안될 만큼 거리를 둔다는 단순한 규칙을 따라 날 뿐이라고 한다.


내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요구하는 데 무슨 거창한 식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치 개혁을 하기 위해 내가 친이·친박계의 갈등, 친노의 고뇌에 찬 타협이나 합리적 보수의 상대적 우위라거나 이들의 역학 관계나, 심지어 어떤 정치인 개개인의 속사정 .... 등등 이런 걸 고려할 필요가 있을까.


대신 사람은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아주 간단한 규칙,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에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따라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우리 삶을 바꾸자.” 이걸 해주는 당에 투표한다. 그게 진보신당이다.


ps'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김순자 님이 결정되었다. 김순자 님은 아마 고도의 정치력 같은 건 없으시리라 생각한다. 다수당의 역학 관계 속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며 정치 지형을 어쩌고 ... 이런 걸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4년 동안 국민의 세금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정책 대안이 개발되고, 그것이 국회에서 단말마나마 외쳐지겠지. 이것만으로도 진보신당을 찍을 이유는 충분하다.


ps'' 도박도 안하고 사치도 안하는 맞벌이 부부가 애 둘을 키우는 데 그리 많은 절망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원하는 것, 총장 한 명의 방이 20평인데 수십 명의 청소 노동자가 화장실 구석 말고 쉴 수 있는 방 한 칸 달라는 것, 라면 한 개가 3500원인데 대학 졸업해서 88만원 보다는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 겨우 200km 거리에 있는 원전이 수시로 고장나는 데 대한 확실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 ..


이게 너무나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43년 전에 어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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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편집자 주: 에세이를 모으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왜 투표하는지에 관해 묻고 그 이유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대세론과 심판론 그리고 인적 쇄신이라는 정당들의 허울뿐인 변화속에 개개인의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이번 총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쓰고싶은 만큼의 분량을 적어 필자에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Parktaeinn@gmail.com


"우리는 건강과 미용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반대로 농업과 농경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또한 철저한 환경에 놓여 있다. 음식의 쾌락은 신봉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By 이남연(@Nammytopia)

언젠가 저널리스트 출신으로서 식품산업에 관련된 인문 교양서를 저술하고 싶은 대학생입니다. 달리기, 바삭한 사과 좋아해요. Slow Food USA member. 




내가 투표하는 이유

“지금 한국에서 농업 관련 정책은 아무 곳에서도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옛날에 농민들의 숫자가 많을 때에는 그럭저럭 농민을 대변한다는 말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보이질 않는구나.” 이 글의 자문을 해주신 선생님의 말씀이다. 정말 그렇다. 이 에세이를 위해, 또 이번 총선 재외국민 선거를 하러 시카고에 가는 내가 투표를 위해 이곳 저곳을 찾아본 결과 내가 본 농정 공약이란 어느 정당의 와닿지 않는 공약과 어느 개별 후보자의 소견 조금 뿐이었다. 한국은 아직까지 정책 선거가 아니고 정치적 힘겨루기가 많은 국가라고 할 수 있다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총선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재외국민 선거는 3월 말) 농업과 관련된 공약이 이처럼 빈약하고 부실하다는 것은 좀 씁쓸하다. 농업이 살아나야 국가가 살아난다면서, 진짜로?


나는 다음 대선과 총선에서는 현실성 있고 성의있는, 무엇보다 진심이 담긴 농정 공약이 발표되기를 바라는 희망을 가지고 시카고에 버스를 타고 간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농정 관심 부재는 바로 시민이 식품 산업에서 가진 소비자의 권력을 깨닫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또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임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생각으로 이러한 글을 쓴다.


우리는 건강과 미용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반대로 농업과 농경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또한 철저한 환경에 놓여 있다. 음식의 쾌락은 신봉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학교에서 농업이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는 것에 화를 내지 않고, 농경과 농업을 공부하는 또래를 은근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누구는 사라져가는 농촌과 시골풍경이 아쉽고 그립다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언제부턴가 농산물이 밭과 논에서 나는 생산물이라는 과거의 인식에서 깔끔한 대형마트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물품의 관념으로 조금씩 변해왔고, 더 이상 식탁 위 음식에서 농부의 땀방울은 물론이며 얼굴조차 떠올리기 힘들어진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삶의 가치를 창출하는데 바빠 좋은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오랜 시간 동안, 농장이 있던 자리에는 빽빽한 공장이 들어섰고 자리 잃은 농민은 조립 라인의 수많은 노동자 중 하나가 되었다. 농산물은 상품이, 닭은 공장 속 물건이 되었으며 농업은 산업이 되었다. 농업과 우리 사이에는 어느새 거대한 경제 산업과 대기업이 우뚝 자리 잡았다. 농업이 삶에서 멀어진 물리적 거리만큼 그에 대한 이야기, 애착, 소비자의 권력 또한 사그라들었다.


*우석훈 박사의 농업 경제학. <왜 한국에선 논이 밭보다 쌀까?>

산업형 농업의 점진적 유입으로 한국의 농식품 체계는 산업화, 대기업화 되었고 그 사이 음식에 붙여진 브랜드의 라벨이 생산물의 진정한 특성을 대신하고 올바른 지식을 대체하는 세상이 되었다. 예전의 우리는 누가 음식을 생산하는지 그 음식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고른 음식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손바닥보다 작은 영양성분표를 백퍼센트 신뢰하는 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표출할 수 있는 소비자의 최대 권력이란 구매한 식품에서 운좋게 나온 이물질의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리고 그것이 퍼지기를, 기사가 써지기를, 그리고 보상을 기대하는 일종의 수동공격성 행동 뿐이다. 참으로 나약하고 나태한 권력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참 권력이 아니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을 표출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정치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먹을 권리를 위한 정당한 행동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먹을거리 비방법FDL이 존재하며 콜로라도 주에서는 그것이 형법으로 다스려지기 때문에 법을 위반하면 피고인은 범죄자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법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있을까? 지금 소유한 이만큼의 힘으로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


평소 농업에 관심있는 유학생으로서 이번 총선에 대해 내가 느끼는 기분은, *27만원짜리 모종삽을 누군가 손에 쥐어주면서 텃밭으로 가 심고 싶은 것을 원하는 만큼 맘껏 재배하라고 길을 내어준 곳에 가보니 막상 검정색 비닐봉지에 담긴 것은 한움큼의 가벼운 볍씨뿐인 것을 알게 된 후의 당혹감과 허무함이다. 이리 넓은 텃밭과 번지르르한 모종삽이 있지만 내게는 재배할 품종의 옵션을 고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것 가지고 무얼 하라고? 나는 해가 저물때까지 쪼그려 앉아 삽질이나 해야 한다는 말인가?


*1인당 재외국인 투표 비용.

<지속 가능한 농업> 유기농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동안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올바른 먹거리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지금은 어떤가. 그때보다는 살만하지만 안전한 음식에 대한 위협은 점점 더 우리 목을 조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식량 자급률과 GMO 식품에 관한 경고의 목소리가 언제까지 귀 언저리에서만 흩어지도록 놔둘 것인가. 음식과 식품에 관한 열정이 먹거리로, 그것이 농업의 지속적인 관심으로까지 이어져만 하며 그 과정을 정치적 형태로 표현하여야 한다. 소수를 위한 먼곳의 목소리가 아니라 하루에 세번 먹는 내 밥그릇을 향한 목소리를 내어야 할 때다. 한표는 나약하며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마른 불모지에 대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은 표를 행사한 시민만이 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래서, 나는 투표를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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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