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군(18)은 '자발적'으로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에 합류했고 현재 시리아나 이라크 어딘가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실종과 납치로 시작해 결국 본인의 선택으로 끝난 한국인 첫 IS 가담자 이야기의 결론이다.김군의'자발성'은 귀국 시 정부가 그를 처벌할 근거가 됐다. 



그러나 설령 김군이 자신의 두 발과 의지로 터키의 국경을 넘었다 한 듯, 그의 선택을 과연 자발적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18세 소년의 소용돌이 같은 마음. 삶의 변화를 약속할 누군가의 손이라도 붙잡고 싶었을 취약은 마음을 포획한 IS에 '납치'된 것은 아닐까? 김군은 터키로 떠나기 하루 전 "이 나라와 가족을 떠나 단지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10명 중 1명이 자살을 고민하는(2014년 통계청) 한국 10대 청소년인 그에게 죽음이 아닌 삶을 약속한 것은 IS였다.한국 사회는 김군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어린 소년은 IS에 가담했다. 



현재 중동에는 김군처럼 수많은 무슬림 청년이 자신의 선택이라 믿는 성전에 참여하며 목숨을 내던지고 있다. 저유가, 독재와 부패, 중동 지역의 건조화, 청년 일자리의 부재가 자신을 전쟁으로 떠밀었단 사실을 외면한 채 이들은 강요된 대의를 증명하려 더욱더 잔혹한 칼질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대 중동대전의 시작은 사실 이슬람의 것이 아니었다. 무자헤딘, 탈레반, 알카에다, 누스라전선, 이슬람국가로 연결되는 이슬람 전사의 탄생 역시 중동의 선택이 아니었다. 미국과 소련이란 제국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는 배태됐다. 무슬림 청년에게 코란이 아닌 총을 쥐여준 것도 이들이었다. 



한겨레 정의길 국제분쟁전문기자는 자신의 저서 <이슬람 전사의 탄생>에서 현대 중동대전의 시작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1978년 유혈쿠데타로 세워진 아프가니스탄민주공화국은 이슬람권 국가 중 최초로 설립된 친소련 사회주의 정부였다. 하지만 집권 세력의 통치력 부재와 이슬람을 배격하는 급진적 정책으로, 지역 이슬람 부족 세력의 반발에 휩싸여 정부가 전복되려 하자 소련이 개입한 것이다. 이에 미국 CIA는 중동 국가 사이의 사회주의 혁명을 저지하려 아프가니스탄 부족 이슬람 의용군인 무자헤딘에게 무기와 게릴라전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당시 미국 관료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인도를 견제하려 파키스탄의 핵 확보 필요성까지 언급한다. 







이런 미국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 사이 거점을 마련한 이슬람 전사들은 소련을 몰아내고 아프가니스탄 사회주의 정부를 무너뜨린 탈레반이 된다. 하지만 소련의 철군 후, 미국의 전략 부재로 아프가니스탄엔 부족을 통합할 친서방 정부가 설립되지 못했고 중동의 땅은 이슬람 전사들의 광활한 전쟁터가 된다. 이후 이란의 이슬람 혁명과 그 여파를 두려워한 이라크의 이란 침공. 전쟁 후 빚에 허덕이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이를 저지한 미국의 1차 중동전쟁인 걸프전이 발발한다. 미국은 무자헤딘을 지원해 소련의 침공을 저지하고, 쿠웨이트에서도 이라크를 몰아내는 등 전쟁승리에 취해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키워낸 이슬람 전사들의 최대 적으로 부상한다. '성스러운 중동'의 땅에 침입해 무슬림 형제들을 폭격하는 미국을 적대시한 이들 중엔 빈라덴도 있었다. 그는 2001년 뉴욕 월드트레이트센터 테러를 주도한다.



빈라덴의 뉴욕 테러 이후의 중동은 다시 전쟁에 휩싸인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사담 후세인 정부와 탈레반의 몰락지속된 국지전과 테러미국 주도하에 선출된 이라크 말라키 정부의 소수 수니파 탄압→아랍의 봄→시리아 내전→이라크 내전→IS의 탄생→말라키 정부의 몰락→현대 중동대전까지, 이슬람 무장 단체는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을 포함해 아프리카까지 세력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김군도 그 범위 속에 포획돼 시리아와 이라크의 참혹한 내전 속 어딘가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이처럼 중동대전은 이슬람의 것이 아니었다. 지하드를 외치며 칼리프 국가의 건설을 주장하는 IS는 소련과 미국,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힘겨루기에서 잉태됐다. 제국의 전쟁터가 돼버린 중동의 땅에 넘쳐난 석유는 오히려 이들 국가의 발목을 잡았다. 풍부한 자원은 독점됐고 전쟁의 이유와 수단으로 전락했다. 1979년 소련의 침공 후 지속된 중동전쟁 속에서 태어난 무슬림 청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전사가 되거나, 죽거나, 나라를 떠나 이민자로 차별을 받거나, 차별로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와 다시 전사가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지하드란 대의는 절망 속에 남은 삶의 이유일 뿐이다. 

 


그런 포화 속으로 김군은 들어갔다. 휴전 중인 나라에 태어난 김군에겐 분명 중동의 청년보다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하지만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페미니스트가 싫어 IS가 좋다"던 어린 소년에게 불확실한 미래는 답답한 삶의 숨통을 조여왔을 것이다. IS합류한 그의 자발적 선택은 착취된 것일 수도 강요받은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삶 속에서 벌어지는 선택 중 사실 자발적인 것이 얼마나 되겠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선택이란 가치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김군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달리 하자는 것이다. 김군을 향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이미 김군은 여론으로 처벌받았고 법적 처벌 대상인 피의자가 돼버렸다. 그리고 그 근거는 그의 선택이다. 언론 보도에서 실종과 납치가 가담이란 단어로 바뀐 것 역시 그의 자발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년의 선택은 오로지 자발적이었을까? "단지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어린 소년의 마음에 IS가 먼저 들어왔던 것은 아닐까?   


저작자 표시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편집자 주: 가장 최근의 U.N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 민간인 사망자가 9,000여 명을 넘겼다. 말 그대로 대학살. 시리아 아사드 정부는 지난 28일 아랍국가연맹정상회의에 평화적 중재안을 모두 거부할 것이라고 밝혀 이 대학살의 칼부림을 멈출 생각이 없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부군 만을 악이라고 판단하기에 내전의 잔혹함은 그 도를 넘어섰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0일 시리아 반군의 끔찍한 인권 남용 문제를 폭로하며, 반군의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끝없는 잔혹함과 복수는 한쪽의 승리보단 인간성의 회의만을 낳기 마련이다.


외신번역프로젝트가 돌아왔다.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원기사: http://nyti.ms/GCvmVH

*기사에 대한 의견을 댓글로 적어 주시면 정말 감사 하겠습니다.
*추천/리트윗 해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시리아 반군의 권한 남용 혐의
뉴욕타임스 미국판 3월 20일 자 기사.

By
Anne Barnard
번역 by 이기은(@Lazynomad)

*시리아 반군과 정부군간의 충돌이 격렬해지고 있는 가운데, 반군의 인권 침해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있다. 사진 출처:러시아 투데이 


베이루트, 레바논 — 무장한 시리아 반군이 지난 월요일 삼엄한 경비로 둘러싸인 다마스쿠스의 중심부와 부유한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런 전략적인 지역에서 활동가와 주민의 말에 따르면 약 일 년 전부터 시위자들이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에 대항한 이래로 가장 격렬한 싸움이었다고 하는 반군과 치안부대와의 충돌이 벌어졌다.

그러나 지난 화요일 인권 단체는 반군에 대한 더 복잡한 시각을 제시했다. 반군은 치안부대원과 정부 지지자, 친정부 성향의 민병대 샤비하(shabiha)의 구성원을 납치, 구금, 고문한 수없이 많은 인권 침해를 저지른 혐의를 두고 있다.


시리아의 수도에서 터져 나오는 폭력 사태는 주말에도 이어져 폭파범들이 시리아의 가장 큰 도시인 다마스쿠스와 알레포에 있는 정부 목표물을 폭파했으며, 무장봉기의 범위가 폭력 사태로부터 비교적 안전했던 지역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다마스쿠스에서의 충돌은 국제 연합과 아랍 연맹의 시리아 특별 대표 코피 아난이 보낸 감시조의 도착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 코피 아난 대표는 우선 시리아 분쟁에서 적대자들 사이의 대화를 시작하고 인도적인 지원을 위한 길을 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사드 대통령의 가장 큰 외국 지지자인 러시아의 서명도 있었다. 러시아는 아사드 대통령에게 잠시 싸움을 멈추고, 충돌의 희생자인 국제 연합 추정 8천 명 이상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난민에게 외부 지원을 허락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 충돌의 시기, 장소, 강도 등을 볼 때, 충돌을 해결하는 데 있어 외교가 작은 전진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시사된다. 반면, 시리아군은 북부 도시 이들립에서 작년 3월 시위가 시작된 남부의 다라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걸친 반군 거주지에 대하여 최근 확연하게 진군해온 것으로 보인다.

반란이 치열해질수록, 국제 인권 조사관들은 아사드 대통령의 무장한 반대 세력에 의한 학대보다 더 심하다며 대규모의 인권 침해를 저지르는 시리아 당국을 공격했다.

하지만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제 비정부기구인 인권 감시(Human Rights Watch)는 인권 침해로 반대파를 비난하며 지난 화요일에 가장 반대파를 옹호하는 집단인 시리아 국회에 보내는 공개 질의서에서 반대파 전사들의 몇몇 무장 공격이 정부 정책과 더불어 몇몇 지역 사회 연합이 부추긴 종교적이고 종파적인 감정이 동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무장 반대파는 시리아 정부의 잔인한 전략을 핑계로 인권 침해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인권감시의 중동 국장 사라 레아 위트슨은 “반대파 지도자들은 추종자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고문, 납치 및 처형을 하지 못하도록 확실히 못을 박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인권감시는 또한 시리아 정권에 의해 광범위하게 저질러지는 실종, 상습적인 고문, 임의 구금, 인근 지역에 대한 무분별한 포격 등을 포함한 폭력들을 기록했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공개 질의서에서는 반정부주의 단체가 “조직된 명령 체계나 시리아 국가 협의회의 망명중인 반대파 정치 지도자의 명령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 않는” 학대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고 반복하여 언급했다.

다마스쿠스에서 지난 월요일 일어난 전투에서 런던에 근거지를 둔 반대파 시리아 인권 관측소(Syrian Observatory for Human Rights)는 최소 18명 이상의 치안대원이 살해당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말했다. 시리아 국영 사나(SANA, Syrian Arab New Agency) 통신은 사상자 수를 더 낮게 잡았다. 치안대원 한명과 반대파 전사 두 명이 도시의 부유한 지역에 있는 “무장 테러리스트 단체의 은신처” 공습 도중 살해되었다고 전했다.

다른 수치를 독립적으로 확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시리아에서 외부의 보도가 정부에 의해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과 활동가들이 전화와 스카이프로 전해오는 바로는 다마스쿠스의 주요 보안 시설과 주요 인사들의 자택과 매우 가까운 안전한 지역에서 그런 충돌이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고 한다.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차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는 익명의 직장인 여성은 전화로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처음입니다. 우리는 새벽 5시까지 잠들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라고 전해왔다.


*시리아 반군이 아사드 정부군의 탱크를 파괴하고있다.


활동가와 주민에 의하면, 국제연합 사무소와 대사관저, 주택 등이 위치한 부촌 메쩨 지역에서 새벽 2~3시 경에 몇 차례의 폭발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으며, 자동화기가 발포되고 헬리콥터가 탐조등을 켜고 공중을 선회했다고 한다. 고소득층이 이용하는 슈퍼마켓과 7층 높이의 아사드 대통령의 그림이 장식된 탈라 타워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이 목격되었다.

전화 연결된 한 주민은 세 번의 폭발음을 들었고, 탈라 타워 근처에 치안부대가 위치한 건물과 주택에서 총격이 오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이름을 모아즈라고만 밝힌 주민은 세 시간 동안 전투가 지속하였으며 정부군이 주거지를 소개하고 현장을 습격하기 전에 전력을 끊었다고 말했다.

“끔찍한 밤을 보냈습니다.” 전화로 연결된 30대 중반의 거주민 여성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가 두려웠다고 말했다.

메쩨(Mezze, 때때로 Mezzeh로 표기) 지역은 다마스쿠스의 서쪽에 뻗어 나간 지역으로, 30여 년간 지배한 현 대통령의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의 이름을 딴 다마스쿠스-베이루트 고속도로를 통해 많은 관광객이 도시 경관을 구경하러 방문하는 도시이다.

이른 아침에 충돌이 일어난 메쩨 시의 웨스트 빌라 구역은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군사 공항과 독립형 주택이 이웃해있다. 이 지역에는 다양한 민족 배경과 정치적 신념을 지닌 부유한 시리아인이 서로 섞여 살고 있다. 주민의 대다수는 사업이나 이중 국적 등의 형태로 국제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국외에 기반을 두고 있다.

메쩨 86이라 불리는 지역은 좀 더 북쪽에 있으며 메쩨만큼 부유하지 않으나 아사드 대통령의 소수 알라위트 종파, 치안부대의 구성원이 거주하고 있다. 몇몇 주민의 말에 의하면, /반대파에 대해/ 촉발시켜온 친정부 성향의 범죄조직인 샤비하(shabiha)도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시리아의 반대파 단체의 연합인 시리아 지역 조정 위원회(Local Coordination Committees of Syria)의 활동가들은 많은 수의 경계차량과 샤비하 조직원들이 월요일 정오에 이곳에 배치되었다고 전했다.

아사드 대통령은 그의 반대파를 국외 지원을 받는 무장 테러리스트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코피 아난 대표와의 협상과 충돌의 시민 피해자에 대한 외부 지원을 허용하려는 그의 의지가 폭력을 일시 정지시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은 모스크바에서 국제적십자위원회 회장 자콥 켈렌버거와 만나 모든 시리아인에게 원조를 제공하는 것이 “현 단계에서 절대 우선순위”임에 동의했다고 지난 월요일 러시아 외무부가 발표했다. 러시아와 적십자의 성명은 시리아 정부와 반대 세력 모두에게 부상자를 대피시키고 의료 호송대를 파견하도록 “인도주의적인 일시 정전에 대한 즉각적인 동의”를 촉구했다.

러시아 정부는 월요일 회견에서 대테러 해군부대가 탑승한 러시아 군함이 시리아의 항구 타르투스(*주: 지중해 연안에 접한 시리아 항구로, 옛 소련 영토가 아닌 곳에 러시아가 운용하고 있는 유일한 국외 해군기지이다.)에 정박해있다는 미국 ABC 뉴스의 보도를 부정했다. 이 보도는 러시아가 군사 전문가를 파견하여 아사드 대통령을 적극 도우려 한다는 추측을 전한 바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ABC 뉴스의 보도에 매우 당혹스러웠으며, 러시아 탱크선 이만 호를 언급하며 이는 열흘 전에 타르투스에 입항했다고 인터팍스 통신이 대변인의 말을 인용하여 보도했다. 대변인은 보안요원들이 아덴만 지역에서 해적피해 방지를 위한 국제 순찰단에 참여하고 있는 러시아 선박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이만 호에 탑승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추천 부탁드립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댓글로 적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트위터 외신 프로젝트팀 드림. 
기사 편집자: 박태인 (@TellYouMore)

번역 및 감수 위원단: 김진영(@Go_JennyKim), 김민주(@Spring_llullaby), 이기은(@lazynomad), 이호준(@DanielHojoon), 조효석(@promene), 서규화(@nicefairy_), 진소연(@Dal_Fishing713), 이자연(@jayeon22), 여동혁(@Tonghyeo), 김가현 (@HelloKaHyun) 박현태(@underbaron) 



원 기사 작성 기자: 
Anne Barnard
기사 원본 및 사진 출처: 
http://nyti.ms/GCvmVH
출처: NYTIMES.COM
번역: 트위터 외신 번역프로젝트팀



저작자 표시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편집자 주: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의 학살은 멈추지 않는다. 시리아 반군 세력에 집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시리아 혁명에서 사망한 시민은 8,000여명. 국제 사회의 전방위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중국과 러시아 제외)매일 시리아에선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간다.

어떻게 이 학살을 멈출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 중동 특파원 출신이자 대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토마스 프리드먼은 두 가지의 해결책을 말한다.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를 넘어선 국제 사회의 협력과 시라아 내 반군/야당 조직의 단합.

관련 칼럼을 이기은님이 전문 번역했다. 전문 기자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이 '구체적인 칼럼'을 감상해 보시길.

외신번역프로젝트가 돌아왔다.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원기사: http://nyti.ms/ADLjRI

*기사에 대한 의견을 댓글로 적어 주시면 정말 감사 하겠습니다.
*추천/리트윗 해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뉴욕타임스 미국판 2월 14일 자 오피니언 면 기사.

By Thomas L. Friedman
번역 by 이기은 (@Lazynomad)

       

시리아 군대가 바사르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시리아의 도시 홈스를 연달아 공격한 일은 마치 바사르의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에 저지른 일의 리메이크판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 내가 바로 30년 전의 그 현장을 보았다.

내가 뉴욕타임스 특파원으로 시리아의 수도 베이루트에 도착한 때는 1982년 4월이었다. 가장 먼저 들은 소식은 두 달 전 시리아 하마 시에서 벌어진 무슬림 형제단의 소요에 대한 섬뜩한 이야기였다. 인터넷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던 당시의 소문에는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이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하마 시 인근 지역을 전부 포격하고 심지어 사람들이 있는 건물도 폭파했다고 한다. 그해 5월, 하마 시의 통제가 풀렸고, 나는 시리아 비자를 받았다. 시리아 정부는 사람들이 폐허가 된 마을을 보고 공포심을 갖게 하려고 하마 시를 개방했다. 나는 곧장 택시를 타고 하마로 달려갔다.

경악할 일이었다. 거리의 건물이 정말로 파괴되었고 의도적으로 모두 깔아뭉개서 축구장 크기의 공터를 만들어 놓았다. 땅에는 찢어진 옷조각, 너덜너덜한 책, 신발 한 짝이 굴러다니다 발에 채였다. 국제앰네스티는 그곳에서 약 2만 명이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나는 지금껏 이런 규모의 잔인무도함을 본 적이 없었다. 훗날 내가 쓴 책에서 이를 ‘하마의 원칙’이라고 이름 하였다.

하마의 원칙은 규칙이 아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적의 집을 폭격했다면 반드시 그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이다. 적의 자식들에게, 그리고 그 자식의 자식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다시는 당신에게 도전할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30년 전 그때 그 시리아 아이들의 자식들은 이를 잊었다. 그들은 그때의 공포를 잊었다. 이번에는 무슬림 형제단이 한 도시에서만 소요를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이제 시리아 전역의 젊은이들이 항의하여 나섰다. ‘기다림의 세대: 중동 젊은이들의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의 공저자인 나바테즈 딜론과 타릭 유세프는 1990년 6천 7백 만 명에서 현재 1억 명 이상으로 늘어난 중동의 15세에서 29세 사이의 젊은이들에게 주목했다. 그들의 정부가 약속했던 일자리, 결혼, 주거 문제 해결, 그리고 그들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표권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것이 시리아 전역에서 폭발적으로 반란이 일어나는 이유이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무차별 폭격 영상. 출처:AP

하지만 시리아는 노르웨이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요구가 그곳에서 벌어지는 유일한 사건은 아니다. 시리아는 종족과 종파가 매우 복잡한 나라이다. 아사드 가문이 이끄는 시아파의 변종인 알라위파는 인구의 12퍼센트를 차지하는 소수이지만 행정과 국방, 정보기관을 장악하고 있다. 수니파 무슬렘이 인구의 75퍼센트, 기독교도가 10퍼센트, 그리고 그 외 나머지를 드루즈파와 쿠르드족이 차지하고 있다. 시리아의 반란은 시민으로 대우받고 싶은 시리아 젊은이들에 의해 일어난 비종파적이고 비폭력적인 시위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사드 대통령은 이에 하마의 원칙으로 대응했고, 이것이 폭력시위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는 모든 면에서 분파주의적인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어느 지점에서 반군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멈추고, 시리아의 다수 수니파가 소수 알라위파를 내치려는 분파주의의 욕망이 시작되게 될지 내다보기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알레포와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아사드 정권의 몇몇 수니파 수혜자들과 대부분의 알라위파가 아사드 대통령을 중심으로 규합하고 있다. 이들 친정권적 수니파와 알라위파는 이집트의 축구장 난동을 보며 ‘아사드인가, 혼란인가? 우리는 아사드를 택하겠다’고 말한다. 더할 나위 없이 우리는 아사드의 1인 체재에서 다수 합의의 정치로 평화롭게 이양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시리아 전 지역을 초토화할 시민전쟁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명심하라. 이집트가, 리비아가, 그리고 튀니지가 내부로 붕괴하였다. 그러나 시리아는 폭발할 것이다.

나는 무엇이 아사드 대통령이 정권을 국민에게 이양하도록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 필요한지는 알고 있다. 아사드의 정권을 지탱해주는 두 가지 중요한 버팀목이 없어져야 한다. 하나는 중국, 이란 러시아의 지원이다. 유엔, 유럽연합, 아랍 국가들이 이들 러시아, 이란, 중국이 무장하지 않은 시민을 대량학살하는 아사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중국과 이란, 러시아는 미국의 비난은 신경 쓰지 않지만, 그 밖에 다른 나라의 비난에는 신경을 쓸 것이다.

한편 또 다른 버팀목은 오직 시리아인만이 제거할 수 있다. 여전히 까다롭게 구는 시리아 야당은 서로 단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한, 알라위파와 기독교인, 수니파 상인들에게 다가가 새로운 정권에서 그들의 이익을 보장할 것을 보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리아 야당이 모든 사람이 동등한 시민으로 대접받는 다원주의의 시리아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을 국민과 세계에 보여줄수록 아사드는 약해질 것이고, 아사드 정권 이후의 시리아가 좀 더 안정되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 야당이 계속해서 분열을 일삼는다면 아사드는 더욱 강해질 것이며, 점점 더 많은 시리아인이 혼란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사드에 집착하게 되고, 아사드가 하마의 원칙을 휘두를 수 있게 할 것이다.


*기사 추천 부탁드립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댓글로 적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번역 감수:  박태인 (@TellYouMore)



트위터 외신 프로젝트팀 드림. 
기사 편집자 및 주 번역자: 박태인 (@TellYouMore)

번역자문 및 감수 위원단: 김민주(@Spring_llullaby) 이기은(@lazynomad), 이호준(@DanielHojoon), 조효석(@promene), 서규화(@nicefairy_), 진소연(@Dal_Fishing713), 이자연(@jayeon22), 여동혁(@Tonghyeo), 김가현 (@HelloKaHyun) 박현태(@underbaron) 



원 기사 작성 기자: 
Thomas L. Friedman
기사 원본 및 사진 출처: http://nyti.ms/ADLjRI
출처: NYTIMES.COM
번역: 트위터 외신 번역프로젝트팀

저작자 표시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편집자 주: 국제 인권 단체는 현재까지 시리아에서 약 1,100명의 시민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민주주의를 주장한 시민에게 시리아 정부는, 총과 칼, 탱크 그리고 고문으로 대답했다. 정부가 자신들의 시민을 학살하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보다 인구가 4배나 더 많은 이집트에선 지난 혁명, 시위를 진압한 경찰을 포함 약 200여 명의 시민이 사망했다. 이를 고려한다면 어마어마한 숫자의 시리아 시민이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살해 당한 시민 중, 13살 소년 함자 알 카디브가 있다. 지난 5월 초 시위에 참여 했다는 이유로 정부에 붙잡혀 갔던 한 어린 소년은 한 달 후, 시신으로 가족에게 돌아왔다. 온몸에는 고문의 흔적이 역력했으며, 맡고, 찢기고, 몸일부는 절단되었으며 심지어 총탄의 흔적 또한 있었다. 이 어린아이는 어떤 잘못을 했기에 이런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알자지라가 함자 알카디브에 죽음에 관해 심층 기사를 썼다. 기사가 감정적인 경향이 있긴 하나, 13살 소년의 억울한 죽음과 시리아 정부의 국제 범죄에 이 정도 감정은 이해하실 것이라 믿고 트위터 외신번역프로젝트팀이 번역했다.


*기사에 대한 의견을 댓글로 적어 주시면 정말 감사 하겠습니다.

*추천/리트윗 해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고문 당하고 살해된 13살 소년, 함자 알 카티브
By ALJAZZERA

        시리아 정부에게 고문 당하고 살해된 13살 소년, 함자 알카티브를 그린 그림이다.
        [출처: 페이스북]




감금되었다가 온몸이 훼손되어 시체로 돌아온 13살 소년의 사건이, 시리아의 도시 다하(Daraa)에서 더 격한 시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함자 알 카티브는 그가 살던 시리아 남부 지역에 비가 내리는 것을 좋아했다. 논밭 수로에 물이 차면 거기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기도 하고 수영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수년 동안의 가뭄으로 13살 소년이 가장 좋아하던 수영장은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 그는 집에서 비둘기를 키웠고 콘크리트 블록으로 지은 집 지붕에 올라가서 목을 내밀고 곡식과 토마토가 자라는 거친 대지의 넓은 지평선 위에서 새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즐겨 보았다.

비록 넉넉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함자는 항상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그의 사촌이 알자지라를 통해 전했다.

“함자는 종종 부모님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돈을 달라고 말했었어요. 한번은 그는 가난한 사람에게 100 시리안 파운드 (2달러)를 주자고 했었는데 그의 가족은 너무 많다고 했지요. 하지만 함자는 ‘난 잘 곳도 있고 먹을 것도 있지만 저 사람은 아무것도 없다.’라며 그의 부모님을 설득해 결국 그 가난한 사람에게 100파운드를 주었어요.” 함자 사촌의 말이다.

하지만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의 치안 부대는 함자에게 그러한 연민을 보여주지 않았다. 함자는 그의 비명이 마침내 멈출 때까지 시리아 치안부대에 얻어맞고 태워지고 고문당하고, 순결을 빼앗긴 하나의 고깃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전락하였다. 

4월 29일, 다하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사이다(Saida)에서 시위 도중 체포된 함자는 5월 24일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이 되어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함자는 시리아 치안부대에 의해 한 달 가까이 감금되었다. 이 아이의 시신을 가족들에게 돌려주었을 때 그의 시신에는 잔혹한 고문의 흔적이 있었다. 찢기고 멍들고 지진 흔적들이 그의 발, 팔꿈치, 얼굴, 무릎에 있었고 전기 고문과 채찍질 당한 흔적까지 있었다. 이는 모두 인권 감시 단체에서 지난 3달 동안 시리아 정부가 시위대를 잔혹하게 진압할 때 사용하고 있다고 보고한 고문

방식이었다.


*사진: 함자의 시신을 촬영한 비디오 영상의 일부이다. 눈이 검게 부풀어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함자의 눈은 검게 부풀어 올랐고 양쪽 팔에는 총탄을 맞은 흔적이 있었다. 옆구리에는 관통상이 있었고, 배에서 총알이 발견되었다.함자의 가슴에는 시커멓게 탄 자국이 있었고 목이 부러져 있었으며 성기는 잘려 있었다.


“도대체 인권 위원회는 어디 있습니까? 국제 형사 재판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함자의 시신을 조사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유튜브에 올린 남자는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함자의 가족들은 그가 어디 있는지, 언제 풀려나게 될지, 풀려날 수는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한 달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싸늘히 식은 채 돌아온 함자를 맞이했습니다. 함자의 몸에는 고문의 흔적들이 분명히 남겨져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올린 한 남자의 말이다.

비디오의 원본은 삭제된 상태지만, 함자의 성기가 거세된 것을 흐릿하게 촬영한 영상은 아직 남아 있다. [주의: 이 비디오는 매우 잔인합니다.] 비디오 보러 가기 >http://bit.ly/mMHdc7

“함자의 어머니가 그의 시신을 보러 왔을 때, 그의 얼굴만을 볼 수 있었어요.”라고 당시 함께 있었던 함자의 사촌은 말했다.그는 또, “우리는 함자의 아버지가 함자의 시신을 보지 못하게 말렸지만, 그는 덮여 있던 담요를 들췄고, 함자의 시신을 보고 기절했어요. 사람들은 달려가 그를 부축했고 몇몇 사람들은 동영상을 찍었습니다. 매우 혼란스러웠어요.”라고 말했다.

함자는 그냥 사라져 버렸다

4 월 29일은 ‘데라(Deraa)의 포위가 풀린 금요일’로 불렸다. 시리아 국경 도시 데라에서 시리아 정부가 아이들을 고문한 사실에 대항해 시민 봉기가 일어났었다. 그리고 이날은 마헤르 알 아사드의 군대가 시민 수백 명을 죽인 날이기도 하다.

함자의 사촌은, 함자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시위에 참여하는 것 같자 그 또한 참여했어요.”라며 그는 자기의 고향인 사이다의 북서쪽 지역 지자흐(Jeezah)에서 12킬로미터를 그의 친구 및 가족들과 걸어갔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사이다 지역 외곽에 다다르자 시리아 정부의 폭격이 시작됐다고 함자의 사촌은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몇몇은 잡혀갔어요. 정말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우리는 그 당시 함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어요. 그는 그냥 사라져 버렸어요.” 함자 사촌의 말이다.

이 지역에서 두 번째로 인터뷰를 한, 한 활동가는 함자가 4월 29일 체포된 59명 중 한 명 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리아 공군 정보부에 의해 감금된 사람들이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공군 정보부 반 테러리즘 부서 사람들에게 체포당했습니다.”

“사람들이 감옥에 들어갈 땐 모두 살아 있었어요. 그러나 이번 주, 13명이 시신이 되어 돌아왔고 모두 고문을 당했던 흔적이 있었습니다. 시리아에서 공군 정보부는 고문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그들은 야만인이에요. 우리는 곧 수십 구의 시신을 또 보게 될 것 같습니다.”

훼손된 함자의 시신을 촬영한 동영상에 대응해, 시리아의 민영 방송이자 친정권 방송인 알 두니아는 다마스쿠스 티쉬린 군 병원의 한 법의학자와의 인터뷰를 방송했다.

티쉬린에서 함자를 부검했다고 주장하는 아카람 알 사르 의사는 함자의 몸에서 어떠한 고문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며 함자의 시신에 있는 여러 흔적은 자연적인 부패 현상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르 의사의 증언은 시리아 정부가 데라 지역에서 군부 탄압에 의해 시민을 학살하고, 체포한 사람들을 다마스쿠스에 있는 보안 시설로 보낸 사실을 공식적으로 처음 인정하는 것이다.

이달 초, 다마스쿠스 인권 연구 센터(DCHRS)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데라 지역에서 시리아 군부대의 진압으로 살해당한 244명의 민간인 시신은 시리아 정부에 의해 티쉬린 군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는 죽어가고 있거나 이미 죽은 시위대들이 적절한 치료 및 장례 절차를 밟지 못하도록 한 시리아 정부의 전략이라는 사실이 알자지라에 의해 처음 보도되었다.

함자의 시신이 촬영된 후 세계는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목격할 수 있었다. 함자는 그 지역 모스크에서 그의 영혼을 위한 마지막 기도 후 지자흐에 묻혔다. 장례식 이후 아이들은 13살 소년 순교자가 시리아 보안군에게 잔혹한 고문을 당해 죽었다는 팻말과 함자의 사진을 들고 행진했다.

모든 외국 언론은 시리아 입국이 금지되었지만, 경력 있는 지역 기자들과 인권 연구가 중 함자의 영상의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인간성에 대한 범죄

함자의 아버지 알리 알 카티브는 시리아 군부와 치안 부대를 기소하고 싶었지만, 시리아 비밀경찰이 알리와 그의 부인을 방문해 그들을 위협했다고 함자의 사촌이 말했다.

“그들은, 이미 당신 때문에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났다며, 만약 당신이 언론에 이야기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어요.” 함자 어머니의 말이다. 그녀는 지역 운동가와 이야기할 때 겁에 질린 것으로 보였고 그의 아들이 어떻게 잡혀 죽임을 당했는지에 관한 자세한 말을 삼갔다.

지난 토요일 오후에 함자의 아버지가 잠시 감금당했었다고 그의 부인이 말했다. 시리아 비밀경찰이 함자에 아버지에게 함자를 죽인 것은 수니파 이슬람교도 과격단체인 살라피스트라고 시리아 언론에 말하라고 한 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시리아 정부는 시민의 시위가 살라피스트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함자의 아버지는 보안부의 요청으로 약 30분 정도 보안부를 방문하여 그들이 함자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들었고, 방문 내내 함자의 아버지를 잘 대우했다.”라고 함자의 사촌이 이야기했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오래전부터 세계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한 시리아 감옥의 고문은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대규모의 처형과 고문은 인간성을 짓밟는 범죄의 수준에 올랐습니다. 시리아에서 이는 매우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시리아에서의 인권 침해 사례를 계속해서 기록해온 글로벌 온라인 시민운동 커뮤니티인 아바즈(Avaaz)의 책임자 리켄 패탤(Ricken Patel)의 말이다.

“이는 대규모 테러리즘이며 살상입니다. 시리아 정권은 사람들은 잔혹하게 고문한 후 그들이 살던 지역으로 돌려보냅니다. 정권은 자신들의 범죄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대놓고 광고하고 있어요.” 패탤의 말이다.

만약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사람들에게 광고하는 것이 정말로 현 정권의 전략이라면 이는 현재 효과를 보고 있다. 함자의 처참한 모습을 찍은 비디오가 유튜브에 올라간 지 1시간 만에, 다라 시에 수백 명의 광분한 거주민들이 시위를 시작했고 사람들은 군부대의 탄압에 저항하며 함자의 죽음과 고문에 격노했다.

“사람들은 함자에게 일어난 일에 정말 분노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는 비밀경찰과 정부 당국이 범죄자이며 절대 신뢰할 수 없는 이들이며 어떠한 개혁도 불가능한 이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데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운동가의 말이다.

함자의 시신이 돌아온 지 일주일 후, 페이스북에서는 함자의 명복을 비는 “우리는 모두 함자 알 카티브이다” 페이지를 팔로우 하는 사람이 6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이집트 경찰에게 살해당했던 젊은 이집트인 칼리드 사이드를 온라인에서 추모하던 모습과 흡사하다. 칼리드 사이드의 죽음은 카이로의 혁명을 부채질했다.

시리아의 북동쪽의 반정부 단체 쿠르디쉬 미래 운동(Kurdish Future Movement)의 대변인인 레잔 무스타파는 자신도 그 끔찍한 비디오를 보았다고 말했다.

“이 영상은 모든 시리아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이런 잔혹 행위는 용납될 수 없고, 용서될 수 없습니다. 이 잔혹한 고문은 시위대를 겁먹게 하고 그들의 요구를 멈추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쿠르디쉬 미래 운동 대변인의 말이다.

그러나 카티브에 따르면 시리아 시위대는 이런 야만성에 자극을 받아 시위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설 것입니다. 우리는 시리아 비밀경찰이 부정한다고 해도 그들이 이 어린아이를 고문하고 죽인 것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때때로 어떠한 설명도 필요치 않은 경우가 있다. 65살 함자의 아버지는 2명의 아내로부터 얻은 20명의 아들이 있지만 알리는 그의 외동아들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슬퍼하고 처참해하고 있다.

“어떤 가족이든 자신의 아이가 처참하게 죽어 있는 비디오를 본다면 어떻게 느낄까요? 난 함자의 아버지가 일생 그렇게 우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린 지금 그의 눈에 눈물만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어요.”라고 함자의 사촌은 말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댓글로 적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번역 및 번역 감수: 박태인 (@TellYouMore), 이기은 (@Lazynomad)


트위터 외신 프로젝트팀 드림. 
기사 편집자 및 주 번역자: 박태인 (@TellYouMore)
번역 자문 및 감수 위원단:
황혜빈 (@coketazi) 김민주(@Spring_llullaby) 이기은님 (@lazynomad), 김진영님 (@Go_Jennykim), 이호준님 (@DanielHojoon), 조효석(@promene), 서규화님 (@nicefairy),  진소연(@radiokid713), 이자연@jayeon22)

원 기사 작성 기자: Hugh Macleod and Annasofie Flamand
기사 원본 및 사진 출처 http://bit.ly/iPGapc
출처:
AlJAZEERA
번역: 트위터 외신 번역프로젝트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6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