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동안 이루어진 이집트 시민 혁명은 30여년간 권좌를 지키고 있었던 독재자 호사니 무바락을 몰아냈습니다. 독재자 무바락이 물러나던날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와 타하르 광장을 뒤덮은 수십만명의 시민들은 눈물을 훔치고 연인을 껴안듯 포옹하며 30년 생에 최고의 축제를 즐겼습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여러 세계 정상들 또한 '이집트 인이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라며 그 축제에 경탄과 축하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18일의 혁명에는 그만큼의 댓가가 따랐습니다. 국제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 Watch)에 따르면 약 297명이 시위 도중 사망하였다고 밝혔으며 이집트의 인권운동가는 정부의 방해로 정확한 통계가 잡히지 않고 있지만 그 사망자 수는 900명에 달할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필자는 미국 시간으로 2월 14일 (월요일), 필자와 같은 학교에 재학중인 이집트계 미국인 메리엄 알세이드(Mariam Elsayed)를 만나 이집트 혁명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알세이드는 이번 이집트 혁명에서 사촌 오빠, 아미드 이합 (Ahmed Ehab)을 잃었습니다. 이합은 시위 첫날 경찰로부터 머리에 총알 5발을 맞고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시위 3주전 결혼을 하였고 같이 1월 25일 신혼 여행을 막 다녀온 부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필자와 인터뷰를 한, 이집트계 미국인 메리엄 알세이드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내 이름은 메리엄 알세이드 (Mariam Elsayed) 이고 현재 미주리 콜롬비아 주립대학 국제 학부 4학년이다. 알라바마에서 태어났고, 국적은 미국과 이집트 국적 2가지를 모두 갖고 있다. 부모님은 학부를 이집트에서 석사 박사과정은 알라바마에 있는 미국 대학에서 마치셨다. 난 영어와 아랍어 모두다 할수 있다. 미국인과 이집트 인이라는 두가지 정체성 모두를 가지고 산다.


일년에 이집트에는 몇번이나 가는가?

일년에 2번 정도 간다. 여름에는 2~3개월, 겨울에는 3주 정도. 가족들을 보러 또 친구들을 보러 간다. 여름 방학동안 카이로에 있는 미국 대학 (American University)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었다.


카이로는 어떤 도시인가?

카이로에는 약 2천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람도 엄청 많고, 교통 체증도 심하다. 매우 큰 도시이다.


최근 호사니 무바락이 시민 혁명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론 기분이 매우 좋다. 사실 난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살아서 독재자가 나라를 어떻게 통치하는지를 많이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이집트에 갈때마다 가난한 사람들, 실업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신문과 방송사 또한 정부에게 조정당했고, 도시 곳곳에 비밀 경찰이 있었다. 과거 친척 중 1명은 시위 도중 비밀 경찰들에게 잡혀 간적도 있다.

무바락이 집권한 30년동안 한 짓 들을 생각한다면 현재 이집트인들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집트에는 민주주의가 없었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에 투표하는 사람은 매우 적었지만, 항상 무바락이 엄청난 차이로 승리했었다. 이제 드디어 이집트 시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칠수 있다.


           알세이드는 이집트 인과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모두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무바락의 사퇴가 상당히 갑작스러웠다. 그 소식은 어떻게 접했는가? 또 접한후에는?

인터넷을 통해 처음으로 소식을 들었다. 이집트 혁명동안 CNN, BBC 월드뉴스, 알자지라, 휴핑턴 포스트등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무바락이 물러난 소식을 듣자마자 부모님께 전화하였고, 어머니는 뛸듯이 기뻐하셨다. 사실 어머니가 매우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펴인직접 트위터 계정을 만드시고 이집트 혁명의 관련된 지도자들을 모두 팔로잉 하시고 트윗을 주목해서 보셨다

 

무바락이 물러날것이라 예상했는가?

분명 9월 전에는 물러날것이라 생각했다. 물러난 것 자체는 놀라지 않았지만 그가 사퇴를 발표한 시기는 놀랐었다.

 

이집트에 있는 가족들도 시위에 참여했는가?

결혼을 하고 3주만에 돌아온 사촌 오빠 (Ahmed Ehab) 시위 첫 날 (1 25일) 참여 하였다가 경찰로부터 머리에 총 5발을 받고 살해 당했다. 정부는 오빠의 죽음 또한 조작하려 하였다. 정부는 병원 의사에게 사고사로 처리 하라고 종용하였으나 우리 모든 가족들이 노력해서 진실을 밝혀냈다.사실 사촌 오빠는 이틀 정도 실종상태 였다. 이집트에 있는 가족들은 카이로의 모든 병원들을 찾에 해매었고, 결국 사촌 오빠의 시신을 찾아내었다.

가족이 오빠를 찾아냈을때 오빠는 코마상태였다. 사실 이미 죽은 몸이 었다. 이슬람의 문화에선 사람을 죽자 마자 최대한 빨리 묻어줘야 하지만 다치고 죽은 사람들이 병원에 너무 많아서 병원에 처리도 매우 늦었다.


        알세이드의 사촌 오빠 아미드 이합은 결혼을 한지 3주만에 시위중 세상을 떠났다.


사촌 오빠의 소식을 들었을때 기분이 어떠했는가?

어릴때 매우 친했다. 나이가 들고 오빠가 결혼을 해 자주 보지 못하긴 했지만 너무 슬펐고 힘들었다.


사촌 오빠의 죽음이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었는가?

오빠 죽음은 우리 가족에게 정의를 바라게 하였다. 오빠의 억울한 죽음을 이야기 하고 알리는 것이 우리 가족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그가 왜 죽었는지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리고 싶다.


사촌 오빠의 부인은 어떻게 지내시는가?

그저..조용히 혼자 지내고 계시는듯 하다. 매우 우울한 상태 이시다.

 

시위에서 가족이 죽는 것은 예상했던 일인가?

전혀 예상 못했다. 무바락이 나쁜 독재자인것은 알고 있지만 가족중 1명이 죽으니 더욱더 실감이 나더라.


무바락은 이집트인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나?

무바락은 한순간도 나라에 영웅으로 존경받지 못했다. 그는 나라에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 무바락은 아무도 존경하지 않았다. 시위 도중 무바락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있었는데 이는 무바락이 돈을 주고 고용한 이들이다. 돈을 주고 산 것이다.


왜 무바락을 몰아내는데 30년이나 걸렸는가? 그렇게 나쁜 독재자인데 말이다.

무바락은 정말 가혹했다. 그리고 사실 시민들의 저항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다만 한번도 미디어가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다. 수십년의 시위동안 사람들은 감옥에 갇히고 죽음을 당했다. 최근 튀지니 혁명으로 인해 이집트인 들또한 우리도 해낼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긴듯 했다.

 

무바락이 집권한동안 이집트가 어떠했는지 이야기해 줄수 있겠는가?

경제는 매우 안좋았다. 무바락이 국가의 써야할 돈을 가로채서, 점점더 이집트의 경제가 어려워 졌다고 생각한다.이집트의 나라빚은 어마어마 하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이집트에는 얼마만큼의 자유가 있었나?

매우 제한적인 자유가 있었을 뿐이다. 두려움 때문에 자유는 보장 받지 못했다. 경제가 어려워 아주 좋은 교육을 받은 대학생들에게도 기회는 찾아 오지 않았다. 이것도 이번 시민 혁명에 젊은 사람들이 참가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집트에는 기독교인이 약 10% 정도 되고 나머지가 모두 무슬림으로 알고 있다. 이집트에 종교적 갈등은 없는가? 1 1일 교회를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로 31명이 죽었다. 이집트내에 종교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

우선 1 1일 자산 폭탄 테러는 계속 조사중인데, 이 테러 뒤에 무바락 정부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 1, 정부에 저항하는 시민 혁명의 바람을 누르고 이를 무슬림과 크리스찬의 분쟁으로 덮기 위한 정부의 협잡 이었다. 이집트내에서 무슬림과 크리스찬은 매우 사이가 좋고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무바락은 무슬림 근본주의 세력을 두려워 하지 않았는가?

아주 소수지만 무슬림 근본주의 세력이 이집트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매우 소수이고 현실적으로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이는 무바락이 서방을 속이고 두려움울 부풀려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위한 전략 이었다. 다음 대선에서 미국 미디어가 두려워 하는 무슬림 형제단이 선거에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난 무슬림이지만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관계를 걱정하지 않는다. 이슬람 또한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용을 가르친다.

무바락은 무슬림을 두려워 했는데 이건 서방을속이기 위해 겁을 주기 위해..무슬림 형제단이 선거를 이길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크리스찬과 무슬림간의 관계는 걱정하지 않는다. 무슬림도 관용을 가르친다.

 

당신은 미국인이고 또 이집트인 이다. 이번이집트의 혁명은 이집트의 시민들의 이익과 달리 미국에 외교이익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번 이집트 혁명은 이집트 인들에게 매우 중요한다. 사실 미국의 뉴스는 미국에 관점에서 이집트의 혁명이 왜 미국에게 문제가 되는지, 무슬림 형제단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집트에 관계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현재 이집트 인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절대 아니고 논의되어야할 우선순위도 아니다. 즉 많은 이집트 인들은 미국이 우려하고 있는 여러 사실들에 대해 별 관심도 없다는 뜻이다.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이 끊어지거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이집트를 지배할것이란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집트 인들은 이런것들을 걱정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아직까지도 많은 서방세력들이 이슬람에게 가지는 근본적인 불신감 과 오해가 작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집트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가?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 무바락보단 나을 것이다. 이집트 시민은 민주주의를 필요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사촌오빠의 죽음은 혁명을 위해 어쩔수 없는 또는 가치가 있는 죽음이었을까?

글쎼..이건 너무 힘든 질문이다. 어떤 죽음에도 가치가 있다고 말할수 있을까? 난 그럴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것도 죽음을 정당화 하지 못한다. 난 그가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사람의 소중한 목숨 어떻게 혁명과 비교 될수 있을까..답하기 힘든 문제이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1 : 댓글 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ddr | edit/del | reply 박진경 2011.02.16 19:07

    카이로 현장에서 시민들의 투쟁과정과 승리를 지켜보고 있는 KBS카메라기잡니다. 인터뷰 잘 읽어봤습니다. 돌 던지며 자유를 외치던 젊은이들 중에 아미드 이합씨가 있었군요. 명복을 빕니다. 개인적으로 알세이드씨가 언급한 '문제는 이슬람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라는 지적에 깊이 공감합니다. 여기서 만난 분들로부터 느낀 점은 이슬람 원리주의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 addr | edit/del @TellYouMore 박태인 2011.02.17 00:26 신고

      박진경 기자님 항상 건승하시길!
      KBS에 정말 훌륭하고 멋진 기자분들이 많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에 최경영 기자님이 공부하고 계신데 매일 매일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항상 힘써주시길!

  2. addr | edit/del | reply 아바네라 2011.02.16 21:42 신고

    민주화를 위해 무고한 희생자들이 나와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한번쯤은 꼭 가보고싶은 나라가 이집트인데 이집트가 빨리 안정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