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야할길 이라는 저서를 지은 M.스캇 펙에 따르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자기애와 자만감은 분명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기애는 우리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나 자만감은 항상 자신에 대해 좋은 감정만을 가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애란 총체적인 자신의 대한 이해이며 책임이다.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것을 이해하고 책임지고 용서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자기애이다. 그러나 자만감은 만약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 자신을 자존심을 다치게 하면 그것을 고치려하기 보다는 부정하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충분히 자신을 알고 받아들지이 못한 사람은 자기애보다 자만감을 가지기 쉽고, 이로인해 자신을 사랑하는데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남들이 만들어낸 자만감과 나르시스즘을 지키려고 많은 에너지를 잘못되게 쏟고 있는 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수 없다.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어찌 자신을 버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무릎을 꿇을수 있겠는가? 이점에서 나는 아직까지도 자기애보다는 자만감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부족한 내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겠고 난 내가 아직도 참 잘난놈인줄 안다. 실제론 그러지 못해도 그러니 난 번번히 사랑에 실패한다.
 
내 사랑의 패턴은 대략 이렇다. 누군가 마음에 들면 시작은 참 적극적이다. 모르는 여성의 전화번호를 따본적도 있고, 전혀 모르면서도 과감히 데이트 신청을 하거나 케이크를 준적도 있다. 그래서 한 두번 데이트를 한다. 이렇게 서로가 조금씩 호감을 갖는 상태에서 (아직 좋아하지는 않은 상태)에서 난 갑자기 여성에게 연락을 끊는다. 그 여자의 단점만을 보고, 또 "아 이 사람 그렇게 이쁘지도 않네" 라며 관계를 중단한다. 난 이런 경우가 정말 많았다. 딱 한번 정말 좋아했던 여성이 있어 내 자존심을 다 버리고 다가선적이 있지만 그 한번을 빼고는 대부분이 이랬다.
 
그렇다면 난 왜이랬을까? 그것은 간단히 말해 어릴떄부터 이모와, 숙모들에게 들은 과도한 칭찬으로 인해 생긴 나의 자만감을 보호하려는 의지와, 용기라는 것에 대한 잘못된 생각 그리고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희생도 담보하지 않으려는 유아적인 발상이 만들어낸 삼중주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사랑에 대한 선택은 그 어떤 면에서도 나에게 이롭지 않았다. 즉 자기애와는 거리가 멀었던 행동이라는 것이다. 조금더 자세히 내 자신을 살펴보자.
 
                                     발렌타인 데이, 사랑이 찡그리고 있다.

첫째로 난 남의 거절이 싫었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남이 나를 거절할듯 하면 난 그들을 먼저 거절해 버렸다. 옛 여자친구와 헤어진 원인중 하나도 여자친구의 말 한마디가 많은 영향을 미친듯 하다. "난 우리가 헤어질것 같으면 먼저 너를 찰꺼야" 라고 했던 한 여자친구, 이 말을 듣고 꽤 오랜시간 우린 사귀다 헤어졌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먼저 여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했다. 난 미치도록 거절이 싫다. 난 남이 거절할수 없을만큼 대단한 사람이라고도, 훌륭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했던것 이다.(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랬기에 그런 자만감을 보호하기 위해서 난 어쩔수 없이 항상 먼저 여자에게서 연락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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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재로 난 용기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난 남자라면 무조건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용기없는 남자는 또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용기라는 것은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설령 내가 용기있지 않은 선택을 하게될 상황에 직면하면 난 여자에게서 연락을 끊었다. 용기 없는 내 자신이 내 자만감을 다치게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스캇펙 박사는 무엇이 진짜 용기있는 행동인지에 대해 그의 저서 '끝나지 않은 여행'에서 이렇게 묘사하였다. "용기란 잘하는 척 하는 것이고, 부끄럽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없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또는 고통을 무릎쓰고 앞으로 전진하는 능력이다."라고 말이다. 그렇다 인간에게 있어서 두려움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의 본질이다. 두려움 없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할수 있겠는가? 난 내 두려움 그자체를 두려워 했다. 루즈벨트는 잊어달라, 저 문장은 나의 내적 상태만을 묘사할 뿐이다.
 
셋쨰로 난 내 행동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다. 난 한편으로 이 사람이 날 좋아할까 한편으로는 두려워 했다. 그후로 난 그 사람을 책임져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난 그 부담감이 싫었다. 난 그저 내가 하고싶은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았다. 스캇펙 박사는 진정한 정신건강이란 현실에 충실하려는 지속적인 과정이라고 말하였고, 또한 현실에 대해 책임을 진 댓가가 바로 건강한 정신이라고 하였다. 난 한편으로는 그것을 의식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내가 사랑으로 인해 질 책임감으로부터 도망치려 하였다. 그 어떤 희생도 하고싶지 않았다. 난 항상 새로운 사람과 새롭게 시작할수 있을줄 알았지만 내 모든 과거는 날 괴롭히고 놓아주질 않았다. 결정을 내려야 할떄 그 어떤 대안이 희생을 동반한다고 해도 내 던져서는 안된다라는 스캇펙 박사의 말이 더욱더 내 가슴에 깊이 박히는 이유이다.
 
이런 3가지 이유로 또 다른 이유들로 난 최근 계속해서 사랑에 실패하고 있다. 내 자신을 보호하고 책임질려는 것이 아니라, 내 자만감만을 보호하기 위해 난 사랑에 일부러 실패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어떤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또 기존의 결정을 번복할때도 현실과 내 자신보다 내 머리속에 있는 가상의 자존심이 중요한 결정 요소인것도 부정하지 않을수 없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난 어릴때부터 엄마가 "너한테 참 실망했다" 라는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난 항상 잘나야 하고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켜드려야 했기 떄문이다. 무엇을 위해서나면 나의 자만감과, 엄마의 자존심을 위해서 그랬다. 엄마의 자존심은 둘째치고라도 나의 자만감은 내 인생에서 버려야할 것이다.  난 두려움이 있어도 없는척 조금더 과감해 질 필요가 있고, 가끔은 기꺼이 나를 위해 내 자존심을 내 던지고 한 여인에게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 난 사랑을 위해 공부는 희생하고 부모님께 거짓말도 해야될때가 올 것이다.
 
아무렴 어떠리 그 어떤것도 나의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건 나의 자만심이 아닌 진정 내 자신을 위해서일떄 더욱더 그렇다.
 
 
 
P.S 이 글을 다 읽으신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M.스캇펙 박사의 3부작 "아직도 가야할길", 끝나지 않은 여행, 그리고 저 너머에"의 일독을 추천드린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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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2011.05.31 14:30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