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와 있다. 그리고 난 꿀맛 같았던 일주일간에 휴가 그 마지막날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내일이면 유럽 저널리즘 센터 (European Journalism Centre) 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저녁 10시 반, 세탁기안에는 일주일 동안 묵혀놓은 빨래들이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고 룸메이트인 미국인 친구들은 어제 이어 오늘도 클럽에 간 듯하다. 파키스탄이 고향인 한 미국인 녀석은 어제 클럽에서 벨기에 여자에게 받은 전화번호가 알고보니 엉뚱한 숫자들의 나열이라 제법 씁쓸해 했었다.

불과 열흘 전에 끝마친 지난 학기는 몸과 그리고 마음이 힘든 학기였다. 사실 과거형을 쓰기에 내 마음의 아픔은 현재형이다. 학교에서 가장 악명이 높다는 보도 실습수업을 들었고, 황색 저널리즘의 시초인 허스트가 주최한 뉴스 공모전에 참여했었다. 이것들 덕택에 몸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 는 별것 아니다.

지난 학기를 끝으로 나에게 참 소중했었던 선배 그리고 친구 6명이 떠났다. 모두가 졸업을 했다. 외국 생활은 작별과 이별의 연속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정을 주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난 용기를 내어 이 6명에 친구들에게 내 마음을 전달했었다. 다들 내가 당신들을 사랑한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어서 매우 고마웠다. 이별 직전에 내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은 친구는 나를 '당황케' 했다. 난 그 눈물을 쏟은 친구가 세상에서 우리 엄마 다음으로 강한 여자인 줄 알았기 떄문이다. 6명의 친구들 중 4명의 졸업식에 참석했다. 모두 같은 날에 졸업을 해서 다 참석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사람이 마음을 먹으니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 나머지 두 명과는 식사를 같이했고, 그 중 곧 결혼할 예정인 한 친구에게는 결혼식 선물도 전달해 주었다. 결혼식 선물임에도 좋은 선물을 못 주었다. 학생이기에 '싼 선물'을 사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는 편은 아니지만 한 친구에게만 더 비싼 선물을 사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 친구에게는 선물로 졸업식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실 친구가 아니라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누나다. 그 누나의 어머님과 동생은 제주도에서 누나의 졸업식을 보러 오셨다고 했다. 단순히 사진을 찍어주었을 뿐인데, 어머님께서 나에게 용돈으로 200불을 주셨다. 간단하게 수고비라고 말씀하셔 50불 정도를 예상했었고 그랬기에 받았다. 200불인 걸 알았다면 받지 말았어야 할 돈이었다. 누난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난 이미 누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 난 이 6명의 선배 그리고 친구들을 떠나 보내기 3주 전부터 이들과 적극적으로 식사를 하고 만났다 .정신없는 학기를 보내느라 평상시에 연락을 못 했던 모습들을 만회하려고 의도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많이 웃었고 즐거웠으며 행복했다.

5월 13일은 6명을 모두 떠나보낸 졸업식이 있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틀 후 5월 15일 새벽 미국에서 브리쉘로 떠나왔다. 누군가는 나에게 주어진 이런 기회들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EU를 위해 일한다니 누구나 꿈꾸는 젊은 날의 모습 아닌가? 하지만 난 애틀랜타 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한국으로 떠나는 다른 유학생들이 부러웠다. 한국에서 사법고시를 준비 중인 나의 친구와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놀 수 있는 시기가 만약 존재한다면 바로 올해 여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투덜투덜 대면서 하지만 공항 까페테리아에 앉아 영어 공부를 하면서 난 브뤼셀 공항에 도착했고 지금  거주 중인 숙소에 자리를 잡았다. 도착하고 이틀 정도는 같이 선발되어온 미국 친구들과 함께 다녔다. 이틀이 지나고 단체로 관광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고 개인의 행복을 침해하는지를 알게 된 순간부터 난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지난 수요일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나흘 동안 나에게 휴가를 허락했다.

브뤼셀의 곳곳을 누볐다. 한국인이 그리워 <연합뉴스> 브리쉘 지부에 문을 두드렸다. 커피 한잔을 타주시며 나에게 간단히 질문 몇 가지를 하신 지부장님은, 바로 자기소개서를 써보라고 하셨다. 바로 그 자리에서 1시간 동안 자기소개를 써 제출했다. 여기서도 인턴십을 하게 된다면 내 브리쉘의 삶은 또다시 전쟁 같을지모른다. 하지만 전쟁 덕택에 외로움은 덜할 것이란 생각 떄문에 난 자판을 두드렸다.

유럽에선 맥주를 치즈와 곁들여 먹는다. 여행중 혼자 종종 한잔씩 했다^^

벨기에의 왕립 미술관과 르네 마그리드 미술관을 다녀왔다. 브리쉘을 상징하는 오줌 누는 아이 동상에도, 그 옆에 있는 <고디바>에 들려 초콜릿을 사서 먹기도 했다. 혼자 스파게티를 시켜 먹었고 와플을 들고 거리를 누볐다. 토요일에는 혼자 기차를 타고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된 한 한국분을 만나뵈었는데 당신의 생활을 기록한 <루드몬드의 정원> 라는 책의 저자이셨다. 박식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 서로 초면임에도 좋은 시간을 보냈다. 
딱 나흘  동안은 비싼 유로에 신경을 쓰지 않고 돈을 썼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휴가의 '질'이 '비용'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물론 부모님에겐 죄송스러운 일이다.

4일 동안의 꿀맛 같은 휴가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편으론 외로웠고 괴로웠다. 휴가 중에 악몽까지 꾸었으니 몸은 즐거웠으나 마음은 여전히 괴로웠던 것이다. 이 일정이 끝나고 다시 돌아갈 곳이 한국이 아닌 다시 또 미국이라는 부담감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떠나보낸 그 6명의 친구 때문일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4년 전 유럽 여행을 같이 왔었던 친구들과 반드시 다시 오기로 약속했었던 유럽을 나 혼자만 와버린 죄책감 떄문일까. 난 4년 전 친구들과 유럽 배낭여행을 했었던 적이 있다. 그떄 그 녀석들과 시간이 지나 결혼하기 전 유럽에 다시 오기로 약속했었다. 현재 난 다시 유럽에 왔고 그 두 녀석은 한국에서 '고시'공부를 하고 있다. 언제 다시 뭉칠 수 있을지, 한 친구는 나에게 "너 혼자라도 즐겨야 우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할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난 최선을 다해 즐기고 있지만, 사실 여행은 '장소'보다 '같이 온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난 절대 그 친구들과 왔었을 때만큼 즐겁게 지내진 못할것이다.

내일이면 출근이다. 오늘 오후에 공원을 산책했었고 벤치에 앉아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했다. 휴가에 끝자락에서 난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해아 하는 것일까? 같은 것들 말이다. 누가 만약 남들이 부러워하는 기회를 가졌으니 불평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한다 라고 말한다면 난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부모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유럽 생활을 하니 불평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말한다 해도 난 그에 대해 고개 끄덕이며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수긍이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을진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 대신 난 오늘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그리고 이것이 다른 누구의 구속도 아닌 내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온 말이었다.


"넌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아픔을 겪었다. 수고했다. 내가 너를 더 챙겨주었어야 하는데 정말 미안하다."라고 말이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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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여행가고싶따 2011.05.24 21:45

    저도 유럽 정말 다시 가고 싶네요. 입대 직전에 9개국을 누비면서 정말 행복했는데 제대하고 학교 다니면서 고시 공부까지 하느라 힘들지만, 제 자신에게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습니다. 빨리 고시를 붙고 사회에 나가기 전에 다시 유럽을 다녀오는게 작지만 큰 소망이네요. 친구들과 다시 유럽에 오고 싶다는 그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2011.05.29 08:15

    비밀댓글입니다

  3. addr | edit/del | reply 2011.05.31 14:25

    비밀댓글입니다

    • addr | edit/del @TellYouMore 박태인 2011.05.31 17:07 신고

      사랑하는 성훈!!

      그저께 너 싸이에 글 남겼었는데!!

      우린 인연이야 인연! 근데 블로그에 어떻게 우연히 들어온겨?ㅋㅋㅋ

      친구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