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여성은 항상 약자였다. 비록 한국에서 여성가족부는 조롱의 대상이며 많은 남성들이 결혼할 배우자를 찾지 못해 베트남으로 원정을 떠나지만 한국의 여성은 항상 약자였다. 특히 그들 중에서도 가장 처참한 삶을 살았던 이들은 일본과  주한 미군에게 몸을 팔았던 위안부 여성들일 것이다.

한국에서 성매매는 불법이다. 하지만 1960년~1980년 당시 한국 정부는 주한 미군의 성적 욕망의 충족을 위해 기지 주변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매춘 여성을 대령하는 포주였다. 당시 기지촌 내부 한국 정부와 미군의 부당거래를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외신번역프로젝트가 돌아왔다.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원기사: http://nyti.ms/vb7gf7

기지촌 내부 한국 정부와 미군의 부당거래
뉴욕타임스 미국판 2009년 1월 6일 8면 기사.

편집자 주: 한번 뿐인 인생이다. 이들은 한국의 슬픈 역사에 희생자들이다.
출처: IHT 진청기자.


한국은 수년의 전쟁 역사상 가장 추악한 만행인 일본군 위안부 강제 징집 문제에 미적지근하게 대응하는 일본정부를 비난해 왔다.

하지만 현재 과거 매춘을 했던 한국 여성들이 정부로부터 위안부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학대를 받았다며 지난 한국 정부의 일부 지도자들을 고소했다.

한국 정부가 자신들에게 북한으로부터 자국을 지켜주는 미군과의 성관계를 권장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예전 대한민국 정부와 미군이 196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성병 없는 매춘부를 위한 검사 및 치료 체계를 구축하는데 직접적으로 개입을 했다는 이유를 고소 사유로 들었다.


이들 중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 미군이나 한국 정부로부터 성 매매를 강압적으로 지시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의 고소는  한국 정부가 자신 스스로의 성 매매 문제는 외면하고 일본정부에게만 배상을 요구하는 위선을 드러낸 것이다.

당시 매춘을 했던 여성 김애란(58)씨는 한국 정부가 미군의 중요한 매춘 알선업자였다고 말한다.

이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국 정부가 당시 미군이 떠날지도 모르는 두려움과 이를 막기 위해서 모든 시도를 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한국 정부가 자신들을 그저 한국 전쟁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던 대한민국 경제를 위한 하나의 상품으로만 취급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이 좀더 효과적으로 미군에게 몸을 팔 수 있게 기초 영어수업과 에티켓을 가르쳤고 외화가 절실했던 시절 정부 관료들은 그들이 외화를 벌어온다며 칭찬과 격려까지 해주었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매춘을 했던 여성은 정부관료가 자기들에게 외화를 벌어오는 애국자라고 칭송하며 군인에게 더 많이 몸을 팔라고 강력이 권고했다고 말했다.



편집자 주: 당신에게도 젊고 아름다운 시절은 있으셨을 것이다. 출처: IHT 진청기자.


군인에게 더 많이 몸을 팔라고 강력이 권고했다고 말했다.


학자들은 미군이 미군기지 주변에 기지촌이라고 불리는 성 매매 밀집지역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깊이 관여하게 된 계기는 성병 우려 때문이라고 했다.

여러 증언 중에 가장 충격적인 증언은, 미 헌병대와 한국 경찰 및 정부 관료들이 1960년~ 1980년대 사이에 정기적으로 클럽을 급습하여 성병에 걸린  여성을 잡아냈다는 사실이다. 군인과 경찰들은 번호표를 차고 있는 사람들을 위주로 단속을 했다고 하는데, 이 번호표는 매춘업자들이 미군이 매춘부들을 조금 더 쉽게 식별하게 하기 위해서 그녀들에게 강제적으로 착용하게끔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매춘부들을 적발한 경찰은 성병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쇠창살과 작은 유리문만 있는 구치소에 구금하고 병이 다 나을 때까지 강제적으로 약물치료를 시행했다.

사과와 보상을 원하는 그녀들은 스스로를 대중의
동정을 받고 있는 위안부 여성들과 비교했다.

그녀들은 매춘이라는 행위를 자신이 선택을 한 것인지, 강제에 의한 것인지, 아님 필요에 의해 한 것인지라는 사실 보다 자신들 모두가 정부 정책의 피해자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동맹국 사이의 섹스"(1997)라는 책을 집필한 캐서린 H.S.문씨는 이러한 기지촌의 성 매매에 한국정부와 미군 모두가 연루되어있다고 했다

당시 매춘 여성들이 들고다녔던 등록증. 출처:경향신문/한겨레21

여성가족부는 매춘 여성들의 고소에 일절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서울에 있는 미군사령부또한 공문을 통해 미군은 인신매매나 성 매매를 용인하거나 지원하지 않는다며 자신들에게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에 강력히 부인하였다.


뉴욕타임즈지는 기지촌의 성 매매 업소에서 일을 했었던 8명의 여성과 인터뷰를 하였고 한국 정부와 미국의 문서들을 검토하였다. 이 문서들에 있는 내용들은 매춘 여성들의 주장을 뒷받침 하고 있지만 굉장히 단편적인 것들뿐이다. 이 여성들을 수 십 년 동안 이러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으로 매춘 여성들이 주장하는 이러한 범행들은 그다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국내법상 성 매매가 불법임에도 국내 미군 기지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성 매매에 묵인을 하고 있다. 전 세계에 있는 미군기지 주변의 술집과 성 매매업소는 대한민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기지촌 여성 피해자들이 여성범죄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관련 한겨레 기사 ☞ http://bit.ly/t6yahz

그녀들은 그녀 주변의 사람들은 기지촌 주변에 한국정부가 얼마나 많이 연루되어 있는지를 안다고 한다.

그녀들은 2006년 정부로부터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 해줄 만한 증거를 얻었다. 미군 고위직들과의 연락책이었던 김기조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가 그들에게 성 매매를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지방 공무원들이 그들을 찾아가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나라에게도 그다지 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고 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국회 청문회 기록을 살펴보면 적어도 몇몇의 국회의원이 성 매매의 필요성을 주장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960년 국회 회의록엔 두 명의 의원이 정부가 매춘부를 교육을 시켜서 동맹국 군인들의 "자연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이들이 욕구 충족을 위해 일본으로 가는 외화 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당시 내무부장관이었던 이성우씨는 정부가 매춘부 공급과 성 매매 업소들을 조금 증가시키고 허가를 해주었다고 답변했다.

김기조씨와 문 캐서린 교수의 언급들은 한국 정부가 매춘 여성들의 성병을 관리하기 위해 협력했었다는 그녀들의 주장을 지지해주고 있다. 양쪽 정부의 이러한 합의가 급 물살을 타계된 계기는 바로 1969년에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배치된 미군의 일부를 철수하겠다는 발표 떄문이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 정부가 제일 두려웠던 것은 미군의 철수였고 이를 막기 위해서 미군과 대한민국 정부 사이에 합의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김씨는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생각의 근간은 한국에 있는 미군들이 기지 근처에서 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그들이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도록 만드는 것에 있다고 했다.


웰슬리대학의 교수인 문씨는 1970년 당시 미군 관계자들과 대한민국 정부관료들의 회의록에서 양측이 성병 확산을 막기 위해 어떠한 힘을 기울였는지가 나와있다고 말했다. 회의록에는 아픈 여성들을 '격리'시키라고 권고한 사실이 명시되어 있으며 격리된 이들은 반드시 다 나을 때까지 치료를 받아야만 했고 정부는 그들을 집중 관리하기 위해 이들을 등록시키고 건강 의료 증명서를 들고 다니게끔 하였다.

1976년 회의록에서는 심지어 한-미 합동으로 매춘부들을 급습하여 등록되지 않았거나 건강검진을 하지 않은 이들을 체포하는 합의안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현재도 미군 기지 주변에 기지촌은 아직 남아있지만 한국 경제는 많이 성장하였고, 이젠 필리핀에서 온 여성들이 이곳에서 성 매매를 하고 있다.

기지촌에서 성 매매를 했었던 여성들 대부분은 그들을 피하는 주류 사회에서 격리되어 아직 도 기지촌 주변에서 살고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가난하게 살고 있고  몇몇은 해외로 입양 보낸 자신의 혼혈아들 생각에 근심을 앓고 있기도 하다.

성만 밝히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한 전쟁고아 전(71)씨는 당시 18살이었던 1956년에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북쪽 경계선에 가까운 동두천 기지촌으로 갔다. 그녀는 1960년대에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미국에서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주변의 끊임없는 설득으로 결국 아들이 13살이 되던 해에 미국으로 입양을 보냈다.

약 10여 년 전 미군이 된 그녀의 아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자신을 잊고 살라고 하였다.

"전 엄마로서 실패자입니다. 전 아들에게 의지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제 인생에 대해서 고민할수록 제가 드는 생각은 저와 같은 여성들이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큰 희생물이라고 생각해요. 뒤돌아보면 제 몸은 내 것이 아니라 정부와 미군의 것이었습니다."

전씨는 요즘 기초생활 수급과 파지 및 쓰레기를 모아 판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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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및 번역 감수: 여동혁 (@Tonghyeo) 박태인 (@TellYou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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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편집자 및 주 번역자: 박태인 (@TellYouMore)
번 역자문 및 감수 위원단: 김민주(@Spring_llullaby) 이기은(@lazynomad), 이호준(@DanielHojoon), 조효석(@promene), 서규화(@nicefairy_), 진소연(@Dal_Fishing713), 이자연(@jayeon22), 여동혁(@Tonghyeo), 김가현 (@HelloKaHyun)

원 기사 작성 기자: Choe Sang-Hun
기사 원본 및 사진 출처:
http://nyti.ms/toeVhh
출처: NYTIMES.COM
번역: 트위터 외신 번역프로젝트팀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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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일본서 그랬다지 않습니까~ 2011.11.30 21:46

    왜국이 2차대전서 패하자, 미군이 들이닥치는데,
    일본정부가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알아서 성매매위안소(?)를 미군부대 주변에 설치했다는~
    쪽국 왜놈들이 자국여인들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고 공여(?)하고...

    그런데, 한국서도 거의 흡사한.. 아니, 똑같은 일이 벌어졌죠!
    그럼 뭐.. 따로 설명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바로.. (지금도 그렇습니다만)그 당시 위정자들이 죄다 친일파들이었으니까 말입니다!

    참으로 통곡할 일이지요~

    • addr | edit/del 이홍범 2011.12.08 10:49

      미군이 이나라 이땅에서 성폭행(or 성추행)하는 것도 단순히 SOFA문제만은 아닌거 같군요..왜 이제야 알았을까요?? 언론에서도 얘기 들어본적이 없는것 같은데..언론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네요..

  2. addr | edit/del | reply Director_Ra 2012.02.13 15:12

    슬프네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