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에세이를 모으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왜 투표하는지에 관해 묻고 그 이유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대세론과 심판론 그리고 인적 쇄신이라는 정당들의 허울뿐인 변화속에 개개인의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이번 총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쓰고싶은 만큼의 분량을 적어 필자에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Parktaeinn@gmail.com


"나는 성소수자 인권 확립에 기여하는 정치세력에 투표할 것이다" 
 


By 김기민(@teateacaca)

여행 노동자, 인터뷰이. 성북동 티티카카 까페 운영자. 성소수자.


*김기민씨는 성북동에서 티티카카 까페를 운영 중이며, 네이버 파워 문화 블로거로도 활동 중이다. 2011년 성소수자 인권 영화제 스태프를 맡기도 했다.출처:김기민씨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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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정치는 내 삶을,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좀 더 나아지게 만드는데 유효적절한 수단으로 보이지 않았다. 지도자 혹은 소수 지배계층이 내세우는 명분이나 이념들이 ㅡ 그 자체는 분명 의미있고 미래지향적일지언정 ㅡ 현실생활을 실질적으로 개선해줄 것이라 믿지 않았던 탓이다. 정치권력이나 사상, 이념 등으로 단번에 바꿔나갈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단순하지도 않다. 정치는 두드리기만 하면 원하는 것을 족족 내어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세상이 달라지기 위해선 정치나 권력에 앞서 구성원 전체, 인간 개개인이 달라져야 한다고 믿었고, 그 변화가 되돌릴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야 비로소 진정한 변화와 진보가 가능하다 생각했다. 누군가 이런 나를 진보의 적 혹은 보수주의자라 비난한다 해도 나는 내가 믿는 진보의 진정성은 지각있는 소수의 선도가 아닌 만인의 확실하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 속에 있다고 감히 확신했다.

내가 문화예술을 좋아하고 그 분야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거기에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변화는 감동과 깨달음, 자기성찰에 기반하고 이는 사람의 진심 혹은 극적인 스토리로부터 나온다. 이념이란 교조화되고 조직이란 경직되며 권력이란 부패하기 마련이니 거기에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진심이나 스토리가 나오리라 기대하는 건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 만큼이나 뜬금없는 일이므로 변화의 근원으로 문화와 예술을 주목하는 것이 나로선 그리 생뚱맞은 일은 아니었다.

문화예술은 타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일줄 알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그 어느 누구의 자유로운 접근을 허용한다. 그 개방성과 유연함이야말로 사회의 다양성을 아우르며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며, 이는 정치가 수행하는 역할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소프트 파워에만 의지하기에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점진적일지언정 확고한 변화를 그저 이상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하는 건 지나친 평가절하겠지만, 감동과 깨달음이 전파되는 속도가 사회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모순과 불합리를 따라잡기에 부족하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조국 교수 성소수자 인권 지지 프로젝트. "성소수자는 소수자 중 소수자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종교계와 성소수자 혐오·차별주의자들에 의해 좌절된 것은 그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이 자기 행동의 부적절함을 스스로 순순히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인내의 문제라기 보단 희생의 문제다. 소수자의 인권은 그들의 자발적 깨달음을 위해 희생되어도 괜찮을 만큼 결코 가볍지 않다.


*편집자는 작년 여름 브리쉘 유럽연합 국회에서 성소수자 국회의원 마이클 캐쉬먼을 인터뷰했었다.
그는 성공한 게이들이 앞장서 '커밍아웃'해야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바로가기 ☞http://bit.ly/pfRTve

이러한 부분의 문제를 짚어내어 공론화시키는 과정을 담당할 현실 정치인의 존재는 그래서 중요하고, 이들을 제도권에 진입시키는 것은 그 목적의 실현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필수적이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입법은 당위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고, 입법 권력을 얻기 위해선 선거에서 승리하거나 원내에 최소한의 교두보를 마련해야만 한다.

그 선거에 내가 입후보하여 직접 참여할 수 없다면 나의 권리, 나를 포함한 성소수자의 권리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고 앞으로 이를 보호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 정당 혹은 정치인에 투표함으로써 그들의 정치적 행보에 힘을 보태는 것은 나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성소수자 유권자가 대의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가장 손쉽게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현재 국내 정당 가운데 성소수자 인권 확립을 위해 당내 기구를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보이고 있는 곳은 통합진보당(구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정도다.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도 성소수자 인권에 유의미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진보정당들의 정책과 입장에 전적으로 동조하거나 완벽한 의견일치를 보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들이 ㅡ 그것이 설령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ㅡ 타 정당에 비해 진정성을 갖고 약자와 소수자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 때문에 나는 그간 두 번의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정당투표시 민주노동당(2004)과 진보신당(2008)에 한 표를 주었다. 지역구의 경우 정책의 공감도나 세력균형, 당선가능성 등을 고려하다 보니 중도·온건 노선의 타 정당 후보를 선택했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후보자의 정견을 확인하여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인권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본 뒤 결정하리라 결심했다. 올해 총선에서 내가 행사할 수 있는 표는 성소수자, 나아가 사회 내의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을 배려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권리를 확고히 다지는데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노력해나갈 수 있는 정치세력에게 갈 것이다.

비록 그것이 지금 당장은 사표가 된다 해도 그 표가 남긴 족적은 분명할 것이므로 그 뒤를 따라올 누군가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놓지 않겠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자에게 베푸는 것이 바로 내게 베푸는 것이라 말했던 예수 그리스도. 그 말속에서 우리는 힘없고 약한 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그 사회의 성숙함을 대변함을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은 그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보여주는 척도다. 누군가의 권리가 쉽게 짓밟히고 무너질 수 있는 사회는 구성원 누구의 권리도 어렵지 않게 짓밟고 무너뜨릴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당신이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해야 하는 것은 인권이라고 하는 보편적 권리를 지키는 첫걸음인 동시에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임을 명심해야 한다. 선거는 그 의지를 현실에 드러내 보여주는 가장 확실하고도 강력한 수단 가운데 하나다.

나는 나의 표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당신은 당신의 표를 어디로 보낼 것인가? 그 표에 2012년 이후 성소수자 인권과 정책의 향방이 달려있다 생각한다면 그것이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LGBT Friendly, 답은 여기에 있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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