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에세이를 모으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왜 투표하는지에 관해 묻고 그 이유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대세론과 심판론 그리고 인적 쇄신이라는 정당들의 허울뿐인 변화속에 개개인의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이번 총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쓰고싶은 만큼의 분량을 적어 필자에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Parktaeinn@gmail.com


"우리는 건강과 미용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반대로 농업과 농경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또한 철저한 환경에 놓여 있다. 음식의 쾌락은 신봉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By 이남연(@Nammytopia)

언젠가 저널리스트 출신으로서 식품산업에 관련된 인문 교양서를 저술하고 싶은 대학생입니다. 달리기, 바삭한 사과 좋아해요. Slow Food USA member. 




내가 투표하는 이유

“지금 한국에서 농업 관련 정책은 아무 곳에서도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옛날에 농민들의 숫자가 많을 때에는 그럭저럭 농민을 대변한다는 말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보이질 않는구나.” 이 글의 자문을 해주신 선생님의 말씀이다. 정말 그렇다. 이 에세이를 위해, 또 이번 총선 재외국민 선거를 하러 시카고에 가는 내가 투표를 위해 이곳 저곳을 찾아본 결과 내가 본 농정 공약이란 어느 정당의 와닿지 않는 공약과 어느 개별 후보자의 소견 조금 뿐이었다. 한국은 아직까지 정책 선거가 아니고 정치적 힘겨루기가 많은 국가라고 할 수 있다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총선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재외국민 선거는 3월 말) 농업과 관련된 공약이 이처럼 빈약하고 부실하다는 것은 좀 씁쓸하다. 농업이 살아나야 국가가 살아난다면서, 진짜로?


나는 다음 대선과 총선에서는 현실성 있고 성의있는, 무엇보다 진심이 담긴 농정 공약이 발표되기를 바라는 희망을 가지고 시카고에 버스를 타고 간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농정 관심 부재는 바로 시민이 식품 산업에서 가진 소비자의 권력을 깨닫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또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임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생각으로 이러한 글을 쓴다.


우리는 건강과 미용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반대로 농업과 농경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또한 철저한 환경에 놓여 있다. 음식의 쾌락은 신봉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학교에서 농업이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는 것에 화를 내지 않고, 농경과 농업을 공부하는 또래를 은근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누구는 사라져가는 농촌과 시골풍경이 아쉽고 그립다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언제부턴가 농산물이 밭과 논에서 나는 생산물이라는 과거의 인식에서 깔끔한 대형마트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물품의 관념으로 조금씩 변해왔고, 더 이상 식탁 위 음식에서 농부의 땀방울은 물론이며 얼굴조차 떠올리기 힘들어진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삶의 가치를 창출하는데 바빠 좋은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오랜 시간 동안, 농장이 있던 자리에는 빽빽한 공장이 들어섰고 자리 잃은 농민은 조립 라인의 수많은 노동자 중 하나가 되었다. 농산물은 상품이, 닭은 공장 속 물건이 되었으며 농업은 산업이 되었다. 농업과 우리 사이에는 어느새 거대한 경제 산업과 대기업이 우뚝 자리 잡았다. 농업이 삶에서 멀어진 물리적 거리만큼 그에 대한 이야기, 애착, 소비자의 권력 또한 사그라들었다.


*우석훈 박사의 농업 경제학. <왜 한국에선 논이 밭보다 쌀까?>

산업형 농업의 점진적 유입으로 한국의 농식품 체계는 산업화, 대기업화 되었고 그 사이 음식에 붙여진 브랜드의 라벨이 생산물의 진정한 특성을 대신하고 올바른 지식을 대체하는 세상이 되었다. 예전의 우리는 누가 음식을 생산하는지 그 음식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고른 음식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손바닥보다 작은 영양성분표를 백퍼센트 신뢰하는 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표출할 수 있는 소비자의 최대 권력이란 구매한 식품에서 운좋게 나온 이물질의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리고 그것이 퍼지기를, 기사가 써지기를, 그리고 보상을 기대하는 일종의 수동공격성 행동 뿐이다. 참으로 나약하고 나태한 권력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참 권력이 아니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을 표출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정치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먹을 권리를 위한 정당한 행동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먹을거리 비방법FDL이 존재하며 콜로라도 주에서는 그것이 형법으로 다스려지기 때문에 법을 위반하면 피고인은 범죄자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법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있을까? 지금 소유한 이만큼의 힘으로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


평소 농업에 관심있는 유학생으로서 이번 총선에 대해 내가 느끼는 기분은, *27만원짜리 모종삽을 누군가 손에 쥐어주면서 텃밭으로 가 심고 싶은 것을 원하는 만큼 맘껏 재배하라고 길을 내어준 곳에 가보니 막상 검정색 비닐봉지에 담긴 것은 한움큼의 가벼운 볍씨뿐인 것을 알게 된 후의 당혹감과 허무함이다. 이리 넓은 텃밭과 번지르르한 모종삽이 있지만 내게는 재배할 품종의 옵션을 고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것 가지고 무얼 하라고? 나는 해가 저물때까지 쪼그려 앉아 삽질이나 해야 한다는 말인가?


*1인당 재외국인 투표 비용.

<지속 가능한 농업> 유기농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동안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올바른 먹거리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지금은 어떤가. 그때보다는 살만하지만 안전한 음식에 대한 위협은 점점 더 우리 목을 조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식량 자급률과 GMO 식품에 관한 경고의 목소리가 언제까지 귀 언저리에서만 흩어지도록 놔둘 것인가. 음식과 식품에 관한 열정이 먹거리로, 그것이 농업의 지속적인 관심으로까지 이어져만 하며 그 과정을 정치적 형태로 표현하여야 한다. 소수를 위한 먼곳의 목소리가 아니라 하루에 세번 먹는 내 밥그릇을 향한 목소리를 내어야 할 때다. 한표는 나약하며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마른 불모지에 대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은 표를 행사한 시민만이 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래서, 나는 투표를 하러 간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