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취재를 하던 중 잠시 틈이나 공공 묘지를 다녀왔다. 남의 차를 얻어타고 묘지를 지나칠때마다 내 차가 생기면 꼭 한번은 들리리라고 했던 곳이다. 기삿거리를 찾으러 도시를 이러저리 배회하던중 묘지 옆에 있는 꽃들이 보였고, 나도 모르게 핸들을 돌렸다.

주차를 하고, 귀에 꽂은 이어폰을 내려놓은체 묘지로 발걸음을 한걸음씩 옮겼다. 미국의 묘지는 아름다운 꽃들과 사람들이 어울릴수 있는 운동 시설을 곁에 두고 있어 으스스 하지 않다. 죽음은 새로운 탄생이라는 종교가 주류인 나라라 그런지 혼자 걸어가는 묘지의 풍경은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미국 및 유럽의 공동 묘지는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이기 보단 새로운 탄생의 출발점으로 느껴진다.
                                            (사진은 프랑스 오마하 묘지)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풀밭속에 뭍혀있는 여러 동판에는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사람들이 몇년을 살았는지도 적혀 있었다. 72년의 인생을 살다 세상을 하직한 사람도 있었고, 50여년을 살다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눈을 붙잡은 것은 1945년에 태어나 단 3일의 인생을 살다간 한 아이의 묘지였다.

단 3일의 인생이라, 3일의 햇빛이고, 3일의 사랑이라, 단 3일만 허락된 그 아이의 인생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미국의 유명 정신 심리학자 스캇펙 박사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고 있는 존재이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 죽음과 직면하기를 회피한다" 라고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죽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인식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내가 언젠간 죽을것이라는 것을 알고있지만, 실제로 내가 죽을 것이란 상상은 해본적도 하기도 싫다. 마치 나의 부모님이 내 옆에 평생을 살아 계실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난 내 첫사랑도, 내 친구도, 그리고 내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다 영원할것이라 생각했다. 수십년후에 나와 주변의 모든 이들은 세상을 떠날것이라니..상상조차 하기 싫다.

왜 생각하고 싶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지금 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까.
죽음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필연일텐데 왜 이런 죽음에 대해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걸까?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언제가 떠날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안다면 남을 짓밟고 이길려고, 좋은 직장 얻어 떵떵거리며 살려고, 좋은 옷, 이쁜 여자에 목매달지 않을것이다. 내 사랑하는 이들과  매일 하루를 휴일같이 살아가며 내 욕심을 다 내려놓고 그들에게 사랑한다 말하며 살수도 있을 테다.
다 잃어버릴까봐서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만을 위해 살았던 내 쇼같은 인생의 실체가 다 드러나 보일까 해서다.


그리고 난 이 두려움과 크나큰 진실앞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시작했던 내 인생의 '쇼'를 멈출 용기가 없다. 우연히 들렸던 공동 묘지, 단 3일을 살다간 아이의 모습에서 난 내 인생을 뒤돌아 봤다.

2000년 전 세네카는 이런말을 했다.
"인생의 모든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인생의 모든 과정을 통해 죽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난 23살을 살았고, 23살을 죽었다.
앞으로 난 계속해서 살아가고 또 죽어 갈것이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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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Nick 2010.10.06 12:26

    전 병원 취재다녀온 줄 알았어요. ㅎㅎ
    묘지 좋죠. 전 유럽 배낭여행 갔을 때 몽파르나스 묘지에 가서 사르트르나 모파상 비석 찾으러 다니고 그랬었다는...
    다음엔 이어폰 빼고 한번 걸어보세요. 느낌이 새로울 듯....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