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취직했다. 기뻐 울었지만, 마음 한 편은 씁쓸했다. 그의 나이 만 32세. 전문직을 바랬기에 대학 졸업 후 다니던 '평범하지만 안정적'인 직장의 퇴직은 내가 권유했다. 전문 대학원과 고시를 준비하는 동안 뒷바라지를 했다. 공무원이라 월급이 빠듯해 돈을 모을 순 없지만, 남편이 전문직을 갖는다면야 그게 대수일까. 난 중산층 부모 아래 자랐으나 상류층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3년 후, 남편은 '평범하지만 조금 더 안정적이고 조금 더 월급을 주는 직장'에 겨우 취업했다. 그가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3년간 매일 노력한 것보다 취업 시장의 문이 닫히는 속도가 더 빨랐다.



김경희(32/가명) 씨는 이 정도에 만족하기로 했다. 세상이 어려우니까. 비록 모은 돈은 없지만 지금부터 남편과 노력하고 아껴쓰면 남 부끄럽지 않은 중산층 진입은 가능하니까. 그녀의 부모도 당신보다 내 자식이 더 잘살기를 바랬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다. 이 정도면 한국 사회에서 '선방'한 것이란 걸.



그 어느 때보다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변하고 있다. 계층 상승이 아닌 계층 유지를 위해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2014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서 작년 조사 결과와 비교한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 미끄러진 비율이 2012년 6.4%에서 2014년 10.92%로 증가했고 중산층이 중산층을 유지한 비율은 2012년 82.2%에서 2014년 76.8%로 5.4% 감소했다. 비교 조사를 시작한 2007년부터 2011년 조사까지 관련 수치는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으나 지난 3년간 지속 악화돼 왔다. 



하지만 이런 실제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상상하는' 계층 상승의 가능성이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은 인간에게 삶의 추동력을 부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희망은 소비를 늘리고 신용을 팽창시킨다. 더 나아질 것이기에 지금 쓸 수 있고, 투자할 수 있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으며 집과 자동차를 산다. 하지만 이 '희망'이란 관점에서 한국 사회의 심각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 사회에서 계층 상승의 가능성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사회조사를 살펴보면 2009년 '중산층 세대가 생각하는 자식 세대의 계층 상승이 어렵다'는 응답 비율이 27.3퍼센트에서 2013년 42.1퍼센트로 무려 54퍼센트나 증가했고 '중산층 세대가 생각하는 본인 세대의 계층 상승이 어렵다'는 비율도 2009년 43.3퍼센트에서 2013년 54.6퍼센트로 26퍼센트 증가했다.



짧은 기간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일생동안 노력을 한다면"이란 질문의 대답이기에 시민들은 한국 사회의 계층 이동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 



이처럼 계급 상승은커녕 유지마저 어려워진 한국 사회. 청년층의 취업난이 심각해진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버티려 차츰 줄어드는 안정적 일자리에 몰려든 상류층, 중산층, 저소득층의 자녀들이 모두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과 노동 유연성의 증가로 중산층 일자리가 줄어드는 전형적 모래시계 경제에 진입한 한국 사회에서, 계층 유지를 위해 모든 부류의 청년들이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가 갈리는, 중산층의 자녀가 중산층에 남기 어려운 지금의 체재가 유지될 수 있을까?



경쟁에서 패배한 청년들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등장한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비슷한 길을 갈 것이다. 재산의 92%가 부동산인 베이비붐 세대 부모가 건강 관리를 잘한다면 90살 정도까진 살 것이라 유산을 물려받기엔 많은 시간이 남았다. 일본과 물가는 비슷하지만 시간당 임금은 절반에 불과하니 프리터의 생활로 독립은 불가능하다.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니 집, 자동차도 필요 없을 터이다.



 *일본 청년이 걸어갔던 길을 한국 청년들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경쟁에서 승리한 청년들은 중산층 유지를 위해 더더욱 소비를 줄일 것이다. 부모 세대가 빚으로 가격을 올려놓은 부동산을 살려면 지금 월급의 대부분을 저축해야 한다. 건물을 가진 다른 자녀의 부모에게 월세를 꼬박꼬박 바치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특히 그 부모의 자녀가 외제 차를 끌고 다닐 때면. 아니면, 결혼하지 않은 채 자신을 위한 즐거움과 소비에 탐닉할 수 있다. 이래나 저래나 내 삶은 중산층 이상은 어려울 테니까. 



하지만 이 승자와 패자 모두 억울하다. 아직도 상영 중인 <국제시장>의 덕수 만큼은 아니래도 부모님의 대학 시절보단 훨씬 더 좋은 스펙을 가졌고 노력도 했는데, 부모가 사는 동네에 진입은커녕 그 옆 동네도 어렵다. 매일 야근하랴 피곤해 죽겠는데, 지하철과 버스에 타면 노약자에게 양보하느라 앉을 수도 없다. 담배 가격은 올랐고 앞으로 내야 할 세금은 늘어나는데 그 혜택이 나에게 돌아올지 모르겠다. 



이런 청년들이 많아질수록 부동산에 모든 삶을 바친 베이비붐 부모 세대의 기반도 흔들린다. 신용 팽창으로만의 자산 가격 상승은 한계가 있다. 결국 신용도 담보물이란 실제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층 다수가 중산층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집을 살 만큼의 여력을 지난 수요 주체가 줄어든다. 수요가 없으니 결국 아파트 값은 내려간다. 빚으로 떠받치는 정부의 정책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여생을 위한 복지를 위해 누군가는 세금을 내줘야 하는데, 소비가 없는 청년들에 늘어가는 국가 세수를 메꿔주긴 어렵다. 



부모만큼 살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다. 강남에 태어난 자녀가 강북으로, 강북에 태어난 자녀가 광명과 수원으로, 수원에 태어난 자녀가 화성과 남양주에 거주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중산층의 자녀들이 중산층 진입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자식이 평생을 노력해 부모만큼 혹은 그보다 더 잘 살기 어렵다면, 그 부모도 언젠간 역풍을 맞을 것이다. 



무엇인가 변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 삶을 해결해주는 그런 것이 없으니 다들 잠깐이나마 분노하다 다시 취업 전쟁터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김군 처럼 진짜 전쟁터에 가는 청년들도 생겨난다) "난 우리 부모만큼 살 수 있을까?"라고 걱정하고 노력하는 청년들이 "난 부모가 될 수 있을까?"라고 묻기 시작하며 '달관' 하고 '득도'하기 전에 그들을 구해야한다. 우리를 구해야한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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