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좀 많이 아프시다. 내가 중학생때, 약 11년전쯤 혀암 수술을 하셨고, 그 이후로 계속 쇠약해지셔서 지금은 병상에 누워 계시는것과 허리를 피고 앉아 일어나시는것 이 두 가지의 행동 밖에는 할수 없을 지경에 이르셨다. 의사는 수술후 5년 이상 생존하는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지만 11년쨰 살아 계시니 지금 할머니의 건강에 불만을 가지는 것은 과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수 있다. 하지만 과욕이란 이런 상황에서 쓰는 말이 아니다.

나를 '장손'이라고 끔찍히 아껴주셨던 할머니의 건강에 인간이 바랄수 있는 탐욕의 끝을 보여 준다해서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할머니는 내가 7살때 부모님이 회사에 가시고 너무 외로운 나머지 내가 살던 잠원동에서 할머니 집이 있는 논현동까지 걸어간 나를 위해 생선을 구워 주셨고, (그리고 엄마 아빠를 혼내셨다. 이때만 해도 할머니는 참 기력이 창창 하셨다.) 13살쯤..손가락이 문에 끼여 다쳤을때 나를 위해 직접 달려와 주셨던 분이다.

그리고 이렇게 부모가 아플수록 자식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고 키웠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자식이 부모를 돌보고 키워야 하는것이 인간사의 순리 아니던가.

하지만 우리아빠와 나 그리고 삼촌들을 포함한 집안의 남자들은 이상하게 여자들에게, 특히 당신 들의 엄마에게) 넉살과 애교가 별로 없어서
할머니에게 용돈을 드리고 병원비를 대는 것, 그리고 할머니집에 찾아가 잠깐 할머니의 얼굴을 본후에 마루에 나와 TV를 보는것 정도만 하고 계신다.

물론 앞에서 말한 여러가지 '것'들이 절대 쉬운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엔 생각보다 부모와 인연을 끊고 사는 자식들이 많다. 그렇기에 우리 아버지와 삼촌들은 사실 대단한 효자들이다. 매번 할머니를 생각하고, 집안이 넉넉하곤 어렵건 할머니에게 드릴 용돈을 빠뜨리는 삼촌들은 없다. 돈이 조금 넉넉한 삼촌은 수십, 수백만원짜리 '송이 버섯'을, 돈이 조금 넉넉하지 않은 삼촌도 자신의 한도내에서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애교없는 삼촌들의 역할을, 내가 사랑하는 고모들이 해오셨다.(물론 고모들 또한 재정적인 지원을 함께 한다.) 한 고모는 당신의 인생의 정말 많은 부분을 포기하며 할머니를 병간호 하고 계시고, 또 다른 고모는 매번 오실때마다 할머니의 몸 모든 부분을 주물러 주며 매일 누워 있어 '어디 굳은 부분은 없는지' 걱정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고모는 먹고사는 일이 만만치 않으셔서 자주 오시지는 못하지만, 한달에 별로 되지 않는 휴일을 쪼개가며 할머니집을 찾는다. 마지막에 언급한 고모가 가장 눈물이 많으신 편이다.

하지만 가끔 고모들도 힘들때가 있다. 아니 가끔이 아니라 자주 힘드시겠지만..그리고 그런 고모들의 빈자리를 이제는..

손녀들이, 내 사촌 동생들이 채우고 있다. 나도 삼촌들과 별반 다를게 없어서 할머니에게 애교를 피우지 못한다. 머 아주 가끔 뽀뽀를 해드릴떄가 있지만 정말 가끔이다. 그리고 나의 빈자리를 이제 7살, 4살 먹은 동생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서현이와 수현이가 할머니의 침대 위에서 재롱을 떨고 있다.

분명 한 세대가 지났지만, 아직까지 우리 집안에는 부모를 공양하는 남녀간의 역할이 철저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언제쯤 이 장벽이 허물어질지는..

아마 나의 결심에 달렸을 것이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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