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떠한 정치인과 언변가가 노력해도 움직이지 못하는 국민의 마음이 월드컵 에서는 공 하나 하나, 선수들의 움직임 한순간 한순간에 의해 좌지우지 되곤 한다. 축구가 뭐길래 또 스포츠가 머길래 이렇게 사람들은 거기에 웃고 울며 열광하는 것인가? 미국의 모든 러너(Runner)들이 함께 뛰고 싶어하는 50대 1마일 세계 기록 보유자 조지 쉬언 박사는 자신의 저서 "달리기와 존재하기"에서 스포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스포츠는 당신이 민주당원인지 공화당원인지, 자본주의자인지, 공산주의자인지 따지지 않는다. 스포츠는 본질적인 부분만 따진다. 내 옆에서 뛰던 사람이 내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 입니까?"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회적 신문을 지녔는지 말했음에도 그 사람의 질문은 그치지 않았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입니까?" ....결국에는 당신도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이르게 될 것이다. (달리기와 존재하기
)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좋아하는 스포츠에 열광한다. 조지 쉬언 박사에게 있어서 그것은 달리기이다. 마흔네 살의 심장병 전문의 직을 벗어 던지고 그는 달렸다. 그렇게 5년이 흐르고 쉬언 박사는 마라톤을 3시간 1분에 주파했으며 50대 1마일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그가 달리기에 미치고 몰입하며 느낀 경험들을 적어 놓은 책이 "달리기와 존재하기"이다.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 재미도 없는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이해하지 못하겠다."라고 말이다. 나도 그랬다. 나도 달려보기 전까지는 그 재미도 없이 혼자 땡볕에서 달리는 사람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한달전부터 조금씩 달려 어느덧 140키로미터를 달렸고 난 사람들이 달리기에 "왜"미치는지 그리고 또 왜  달리는 지에 대한 해답을 깨달아 가고 있다. 달리기를 막 시작한 나로서는 그 해답이라는 것이 "달리는 순간은 잠시나마 내 안에 있는 근심들이 떨어져 나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도로만 말할수 있겠지만 달리기와 존재하기에서 조지 쉬언 박사는 자신이 달리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거리에서 나는 잃어버렸던 내 모습을 다시 찾는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도 없고 발견할 수도 없는 내면 깊은 곳 경험할수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수 없는 그 깊은 곳에 감춰졌던 그 모습, 철학자들이 그저 절대고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 상태를 다시 찾는다. 그건 이제 더 이상 허방과도 같은 상태가 아니다. 그 심연은 신이 된다."

아직도 가야할길의 저자 스캇펙 박사는 인간이 가지는 자유의 댓가가 고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고독함은 인간이 언젠가는 겪어야할 죽음과 많이 닮아 있다. 스캇펙은 인간은 항상 자신의 왼쪽 어깨에 죽음이라는 것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그 죽음을 당당히 직면할때만이 인간은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자신의 잠재성을 발휘하며 살아갈수 있다고 하였고 그것은 조지 쉬언이 달리기를 통해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닮아있다.

"하지만 나 역시 달리게 되면 내가 박차고 나온 것들이..편안함이나 따듯함이 아니라는걸...누구도 나를 대신해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사시을..그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으며 그 누구도 대신 죽어지지 않는 다는 사실을 ㅤㄲㅒㅤ달을 때,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고독한 상태가 시작된다. 그 순간, 누구에게도 의지할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원죄란 우리가 지닌 잠재력을 얻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그럼 다시 한번 물어보자. 달리기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한 사람을 이렇게 철학적인 물음과 생각에까지 도달하게 할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달리기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무라까미 하루끼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 마저도 일년에 한번은 꼭 풀코스 마라톤을 달라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일까? 아마 여기에 대답하는 것은 이제 20년정도 살아본 내가 "인생이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해 대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스울수 있는 것이 겠지만 그래도 감히 이런 생각을 해본다.

달리기 라는 것은 고독한 인생과 참 무서우리만큼 닮은 스포츠라고 말이다. 혼자 계속해서 달리다 보면 그 누구도 내 자신에게 "이제 그만 달려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달리는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는 달리는 사람밖에 알지 못한다. 멈추어야 할 순간과 계속 달려야 하는 순간을 결정하는 것도 달리는 사람 자신일수 밖에 없다. 그것은 인생과도 무섭게 닮아 있다. 내가 어떤 일을 성취하고 싶다면 스스로 움직일수 밖에 없다. 내가 어떤 여자를 사랑하고 그녀를 원한다면 스스로 용기를 낼수 밖에 없으며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내 자신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 그 누구도 날 대신해 달려주지 않는 것처럼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나를 위해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달리기는 인간들에게 그 참 매섭고도 혹독한 인생의 본질에 대해 몸소 깨닫게 해준다. 조지 쉬언 박사는 이 '몸'으로 깨닫는 것의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을 거쳐야만 한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방법을 잊어버리기 전의 우리 몸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새로운 몸이 있어야만 그 안에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삶을 불어넣을수 있다."

나는 이번 방학 320키로 미터를 달릴 계획을 세웠다. 현재 140키로 미터를 달렸다. 남은 거리에 도달하기 위해 일주일에 30키로씩은 달려야 한다. 사실 내가 달리게 된 이유는 조지쉬언 박사가 이야기하는 스스로의 존재를 찾아가기 위한 거창한 목표 때문이 아니었다. 살을 빼기 위한 것이었고 멋진 몸을 만들려는 단순한 이유로 그것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책에서 이야기 한것들이 모두 가슴으로 또는 몸으로 와 닿는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난 내가 실컷 달리고 난 뒤에  스스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던 순간을 기억했다.

아마 내가 그 순간 울음을 참지 못했던 이유는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운 내 안에 또 다른 자신을 마주했기 때문이 아닐까..그런 생각을 해보고 있다.  내 이 감정이 맞다면 가슴속에 있는 진짜 내가살아가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난 그 두려움과 당당히 직면하기 위해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달리고 싶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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