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석유가 나지 않는 예맨엔 폭탄이 떨어진다.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면 스스로를 ‘이슬람 국가(IS)’라 참칭한 거대한 테러 조직이 실패한 국가들의 전면에서 전쟁을 벌인다. 방향을 잃은 청년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위해 국경을 넘어 그곳으로 뛰어든다. 이들 중 일부는 바다 건너, 지중해의 휴양지에서 자신의 몸에 달린 폭탄을 터트린다. 




2015년 중동의 일상.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도 손쓸 수 없을 만큼 망가진 그 일상. 한국은 예외라 생각했지만, 올해 초 시리아 국경을 넘은 김 군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최근 김 군의 행방을 찾으러 시리아 국경 취재를 다녀온 김영미 PD를 만났다. IS 점령지까지 접근했던 김 PD는, 도주로가 막힌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고, 시리아 국경을 넘는 청년들의 모습을 담았다. 김 군도 그런 방식으로 IS에 합류했을 것이라 전했다. 



취재 현장에서 김영미PD. (김영미 PD 제공)



박태인(이하 박):김 군의 부모님이 IS를 알았다면, 김 군을 말릴 수 있었을까?



김영미PD(이하 김):그렇지 않았을까. 이번 IS 방송에서도 시청자에게 IS 깃발을 계속 보여줬다. 부모가 아이들의 컴퓨터에서 IS의 깃발을 본다면 위험 신호라 자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방송을 내보내며 IS가 인터넷을 통해 청소년에게 접촉하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유럽에선 학교의 한 아이가 IS에 합류하면, 그 아이가 모집책이 되어 다른 학생 3명을 끌고 간다. 김 군에겐 참 불행한 일이고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실 것 같아 이런 내용을 빼고 싶었다. 하지만 언론인이니까, 난 다른 아이들이 IS에 갈 수 없게 하는 걸 선택했다. 




:테러가 일상화된 시대, 국제 뉴스를 접하는 건 생존의 문제일까?



:맞물려 있다고 본다. 국민들 중에 시리아와 터키가 국경을 맞댄 사실을 아는 분들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터키를 가면 유럽 여행을 가는 것으로 생각하시니까.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집트에서 폭탄 테러가 나는데도 성지 순례를 간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사실을 언론에서도, 여행사에서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보자. 우리 국민 중 사우디의 메르스가 우리나라에서 창궐할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을 거다. 하지만 작년 중동은 메르스 때문에 난리가 아니었다. 중동에 가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국민들이 무식한 게 아니다. 언론이 그만큼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김영미PD에겐 늘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유일한’ 한국인 국제분쟁전문PD. 15년 전 동티모르 내전 취재를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남수단, 시리아, 에티오피아, 요르단 등 세계가 싸우는 곳을 다녔다. 목숨이 위험해 자사 기자를 보내지 않은 언론사에 김PD는 유일한 한국인 취재원이자 비정규직 특파원이었다.





:아직도 국제분쟁 현장에서 한국 언론인은 김 PD님만 보인다. 외롭지 않은가?



:외롭지 않았다. 현장엔 전 세계 다른 외신기자들이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선 밤마다 호텔에서 기자들과 함께 취재 이야기를 나누며 저널리즘에 대해 고민하곤 했다.

 


:분쟁 지역은 위험하지 않은가? 여성 PD라면 더더욱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사실 확인을 할 수 있고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언론인인가 아닌가이다. 물론, 위험하고 힘들고, 돈 들고 빛도 안 나니, 나도 사람인지라 안 가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런 노력이라면 한국에서 뭐라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위험하고 힘들어도 가야 하는 게 이 직업의 운명이다. 아니면 때려 처야 한다. 만약 편안한 곳으로만 골라 간다면 굳이 언론인이란 직업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목숨이 위험했던 적은 없는가?



:IS 취재를 하며 시리아 국경, IS 근거지 바로 근처까지 갔었다. 깊숙한 곳에 있는 마을이라 도주로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위험 신호를 보낼 수 있는 GPS를 갖고 있었지만 여차하면 인질이 될 수 있었다. 나 말고도 스태프 4명이 있었다. 일부러 차 2대로 나눠 가면서 뒤차에 내가 잡힌다면 구하려 하지 말고 도망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들도 가족이 있으니까. 다행히 잘 끝났지만, 취재를 마친 후 다리가 풀렸다. 내가 언제까지 이런 마음고생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도 인간인지라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말 힘들어서 못 하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도 가야 한다.




김PD는 <신문과 방송> 7월호에 기고한 IS 취재기에서 "아이를 찾는 엄마의 마음으로 시리아 국경에 갔다"고 전했다. 엄마라면 아이가 사라진 그 국경을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래서 도주로가 없는 위험한 장소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 목적에 충실했기에 김 PD는 IS에서 한국 대원에 관한 정보를 주겠다며 접근했을 때도 거절했다. 특종의 유혹이 있었지만, 한국인 대원이 언론에 알려진다면 인질로 이용돼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었다. 김 PD는 "한 아이는 놓쳤지만 다른 아이들을 IS의 유혹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방송의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김PD가 제작한 SBS 스페셜 'IS 이슬람 전사, 그리고 소년들'의 한 장면. 

IS에 합류하려 시리아 국경에 서 있는 청년들



:IS에 참수당한 제임스 폴리 기자가 지인이라 알고 있다.

 


:프리랜서 기자들끼리는 서로 잘 알고 지낸다. 제임스의 죽음을 듣고 겁이 났다. 하지만 이 직업의 운명이다. 어쩔 수 없다. 무섭고 힘들며 가고 싶지 않더라도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만둬야지. 어디가 되었건 가야 한다. 



:훌륭한 언론인이 되려면 취재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기자는 훌륭한 일을 하는 직업이 아니다. 주어진 일, 주어진 사명만 하면 된다. 더 훌륭할 필 필요도 없고, 난 훌륭해지고 싶지도 않다. 그냥 기본이라도 하고 가길 바란다.



:그런 기본이나 사명을 가진 언론인이 주변에 많지 않은 것 같다. 



:난 항상 물어본다. 회사원이 되고 싶은지, 언론인이 되고 싶은지. 언론인이 회사를 너무 많이 사랑하면 회사원이 된다. 언론인과 회사원이란 투잡을 할 순 없지 않나.




그녀는 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이 겪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옆 차와 나란히 운전하기 어렵다고 했다. 분쟁의 현장에서 이는 암살을 뜻하기 때문이다. 취재의 상흔이 김 PD의 삶을 괴롭히지만, 그녀는 현장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인이라면 골라갈 수 없다고 말한다. 아직, 한국에선 전쟁 PTSD를 겪는 언론인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사는 없다. 

 



:한국에도 다양한 갈등과 분쟁이 있는데, 왜 국제 분쟁을 취재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의사들이 돈 되는 성형외과나 피부과만 한다면 국민들이 총체적 의료 위기를 맞는다. 누군가는 감염내과, 예방의학과로 가야 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국내 뉴스를 하는 사람은 많다. 만약 국제 뉴스를 취재하는 언론인이 많았다면 난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언론의 국제 뉴스는 외신 받아쓰기가 주를 이룬다. 한국 언론인의 시각에서 보도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강대국의 시선만을 받아들인다면 왜 우리나라 언론이 필요하겠나? 국제 분쟁 뿐만 아니라 청와대 소식도 다 외신을 받아쓰면 되는 것 아닐까? 강대국의 시선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니다. 분쟁의 현장에서 우리 시각으로 기록한 내용이 없다면 후대가 역사를 왜곡해 기억할 것이다. 한국인의 생각은 한국 기자가 가장 잘 알 수 있다. 우리의 시각으로 기록할 필요가 있었기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더욱 열심히 취재했다.   



:독자의 관심이 적기 때문에, 한국 언론이 외면하는 것 아닐까?



:언론사 입장에선 위험한 현장에 자사 언론인을 보내는 것은 부담스럽고 돈도 많이 든다. AP를 통해 뉴스가 쏟아지니, 그런 필요도 못 느낀다. 그래서 국제 뉴스는 점점 더 외면받는다. 언론사는 국민들의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국민들 입장에선 정보가 없으니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 이어져 왔다.



:하지만 최근 취재하신 다큐멘터리와 기사의 반응이 뜨겁다. 국제 뉴스에 대한 한국 사람들이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것 아닐까?



:관심이 증가한 게 아니라, 목말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도 알고 싶은 거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국제 뉴스에 대해 깜깜한 밤 속을 걸어간단 느낌을 받고 있다. 남수단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취재는 정말 힘들었지만 보람찼던 게, 한 남성분이 기사를 읽고 남수단에서 사업 계획을 접었다며 “불을 밝혀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뉴스를 굉장히 필요로 한다. 대단한 수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특출난 게 아니라, 없으니 내 거라도 쓰는 거라고 본다. 그런 책임감 때문에 현장에 가서 최대한 많은 취재를 하려고 한다. 열심히 하려고 한다.



:왜 한국인이 국제 뉴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우리는 혼자 못 산다. 대한민국은 혼자 못 산다. 전 세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서 살고 있고 앞으로 더더욱 그럴 것이다. 곧 지구가 한나절 생활권에 들어갈 텐데 그때 가서, 전 세계의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국제 뉴스에 관심을 가지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로선 더 이상 살 수 없다. 그만큼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  



:취재 중 가장 보람찼던 순간과, 가장 후회스러웠던 순간은?



:동원호 취재를 통해 여론이 상기되고 선원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셨을 때 가장 보람찼다. 후회하는 건, 글쎄. 취재할 때 마다 조금 더 하고 싶지만 시간과 제작비가 부족해 그만둬야 했을 때, 그때마다 조금 후회가 남는다.


 



김영미 PD가 아들을 생각하며 쓴 '세계는 왜 싸우는가', 1쇄 1판은 아들에게 선물로 전했다고 말했다. 

김 PD가 취재한 세계의 다양한 분쟁과 갈등의 원인이 친절하게 설명돼 있다. 




:언제까지 취재하실 계획인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취재할 수 있을 때까지. 위험한 상황에선 내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아이들에게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최근 아이들을 위해 <평화학교>란 책을 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은 아이들에게 국제 뉴스를 알려주고 싶다. ‘플란다스의 개’를 읽은 아이들에게, 그 배경인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역사를 알려주면 좋아한다. ‘안네의 일기’를 읽는 아이들에게 독일과 나치의 역사를 알려주면 좋지 않을까? 아이들과 함께 평화학교를 만들어 세계의 다양한 분쟁 소식을 알리고 싶다. 




김영미 PD의 최근 저작 '평화 학교'는 아이들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겠단 

그녀의 뜻이 충실히 담겨 있다. 

김 PD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평화에 대한 교육은 어릴 때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전쟁과 싸움으로 분쟁을 해결하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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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감기군만쉐 2015.07.22 12:39

    한국 언론의 외국 소식을 보면 외신에 의존해서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번역해서 퍼다 나르기만 하다보니 김정은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는 잘못된 기사를 아무렇지 않게 번역해 올리는 사건도 발생하고... 그곳의 분위기는 전달되지 않는 무미건조하거나 그리스 상황전달 같은 극단적인 기사에만 치중되는 감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느껴지네요. 그나마 김영미 pd님 같은 분이 있으시다는 게 다행으로 느껴집니다.

최근 한 케냐 남성이 평창과 평양을 구분하지 못한 여행사 직원의 실수로 평창이 아닌 평양에 내려 곤욕을 치뤘다는 보도가 화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24일자(현지시각) 1면에 실렸으니 서양 독자들에겐 팔릴만한 뉴스였다. 한국에 사는 콩고민주공화국(이하 콩고) 출신 난민 욤비 토나씨는 이와는 반대의 경우로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콩고에 남겨둔 아내에게 "평양에 가서 다시 연락하리다"라고 편지를 보낸 후 조국의 위협을 피해 허겁지겁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지만 콩고의 전 엘리트 정보 요원도 북한과 남한을 착각한 것이었다. 



"평양이 여기서 먼가요?" 

욤비씨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택시 기사에게 "평양이 여기서 먼가요?"라고 물었으니, 기사도 얼마나 황당했을까. "노노 평양 이즈 노스 코리아, 디스 이즈 사우스 코리아"란 기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욤비씨는 자신이 남한에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가 2002년,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올라섰을 때 토나씨의 한국 생활도 시작됐다. <내 이름은 욤비>는 그가 콩고의 정보국 요원으로 집권 세력과 반군의 '은밀한 거래'를 폭로한 후, 한국으로 도망쳐 2008년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의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불법 체류자로, 외국인 노동자로, 때로는 그냥 "새끼야"로 불리면서 

그 시간을 욤비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6년이란 시간은 그냥 흐른게 아니었다. 한국에서 내가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은 외면과 의심, 그리고 거부였다. 불법체류자로, 외국인 노동자로, 때로는 "새끼야"로 불리면서 고군분투한 시간을 버틴 뒤에야 나는 비로소 콩고에서 온 대한민국 난민이 됐다". 그는 일하던 공장에서 사장의 실수로 화재가 났을 때 방화범으로 몰렸다. 새벽에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팔이 껴 사장에게 전화를 했을 땐 "이 새끼야 지금 몇 신데 전화야 내일 봐 내일"이란 말을 들었다. 한국엔 그를 호기심과 모멸감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대중과, 그를 동물 부리듯 착취하는 악덕 업자, 그리고 그의 난민 인정을 위해 함께 뛰어준 활동가들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난민이 난민임을 인정받기까지

1951년 제정된 난민협약과 한국이 1992년에 가입한 난민 의정서에는 조국으로 돌아갈 경우 인종, 종교, 정치적 의견 등으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난민으로 규정한다. 의정서에 가입한 국가는 난민을 본국으로 강제 송환할 수 없다. 이번 달에만 배가 전복 돼 공식적으로 1,200명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아프리카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탈출하는 이유는 이 조약 때문이다. 콩고 감옥에 갇혀 있다 목숨을 걸고 탈출한 욤비씨도 난민이다. 그는 한국에 와서도 콩고 대사관 직원들에게 신분의 위협을 당했다. 하지만 그가 실제 난민임을 인정 받기까진 6년의 시간이 걸렸다. 2013년 제정된 난민법에 따르면 난민 신청 후 6개월 이내 심사 결과를 고지해야하며(사안에 따라 연장할 수 있음), 6개월 이내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국내 취업을 허용하지만, 욤비씨가 난민을 신청할 땐 그런 제도가 없었다. 그는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그 기간을 견뎌내야 했다. 읽지도 못하는 서류에 서명하고 제대로된 통역 보조도 받지 못한 채 말이다. 하지만 5년을 기다린 끝에 법무부가 내린 결과는 '난민 지위 불허'였다. 


"난민이지만 난민이 아닌 이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난민 지원 기관인<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는 직접 콩고에 가서 욤비씨의 사건을 다룬 기사, 피의자 심문 조서를 받아 법무부에 증거로 제출했었다. 그는 같은 자료를 가지고 법무부를 상대로 한 욤비 씨 행정 소송의 증인으로 참석했다. 김종철 변호사와 김한주 변호사가 6개월간 소송을 준비하고 도왔는데 김종철 변호사는 이후 난민을 지원하는 공익법 센터 <어필>을 차렸다. 욤비씨는 당시 법무부의 불허 소식을 듣고 제삼국으로 떠날 생각도 했었다. 한국에서 4년 동안 기다리다 불허를 받은 난민이 호주에서 몇 주 만에 난민을 인정 받았다는 이야기도 그 때 들었다. 욤비씨는 "난민이지만 난민이 아닌 이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욤비 씨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그 어떤 사람도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욤비 씨는 당시에도 한국말을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호택 씨의 법원 증언 중 이 부분은 "선명하게 들렸다"고 전한다. 그는 이 증언을 들으며 눈물이 핑 돌았단다. "그래, 나는 누가 뭐라 해도 난민이다. 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내가 난민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욤비 씨의 말처럼 그는 한국 정부의 인정과 관계 없이 이미 난민이었다.


"여보 애들아! 우리 이제 만날 수 있겠구나"

"이번 사건은 원고 승소하였습니다" 법무부가 패소했고 욤비씨가 난민임을 인정 받았다. 그는 6년의 기다림 끝에 한국에서 체류하며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6년 간 콩고 정글에서 박해를 피해 떨어져 산 아내와 아버지를 기억 못하는 세명의 자식과도 함께 살 수 있게 됐다. 난민에겐 가족결합권이 있기 때문에 본국에 거주하는 아내와 자식을 불러들일 수 있다. 욤비씨의 아내는 콩고 정글에서 현금 3천 달러를 항상 품에 지녔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뇌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공항에 도착 후 아이들은 엄마에게 아버지란 말을 듣기 전까지 욤비씨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란 사실을 알고 와락 껴안기 전까지 말이다. 안타까웠던 것은 난민에게 법무부가 여권 대신 발급하는 여행증명서를 공항 출입국 법무부 직원이 알지못해 욤비 씨 가족의 입국 심사에서 실랑이가 있었단 것이랄까. 



욤비 씨와 가족들




열매 따다 벌에 쏘여도 다 잊는다.

욤비씨는 한국에서 이제 유명인사다. 난민 인정을 받기 전에는 <피난처>의 활동가로 강연을 하며 얼굴을 알렸고, 난민으로 인정을 받은 후엔 KBS의 <인간극장>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이후 공장 노동자를 거쳐 치과병원 외국인 환자 보조 직원으로, 지금은 광주대학교 조교수로 임용돼 대학에서 인권과 평화를 가르친다. 그는 치과 병원에서 근무할 때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성공회대학교 아시아비정부기구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난민을 인정 받기까지의 삶을 회상할 때 콩고 속담을 즐겨 사용한다. " '콩고 속담에 열매 따다 벌에 쏘여도 내려오면 다 잊는다' 는 말이 있어요. 내 몸을 봐요. 온몸이 상처투성이일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나는 열매 여러 개를 땃어요. 난민 인정을 받았고, 가족을 만났고, 일자리를 얻었고 친구들도 생겼죠. 그러니 벌에 쏘인 상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처럼 운이 좋은 난민이 다신 없기를

하지만 욤비씨는 자신과 같은 난민이 다신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자신처럼 운이 좋은 난민은 없어야 한다며 "나 처럼 운이 좋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이 한국 사회가 바뀌길 바라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년 한국에 난민 지위를 신청한 난민 신청자는 2,896명이다. 한국 역사상 최고 수치로 이는 난민 신청을 처음 받았던 1994년 부터 2014년까지의 난민 신청자 총 누계인 9,539명의 30%에 달하는 수치다. 하지만 같은해 난민 지위를 인정 받은 사람은 1778명 심사 기준 5.2%인 94명에 불과했다. 내전을 비롯한 세계 분쟁의 화염 속에서 세계 난민은 5천만 명에 도달해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도 이 난민들의 실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디론가 가야한다면 우리나라도 그들의 피난처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인 559명이 다른 나라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난민들이 사는 것 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법무부 직원이 법무부가 발행한 여행증명서를 모르는 것은 물론, 내국인과 동일한 일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난민이 <고용지원센터>에 들어갔다 "외국인은 나가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한국의 난민 인식의 실태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에 다른 다민종, 다인종 국가에서 도망친 난민들의 삶을, 관련 경험이 없는 한국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도 문제다. 하지만 이는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난민도 인간이고, 난민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다. 한국보다 잘 살지 못하는 국가도 난민을 받는다. 욤비씨는 "'1980년 5월 18일 한국인들이 독재에 맞서 아니오'라고 외쳤듯 난민 역시 자유와 권리를 위해 자국에서 '아니로'라고 외친 사람"이라 말했다. 그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한국을 꿈꾼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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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지나가다 2016.03.26 19:20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더니...

한 소식이 궁금하면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의 블로그를 찾는다. 김일성 대학을 졸업한 탈북자 출신이라 다른 국내외 기자보다 북한 내부 소식에 정통하다. 같은 대학 출신의 북한 고위 관계자들과 연락망도 유지하는지 그가 쓴 북한 기사는 새롭고 구체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몇 년 전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북한 관련 내용이 다뤄졌을 때, 많은 외신 기자가 주성하 기자의 명함을 얻기 위해 줄을 섰던 모습에서 북한 뉴스에서 그가 가진 위상을 새삼 느꼈던 적도 있다.



그런 주성하 기자가 국내 북한 최고의 전문가로 꼽은 사람이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다. 러시아 사람이 국내 최고의 북한 전문가라니? 바로 란코프 교수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았다. 레닌그라드 대학 동양학부를 졸업한 러시아인. 대학 시절 김일성 대학 교환학생 경험. 세계적 북한학자. 2013년 '전략적 인내' 정책의 효용성을 두고 고심하던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초청한 북한 전문가 다섯 명 중 한 명인 사람. 그의 저서 '리얼 노스코리아'를 읽는 것은 그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좌와 우의 눈이 아닌 현실의 눈으로 보다"


'리얼 노스코리아' 원본은 영어로 쓰였고 한국어판은 NK News 한국지부 김수빈 기자가 번역했다. 한국어판 표지엔 "좌와 우의 눈이 아닌 현실의 눈으로 보다"란 부제가 추가됐다. 원본엔 "실패한 스탈린주의 유토피아 국가의 삶과 정치"라 쓰여있다. 원본의 부제가 저자의 의견을 더 반영한 듯하다. 란코프 교수는 책 초중반 북한이란 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소련과의 관계를 매우 비중 있게 다룬다. 한국어판 부제는 한국 사회의 좌파와 우파가 바라보는 북한의 모습이 왜곡됐다고 주장한 필자의 한국어판 서문과 함께 추가됐다. 



란코프 교수도 이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강경론이 아닌 '풍요한 남한'의 모습을 북한 주민에게 알려 북한 정권의 변화를 요구하는 내부적 압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성 공단을 비롯해 북한과의 경제적 교류의 지속적인 확대를 요구하는 측면에서 주성하 기자는 그를 "넓은 뜻의 햇볕론자"라 말했다. 금발 머리에 하얀 피부색을 가진 학자가 북한을 연구한다고 그의 주장이 더 현실적이고 객관적이라 볼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과 북한의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의 모습. 왼쪽에서 두 번째.


하지만 그의 주장이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의 주장은 국내외 언론의 것처럼 피상적이거나 선정적이며 과도한 추측에 의존하거나, 일부 탈북자 주민의 주장에만 근거해 있지도 않다. 그의 주장엔 "통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나, 국내 정치인과 언론의 애국심도, 눈치 볼 여론과 독자도 없다. 다만 북한 주민에 대한 연민 만이 있는 것 같다.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의 주장 중 주목할 만한 몇몇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1.북한 핵 보유론 

"북한은 틀림없이 핵을 계속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계속되는 내부 불안의 위험과 마주하고 있는 북한은 핵무기를 계속 보유하고자 할 것이다. 핵무장을 한 권위주의 정부는 반란이 일어나도 외부세계가 반군을 지원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경제협력을 위해 핵개발을 포기한 카다피의 안타까운 운명은 북한의 의사결정론자들에게 또 다른 교훈이 되었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북한 정권의 핵무기 개발 목적을 잊도록 한다고 말했다. 북한 정부가 핵을 보유하려는 목적은 핵무기 그 자체가 아닌 '핵'이 가진 외교적 레버리지 때문이다. 지리적, 거시적 지표로 볼 때 북한은 아프리카의 가나와 가장 비슷하다. 인구와 1인당 GDP도 유사하다. 하지만 북한의 국제적 영향력은 가나와 비교할 수 없다. 란코프 교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북한 외교관들이 외국 관계자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사담 후세인이 정말로 핵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여전히 그는 자신의 궁전에 있었을 것이다"   



2.북한의 벼랑 끝 전술

“평양의 벼랑 끝 전술은 때때로 위험해 보이기는 하지만, 지금껏 북한의 지도자들은 어디서 멈추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선을 넘지 않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전면전이 발생할 정도로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을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무력 시위를 능란하게(그리고 매우 이성적으로) 전략의 일환으로 구사했으며, 많은 경우 성공적으로 주변국을 조종해왔다...북한은 비이성적인 국가가 아니다.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증거이다. (북한 엘리트야말로) 극단적일 만큼 이성적이며 어쩌면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마키아벨리스트일 것이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 외교의 전형적 플롯을 위기 조장→긴장 확대→현상 유지의 대가로 보상 요구'로 규정하며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고도로 계산된 매우 영리한 외교 수단이라 평가하고 있다. 2011년 유럽피언 널리즘센터 인턴 기자로 활동하며 브뤼쉘 유럽연합(EU) 의회에서 열린 북한 인권 세미나를 참석했었다. 당시 증언을 했던 군 출신 탈북자를 취재했는데 그는 북한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대남 선전에 참여하거나, 외교 일선에서 뛰지만 한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의사나 변호사를 하니 남한이 매번 북한에 당한다며 한탄 아닌 한탄을 했었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이 핵무기 광신도들에 의해 운영되는 비이성적인 국가란 클리셰"는 진실이 아니라 주장한다. 2007년 2·13 합의를 이끌어낸 6자 회담을 성공적으로 평가한 이종적 전 통일부 장관의 견해와(칼날위의 평화 中),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또 한 번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란 란코프 교수 주장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3.북한의 중국식 개혁 가능성

“보통의 북한 주민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평양의 지도부가 중국을 모방하지 않으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북한 지도부가 고집스레 개혁에 저항하는 것은 그들이 주체사상의 지침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이념적 광신도들이기 때문이 아니며(주체사상 자체도 실질적인 정책의 안내자가 되기에는 너무 모호하다), 외부세계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들은 비이성적이거나 이념적이지 않다. 북한 지도부는 한반도 분단이라는 특수한 조건을 감안할 때 그러한 개혁은 불안정을 조정할 가능성이 있으며, 지베 엘리트의 입장에서 정치적으로(그리고 어쩌면 물리적으로도) 자살하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알기 때문에 개혁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코프 교수는 북한 지도부가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한다. 개방을 하기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풍요한 남한'이 북한 주민에게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접한 북한 주민들이 북한의 억압적인 정권을 용인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현 체제를 유지할 경우에도 2020년대쯤에는 북한에서 '아랍 혁명'과 유사한 시민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 역시 북한 도쿄신문 고미 요지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경제적 개혁개방이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의 독특한 입장을 고려해보면 경제적 개혁개방이 현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불안감이 있다"며 북한의 중국식 개혁개방은 비현설직이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하지만 란코프 교수는 북한 정권의 지속성엔 매우 비관적이다. 그는 북한 정권의 개혁·개방과 상관없이 북한 정권이 머지않아 붕괴할 것이라 계속해 주장한다. 



4.남북한 통일 후 북한 지도부의 단죄 여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김씨 가문 독재의 수하들을 단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의 수는 너무 많고 그들의 죄악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되어 오늘날에는 철저한 수사가 거의 불가능하다. 슬픈 일이지만 정권의 수하와 부역자들을 거부한다는 것은 유용한 경험을 갖추고 필요한 교육을 받은 거의 대부분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단죄란 단지 불가능한 것일 뿐만 아니라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과거의 과오에 대한 명명백백한 대사면 약속이 전면적인 내전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불분명한 표현은 배제하고 나중에도 철회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란코프 교수는 남북한 통일을 위해선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북한 엘리트의 신변 보장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엘리트를 단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통일 후 그들 없이 북한을 관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해법 중 일부로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를 들었다. 



5.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유일한 장기적 해법은 정권의 변화를 일으킬 내부의 압력을 키우는 것이며, 이를 위한 주요한 방법은 북한 사람들이 외부 세계를 더 많이 알게 하는 것이다. 만일 북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엄격하고 궁핍한 삶 말고도 매력적이면서 실현 가능한 대안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필연적으로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질 것이다”



식상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적 북한 전문가라면 무엇인가 놀랍고도 명쾌한 해법을 내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 색다르지 않았다. 그는 북한을 변화시킬 유일한 방법은 북한 주민에게 외부 세계를 알려, 북한 정권의 내부적 압력을 키우자는 것이라 말한다. 북한 주민의 마음에 더 잘 살고 싶다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심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란코프 교수는 남북한 경제협력, 북한 엘리트 층에 대한 학술 지원, 미디어 활용 전략 등을 내세운다. 그는 러시아인 학자 답게 소련의 몰락을 예로 든다. "공산주의 최후의 시대에 소련인들의 상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미국 슈퍼마켓 매대의 광경이었지 미국의 선거 개표 광경이 아니었다고 확언할 수 있다”



   



그의 책에선 "좋은 싫든"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동아시아 정치에서 북한이 의미하는 바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싫든 북한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고 좋든 싫든 북한의 핵무기를 부정할 수 없다. 좋든 싫든 북한의 주변 국가에겐 김정은 정권의 붕괴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을 모두 고려한 현실적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물론 이중 가장 절실한 국가는 한국일 것이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의 붕괴가 멀지 않았다는 경고를 책의 여러 부분에서 하고 있다. 그리고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서울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과 중국의 통제를 받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위성 정권의 등장. 후자의 시나리오는 남북한이 영구적으로 갈라선다는 것을 뜻한다. 분단을 막고 '통일 대박'을 위한 한국 정부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얼마만큼 대비하고 있을까? 기회가 된다면 '현실의 눈'을 가진 러시아인 북한 학자에게 묻고 싶다. "플리즈 텔미 리얼 사우스코리아 디스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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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더러운 과거사 2015.04.23 23:38

    저는 개인적으로 주성하기자님의 블로그를 보면 과장된 글이 많지않아서 좋은데 문제는 네티즌들의 과장된 북한이야기글로 인해 주성하기자님이 피해를 보시는걸 느끼게 되더군요?

    • addr | edit/del 탈북자 2015.05.02 02:54

      뭐가 더러운 과거사라는거지요?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 더럽다는건지??? 배고프면 탈출하지도 말고 그냥 굶어죽어야 하는지 ?

  2. addr | edit/del | reply 탈북자 2015.05.02 02:53

    주성하 기껏해서 김일성종합대학 다녔다는 것 외에 별로 크게 아는 것도 없어요. 진짜 북한은 북한 고위층이었던 강명도씨한테 물어보는게 정답입니다.
    주성하씨 아는 것 만큼은 저도 압니다. 저도 김대 못지지 않은 좋은 대학 다녔거던요...
    어떻게 한 사람의 증언이 다른 3만명 탈북자들의 증언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주성하씨보다 더 고위층에 있어서 비밀을 더 많이 알았던 사람도 많았고, 주성하씨 보다 북한에서 더 오래 살아서 북한에 대해서 더 잘아는 사람도 많을 텐데....

  3. addr | edit/del | reply 더러운 과거사 2015.06.03 10:36

    강명도라는 사람 김일성의 친척이고 칠골강씨이며 강성산 전 북한총리의 사위였다고하나 실제로는 북한내에서도 악명높은 사기꾼이었다고합니다~!!!! 자기가 북한에 있을때 만수대재정경리부실장이라고 해대던데 그거 위조일수 있습니다~!!!! 그가 대한민국에 올수있었던게 바로 중국에서 밀수행위를 저지르다가 북한정부에게 미운털박히자 결국에는 여기 대한민국으로 도망쳐 살수밖에 없다는것이 제의견인것 같습니다~!!!!

  4. addr | edit/del | reply 더러운 과거사 2015.06.20 22:23

    그럼에도 강명도는 이제만나러갑니다에 출연해서 때돈을 벌어왔고 심지어는 경민대 북한학과 교수라는 간판을 달며 온갖 거짓말을 해대는등 선량한 탈북자사회에서도 악명높은 탈북자로 알려져왔으니....

김군(18)은 '자발적'으로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에 합류했고 현재 시리아나 이라크 어딘가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실종과 납치로 시작해 결국 본인의 선택으로 끝난 한국인 첫 IS 가담자 이야기의 결론이다.김군의'자발성'은 귀국 시 정부가 그를 처벌할 근거가 됐다. 



그러나 설령 김군이 자신의 두 발과 의지로 터키의 국경을 넘었다 한 듯, 그의 선택을 과연 자발적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18세 소년의 소용돌이 같은 마음. 삶의 변화를 약속할 누군가의 손이라도 붙잡고 싶었을 취약은 마음을 포획한 IS에 '납치'된 것은 아닐까? 김군은 터키로 떠나기 하루 전 "이 나라와 가족을 떠나 단지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10명 중 1명이 자살을 고민하는(2014년 통계청) 한국 10대 청소년인 그에게 죽음이 아닌 삶을 약속한 것은 IS였다.한국 사회는 김군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어린 소년은 IS에 가담했다. 



현재 중동에는 김군처럼 수많은 무슬림 청년이 자신의 선택이라 믿는 성전에 참여하며 목숨을 내던지고 있다. 저유가, 독재와 부패, 중동 지역의 건조화, 청년 일자리의 부재가 자신을 전쟁으로 떠밀었단 사실을 외면한 채 이들은 강요된 대의를 증명하려 더욱더 잔혹한 칼질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대 중동대전의 시작은 사실 이슬람의 것이 아니었다. 무자헤딘, 탈레반, 알카에다, 누스라전선, 이슬람국가로 연결되는 이슬람 전사의 탄생 역시 중동의 선택이 아니었다. 미국과 소련이란 제국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는 배태됐다. 무슬림 청년에게 코란이 아닌 총을 쥐여준 것도 이들이었다. 



한겨레 정의길 국제분쟁전문기자는 자신의 저서 <이슬람 전사의 탄생>에서 현대 중동대전의 시작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1978년 유혈쿠데타로 세워진 아프가니스탄민주공화국은 이슬람권 국가 중 최초로 설립된 친소련 사회주의 정부였다. 하지만 집권 세력의 통치력 부재와 이슬람을 배격하는 급진적 정책으로, 지역 이슬람 부족 세력의 반발에 휩싸여 정부가 전복되려 하자 소련이 개입한 것이다. 이에 미국 CIA는 중동 국가 사이의 사회주의 혁명을 저지하려 아프가니스탄 부족 이슬람 의용군인 무자헤딘에게 무기와 게릴라전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당시 미국 관료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인도를 견제하려 파키스탄의 핵 확보 필요성까지 언급한다. 







이런 미국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 사이 거점을 마련한 이슬람 전사들은 소련을 몰아내고 아프가니스탄 사회주의 정부를 무너뜨린 탈레반이 된다. 하지만 소련의 철군 후, 미국의 전략 부재로 아프가니스탄엔 부족을 통합할 친서방 정부가 설립되지 못했고 중동의 땅은 이슬람 전사들의 광활한 전쟁터가 된다. 이후 이란의 이슬람 혁명과 그 여파를 두려워한 이라크의 이란 침공. 전쟁 후 빚에 허덕이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이를 저지한 미국의 1차 중동전쟁인 걸프전이 발발한다. 미국은 무자헤딘을 지원해 소련의 침공을 저지하고, 쿠웨이트에서도 이라크를 몰아내는 등 전쟁승리에 취해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키워낸 이슬람 전사들의 최대 적으로 부상한다. '성스러운 중동'의 땅에 침입해 무슬림 형제들을 폭격하는 미국을 적대시한 이들 중엔 빈라덴도 있었다. 그는 2001년 뉴욕 월드트레이트센터 테러를 주도한다.



빈라덴의 뉴욕 테러 이후의 중동은 다시 전쟁에 휩싸인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사담 후세인 정부와 탈레반의 몰락지속된 국지전과 테러미국 주도하에 선출된 이라크 말라키 정부의 소수 수니파 탄압→아랍의 봄→시리아 내전→이라크 내전→IS의 탄생→말라키 정부의 몰락→현대 중동대전까지, 이슬람 무장 단체는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을 포함해 아프리카까지 세력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김군도 그 범위 속에 포획돼 시리아와 이라크의 참혹한 내전 속 어딘가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이처럼 중동대전은 이슬람의 것이 아니었다. 지하드를 외치며 칼리프 국가의 건설을 주장하는 IS는 소련과 미국,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힘겨루기에서 잉태됐다. 제국의 전쟁터가 돼버린 중동의 땅에 넘쳐난 석유는 오히려 이들 국가의 발목을 잡았다. 풍부한 자원은 독점됐고 전쟁의 이유와 수단으로 전락했다. 1979년 소련의 침공 후 지속된 중동전쟁 속에서 태어난 무슬림 청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전사가 되거나, 죽거나, 나라를 떠나 이민자로 차별을 받거나, 차별로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와 다시 전사가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지하드란 대의는 절망 속에 남은 삶의 이유일 뿐이다. 

 


그런 포화 속으로 김군은 들어갔다. 휴전 중인 나라에 태어난 김군에겐 분명 중동의 청년보다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하지만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페미니스트가 싫어 IS가 좋다"던 어린 소년에게 불확실한 미래는 답답한 삶의 숨통을 조여왔을 것이다. IS합류한 그의 자발적 선택은 착취된 것일 수도 강요받은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삶 속에서 벌어지는 선택 중 사실 자발적인 것이 얼마나 되겠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선택이란 가치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김군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달리 하자는 것이다. 김군을 향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이미 김군은 여론으로 처벌받았고 법적 처벌 대상인 피의자가 돼버렸다. 그리고 그 근거는 그의 선택이다. 언론 보도에서 실종과 납치가 가담이란 단어로 바뀐 것 역시 그의 자발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년의 선택은 오로지 자발적이었을까? "단지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어린 소년의 마음에 IS가 먼저 들어왔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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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신동혁은 불완전한 영어로 글을 쓴다. 그의 페이스북을 팔로워하는 1만 3천여 명의 독자 대부분이 영어를 사용하는 서양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서양 독자를 '확보'한 것은 자신이 북한에서 가장 악명 높은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나 자란 후 최초로 탈출한 탈북자이자 어린 시절 어머니와 형을 북한 당국에 밀고해 사형되게 했다는 충격적 고백을 담은 자서전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 블레인 하든이 집필한 신씨의 자서전은 전 세계 24개국에 출판됐고 이후 신동혁은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전 세계를 누비며 북한 인권 탄압을 고발했다. 그의 증언이 UN 북한인권위원회 출범에도 기여했을 정도니 그는 북한 인권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서양 엘리트들 사이에서 꼭 만나보고 싶은 1순위의 인물이 된 것이다. 



이런 그가 지난 1월 자신이 탈출 수기 중 일부 증언을 날조했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악명 높은 14호 수용소가 아닌 18호 수용소 출신이라 밝힌 것이다. 이는 단순히 수용소 숫자의 차이가 아닌, 신씨 자서전에 등장한 그의 극적인 증언 중 상당수가 거짓이란 것을 의미한다. 18호 수용소는 경제범, 혹은 북한 사회에서 성분이 좋지 않은 하층 시민을 모아둔 격리 거주지역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는, 태어나 23세까지 바깥세상은 모른 채 수용소에서 자랐고 북한 당국의 고문과 세뇌로 어머니와 형까지 사형시킨, 서양 중산층 지식인 사이에서 동정과 분노를 일으킨, 그의 존재 기반이 흔들린다는 뜻이다. 그는 증언을 번복하며 "이제 난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없애는 일을 더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신동혁씨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 중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며 고백의 이유를 밝혔는데, 그 역시 자신의 이야기가 서양 언론과 독자에게 이 정도의 열광과도 같은 반응을 지속해서 이끌어내리라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 후엔,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을 알리려는 선의의 의도든, 자신의 명예와 물욕을 위해서든 한번 올라탄 거짓말의 수레를 타고 달리다 이제야 내려온 것이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강렬했고 대중은 매혹됐다.




그러나 사실 탈북자의 거짓말은 인간의 거짓말이 그렇듯 새로운 것이 아니다. 탈북자 출신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10년 전에도 14호 수용소 출신 탈북자라 주장하며 "그곳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쇳물을 부어 죽인다"고 거짓 간증을 한 여성이 있었고 그 여성은 거짓 간증으로 번 돈으로 현재 미국에서 잘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인간의 경험은 원래 불안정하며 자신을 위해 기억을 왜곡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것이 우리의 속성일진데, 거주 및 이동의 자유도 없이 대부분 한 지역에서 살아온 가난한 탈북자들이(북한에서 비교적 이동이 가장 자유롭고 여유로운 평양 시민들의 탈북 비율은 매우 낮다)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알긴 어려운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탈북자가 방송에 출연해 북한의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자신의 이야기가 모든 북한 사람들의 삶을 대변한다는 듯, 혹은 신씨처럼 어머니와 형이 처형된 곳에서 살아남아 삼엄한 북한의 경비를 뚫고 한국으로 탈출했다는 이야기들이 계속 그들과 언론을 통해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엔 비극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살아갈 탈북자들의 생존 문제가 걸려있다. 탈북자 최초로 미국 테드(TED) 무대에 오른 이현서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테드는 그녀를 '초청'하지 않았다. 다만 테드 오디션의 참가를 권유했는데 그 절차는 이렇다. 500명의 청중 앞에서 그녀를 포함해 14개국의 참가자가 자신의 강연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다. 이후 전 세계 테드 시청자에게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영상의 강연자가 미국 본 무대에 설 수 있다. 이런 치열한 경쟁에서 탈북 수기와 북한의 열악한 인권 현실을 전달한 이현서씨의 강연이 1등을 한 것이다.




이런 그녀의 '오디션 성공기'처럼 탈북자들의 이야기도 1등, 혹은 신씨의 것처럼 가장 극적이거나 종편 방송에 나오듯 실감이 나지 않으면 대중에게서 외면당한다. 비극은 곳곳에 널려 있는데, 인간이 동정할 비극의 감정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에선 수 초 마다 새로운 난민과 실향민이 발생한다. 유엔난민기구는 작년 6월 발표한 연간글로벌난민 보고서에서 2차 대전 후 최초로 전 세계 강제 이주민 수가 5천만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이 중 전 세계에서 난민지위를 받거나 난민에 처한 탈북자 수는 1천 166명에 불과하니, 탈북자들은 시리아, 팔레스타인, 수단, 콩고 등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전 세계 난민들과 비극의 경쟁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국내 최고의 북한 전문가로 꼽히는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북한 전문 외신 NK NEWS 기고문에서 “슬프게도, 영양부족과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 교묘하게 제도화된 성폭행은 지구상의 가난한 곳 어디에나 존재한다”며 "평범한 탈북자들의 진실한 이야기는 대중들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극적이지 않으며 자신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처지인 사람들과 경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수용소들에서 대규모 인권 침해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실제 그곳에서 삼엄한 경비를 뚫고 탈북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그들을 제외한 탈북자들 대부분은 경제적 이유로 탈북하게 되는데, 이런 물질적인 동기가 북한 뉴스를 소비하는 "서구의 중산층 지식인들에게 세속적이고 천박한 것으로 비춰진다"며 이런 환경 속에서 탈북자들은 종종 이야기를 과장하거나 지어내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북한 뉴스를 소비하는 서구 중산층은 미국에 집중돼 있는데 지난 7년간 '전략적 인내'로 일관해온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정책으로 부시 정부 때 넘쳐난 북한 뉴스들이 이란 핵 협상, 팔레스타인, '이슬람 국가'등으로 대체된 경향을 보여, 북한에 대한 관심도가 더 떨어진 상태다.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차별받는 현실도 이들의 거짓말에 이유를 보탠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2013년 탈북자 2,355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탈북자의 월평균 소득은 141만 4,000원으로 한국 전체 임금 수준에 절반 정도였고, 실업률은 국내 평균의 3배 정도 높은 9.7%였다.게다가 취업한 탈북자 5명 중 1명이 일용직 근로자라 근로 환경도 매우 불안정하다. 



같은 해 북한 인권정보센터가 조사한 결과에선 조사 대상 탈북자 중 63.5퍼센트가 300만 원에서~2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즉 불안정한 직장, 낮은 임금, 많은 부채로 탈북자들의 지갑 사정을 정리할 수 있는데 이는 현재처럼 경기 침체가 계속된다면 탈북자 중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높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신분을 조선족으로 가장하고 취업한 탈북자들의 증언들은 한국 사회에서 이들을 향한 경제적 차별뿐 아니라 사회적 차별도 만연해 있음을 드러낸다.



신동혁의 최근 페이스북의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고문의 흔적을 사진으로 공유하고 있다. 비록 증언 중 일부는 거짓이지만, 자신이 고문받은 사실, 북한은 인권 탄압 국가란 사실은 틀림없는 진실이라는 것이다. 이효선씨도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북한에 관한 진실"이란 글에서 신씨의 주장 중 일부는 거짓이지만, 북한이 인권 탄압 국가란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다시 한 번 전 세계의 관심을 촉구했다. 



필자도 이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북한은 전 세계에 얼마 남지 않은 3대 세습 봉건 국가이자, 인권 탄압 국가이다. 어떤 정책이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지, 혹은 일부 탈북자 주장이 진실한지를 판단함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탈북자들의 몸에 남아 있는 고문의 흔적처럼 북한에 관한 변함 없는 사실도 존재한다.



2012년 대선, 신동혁은 자신의 트위터에 "생애 첫 투표를 했다. 민주주의를 경험한 역사적 순간, 내 손은 떨렸다"는 글을 썼다.(물론 영어로) 당시 그의 탈북 수기를 진실이라 믿었던 필자는 그의 말에 감동했다. 나에겐 태어나는 순간부터 함께한 민주주의이지만, 북한에서 탈출해 첫 투표를 한 그의 마음을 생각하니 내 심장이 떨렸다. 그리고 지금, 그의 증언이 거짓임을 알게 된 순간에도 내 심장의 떨림은 조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크게 변함은 없다. 그가 자유란 '거창한' 이유든 혹은 '세속적'인 돈을 위해서건 목숨을 걸고 무엇인가를 얻어낸 용감한 인간이란 사실은 변치 않는다.



역사의 흔적을 남긴 위인들을 살펴보면 당시 이들을 움직인 동기 역시 개인적인 영달과 세속적 이유가 많았고 명분은 후대가 덧붙여 주었다. 탈북자가 진실을 말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생존을 위해서건, 관심을 위해서건, 혹은 남한 사람은 알지 못하는 더 큰 대의를 위해서건. 그러나 거짓은 곧 드러나기 마련이다. 어렵겠지만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라 전하고 싶다. 이미 그 진실은 충분히 강력하며, 명분이 필요하다면 이는 역사가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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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RushAm 2015.03.03 16:26 신고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제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잘 알고계신분들은 존경하지 않을수없네요

  2. addr | edit/del | reply 더러운 과거사 2015.03.30 09:28

    탈북자들의 왜곡된 인권증언 이제는 뿌리뽑아야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인권운동은 지속되어야 할것입니다~!!!!

  3. addr | edit/del | reply 탈북자 2015.04.23 04:03

    신동혁씨의 스토리에서 큰 틀은 바뀌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부분에서 일부 번복이 있지만...
    불완전한 영어로 글을 썼다? 좀 웃기는 분이네요. 신동혁씨 여자친구(지금은 부인)분이 미국인입니다.
    신동혁씨 쓴 글을 항상 붙어 있는 여자친구의 교정이 없이 올렸다고 생각하고, 그냥 "탈북자는 영어 잘못한다."라는 biased된 시점으로 글을 쓰며 기자라는 타이틀 갖고 있는게 참 웃기네요.
    박태인씨 한번 영어로 글 써봤으면 좋겠네요. 제가 좀 분석해볼게요. 원어민의 교정을 거친 public figure의 글을 비난할 정도의 수준이면 아마 미국 메이저언론기자 수준 정도는 되는지 ??

    • addr | edit/del @TellYouMore 박태인 2015.04.26 22:08 신고

      통렬한 지적이십니다. 다만 미국 저널리즘 스쿨을 졸업했고 영어를 많이 접한 저에겐 영어가 불완전해 보였습니다. 신동혁씨가 페북에 쓰는 모든 글을 아내에 검수를 받고 올리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4. addr | edit/del | reply 탈북자 2015.05.02 02:59

    저도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글쎄 한국인이 영어를 잘하면 얼마나 잘할가요? 제가 기사를 보면 한국사람들이 쓴 기사를 알아내거던요. 짜임새나 전개에서 벌써 미국사람들의 사고 와 다르더라구요.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전부교육받고,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한인2세~3세가 아닌 이상..한국교과서에 엄연히 문법상 틀렸다고 하지만, 미국사람들은 잘도 사용하는 용어들도 있구요. 미국에서 메이저대학 교수로 30년일한 분의 글을 보고도 미국애가 보고, 이글 "oriental 이 썼지?"라고 바로 알더라구요....

  5. addr | edit/del | reply 에후 2015.05.10 17:19

    참나, 누가누가 더 처절하고 불쌍하게 살아왔는가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동정심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자태가 그저 안쓰러울 따름 ㅡㅡ
    목숨걸고 탈출한 탈북자들 물론 안쓰럽죠. 그치만 거짓말은 아니올시다...
    그 거짓말 하나 때문에 다른 진실들도 가려지게 되고
    참 잘하는 짓이네요~ ㅉㅉ 언제까지 감성팔이 하면서 살건지

  6. addr | edit/del | reply 에후 2015.05.10 17:30

    불과 몇달 전에 "나치 수용소서 거짓말 같은 사랑, 진짜 거짓말이었다."라고 올라왔던 기사가 떠오르네요.

  7. addr | edit/del | reply 더러운 과거사 2015.06.20 22:05

    참고로 2004년도에 군인신분으로 DMZ를 넘어 귀순해 현재 강사로 활동중인 주승현박사가 신동아에서 이렇게 글을 올렸더라구요? "밥벌이 매커니즘 이래도 됩니까?" 오죽했으면 군인출신인 탈북인까지도 극우보수적인 탈북자들의 새빨간 감성팔이 거짓말에 지적을 했을정도이니 짐작이 가더라구요?

  8. addr | edit/del | reply 더러운 과거사 2015.06.20 22:15

    물론 북한은 엄연히 정치범수용소가 있으며 지구상에서 유례없는 3대세습 국가인데다가 몇년전에는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처형되는등 혹독한 공포정치를 감행한 나라인건 충분히 인정됩니다~!!! 하지만 정치범수용소는 알다시피 왠만한 사람도 탈출하기힘들정도로 굉장히 삼엄한곳인데 수용소의 노래를 썼던 강철환을 예로 들자면 이사람은 원래 평양시 대동강구역에서 출생해 재일귀국자출신으로 그의 친할아버지인 강기태가 본래 사업가였는데 본인증언에는 할아버지가 검소하고 수수한사람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부패행위를 일삼았고 돈이면 뭐든지 해결하는 악질분자인 사실이 알려지자 보위부측에서 신고를 해 결국 요덕수용소에 끌려가 10년간 강제노동을 당했으며 강철환은 이때까지만해도 그래도 당에 순응하며 살았는데 1987년 출소직후 요덕군의 한 마을에 거주했을때 탈북하기전까지 고물라디오로 한국방송을 몰래 청취했으며 심지어 맘에 드는 여자만 있으면 이유없이 달려들어 성추행이나 성적희롱을 하는등 온갖 못된짓만 일삼다가 1992년도에 몰래 탈출해 대한민국에 왔고 그뒤로 그는 조선일보 기자로 있으면서 나는 요덕수용소 피해자라고 떠들어대며 극우보수적인발언을 하는등 암튼 대한민국에 온직후 리플리증후군 환자로 살고있다고하니 가련하고 화가나더라구요?

  9. addr | edit/del | reply 더러운 과거사 2015.06.20 22:22

    게다가 극우보수종편방송에 출연한 탈북자들은 사실 정치범수용소는 커녕 다른감옥에 갔다온 탈북자들이라도 전부 북한에서는 비교적 가벼운범죄를 저질러 그나마 정치범수용소보다는 우대가 좋은 노동교양소에 수감되어 오다가 그곳 보위부와 짜서 돈을 매수해서 북한을 떠나 여기 대한민국으로 온 사람들입니다~!!! 정치범수용소에서 쇳물로 뿌려 죽은사람들에 대한 증언을 했던 이순옥씨는 사실 북한내에서도 마을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사기행위를 벌여왔던 여성으로 이순옥과 알고지내던 장인숙이라는 탈북여성의 말에 의하면 "이순옥은 우리마을에서도 평판이 안좋아 그녀가 하는 증언을 보면 정말 소름끼치고 역겨워보인다."고 말을 했을정도이니....!!!! 하지만 이순옥은 그 거짓말증언으로 미국에서 때돈을 벌어 주경숙과 맞수일 정도로 거짓강연을 하러 갈정도이니 대한민국여성인 내가봐도 싫더라구요?

  10. addr | edit/del | reply Alreks Kim 2016.03.17 05:59

    그게 용감한 인간이냐?
    너절한 쓰레기지.

남편이 취직했다. 기뻐 울었지만, 마음 한 편은 씁쓸했다. 그의 나이 만 32세. 전문직을 바랬기에 대학 졸업 후 다니던 '평범하지만 안정적'인 직장의 퇴직은 내가 권유했다. 전문 대학원과 고시를 준비하는 동안 뒷바라지를 했다. 공무원이라 월급이 빠듯해 돈을 모을 순 없지만, 남편이 전문직을 갖는다면야 그게 대수일까. 난 중산층 부모 아래 자랐으나 상류층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3년 후, 남편은 '평범하지만 조금 더 안정적이고 조금 더 월급을 주는 직장'에 겨우 취업했다. 그가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3년간 매일 노력한 것보다 취업 시장의 문이 닫히는 속도가 더 빨랐다.



김경희(32/가명) 씨는 이 정도에 만족하기로 했다. 세상이 어려우니까. 비록 모은 돈은 없지만 지금부터 남편과 노력하고 아껴쓰면 남 부끄럽지 않은 중산층 진입은 가능하니까. 그녀의 부모도 당신보다 내 자식이 더 잘살기를 바랬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다. 이 정도면 한국 사회에서 '선방'한 것이란 걸.



그 어느 때보다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변하고 있다. 계층 상승이 아닌 계층 유지를 위해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2014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서 작년 조사 결과와 비교한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 미끄러진 비율이 2012년 6.4%에서 2014년 10.92%로 증가했고 중산층이 중산층을 유지한 비율은 2012년 82.2%에서 2014년 76.8%로 5.4% 감소했다. 비교 조사를 시작한 2007년부터 2011년 조사까지 관련 수치는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으나 지난 3년간 지속 악화돼 왔다. 



하지만 이런 실제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상상하는' 계층 상승의 가능성이다.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은 인간에게 삶의 추동력을 부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희망은 소비를 늘리고 신용을 팽창시킨다. 더 나아질 것이기에 지금 쓸 수 있고, 투자할 수 있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으며 집과 자동차를 산다. 하지만 이 '희망'이란 관점에서 한국 사회의 심각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 사회에서 계층 상승의 가능성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사회조사를 살펴보면 2009년 '중산층 세대가 생각하는 자식 세대의 계층 상승이 어렵다'는 응답 비율이 27.3퍼센트에서 2013년 42.1퍼센트로 무려 54퍼센트나 증가했고 '중산층 세대가 생각하는 본인 세대의 계층 상승이 어렵다'는 비율도 2009년 43.3퍼센트에서 2013년 54.6퍼센트로 26퍼센트 증가했다.



짧은 기간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일생동안 노력을 한다면"이란 질문의 대답이기에 시민들은 한국 사회의 계층 이동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 



이처럼 계급 상승은커녕 유지마저 어려워진 한국 사회. 청년층의 취업난이 심각해진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버티려 차츰 줄어드는 안정적 일자리에 몰려든 상류층, 중산층, 저소득층의 자녀들이 모두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과 노동 유연성의 증가로 중산층 일자리가 줄어드는 전형적 모래시계 경제에 진입한 한국 사회에서, 계층 유지를 위해 모든 부류의 청년들이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가 갈리는, 중산층의 자녀가 중산층에 남기 어려운 지금의 체재가 유지될 수 있을까?



경쟁에서 패배한 청년들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등장한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비슷한 길을 갈 것이다. 재산의 92%가 부동산인 베이비붐 세대 부모가 건강 관리를 잘한다면 90살 정도까진 살 것이라 유산을 물려받기엔 많은 시간이 남았다. 일본과 물가는 비슷하지만 시간당 임금은 절반에 불과하니 프리터의 생활로 독립은 불가능하다.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니 집, 자동차도 필요 없을 터이다.



 *일본 청년이 걸어갔던 길을 한국 청년들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경쟁에서 승리한 청년들은 중산층 유지를 위해 더더욱 소비를 줄일 것이다. 부모 세대가 빚으로 가격을 올려놓은 부동산을 살려면 지금 월급의 대부분을 저축해야 한다. 건물을 가진 다른 자녀의 부모에게 월세를 꼬박꼬박 바치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특히 그 부모의 자녀가 외제 차를 끌고 다닐 때면. 아니면, 결혼하지 않은 채 자신을 위한 즐거움과 소비에 탐닉할 수 있다. 이래나 저래나 내 삶은 중산층 이상은 어려울 테니까. 



하지만 이 승자와 패자 모두 억울하다. 아직도 상영 중인 <국제시장>의 덕수 만큼은 아니래도 부모님의 대학 시절보단 훨씬 더 좋은 스펙을 가졌고 노력도 했는데, 부모가 사는 동네에 진입은커녕 그 옆 동네도 어렵다. 매일 야근하랴 피곤해 죽겠는데, 지하철과 버스에 타면 노약자에게 양보하느라 앉을 수도 없다. 담배 가격은 올랐고 앞으로 내야 할 세금은 늘어나는데 그 혜택이 나에게 돌아올지 모르겠다. 



이런 청년들이 많아질수록 부동산에 모든 삶을 바친 베이비붐 부모 세대의 기반도 흔들린다. 신용 팽창으로만의 자산 가격 상승은 한계가 있다. 결국 신용도 담보물이란 실제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층 다수가 중산층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집을 살 만큼의 여력을 지난 수요 주체가 줄어든다. 수요가 없으니 결국 아파트 값은 내려간다. 빚으로 떠받치는 정부의 정책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여생을 위한 복지를 위해 누군가는 세금을 내줘야 하는데, 소비가 없는 청년들에 늘어가는 국가 세수를 메꿔주긴 어렵다. 



부모만큼 살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다. 강남에 태어난 자녀가 강북으로, 강북에 태어난 자녀가 광명과 수원으로, 수원에 태어난 자녀가 화성과 남양주에 거주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중산층의 자녀들이 중산층 진입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자식이 평생을 노력해 부모만큼 혹은 그보다 더 잘 살기 어렵다면, 그 부모도 언젠간 역풍을 맞을 것이다. 



무엇인가 변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 삶을 해결해주는 그런 것이 없으니 다들 잠깐이나마 분노하다 다시 취업 전쟁터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김군 처럼 진짜 전쟁터에 가는 청년들도 생겨난다) "난 우리 부모만큼 살 수 있을까?"라고 걱정하고 노력하는 청년들이 "난 부모가 될 수 있을까?"라고 묻기 시작하며 '달관' 하고 '득도'하기 전에 그들을 구해야한다. 우리를 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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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 디트로이트에 사는 제임스 로버트(56)씨는 자동차가 없어 매일 8시간을 걸어 출퇴근했다. 이런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한 대학생은 인터넷 모금 운동을 벌여 3억 원을 모았고 이런 기회를 놓칠세라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는 그에게 중형차를 선물했다. 모금액은 자산 관리를 해본 적이 없는 그를 위해 신탁기금으로 운용될 예정이다. 



차가 없는 사람에게 공짜로 차가 생긴 훈훈한 이야기. 하지만 이런 로버트씨의 이야기가 아닌 그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왜 디트로이트엔 출퇴근을 위한 대중교통이 충분치 않을까. 왜 수십년 간 일해온 '숙련공' 로버트씨의 시간당 임금은 최저 임금보다 약간 높은 10.5불에 불과할까. 왜 평생 성실하게 일한 그가 자산관리를 할 줄 몰라 3억 원을 신탁기금에 맡겼을까.



하나씩 답하자면, 디트로이트에 대중교통이 부족한 이유는 같은 도시에 기반을 둔 미국의 빅3 자동차 회사 포드·GM·크라이슬러가 자사의 이익을 위한 로비를 벌여 대중교통 지원 법안을 저지했기 때문이다. 숙련공인 로버트씨의 임금이 낮은 이유는 그가 대학을 나오지 못해서인데 지방세로 운영되는 미국의 공공교육시스템이 아마 저소득층의 부모와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 살았을 그의 대학 진학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자산 관리를 할 줄 모르는 이유는 저학력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받아온 임금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당장 그에게 차를 공짜로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에게 차가 없는 이유와 그런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문제는 몹시 어렵다.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강력한 이해관계자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표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뿐 문제의 근본적 개선을 외면하는 태도는 로버트씨 일화에 머물지 않는다. 증세, 복지, 청년 실업, 소득 불평등, 교육 격차, 가계 부채, 높은 부동산 가격 등 구조적 개혁이 필요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이를 위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정부와 정치인은 드물다. 개혁은 오랜 시간이 걸리며 그 성과가 늦게 드러나고 현재 기득권의 희생을 담보하기에 그런 주장을 하는 정치인은 지금 당장 생활이 불편해진 유권자의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시카고 대학 경영대학원 석좌 교수인 라구람 G. 라잔 교수는 저서「폴트라인」에서 이런 경우 정부와 정치권이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가계 대출 확대'를 즐겨 사용한다고 말한다. 마치 선거철 인도나 태국 정부가 농부를 위한 지원금을 늘리듯, 정부의 추가적 지출 없이 저금리로 싼값에 돈을 빌려주면 시민들의 소비 여력이 생기고 순간 자산 가격이 올라 부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도록해 불평불만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정책은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됨에 따라 실업 급여 등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국가 정치인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로 사용된다. 그 대표적 예가 1990년대부터 저금리 기조를 유지한 미국이다. 








1990년 이전만 해도 미국 경제는 경제 저점을 찍은 후 생산량은 2분기 만에, 고용은 8개월 후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1991년 경기 불황 후 고용 회복은 8개월의 3배 가량되는 23개월이 걸렸고 당시 일자리를 잃은 유권자의 불만으로 조지 H.W부시는 걸프전의 승리에도 재선에 실패했다. 당시도, 지금도 미국 정치에서 큰 비중이 없는 아칸소 주 최연소 주지사 빌 클린턴이 대선에 승리한 이유로 한국 언론에서 지겹게 인용되는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란 슬로건이 꼽히는데 그만큼 당시 일자리를 잃은 미국 시민들의 불만은 대단했다. 



이후 클린턴 정부는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을 내세워 대표적 사회안전망 중 하나인 공공의료보험을 도입하려했지만 업계의 로비에 포섭당한 양당 정치인의 반대로 실패했다. 이후 중산층과 서민들의 불만을 달래는 임시방편으로 '진보적'이라 평가 받은 클린턴 정부는 중앙은행의 저금리 기조를 유도하고 저소득층 가계에 부동산 대출 확대를 통한 서민 입 틀어막기에 총력을 가했다. 소득이 불안정한 저소득층에게 가계 대출을 해주지 않는 은행들을 일일이 찾아 벌금까지 매겼으니 말이다. 이런 대출 확대가 머 그리 큰 효과를 거두겠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저금리 대출을 받아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집을 살 수 있고, 차를 바꿀 수 있고, 해외 여행을 갈 수 있으며 빚을 내서 산 집의 가격이 올라 또 다른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중산층을 포함한 서민들의 불만은 잦아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라잔 교수는 이런 정부의 정책은 결국 "모든 비용을 미래로 미루는 것"이라 말한다. 저금리 기조와 정부가 지원하는 가계 대출 완화 정책은 리스크를 보상하는 금융 업계에게 부실 대출을 부추겨 부채의 위험성을 높이며, 쇼트 포지션이 없이 낙관론자가 가격 상승을 이끄는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일으킬 뿐 아니라 고용의 증대 역시 비정규직이 다수인 건설 업계에 한정되기 때문에 자산 시장의 거품이 터질경우 더 큰 위기를 막기위해 2007년 금융위기처럼 결국 국민의 막대한 세금이 낭비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이런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리스크에 배팅을 건 금융업계의 고약한 행태는 차차 이야기하자) 



정부는 이런 현실과 달리 저금리가 기업의 투자를 늘리고 다양한 분야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 희망했다. 하지만 기술과 무역 발전으로 비숙련 노동자의 수요가 줄거나 외주화됐고 고용 유연화와 인터넷이 채용 과정을 간편화해 기업의 장기적 투자가 아닌 경기에 맞는 즉각 대처가 가능해져 실제 저금리로 인한 고용 창출 효과가 별로 없었다. 이런 현상은 미국처럼 내수 중심의 국가가 아닌 일본이나 한국처럼 수출 의존형 국가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1985년 플라자 합의 후 초저금리 정책으로 기업의 투자를 유도한 일본 정부는, 기업들이 거의 무이자로 돈을 빌려 인도네시아 등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국가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며 쓴맛을 다셔야했다.

 


2010년에 쓰여진 라잔 교수의「폴트라인」을 4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언급하는 것은 가계 대출 확대 정책의 위험성을 비판한 그의 주장이 2015년 한국 사회에 매우 유효하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사회안전망이 미국처럼 취약하다. 특히 노동 복지가 취약한데, 한국의 실업급여는 미국의 평균 지급기간인 26주보다 더 짧은 최대 6개월이며 지급 금액은 하루 최대 5만원, 한달 최대 150만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80%로 기존 임금의 50%를 실업급여로 지급하고 정치권이 합의해 그 기간을 최대 99주까지 임시적으로 늘린 미국의 안전망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 



여기에 청년 실업과, 이민자 유입 없는 고령화, 부동산 거품까지 겹친 한국 경제 상황에 가계부채 1060조란 비현실적 숫자는 정부와 정치권의 입장에서 가계 대출 완화 정책과 저금리 기조란 시한 폭탄을 계속 유지하게금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기축 통화국이 아니고 수출에 의존하는 구조적 문제로 한국의 저금리 기조는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 대출 완화 정책으로 부채 비율이 높아진 가구들의 디폴트 위험이 단기간에 커질 수 있다.  



라잔은 대출이란 임시방편을 넘어 사회 안전망 확대를 통한 고용 유지로 정부의 무분별한 시장 개입을 방지하고 교육 개혁을 통해 시장 수요에 맞는 노동력을 보충하며, 리스크를 보상하는 금융계의 인센티브 시스템 변화시켜 저금리 상황에서 경제 리스크 확대를 예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정부 개입의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제학자 라잔의 해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의사를 반영해 사회적 타협을 절충하는 정치권의 몫으로 돌아간다.  라잔은 "이런 개혁을 모색하면서 우리가 인정해야할 사실은 바람직한 경제학과 바람직한 정치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정치권의 몫이란 뜻은 그 정치인을 선택하는 유권자의 몫이란 뜻도 되니 결국 해법은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엔 수많은 제임스 로버트가 있다. 매일 8시간을 걸어 출퇴근했지만 직장이 있고, 돌아갈 집이 있었으니 그의 사정은 금융위기 후 직장을 잃고 은행에 집을 압류당한 수백만의 미국인보단 나을지도 모른다.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오랜 시간 걸어 출퇴근하는 한국인은 별로 없지만, 그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으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한국인도 수백만이다. 그런 우리에게 차가 필요하니 차를 주고, 돈이 필요하니 공짜에 가깝게 빌려주겠다는 달콤한 유혹들이 다가온다. 어디선가 현재를 즐기며 돈을 쓰고 미래는 잊으라 말한다. 이젠,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어렵지만 필요한 결심을 해야 한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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