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예술을 믿지 않는다. 


인구 천 만의 나라 벨라루스 언론인 출신인 그녀의 홈페이지엔 "지난 20년간 5권의 책을 쓰며 난 예술이 인간의 많은 것을 담는 데 실패했다고 선언한다"는 글귀가 걸려 있다. 문학도 예술의 일부라면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이 부정한 분야에서 정점에 올랐다.



문학을 부정한 언론인이 어째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까. 역설적이게도 알렉시예비치의 글에 담긴 지독한 

문학성 때문이다. 인생의 진실은 고통에 있다는 문학적 서사의 뼈대는 유지하지만, 허구를 실제 삶의 기록으로 대신한 그 문학성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자신의 첫 번째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알렉시예비치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릴 테니까." 그러나 같은 책에서 그녀는 "모든 것은 문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러시아 문학이 삶의 비밀인 고통과 잇닿아 있음을 언급한다. 평단은 알렉시예비치가 '목소리 소설'이란 새로운 문학 분야를 개척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의 목소리가 스스로 삶을 말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답할 뿐이다.




 



알렉시예비치의 이런 '역설성'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쟁 중 키가 자랄 만큼 어렸고 다리 사이로 떨어지던 피를 부상으로 보고했던 소녀의 목소리에서 터져 나오는 참혹한 전쟁의 모습. 거기엔 기록과 기억, 죽음과 아름다움, 운명과 선택, 삶과 문학의 역설이 담겨 있다.




"남자들로는 부족한 거요? 무엇 때문에 여자들의 이야기가 필요한 거죠? 그건 다 여자들의 환상이란 말이오"



제2차 세계대전 때 참전한 소련 여성만 100만 명이 넘는다. 저격수와 소총수, 공병대 지휘관과 간호사로 참전한 그녀들에게 아무도 전쟁의 기억을 묻지 않았다. 모두들 그네들이 평범한 여자로 돌아가길 바랐다. 


알렉시예비치는 남자의 기록과 여성의 기억은 다르다고 믿었다. 여자의 목소리를 찾아다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름을 날린 여자 저격수를 만나러 가는 길. 알렉시예비치는 저격수가 일하는 공장의 남자 상사에게 핀잔을 듣는다. 여자들의 목소리가 전하는 전쟁은 "환상"이란 핀잔. 알렉시예비치는 이렇게 답한다.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목소리다. "나는 비록 여자지만 수영을 잘했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구하고 싶었어. 옆에서 누군가 물위로 떠 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 사람을 힘껏 붙잡았어...뭔가 차갑고 미끈한 게 만져지더군. 부상당한 병사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내가 데리고 나온 게 사람이 아닌 거야. 글쎄 상처 입은 커다란 물고기더라니까. 사람 키만큼이나 커다란 물고기. 흰 철갑상어였어. 죽어가고 있었지. 나는 녀석 옆에 털썩 주저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 어찌나 속상하고 화가 나던지 눈물이 났어. 이렇게 물고기까지 고통을 당하는 게 너무 속상해서”





똑같은 전쟁을 기억하는 다른 방식. 알렉시예비치는 기록을 기억으로 대체하려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참전 여성은 같은 여성들에게 모욕을 당했다. "젊은 몸뚱이로 내 남편에게 살살 꼬리나 친 전선의 암캐"란 소릴 들으며 "이미 치르고 온 전쟁에 견줘 결코 가볍지도 쉽지도 않은 또 다른 전쟁"을 겪어야 했다. 알렉시예비치는 그 여성의 목소리가 스스로 이야기하길 바랐다. 그녀는 기록과 기억은 같지 않음을, 진실은 "위대한 이야기와 영웅적 사례"가 아닌 "냄새나는 속옷과 평범하고 작은 사람"에 있음을 믿었다. 




"여자들은 무슨 말을 해도, 심지어 죽음을 언급할 때조차도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다는 것을(정말이다!), 아름다움은 여자를 여자로서 존재하게 하는 이유였다"



난 아름다움을 갈구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여자를 갈구할 뿐. 그러나 여자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갈구한다. 가을 길 낙엽처럼 흔한 죽음의 폐허 속에서도 여자들은 아름다워지고 싶었다. "아직은 더 예쁘고 싶었는데...나는 전쟁 내내 다리를 다칠까 봐 겁이 났어. 나는 다리가 예뻤거든", "나는 두 손에 거울을 꼭 쥐었어. 행여 거울이 얼까 봐. 저녁때 보니까 뺨이 동상에 걸렸더라고", "내가 전쟁터에서 예뻤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 그곳에서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이 지나가 버렸어. 다 타버렸지. 그리고는 순식간에 늙어버렸어" 




세 여성의 다른 목소리는 모두 같은 것을 바라본다. 독일군을 죽이고 돌아온 그 날 밤에도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고 싶었다. 전쟁은 어린 소녀를 강간하는 남성의 본능엔 관대했지만, 눈썹을 물들이고 귀걸이를 차는 여자의 본능엔 야멸찼다. 전장엔 남자의 욕망 어린 몸짓과 쾌락의 냄새만이 코끝을 찔렀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건너온 한 여자는 회상한다. "아 끝까지 살아남기만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질까? 이처럼 처절한 고통을 이겨냈으니.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미워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사람 앞엔 모든 길이 놓여 있다. 고결한 곳으로 향하는 길과 비열한 곳으로 향하는 길, 천사로부터 짐승에 이르는 길"



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함께했다. 테러 조직 ISIS는 지난주 금요일 파리에서 129명의 사람을 죽였다. 지금도 인간은 전쟁 중이다. 전쟁이 운명이란 말엔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그때부터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한다. 인생에 주어진 무수한 선택지가 사라진다. 시대의 목격자가 시대의 부산물로 변해버린다. 



"한 병사가 포로를 구타했어요. 나는 그 짓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말렸죠. 그 병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어요. 그건 그의 영혼에서 터져 나오는 아우성 같은 것이었으니까. 나한테 욕을 퍼붓더군요. 있는 욕, 없는 욕, 욕이란 욕은 다 해댔죠. '이년아 벌써 잊었느냐. 저놈들이 한 짓을 벌써 잊어버렸느냐고. 이 쌍년이' 하지만 포로를 때릴 순 없었어요. 그렇게 우리는 각자 자기 행동을 결정해야 했고, 그건 중요한 일이었어요"



"용서하는 게 쉬웠을 거로 생각해? (독일의) 멀쩡하고 새하얀 벽돌 지붕의 집들을 보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 같으냐고. 장미가 탐스럽게 핀 집들...나도 그들이 고통스럽기를 바랐어. 당연히...그들의 눈물을 보고 싶었지. 한순간에 착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기까지 나는 수십 년이 걸렸어. 



인간은 선택할 때 더욱 인간다워진다. 여성을 강간하지 않고 포로를 구타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증오를 용서로 대체하는 과정, 그 과정에 진실이 있다. 그렇다고 증오를 비난하진 않는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엔 독일군뿐 아니라 스탈린을 향한 소련인들의 서릿발 가득한 증오의 편린들이 담겨 있다



그 증오만큼 이 책에는 전쟁의 처참한 현실들이 적혀있다. 무자비한 고통이 있다.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이런 대목을 만날 땐 책을 덮고 고개를 들어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기억나느냐고? 오도독, 오오독 소리. 그 소리가 기억나.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사방에서 오도독하는데 연골이 으스러지고 뼈마디가 뚝뚝 부러져나가는 소리, 짐승의 울음과 같은 처절한 비명들..." 





비극이 이어질수록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너졌다. 삶과 문학이 잇닿는 지점에서 인간은 고통을 내뱉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문학보다 문학적이기에 남은 책장들이 아쉬웠다. 알렉시예비치는 침묵하던 소련의 여자들을 찾아갔다.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스탈린과 함께한 소련의 역사엔 빵 한 조각보다도 의미 없는 무수한 훈장만이 가득했다. 남자는 '전쟁을 신화화'함으로써 그 허무에 맞섰다. 소련의 여자는 '전쟁 후 또 다른 전쟁'을 치르며 숨죽여 기다렸다. 알렉시예비치는 그 여자의 목소리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네들은 많이도 울었다. 소리도 질렀다. 내가 떠나고 나면 그네들은 심장약을 먹었다. 구급차가 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와달라고 부탁했다. "와요. 꼭 다시 와야 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침묵하고 살았어. 40년이나 아무 말도 못 하고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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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4월 17일 금요일 오후. 


엘리자베스 워런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매사추세츠주 존 F.케네디 건물의 로비로 들어선다. 테드 케네디 연방 상원의원을 만나러 왔다. 주어진 시간은 15분. 워런의 목표는 공화당 주도로 진행된 파산법 개정을 막기 위한 케네디의 지지를 얻어 내는 것. 



1980년대부터 정부의 규제 완화로 월스트리트의 대형 은행은 유색 인종, 저소득층, 저학력자, 고령자를 

겨냥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카드 대출을 남발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남은 문제는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채무자의 파산으로 인한 일말의 손해. 대형 은행은 파산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려 했다. 삶의 끝자락에 몰린 수백만 채무자의 파산이 지연될수록 은행의 이자 수입은 증가할 것이다. 



면담은 워런의 설득으로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워싱턴의 실력자 케네디는 워런에게 약속한다. 파산법 개정 반대 운동을 이끌겠다고. 확답을 들은 워런은 보좌관의 눈치를 살피며 사무실을 나와 감격에 찬 울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1995년부터 시작된 싸움은 2005년까지 이어졌다. 10년간 워런은 책을 쓰고, 강연 하고, 코미디 방송에 출연하고 정책을 만들며 파산법 개정을 지연시켰다. 2005년 하원에서 302 대 126, 상원에서 74 대 25란 압도적인 지지로 업계의 법안이 통과되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기 전까지 싸웠다.





워런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백만의 사람이 재정 파탄에 이르렀는데도 이기지 못했다. 우리가 이기지 못했다고? 제기랄, 심지어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어떻게 백전백승의 인생을 살 수 있는가?" 워런의 자서전 <싸울 기회> 표지에 큼지막하게 적힌 문구다. 패배란 살풍경이 익숙한 독자를 유혹하는 이 문장은 원전엔 없는 말이다. 워런은 세상과 치열하게 싸웠지만 대부분 패배했다. 승리는 2012년 매사추세츠주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연방 상원의원 선거를 기록한 책의 마지막 장에만 담겨 있다. 워런은 스콧 브라운 당시 현직 상원의원을 8퍼센트 차이로 따돌렸다. 자신을 감격게 한 테드 케네디의 빈자리를 7년이 지나 스스로 채운 것이다. <싸울 기회>는 '백전백승'를 한 승리자의 기록이 아닌 수많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은 워런의 분투기다.




각주까지 548페이지에 달하는 <싸울 기회> 속에는 많은 일화가 담겨 있다. 그중 1998년 워런과 케네디의 만남을 끄집어낸 건, 이 이야기 속에 워런의 특징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싸울 기회>를 읽기 전, 티머시 가이트너 전 미국 재무장관의 회고록 <스트레스 테스트>를 읽었던 영향도 있었다. 가이트너에게서 사변적 해결책과 완벽에 가까운 경제학적 논리, 미국 재부무 엘리트 관료로 성장한 워싱턴 인사이더의 모습이 풍겼다면, 워런에게선 현실 문제에 천착한 연구자, 열정적인 운동가, 파산의 문턱에 서있는 시민들을 만나며 결국 하버드 교수 자리에 오른 아웃사이더의 맹렬함이 느껴졌다



책의 문체에도 차이가 있다가이트너는 논리를 바탕으로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워런의 책은 독자의 가슴에 불을 댕기려는 연설가와 대화하는 느낌이다.  사람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모두 워싱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잦은 의견 충돌을 겪었다. 각자의 책에서도 서로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주로 워런의 책이 가이트너에 대해 비판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워런은 부시 정부의 재무장관 헨리 폴슨이 도입하고 오바마 정부의 재무장관 가이트너가 주도한 부실자산구조프로그램(TARP)의 의회 감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자본 부족에 시달리던 대형 은행을 위해 마련된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은 그들이 살아온 여정만큼이나 판이했다. <싸울 기회>에서 워런은 가이트너를 가르켜 "장관은 눈이 덮인 산 정상에 있는데 나는 사막을 기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세상과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은 그렇게 달랐던 것이다"라고 회고한다. 가이트너는 워런에 대해 "당내 자유파 중 가장 열렬하고 유창한 비판자"라며 그녀의 비판을 일정 부분 수긍했지만, 그녀가 불공정하며 불투명하다고 비판한 TARP와 '스트레스 테스트'에 대해선 금융위기를 극복한 유일했고 최선의 정책이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싸울 기회>에 드러난 워런은 상투적인 통념에 기대 편안한 연구를 하지 않았다. 파산법 연구를 시작한 1980년대부터 현실 문제에 천착했고 사람을 만났다. 당시 학계와 정치권에서 파산자는 "빚을 떼어먹은 어딘가 구린 데가 있는 사람" 이거나 "흥청망청 돈을 낭비한 무책임한 사람"이라 여겨졌다. 워런은 파산을 앞둔 사람들을 만나러 직접 법정을 찾았다. 통념과 달리 판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대부분의 사람은 탄탄한 중산층 출신이었다. 워런은 파산자 중 90%는 실직과 의료문제, 가족 해체란 세 가지 이유로 본인의 의사완 상관없이 그 자리에 섰다는 것을 증명했다. 통계청 등 각종 정부 기관 자료를 연구해 현대 중산층 가정의 파산이 증가한 이유를 과소비로 꼽는 '과소비 신화'에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2003년 매킨지에 다니던 첫째 딸 아멜리아와의 공동 저서 <맞벌이의 함정>에서 워런은 2000년 맞벌이 중산층 가정이 1970년대 홀벌이 중산층 가정보다 더 궁핍한 살림을 꾸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 원인은 명품 선글라스와 나이키 신발 탓이 아니었다. 30년째 이어진 임금 정체와 필수적 지출인 의료비와 교육비의 증가, 정부 규제 완화로 치솟은 은행의 이자 때문이었다. 





워런에게서 '운동가적 열정'이 느껴지는 건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으로 치환하는 그녀의 특성 때문이다. <싸울 기회>에서 워런은 파산법 연구를 하며 만났던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혼자 살던 80대 할머니가 은행 직원의 소개로 주택담보대출을 변동 금리로 바꾼 후 폭등한 금리를 감당치 못해 길거리에 나앉은 이야기, 이혼 후 불행한 재혼에 중병까지 겹쳐 파산한 40대 여성의 이야기. 조용히 자신의 연구실로 찾아와 부모님의 파산을 서럽게 이야기하던 학생의 이야기. 워런은 정계에 나서기 전부터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논리로 무장한 관료들이 고통 받는 미국의 중산층을 단순한 통계와 숫자로 정의하는 것을 꺼렸다. TARP 의회 감독위원회 위원장 재직 시절엔 TARP 자금이 대형 은행에만 쏠려 소규모 지역 은행의 도산이 잇따르자 "그렇게 잃어버린 기회를 생각할 때마다 아직도 좌절감에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자영업자, 실직자, 이것은 그저 종이에 적힌 숫자가 아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잃은 수백만 명의 사람이다"고 회고한다.


 

마지막으로 아웃사이더적 기질. 2009년 초, 미국 경제가 대공황과 대침체의 갈림길에 섰던 시점에서 워런은 TARP 감독 위원장의 권한으로 오바마 정부의 구제금융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일류 자문 업체와 함께 정부의 구제금융 거래 내용을 분석한 결과 미국 정부는 은행의 부실 자산 매입을 위해 100달러를 쓸 때마다 그 대가로 66달러 가치의 자산을 받아왔단 사실이 밝혀졌다. TARP 거래는 매입 액면가 그대로 이뤄진다는 헨리 폴슨 장관의 말이 거짓이었던 것이다. 언론은 재무부가 국민 세금으로 금융위기를 초래한 대형 은행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론이 들끓었다.오바마 정부의 지지율은 떨어졌다.



워런은 이때 래리 서머스 당시 백악관 경제위원장(전 하버드 총장으로 워런의 상사이기도 한)의 초대로 단둘이 저녁 식사를 하며 '경고'를 받았다고 했다. 다이어트 콜라를 연신 들이켜던 서머스는 워런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웃사이더는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인사이더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요. 하지만 인사이더끼리는 절대로 깨서는 안 되는 한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인사이더끼린 서로 비평하지 않는다는 규칙이지요" 오바마의 핵심 참모이자 가이트너의 멘토이며 차기 미국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로 꼽히던 서머스의 날 선 비판에도 워런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워런은 TARP의 불투명성과 불공정함, 대형은행의 무차별적인 주택 압류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정부를 지속해서 비판했다. 워런은 자신이 대형은행이 제공하는 인사이더의 안락함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다며 "그 클럽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주는 공짜 소다주를 마시지 않을 수 있었고 외부에서 금융 시스템을 연구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내겐 성역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티머시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워런의 <싸울 기회>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책이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인물이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을 두고 상반된 의견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이트너는 결과론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를 대처한 정부의 정책이 옳았다고 말한다. TARP과 스트레스 테스트로 은행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사라져 뱅크런을 막았다. 정부는 이자까지 쳐서 TARP 자금을 모두 회수했다. 분명 한계는 존재하지만 현 체재(Status Quo) 유지를 위해선 그게 최선이었다. 거시적 관점에서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에 필연적 현상이며 대공황의 교훈을 배운 정부라면 구제금융은 불가결한 선택이었다. 이것이 가이트너의 주장이다.   





하지만 워런은 가이트너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만 옳았을 뿐 나머진 모두 틀렸다고 주장한다. 워런은 당시엔 "아무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랐으며 그 위험은 고스란히 납세자가 졌다"며 과정의 철저한 불공정성을 지적한다. 만약에라도 헨리 폴슨과 가이트너 장관의 정책이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면 되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았을 것이란 뉘앙스다. 워런은 연준이 주도한 '스트레스 테스트'는 감독 기관에 충분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불투명한 정책이었다고 비판했다. 소수 장관과 대형은행 CEO에게 미국의 미래를 맡기는 건 무책임한 처사란 것이다. 또한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대형은행의 무차별적 주택 압류를 정부가 성실히 저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 정부의 모습을 "거대한 산불을 안약으로 끄겠다고 하는 것"이라 비유했다. 2009년 2분기 GDP가 -0.4%를 기록하며 감소세가 완연히 꺾여 안정세를 되찾았다는 정부의 낙관적 주장에 워런은 10%가 넘는 실업률 해결을 위한 대책을 요구했다. 워런은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역사와 함께하는 필연적 현상이 아닌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가 초래한 인위적 현상이라 주장한다. 자본에 대한 상식적 규제만 가능하다면 미국 경제는 오랜 기간 공황 없이 안정성을 유지할 것이란 논지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워런의 열정만큼 가이트너의 논리도 빈틈이 없다. 물론 워런의 주장도 논리적으론 나무랄 데가 없다. 어렵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나의 선택이 결정이 옳다는 보장도 없다. 나 역시 평생을 함께해 온 경험과 편견의 소산물이다. 옳다는 말은 우스운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스트레스 테스트>를 읽으며 생겼던 고민이 <싸울 기회>를 통해 약간이나마 해소됐다. 논리만큼 중요한 것은 그 논리에 바탕을 둔 동기이며 태도란 생각이 들었다. (가이트너의 동기가 악하단 뜻은 아니다) 워런의 태도와 삶에 매력을 느꼈다. 기자로서 종요로이 생각할 점들이 많았다. 기존의 체재와 통념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도전 의식. 학문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로 나아가 세상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는 성실함. 인사이더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그들의 성역을 넘나드는 아웃사이더의 자유로움까지. 공부를 하면 할수록 관료의 논리에 포섭돼 길을 잃고 방황하던 나의 머릿속이 조금은 명료해진 느낌이다. 기자는 매일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 최선의 방법은 논리와 지식이란 눈 덮인 산 정상에 있기보단 열정을 품고 뜨거운 사막 속을 걸어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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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가이트너는 말한다. 내가 옳았다고. 나의 정책이 미국 경제를 위기의 수렁에서 구했다고.



<스트레스 테스트>는 금융 위기와 함께 한 그의 재무장관 시절(2009년 1월~2013년 1월)이 담긴 회고록이다. 하지만 다른 회고록과 달리 가이트너의 기록엔 네개의 적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쏟아진다. 그가 겨냥한 적들이란 첫째:빌 클린턴 정부가 물려준 흑자 재정을 8년간 낭비한 공화당. 둘째:뉴욕타임스를 비롯해 흑백논리에 매몰된 하이에나 같은 언론. 셋째:월가의 도적적 해이를 지적할뿐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를 포괄하지 못하는 운동가들. 마지막으로 위기의 심각성을 모른 채 은행가에 구약성격적 심판론만 제기한 대중들이다.






작심하고 쓴 듯한 저서에서 가이트너는 자신이 주도한 정부의 두 가지 프로그램으로 위 네개 집단의 논리를 갈파한다. 그 두 가지 프로그램이란 줄도산 위기에 처한 대형 은행의 부실 자산을 매입한 '부실자산구제금융프로그램(TARP)'과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 상황을 가정하고 은행의 재정 안정성을 평가한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가이트너는 이 정책들의 결과로 미국 경제가 2009년 6월 대공황을 빠져나왔다고 말한다. 

같은 해 12월엔 자신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경제의 뇌관이라 보고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TARP 자금 전액을 상환했다. 이로서 미국 경제는 대침체에서 탈출했단 주장이다.



가이트너는 "일부의 방화범들이 채찍을 피해가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구해내야 했다"고 말했다. 은행가를 처벌하고 그들의 탐욕에 심판을 내리는 것이 당장은 매력적 방안이나 "재앙 속에서 진정한 과업은 재앙을 끝내는 것"이라 말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선 방화범을 처벌할 것이 아니라 먼저 불을 꺼야 했단 것이다. 2009년 경제 위기는 도덕적 심판론을 주장하기엔 그 규모가 너무나 컸다. 이럴 땐, 직관엔 배치되나 '탐욕스러운 은행에 세금을 투입해 신용을 투입하는 정책'만이 유일한 해답이라 주장한다.




2009년 5월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가 실시된 후, 은행에 대한 불신은 정부의 보증으로 사그라들었다. 또한, 평가 대상 중 다수의 은행이 정부의 보증 없이 민간에서 부족한 자본을 확충했다. 같은 해 1분기 -5.4%성장한 미국 경제는 2분기 -0.4%수준으로 회복하며 안정을 찾았다. 당시 가이트너는 오바마 정부가 10%가 넘는 실업률 때문에 당당히 '위기 탈출' 선언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책을 출간한 시점인 2014년 실업률은 6%대였다. 지난 달 미국 노동부 고용 지표를 보면 실업률은 5%까지 하락했다. 선물 시장에서 연내 금리 인상 확률은 72%까지 상승했다. 이런 실증적 결과와 함께 논리로 무장한 가이트너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에게 감탄하고 설복된다. 뉴욕타임스는 좌파 포퓰리즘 언론으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벌인 청년들은 무식한 대중으로, 그의 정책에 반기를 든 공화당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위기 속에서 선거만 생각하는 혐오스러운 정치꾼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가이트너만이 옳고 나머진 모두 틀렸단 것일까? 만약 그의 말이 맞다면, 2009년 앨리자베스 워런이 주재하고 가이트너가 출석한 TARP 의회 감독위원회에서 그의 뒤편으로 "우리의 돈을 돌려달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던 코드핑크 NGO 회원들은 뭘하고 있었단 말인가. 가이트너의 말처럼 곧 미국 정부가 그들의 요구를 "이자를 포함하여 이행하게 될 것"인데 말이다. 가이트너는 회고록에서 "위기란 과학보다는 기술, 분명한 흑백이기보다는 회색으로서, 검증된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절대 부동의 원칙보다는 융통성과 창의력, 겸손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전혀 겸손하지 않은 확신에 가득찬 주장엔 일견 거부감이 들었다. 그의 논리와 내 경험이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2009년 당시 난 미국에서 언론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3시간 떨어진 미주리의 한 시골 마을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던 삼촌은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영난을 겪었다. 매출은 자츰 줄어들었고 삼촌은 최저 임금을 주던 직원들의 해고 여부를 두고 고민했다. 한국에서 등록금을 송금해 주시던 부모님 역시 금융 위기 후 원화 가치가 급락해 은행에서 빚을 내 등록금을 부치셨다. 당시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동기들도 몇몇 보였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제쳐두고라도 당시 삼촌은 가이트너와 오바마에게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을 떠나던 2012년에도 삼촌의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물론, 그가 조언을 구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말처럼 가이트너가 "골드만삭스 CEO 목에 칼을 긋는다고 해도 대중은 또 다른 피에 굶주릴 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구해낸 세상이 주유소를 운영하던 삼촌과, 삼촌에게서 최저 임금을 받던 백인 저학력 노동자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문학적인 세금을 투입해 은행을 살려냈고 대공황에서 벗어났다고 하자. 하지만 최근 앵거스 디턴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서 드러난 것처럼 고졸 이하 백인 남성 10만 명당 사망률이 1999년 이후 30% 이상 가파르게 늘어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답답했다. 고졸 이하 백인 남성은 흑인, 히스패닉계와 함께 금융위기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인구 계층이다.




물론 다시 가이트너의 논리로 돌아오면 답은 쉽다. 정부가 은행의 부실자산을 매입하지 않아 망하게 내버려 뒀다면 미국 경제는 유럽이나 일본처럼 더 큰 수렁에 빠져 백인 남성의 사망률이 지금보다 가파르게 증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책에서 밝힌 것처럼 미국 자본주의엔 "시스템 개선을 위한 노력에도 다음 위기가 또 찾아올 것"이다. 이는 정부가 어차피 또 무너질 시스템에 천문학적 세금을 들였단 뜻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탐욕과 낙관이 허망과 비관으로 순환되며 굴러가는 이 불안정하고 불안한 체재를 유지하려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가이트너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면, 그가 "좌파 선동가"라 지칭한 버니 샌더스 민주당 대통령 예비 후보처럼 정부의 정책을 방해하는 무책임한 여론 선동가처럼 보일까. 내가 미국 유권자라면 버니 샌더스보다 힐러리 클린턴에게, 테드 크루즈보단 젭 부시에게 마음이 갔을 것이다. 단숨에 모든 것을 뒤집을 기세인 '혁명'에 찬동하기 보단 가이트너의 점진적인 개혁이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이트너가 자신감 가득찬 목소리로 역설한 '금융위기 이후의 세상'이 별로 멋져 보이지도, 그 세상을 구해준 것이 그리 고맙지도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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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etweenTheLines 2015.11.10 07:58 신고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LG경제 연구원 '중국경제 위기의 본질은 낙후된 금융' 정리



3가지 이유로 중국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1. 상하이 지수 폭락 2. 실물 경기와 동 떨어진 당국의 7% 성장률 발표. 3. 예상치 못한 위안화 평가 절하. 


명목 달러 기준 세계경제의 13%를 차지하고 세계경제 성장의 30%를 기여하던 중국 경제의 위기감이 번지자 한국을 포함해 중국에 의존해 온 신흥 국가들의 경제 성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상하이 지수 폭락의 원인


올해 5천 포인트까지 치솟은 상하지 지수는 8월 하순 기준 올해 상승 분을 다 잃었다. 6월 12일 주가가 정점을 찍었을 때 상하이 A주식의 PER은 25배, 음성적인 레버리지 차입은 투자 원금의 4.5배 수준. 같은 날, 중국 증권 규제 당국은 장외 차입자금 투자 금지를 발표했고 차입투자시 적정수준인 1.3배를 못 맞춘 깡통개미들의 주식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며 증시가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 



이런 표면적인 이유 외에 2013년 그림자금융 규제가 강화되고 부동산 시장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GDP 193%에 달하는 중국 내 통화량(M2)이 증권 시장으로 과도하게 몰린 점, 중국 인민일보를 비롯해 언론들이 주식 투자를 부추긴 점, 중국 당국이 국영 기업 등의 부채 감축을 위해 주식 투자 광풍을 용인한 점, 홍콩 투자자들의 월경 투자를 허용한 후강통 등이 도입된 점도 상하지지수의 급등과 폭락을 야기한 요소로 작용했다 볼 수 있음. 



지수 폭락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


그러나, 중국 가계 평균 주식비율이 10%미만으로 추산돼 향후 국내 소비에 미칠 파장은 제한적이며, 외국 자본도 7.7%정도이며 대부분 해외적격투자자, 즉 중장기 투자자라 세계 금융 위기로 번질 가능성도 제한적.



상하지 지수 폭락보다 중요한 중국 실물 경제 침체


보고서는 주식 시장의 폭락이 중국 실물 경제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됐다고 지적. 중국 통계청은 2분기 7% 턱걸이 성장을 달성했다고 발표했으나 리커창 지수(물동량, 전기사용량, 신규대출증가율)와 너무 동떨어진 성장률이란 비판이 제기되며 통계조작이란 비판을 받음. 보고서는 7% 성장률과 실물 경제의 주요 지표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다는 표현을 사용. *사견:루치르 샤르마 모건 스탠리 신흥국 담당은 중국 경제의 실질 성장률을 4~5%로 확신하는 칼럼을 WSJ에 기고.



저자는 중국의 전기사용량, 화물물동량의 증가세가 현저히 둔화된 이유로 에너지 6대 소모업종의 부진을 들음. 그런 상황에도 7% 성장이 가능했던 건 전자상거래 활성화, 6월 1조 5천억 위안에 달하는 SOC투자, 팽창적 통화정책 때문이었다며 턱걸이 성장이란 점을 강조.



위안화 평가절하가 중국 수출 증가에 미칠 영향은 불확실


달러대비 4% 하락한 위안화 절하가 중국 수출에 미칠 긍정적 영향력은 불확실. 한국 아세안 등 수출경쟁국들의 통화도 동반하락했으며 수출 부문에 투입되는 수입재 가격의 상승, 미국 소비자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가격탄력성이 낮은 점도 위안화 가치 하락이 미칠 긍정적 효과를 감쇄하는 요인. 그러나 저자는 위안화 절하가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당국의 시장개입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중국 금융시장의 선진화라는 측면에서 높게 평가할 부분이라 지적. 시스템이 환율변동제에 보다 가까워지며 달러 유출 압박 > 위안화 유동성 축소 > 위안화 재발행의 악순환이 끊겨 중국 인민은행의 통화 정책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러나 저자는 중국의 지준율 인하와 팽창정책에도 실제 부담금리가 6%에 달하는 정책과 실물의 괴리로 제조업 등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인구 고령화와 정부 재정 부담 속에 금융 선진화를 통한 투명하고 효율적인 금융시스템 개혁이 차후 중국 성장을 이끌어갈 주요 발판이라 조언.



*사견

최근 중국 경제의 변동성이 커진 것은 과잉투자와 과다부채로 외형적 성장을 이뤄온 중국 경제의 부정적 측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 불안감이 만연하고 당국의 통계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투자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바라보는 건 공산당의 움직임. 증시 개입, 위안화 절하, 지준율 인하 등 중국 공산당의 갑작스런 시장 개입이 투자가들에겐 중국 실물 경제 위기의 시그널로 읽힘. 인민은행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위안화 평가 절하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점과 앞으로 이어질 미국 금리 인상 리스크는 중국 경제의 변동폭을 현재와 같이 이어갈 수도. 



중국 경제 인구 고령화와 투자 감소, 내수 소비 시장으로의 전환은 중국 수출에 의존하며 3~4% 성장을 해온 한국 경제엔 치명타. 한국 경제 역시 내수, 서비스업 위주의 전환을 통해 해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봇물. 그러나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 없인 내수 경제 활성화는 무용지물이라는 점. 현재와 같이 청년 세대가 높은 주거비 부담을 가지며, 중장년층 세대는 부동산 없인 노후 대책 마련이 어렵다는 딜레마 속에서 임금 피크제뿐 아니라 다양한 정책을 통한 돌파구 마련이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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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뉴스가 주최한 공화당 예비 대선후보 TV 토론회. 2천4백만 명의 시청자가 몰릴 만큼 대단한 관심을 끌었고, 그 중심엔 도널드 트럼프가 있습니다. 미국 언론은 물론 국내 언론까지도 트럼프 효과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건, 그의 발언들이 직설적이며 자극적이라 뉴스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 트럼프보다 더욱 기억에 남는 건, 동성결혼과 낙태에 관한 공화당 예비 대선후보들의 태도였습니다. 



2008년과 2012년 미국 대선과 비교해, 동성결혼을 대하는 공화당 후보와 유권자의 유연함은 확연히 늘어났고, 낙태에 관해선 더욱 보수적인 견해을 취했습니다.



공화당이 동성결혼을 껴안으며 부동층 유권자(산토끼)를 끌어들이고, 낙태를 강경히 반대하며 보수 기독교 유권자(집토끼)를 잡으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여기, 제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던 한 장면입니다.



 

폭스뉴스 토론 사회자 메건 켈리가 오하이오주(州) 주지사 존 케이식에게 묻습니다. “만약, 아들과 딸이 동성애자라면,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당신의 입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직설적인 질문입니다. 폭스뉴스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방송사이며 후보들에게 “어떻게 하면 힐러리를 이길 수 있겠는가?”에 관한 방법을 노골적으로 묻지만, 토론 중 쉬운 질문은 마지막 소감을 물을 때 빼곤 없었습니다.


 

케이식 주지사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저는 전통적인 결혼을 지지하지만, 이미 대법원의 판결은 내려졌고 따를 것입니다. 사실, 최근 한 친구의 동성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하여,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제 딸이 동성애자라도 전 딸을 사랑하고 아낄 것입니다. 우리 미국인은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이런 '진보적'인 답변보다 더 놀라운 건, 토론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케이식의 답변을 듣고 박수를 쳤단 사실입니다. 2012년 대선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막판까지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 선언을 미뤘습니다.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주(州) 주지사는 동성결혼을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4년 전, 토론장에서 케이식주시사가 이런 발언을 했다면 청중에게 야유를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케이식은 환호를 받았고 유력한 부통령 카드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는 동성결혼에 관해 급격히 변화된 미국 여론을 반영한다고 보입니다.



출처:퓨 리서치



2015년 현재, 과반수가 넘는 미국 시민(55%)이 동성결혼을 찬성하며 반대는 39%에 불과합니다. 오바마가 망설였던 2012년 당시 48%의 국민이 동성결혼을 지지했고 43%가 반대했으니 3년 만에 10% 정도 오른 것입니다. 종교를 기준으로 분류할 때, 무신론자 10명 중 8명이, 남부 근본주의 기독교인을 제외한 백인 기독교인 10명 중 6명이, 천주교인 중 57%가 동성결혼을 찬성합니다.


공화당이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고선 대선 승리가 어렵습니다.



이번엔, 토론 중 낙태 이슈에 관한 장면입니다.


 

40대 초반에 나이에 초선 연방 상원의원으로 대선에 도전장을 낸 마르코 루비오. 2007년 오바마를 떠올리게 하는 그는 공화당의 미래라 불리는 유력 대권 주자입니다. 일부 미국 정치 평론가들은 루비오(대통령)-케이식(부통령) 카드로 대선 승리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번에도 사회자 메건 켈리가 묻습니다.


 

“당신은 강간(rape)과 근친상간(incest)을 당한 여성의 낙태는 지지합니다. 아이의 잘못 없이 수정이 폭력적으로 이뤄졌다고 하여 낙태를 허용하는 건 정당합니까?”



루비오의 답변입니다. “전 낙태의 예외적인 허용을 지지한다고 말한 적이 절대로 없습니다” 



‘강간과 근친상간을 당한 여성의 낙태도 안 된다‘는 뉘앙스의 발언이었고 루비오는 청중들에게 환호를 받았습니다. 루비오의 강점은 신선함과 유연함으로 꼽히지만, 낙태에 대해 극단적인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최근 갤럽 조사에서 강간/근친상간 시에도 낙태를 반대하는 미국인은 20% 초반에 불과) 



사실 루비오의 발언엔 약간의 거짓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는 강간을 당한 여성의 낙태를 지지하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단지 공개 석상에서 '낙태 지지 발언'을 안 했을 뿐입니다. 이런 루비오의 어중간한 입장은 공화당 예비 대선후보들이 처한 딜레마를 드러냅니다. 



당내 경선 승리를 위해선, 보수적인 당원들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특히 투표 참여율과 조직력이 뛰어난 남부 개신교인의 지지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사회적 이슈에 관해 보수적 입장을 보여야 합니다. 



동성결혼을 거부하기엔, 대선에서 부담이 크니 낙태 이슈에서 강경한 입장을 취해 집토끼를 끌어모으는 모양새입니다. 동성결혼의 반동으로 공화당 후보들의 낙태에 관한 입장이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토론을 벌인 10명의 후보 중 루비오의 발언에 반대하거나 '자신은 낙태 이슈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가졌다고 밝힌 후보는 없었습니다. 



동성결혼과 비교할 때 미국 유권자들이 낙태에 가진 입장은 상당 기간 일정합니다. 퓨 리서치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미국 시민 중 51%가 모든 종류에 낙태에 찬성하며 42%가 반대하는데 오랫동안 이 수치를 유지해 왔습니다. 찬반과 관계없이 낙태를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는 미국인은 49%로 찬반이 팽팽히 맞섭니다. 갤럽 조사에서도 낙태 찬성이 50%, 낙태 반대가 44%로 퓨 리서치 조사와 큰 차이가 없으며 1998년 조사 결과와 2015년 결과의 수치가 거의 비슷합니다.





특히 퓨리서치에 따르면 골수 공화당 지지자인 기독교 근본주의자 중 75%가 낙태를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로 생각합니다. 이는, 당내 경선에서 승리할 때까진 공화당 후보들의 낙태 반대 입장이 더욱 강경해질 것임을 뜻합니다. 공화당원들이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을 린 없으니, 당내 대선후보로 뽑힌 후에 보다 유연한 태도로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엔 최근 공개된 미국 가족계획협회(Planned Parenthood) 임원들의 대화를 몰래 촬영한 동영상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족계획협회는 연방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는 여성단체(낙태 옹호 및 지원)인데, 영상에서 협회의 임원들이 의학 연구용으로 유산된 태아의 조직을 제공하는 문제에 대해 대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상이 공개된 후, 공화당과 기독교 단체들은 가족계획협회가 ‘태아의 조직을 불법거래’하고 있다며 국정조사를 원하고 있고, 가족계획협회와 힐러리를 비롯한 민주당 측에선 해당 단체가 ‘태아의 조직을 불법으로 거래한 사실이 없다“며 공화당이 여성의 건강 선택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동성결혼 이슈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하는 보수적 기독교도들이 낙태 이슈로 새로운 활력을 찾아 세력을 결집하고 있습니다. 



이는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에게 양면의 칼입니다. 낙태를 ‘여성의 건강 선택권’으로 보는 힐러리는 공화당 후보들의 낙태 반대 입장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이들을 여성 권리에 반하는 극단주의자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이런 전략은 힐러리가 여성의 입장만을 지지하는 ‘여성 후보’로 보여 후보의 확장력을 약화할 위험성도 존재합니다.


 

분명한 건, 앞으로 이어질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 동성결혼은 주요 이슈가 아니란 점입니다. 이는 두 정당에새로운 숙제를 안겨줍니다. 



민주당은 동성결혼을 넘어서, 젊은 유권자를 비롯한 집토끼 지지 세력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이슈를 찾아야 하고, 공화당은 낙태를 통해 집토끼 유권자를 보듬으면서도, 극단적 입장을 피해 실제 대선에서 중도층 유권자와의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트럼프보다 더욱 중요한 미국 대선의 새로운 변화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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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판별사’로 알려진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투기적 거품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가격 상승 가능성에 대한 소식이 투자자들의 열광을 자극하고, 그런 열광이 심리적 전염을 통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퍼지는 상황”



그는 투자자가 자산 가치에 의문을 품지만, 투기꾼의 흥분과 타인에 대한 부러움에 투기적 시장을 벗어나기 어려운 밴드웨건 효과에 빠진다고 지적합니다. 심리적 거품이 투기꾼을 계속 불러 모으고, 그 투기꾼들이 가격 상승을 합리화한단 것입니다. 



최근 폭락과 급등을 반복한 중국 주식시장의 모습을 다룬 뉴욕타임스의 기사에선, 실러가 정의한 투기적 거품의 모습을 그대로 빼쏜 중국인들의 일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식 거래가 새로운 스포츠로 변해버린 풍경. 농민, 가정주부, 대학생, 공장 근로자 등 수백만명의 중국인들이 주식 거래장으로 변한 주민 센터에서 북새통을 이루며 주식의 등락을 무작스럽게 관람하는 모습. 주식이란 도박을 지켜보며 신난 얼굴로 카드 도박을 하는 아주머니의 손끝에서 중국 주식시장의 거품이 중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 전반에 미칠 엄청난 파급력을 상상케 합니다.



지난 2분기에 중국 내 개설된 주식계좌가 3천8백만 개라 하니, 성실히 일하면 공정한 경쟁 하에 성공할 수 있다는 중국의 ‘권위주의적 메리토크라시’ 철학에도 서서히 금이 가는 형국입니다. 



문제는 한때 5천 포인트 넘게 솟아오르던 중국 증시의 추세가 ‘상승장’에서 ‘하락장’으로 급변했단 것입니다. 27일 8.48%나 떨어진 건 물론, 당국의 안간힘에도 하락 추세가 멈추질 않습니다. 이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주식시장에 뛰어든 중국인 대부분이 도박판에서 ‘패배’한다는 걸 뜻합니다. 소수의 승자라도 있다면, 실패자의 우매함을 탓하겠지만, 모두가 실패한다면 시장, 즉 정부를 탓하는 것이 투자자의 속성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합니다.



이런 투기적 광풍이 정권에 부담을 주진 않을까 우려했는지, 중국 관영언론 차이나 데일리는 “재앙은 마지막 시험대를 제공했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탐욕은 위험한 것”이라며 투기적 투자자들을 비판하고 증시가 아닌 안정적인 채권 투자를 권고했습니다. 또한 추후 정부의 개혁으로 증시가 폭락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증시가 폭락하는 것은 개혁 때문이 아닌 개혁을 하지 않아서"라며 "개혁을 탓하지 말라”는 경고도 전했습니다. 



중국은 미국에 이은 세계 2대 경제 대국입니다. 이런 경제 규모로 7% 성장을 하는 건 사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엔 세계 최고 수준에 소득 불평등이 잠복해 있습니다. 루이스 전환점을 찍은 중국 경제라 중국 대졸자들도 한국 청년처럼 취업난에 허덕입니다. 평생 성실히 일해도, 초고성장 기간 투자와 투기의 틈새에서 돈을 쓸어 담은 부모 세대와 그 자녀인 푸얼다이를 따라잡긴 어렵습니다. 계급 상승 사다리가 무너진 것입니다. 그런 현실에서, 놀라운 상승세를 보인 증시는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상당한 기대감을 심어줬습니다. 물론 폭락한 시장은 언젠간 안정세를 찾고, 다시 상승할 것입니다. 시장의 장기적 가치를 고려치 않은 중국 당국의 무분별한 자금 투입이 소정의 성과를 거둘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광폭의 등락 속에서 자신의 주머니를 지키고 살아남을 투자자가 그리 많진 않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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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Stock Downturn Hits Chinese Investors in the Heart, Not Just the Wallet"

차이나 데일리:"Disaster is Providing ultimate 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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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후루사토(ふるさと) 세금이 있다. 후루사토는 한국말로 고향(故鄕)이니 고향세란 뜻이다. 단어에 세금이 붙지만, 정확히는 세금감면 제도다. 자신의 고향 혹은 자신이 원하는 시골 마을에 특정 액수를 기부하면 소득세와 주민세를 기부 액수와 가깝게 감면해준다. 기부를 받은 지방 소도시는 기부자에게 지역 특산물을 답례로 제공한다. 조금만 에돌면이 일본의 독특한 세금감면 제도에서 그리스와 유로존 위기의 본질을 읽을 수 있다. 



후루사토 세금(이하 후루사토)은 아베 총리가 2007년 1차 내각 시, 지방과 도시의 격차를 줄이는 방안으로 제안했고, 이듬해 시행돼 2012년에만 10만 6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이유로, 세금 혜택도 크지만,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고향 경제를 되살린다는 보람이 꼽힌다. 최근엔 기부자에게 소고기와 고급 해산물 등을 제공하는 지방 소도시간의 경쟁이 과열돼 일본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자체적인 절제'를 요구할 만큼, 후루사토 열풍이 대단하다. 



기부자에게 제공하는 지방 소도시의 특산물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성공한 정책 사례로 꼽은 이 후루사코의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바로 애국심. 일본인이 일본인을 돕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사는 도시에 쓰여야 할 세금이, 나의 고향 혹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방 소도시에 쓰여도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다. 또한, 지방 경제가 살아나면 결국 일본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라, 그 혜택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믿음도 있다. 한 국가, 한 국민이란 의식은 후루사토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기본 뼈대다. 우리가 내는 세금 대부분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쓰인다. 



하지만 유럽엔 그런 의식이 없다. 독일인은 독일인이고, 그리스인은 그리스인이다.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독일 사업가가 그리스 아테네 연금 생활자를 위해 후루사토를 할 이유는 없다. 청년 실업률이 20~40%에 달하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와 그리스보다 못 사는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 시민들은 사실 도울 여유도 없다.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세금으로 부도 위기에 처한 말레이시아를 돕자는 후보가 있다면, 참으로 황당할 것이다. 한국인이 말레이시아를 타국으로 생각하는 것과 유럽인이 그리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리스를 제외한 유럽연합 국가들의 지도자는 자국민에게 유럽연합을 지키려 그리스를 위한 후루사쿠를 설득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이를 뉴욕타임스는 "네덜란드가 동부 코네티컷 주가 되어 남부 앨라배마 주(그리스)를 돕는 것"이라 지적했다. 문제는 지금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 시민들에게, 유럽연합이란 거대한 대의는 공허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2011년 유로존 위기가 본격화될 당시, 브뤼셀 비영리 언론단체에서 일하며 유럽연합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만난 많은 사람들 중 중 자신을 "유럽 시민(European Citizen)"이라고 소개한 사람은 없었다. 함께 근무하던 스코틀랜드인은 자신이 영국이 아닌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강조할 만큼 유럽인들의 국가별 정체성은 단단하다. 1993년 유럽연합이 출범하고 2002년 유로화가 도입됐을 땐 제러미 리프킨의 낙관적 저작 '유러피언 드림'의 주장처럼 미국의 세기는 가고 유럽의 시대가 올 것 같았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유럽 시민들을 배제한 채, 독일을 끌어안고 미국을 겨냥한 유럽 엘리트 정치인만의 작품이었다. 



물론 현재로선, 그리스 치프라스 정권의 치킨 게임이 일단락되고, 트로이카와의 구제 금융 협상이 시작돼 그렉시트의 고비는 일견 넘긴 듯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리스를 위한 유럽연합의 '후루사토'가 지속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후루사토가 지키려는 유럽의 통합은 실업에 허덕이는 유럽 청년들과 5년간의 긴축 재정으로 GDP가 25%나 감소한 그리스 시민이 감내할만한 것인가. 



트로이카라 불리는 채권단은 2010년부터 현재까지 그리스에 2,330억 유로를 지원했고 이번 달 협상이 체결되면 3년간 최대 860억 유로(약 108조원)를 제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각자의 애국심으로 거리로 나선 각국의 유럽인들은 외친다. 우리는 서로의 후루사토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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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석유가 나지 않는 예맨엔 폭탄이 떨어진다.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면 스스로를 ‘이슬람 국가(IS)’라 참칭한 거대한 테러 조직이 실패한 국가들의 전면에서 전쟁을 벌인다. 방향을 잃은 청년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위해 국경을 넘어 그곳으로 뛰어든다. 이들 중 일부는 바다 건너, 지중해의 휴양지에서 자신의 몸에 달린 폭탄을 터트린다. 




2015년 중동의 일상.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도 손쓸 수 없을 만큼 망가진 그 일상. 한국은 예외라 생각했지만, 올해 초 시리아 국경을 넘은 김 군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최근 김 군의 행방을 찾으러 시리아 국경 취재를 다녀온 김영미 PD를 만났다. IS 점령지까지 접근했던 김 PD는, 도주로가 막힌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고, 시리아 국경을 넘는 청년들의 모습을 담았다. 김 군도 그런 방식으로 IS에 합류했을 것이라 전했다. 



취재 현장에서 김영미PD. (김영미 PD 제공)



박태인(이하 박):김 군의 부모님이 IS를 알았다면, 김 군을 말릴 수 있었을까?



김영미PD(이하 김):그렇지 않았을까. 이번 IS 방송에서도 시청자에게 IS 깃발을 계속 보여줬다. 부모가 아이들의 컴퓨터에서 IS의 깃발을 본다면 위험 신호라 자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방송을 내보내며 IS가 인터넷을 통해 청소년에게 접촉하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유럽에선 학교의 한 아이가 IS에 합류하면, 그 아이가 모집책이 되어 다른 학생 3명을 끌고 간다. 김 군에겐 참 불행한 일이고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실 것 같아 이런 내용을 빼고 싶었다. 하지만 언론인이니까, 난 다른 아이들이 IS에 갈 수 없게 하는 걸 선택했다. 




:테러가 일상화된 시대, 국제 뉴스를 접하는 건 생존의 문제일까?



:맞물려 있다고 본다. 국민들 중에 시리아와 터키가 국경을 맞댄 사실을 아는 분들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터키를 가면 유럽 여행을 가는 것으로 생각하시니까.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집트에서 폭탄 테러가 나는데도 성지 순례를 간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사실을 언론에서도, 여행사에서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보자. 우리 국민 중 사우디의 메르스가 우리나라에서 창궐할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을 거다. 하지만 작년 중동은 메르스 때문에 난리가 아니었다. 중동에 가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국민들이 무식한 게 아니다. 언론이 그만큼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김영미PD에겐 늘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유일한’ 한국인 국제분쟁전문PD. 15년 전 동티모르 내전 취재를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남수단, 시리아, 에티오피아, 요르단 등 세계가 싸우는 곳을 다녔다. 목숨이 위험해 자사 기자를 보내지 않은 언론사에 김PD는 유일한 한국인 취재원이자 비정규직 특파원이었다.





:아직도 국제분쟁 현장에서 한국 언론인은 김 PD님만 보인다. 외롭지 않은가?



:외롭지 않았다. 현장엔 전 세계 다른 외신기자들이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선 밤마다 호텔에서 기자들과 함께 취재 이야기를 나누며 저널리즘에 대해 고민하곤 했다.

 


:분쟁 지역은 위험하지 않은가? 여성 PD라면 더더욱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사실 확인을 할 수 있고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언론인인가 아닌가이다. 물론, 위험하고 힘들고, 돈 들고 빛도 안 나니, 나도 사람인지라 안 가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런 노력이라면 한국에서 뭐라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위험하고 힘들어도 가야 하는 게 이 직업의 운명이다. 아니면 때려 처야 한다. 만약 편안한 곳으로만 골라 간다면 굳이 언론인이란 직업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목숨이 위험했던 적은 없는가?



:IS 취재를 하며 시리아 국경, IS 근거지 바로 근처까지 갔었다. 깊숙한 곳에 있는 마을이라 도주로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위험 신호를 보낼 수 있는 GPS를 갖고 있었지만 여차하면 인질이 될 수 있었다. 나 말고도 스태프 4명이 있었다. 일부러 차 2대로 나눠 가면서 뒤차에 내가 잡힌다면 구하려 하지 말고 도망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들도 가족이 있으니까. 다행히 잘 끝났지만, 취재를 마친 후 다리가 풀렸다. 내가 언제까지 이런 마음고생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도 인간인지라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말 힘들어서 못 하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도 가야 한다.




김PD는 <신문과 방송> 7월호에 기고한 IS 취재기에서 "아이를 찾는 엄마의 마음으로 시리아 국경에 갔다"고 전했다. 엄마라면 아이가 사라진 그 국경을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래서 도주로가 없는 위험한 장소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 목적에 충실했기에 김 PD는 IS에서 한국 대원에 관한 정보를 주겠다며 접근했을 때도 거절했다. 특종의 유혹이 있었지만, 한국인 대원이 언론에 알려진다면 인질로 이용돼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었다. 김 PD는 "한 아이는 놓쳤지만 다른 아이들을 IS의 유혹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방송의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김PD가 제작한 SBS 스페셜 'IS 이슬람 전사, 그리고 소년들'의 한 장면. 

IS에 합류하려 시리아 국경에 서 있는 청년들



:IS에 참수당한 제임스 폴리 기자가 지인이라 알고 있다.

 


:프리랜서 기자들끼리는 서로 잘 알고 지낸다. 제임스의 죽음을 듣고 겁이 났다. 하지만 이 직업의 운명이다. 어쩔 수 없다. 무섭고 힘들며 가고 싶지 않더라도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만둬야지. 어디가 되었건 가야 한다. 



:훌륭한 언론인이 되려면 취재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기자는 훌륭한 일을 하는 직업이 아니다. 주어진 일, 주어진 사명만 하면 된다. 더 훌륭할 필 필요도 없고, 난 훌륭해지고 싶지도 않다. 그냥 기본이라도 하고 가길 바란다.



:그런 기본이나 사명을 가진 언론인이 주변에 많지 않은 것 같다. 



:난 항상 물어본다. 회사원이 되고 싶은지, 언론인이 되고 싶은지. 언론인이 회사를 너무 많이 사랑하면 회사원이 된다. 언론인과 회사원이란 투잡을 할 순 없지 않나.




그녀는 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이 겪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옆 차와 나란히 운전하기 어렵다고 했다. 분쟁의 현장에서 이는 암살을 뜻하기 때문이다. 취재의 상흔이 김 PD의 삶을 괴롭히지만, 그녀는 현장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인이라면 골라갈 수 없다고 말한다. 아직, 한국에선 전쟁 PTSD를 겪는 언론인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사는 없다. 

 



:한국에도 다양한 갈등과 분쟁이 있는데, 왜 국제 분쟁을 취재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의사들이 돈 되는 성형외과나 피부과만 한다면 국민들이 총체적 의료 위기를 맞는다. 누군가는 감염내과, 예방의학과로 가야 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국내 뉴스를 하는 사람은 많다. 만약 국제 뉴스를 취재하는 언론인이 많았다면 난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언론의 국제 뉴스는 외신 받아쓰기가 주를 이룬다. 한국 언론인의 시각에서 보도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강대국의 시선만을 받아들인다면 왜 우리나라 언론이 필요하겠나? 국제 분쟁 뿐만 아니라 청와대 소식도 다 외신을 받아쓰면 되는 것 아닐까? 강대국의 시선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니다. 분쟁의 현장에서 우리 시각으로 기록한 내용이 없다면 후대가 역사를 왜곡해 기억할 것이다. 한국인의 생각은 한국 기자가 가장 잘 알 수 있다. 우리의 시각으로 기록할 필요가 있었기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더욱 열심히 취재했다.   



:독자의 관심이 적기 때문에, 한국 언론이 외면하는 것 아닐까?



:언론사 입장에선 위험한 현장에 자사 언론인을 보내는 것은 부담스럽고 돈도 많이 든다. AP를 통해 뉴스가 쏟아지니, 그런 필요도 못 느낀다. 그래서 국제 뉴스는 점점 더 외면받는다. 언론사는 국민들의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국민들 입장에선 정보가 없으니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 이어져 왔다.



:하지만 최근 취재하신 다큐멘터리와 기사의 반응이 뜨겁다. 국제 뉴스에 대한 한국 사람들이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것 아닐까?



:관심이 증가한 게 아니라, 목말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도 알고 싶은 거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국제 뉴스에 대해 깜깜한 밤 속을 걸어간단 느낌을 받고 있다. 남수단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취재는 정말 힘들었지만 보람찼던 게, 한 남성분이 기사를 읽고 남수단에서 사업 계획을 접었다며 “불을 밝혀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뉴스를 굉장히 필요로 한다. 대단한 수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특출난 게 아니라, 없으니 내 거라도 쓰는 거라고 본다. 그런 책임감 때문에 현장에 가서 최대한 많은 취재를 하려고 한다. 열심히 하려고 한다.



:왜 한국인이 국제 뉴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우리는 혼자 못 산다. 대한민국은 혼자 못 산다. 전 세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서 살고 있고 앞으로 더더욱 그럴 것이다. 곧 지구가 한나절 생활권에 들어갈 텐데 그때 가서, 전 세계의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국제 뉴스에 관심을 가지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로선 더 이상 살 수 없다. 그만큼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  



:취재 중 가장 보람찼던 순간과, 가장 후회스러웠던 순간은?



:동원호 취재를 통해 여론이 상기되고 선원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셨을 때 가장 보람찼다. 후회하는 건, 글쎄. 취재할 때 마다 조금 더 하고 싶지만 시간과 제작비가 부족해 그만둬야 했을 때, 그때마다 조금 후회가 남는다.


 



김영미 PD가 아들을 생각하며 쓴 '세계는 왜 싸우는가', 1쇄 1판은 아들에게 선물로 전했다고 말했다. 

김 PD가 취재한 세계의 다양한 분쟁과 갈등의 원인이 친절하게 설명돼 있다. 




:언제까지 취재하실 계획인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취재할 수 있을 때까지. 위험한 상황에선 내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아이들에게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최근 아이들을 위해 <평화학교>란 책을 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은 아이들에게 국제 뉴스를 알려주고 싶다. ‘플란다스의 개’를 읽은 아이들에게, 그 배경인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역사를 알려주면 좋아한다. ‘안네의 일기’를 읽는 아이들에게 독일과 나치의 역사를 알려주면 좋지 않을까? 아이들과 함께 평화학교를 만들어 세계의 다양한 분쟁 소식을 알리고 싶다. 




김영미 PD의 최근 저작 '평화 학교'는 아이들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겠단 

그녀의 뜻이 충실히 담겨 있다. 

김 PD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평화에 대한 교육은 어릴 때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전쟁과 싸움으로 분쟁을 해결하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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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감기군만쉐 2015.07.22 12:39

    한국 언론의 외국 소식을 보면 외신에 의존해서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번역해서 퍼다 나르기만 하다보니 김정은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는 잘못된 기사를 아무렇지 않게 번역해 올리는 사건도 발생하고... 그곳의 분위기는 전달되지 않는 무미건조하거나 그리스 상황전달 같은 극단적인 기사에만 치중되는 감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느껴지네요. 그나마 김영미 pd님 같은 분이 있으시다는 게 다행으로 느껴집니다.

최근 한 케냐 남성이 평창과 평양을 구분하지 못한 여행사 직원의 실수로 평창이 아닌 평양에 내려 곤욕을 치뤘다는 보도가 화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24일자(현지시각) 1면에 실렸으니 서양 독자들에겐 팔릴만한 뉴스였다. 한국에 사는 콩고민주공화국(이하 콩고) 출신 난민 욤비 토나씨는 이와는 반대의 경우로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콩고에 남겨둔 아내에게 "평양에 가서 다시 연락하리다"라고 편지를 보낸 후 조국의 위협을 피해 허겁지겁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지만 콩고의 전 엘리트 정보 요원도 북한과 남한을 착각한 것이었다. 



"평양이 여기서 먼가요?" 

욤비씨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택시 기사에게 "평양이 여기서 먼가요?"라고 물었으니, 기사도 얼마나 황당했을까. "노노 평양 이즈 노스 코리아, 디스 이즈 사우스 코리아"란 기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욤비씨는 자신이 남한에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가 2002년,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올라섰을 때 토나씨의 한국 생활도 시작됐다. <내 이름은 욤비>는 그가 콩고의 정보국 요원으로 집권 세력과 반군의 '은밀한 거래'를 폭로한 후, 한국으로 도망쳐 2008년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의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불법 체류자로, 외국인 노동자로, 때로는 그냥 "새끼야"로 불리면서 

그 시간을 욤비씨는 이렇게 회상한다. "6년이란 시간은 그냥 흐른게 아니었다. 한국에서 내가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은 외면과 의심, 그리고 거부였다. 불법체류자로, 외국인 노동자로, 때로는 "새끼야"로 불리면서 고군분투한 시간을 버틴 뒤에야 나는 비로소 콩고에서 온 대한민국 난민이 됐다". 그는 일하던 공장에서 사장의 실수로 화재가 났을 때 방화범으로 몰렸다. 새벽에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팔이 껴 사장에게 전화를 했을 땐 "이 새끼야 지금 몇 신데 전화야 내일 봐 내일"이란 말을 들었다. 한국엔 그를 호기심과 모멸감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대중과, 그를 동물 부리듯 착취하는 악덕 업자, 그리고 그의 난민 인정을 위해 함께 뛰어준 활동가들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난민이 난민임을 인정받기까지

1951년 제정된 난민협약과 한국이 1992년에 가입한 난민 의정서에는 조국으로 돌아갈 경우 인종, 종교, 정치적 의견 등으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난민으로 규정한다. 의정서에 가입한 국가는 난민을 본국으로 강제 송환할 수 없다. 이번 달에만 배가 전복 돼 공식적으로 1,200명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아프리카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탈출하는 이유는 이 조약 때문이다. 콩고 감옥에 갇혀 있다 목숨을 걸고 탈출한 욤비씨도 난민이다. 그는 한국에 와서도 콩고 대사관 직원들에게 신분의 위협을 당했다. 하지만 그가 실제 난민임을 인정 받기까진 6년의 시간이 걸렸다. 2013년 제정된 난민법에 따르면 난민 신청 후 6개월 이내 심사 결과를 고지해야하며(사안에 따라 연장할 수 있음), 6개월 이내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국내 취업을 허용하지만, 욤비씨가 난민을 신청할 땐 그런 제도가 없었다. 그는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그 기간을 견뎌내야 했다. 읽지도 못하는 서류에 서명하고 제대로된 통역 보조도 받지 못한 채 말이다. 하지만 5년을 기다린 끝에 법무부가 내린 결과는 '난민 지위 불허'였다. 


"난민이지만 난민이 아닌 이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난민 지원 기관인<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는 직접 콩고에 가서 욤비씨의 사건을 다룬 기사, 피의자 심문 조서를 받아 법무부에 증거로 제출했었다. 그는 같은 자료를 가지고 법무부를 상대로 한 욤비 씨 행정 소송의 증인으로 참석했다. 김종철 변호사와 김한주 변호사가 6개월간 소송을 준비하고 도왔는데 김종철 변호사는 이후 난민을 지원하는 공익법 센터 <어필>을 차렸다. 욤비씨는 당시 법무부의 불허 소식을 듣고 제삼국으로 떠날 생각도 했었다. 한국에서 4년 동안 기다리다 불허를 받은 난민이 호주에서 몇 주 만에 난민을 인정 받았다는 이야기도 그 때 들었다. 욤비씨는 "난민이지만 난민이 아닌 이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욤비 씨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그 어떤 사람도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욤비 씨는 당시에도 한국말을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호택 씨의 법원 증언 중 이 부분은 "선명하게 들렸다"고 전한다. 그는 이 증언을 들으며 눈물이 핑 돌았단다. "그래, 나는 누가 뭐라 해도 난민이다. 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내가 난민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욤비 씨의 말처럼 그는 한국 정부의 인정과 관계 없이 이미 난민이었다.


"여보 애들아! 우리 이제 만날 수 있겠구나"

"이번 사건은 원고 승소하였습니다" 법무부가 패소했고 욤비씨가 난민임을 인정 받았다. 그는 6년의 기다림 끝에 한국에서 체류하며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6년 간 콩고 정글에서 박해를 피해 떨어져 산 아내와 아버지를 기억 못하는 세명의 자식과도 함께 살 수 있게 됐다. 난민에겐 가족결합권이 있기 때문에 본국에 거주하는 아내와 자식을 불러들일 수 있다. 욤비씨의 아내는 콩고 정글에서 현금 3천 달러를 항상 품에 지녔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뇌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공항에 도착 후 아이들은 엄마에게 아버지란 말을 듣기 전까지 욤비씨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란 사실을 알고 와락 껴안기 전까지 말이다. 안타까웠던 것은 난민에게 법무부가 여권 대신 발급하는 여행증명서를 공항 출입국 법무부 직원이 알지못해 욤비 씨 가족의 입국 심사에서 실랑이가 있었단 것이랄까. 



욤비 씨와 가족들




열매 따다 벌에 쏘여도 다 잊는다.

욤비씨는 한국에서 이제 유명인사다. 난민 인정을 받기 전에는 <피난처>의 활동가로 강연을 하며 얼굴을 알렸고, 난민으로 인정을 받은 후엔 KBS의 <인간극장>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이후 공장 노동자를 거쳐 치과병원 외국인 환자 보조 직원으로, 지금은 광주대학교 조교수로 임용돼 대학에서 인권과 평화를 가르친다. 그는 치과 병원에서 근무할 때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성공회대학교 아시아비정부기구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난민을 인정 받기까지의 삶을 회상할 때 콩고 속담을 즐겨 사용한다. " '콩고 속담에 열매 따다 벌에 쏘여도 내려오면 다 잊는다' 는 말이 있어요. 내 몸을 봐요. 온몸이 상처투성이일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나는 열매 여러 개를 땃어요. 난민 인정을 받았고, 가족을 만났고, 일자리를 얻었고 친구들도 생겼죠. 그러니 벌에 쏘인 상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처럼 운이 좋은 난민이 다신 없기를

하지만 욤비씨는 자신과 같은 난민이 다신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자신처럼 운이 좋은 난민은 없어야 한다며 "나 처럼 운이 좋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이 한국 사회가 바뀌길 바라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년 한국에 난민 지위를 신청한 난민 신청자는 2,896명이다. 한국 역사상 최고 수치로 이는 난민 신청을 처음 받았던 1994년 부터 2014년까지의 난민 신청자 총 누계인 9,539명의 30%에 달하는 수치다. 하지만 같은해 난민 지위를 인정 받은 사람은 1778명 심사 기준 5.2%인 94명에 불과했다. 내전을 비롯한 세계 분쟁의 화염 속에서 세계 난민은 5천만 명에 도달해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도 이 난민들의 실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디론가 가야한다면 우리나라도 그들의 피난처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인 559명이 다른 나라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난민들이 사는 것 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법무부 직원이 법무부가 발행한 여행증명서를 모르는 것은 물론, 내국인과 동일한 일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난민이 <고용지원센터>에 들어갔다 "외국인은 나가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한국의 난민 인식의 실태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에 다른 다민종, 다인종 국가에서 도망친 난민들의 삶을, 관련 경험이 없는 한국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도 문제다. 하지만 이는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난민도 인간이고, 난민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다. 한국보다 잘 살지 못하는 국가도 난민을 받는다. 욤비씨는 "'1980년 5월 18일 한국인들이 독재에 맞서 아니오'라고 외쳤듯 난민 역시 자유와 권리를 위해 자국에서 '아니로'라고 외친 사람"이라 말했다. 그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한국을 꿈꾼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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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지나가다 2016.03.26 19:20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더니...

한 소식이 궁금하면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의 블로그를 찾는다. 김일성 대학을 졸업한 탈북자 출신이라 다른 국내외 기자보다 북한 내부 소식에 정통하다. 같은 대학 출신의 북한 고위 관계자들과 연락망도 유지하는지 그가 쓴 북한 기사는 새롭고 구체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몇 년 전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북한 관련 내용이 다뤄졌을 때, 많은 외신 기자가 주성하 기자의 명함을 얻기 위해 줄을 섰던 모습에서 북한 뉴스에서 그가 가진 위상을 새삼 느꼈던 적도 있다.



그런 주성하 기자가 국내 북한 최고의 전문가로 꼽은 사람이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다. 러시아 사람이 국내 최고의 북한 전문가라니? 바로 란코프 교수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았다. 레닌그라드 대학 동양학부를 졸업한 러시아인. 대학 시절 김일성 대학 교환학생 경험. 세계적 북한학자. 2013년 '전략적 인내' 정책의 효용성을 두고 고심하던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초청한 북한 전문가 다섯 명 중 한 명인 사람. 그의 저서 '리얼 노스코리아'를 읽는 것은 그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좌와 우의 눈이 아닌 현실의 눈으로 보다"


'리얼 노스코리아' 원본은 영어로 쓰였고 한국어판은 NK News 한국지부 김수빈 기자가 번역했다. 한국어판 표지엔 "좌와 우의 눈이 아닌 현실의 눈으로 보다"란 부제가 추가됐다. 원본엔 "실패한 스탈린주의 유토피아 국가의 삶과 정치"라 쓰여있다. 원본의 부제가 저자의 의견을 더 반영한 듯하다. 란코프 교수는 책 초중반 북한이란 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소련과의 관계를 매우 비중 있게 다룬다. 한국어판 부제는 한국 사회의 좌파와 우파가 바라보는 북한의 모습이 왜곡됐다고 주장한 필자의 한국어판 서문과 함께 추가됐다. 



란코프 교수도 이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강경론이 아닌 '풍요한 남한'의 모습을 북한 주민에게 알려 북한 정권의 변화를 요구하는 내부적 압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성 공단을 비롯해 북한과의 경제적 교류의 지속적인 확대를 요구하는 측면에서 주성하 기자는 그를 "넓은 뜻의 햇볕론자"라 말했다. 금발 머리에 하얀 피부색을 가진 학자가 북한을 연구한다고 그의 주장이 더 현실적이고 객관적이라 볼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과 북한의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의 모습. 왼쪽에서 두 번째.


하지만 그의 주장이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의 주장은 국내외 언론의 것처럼 피상적이거나 선정적이며 과도한 추측에 의존하거나, 일부 탈북자 주민의 주장에만 근거해 있지도 않다. 그의 주장엔 "통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나, 국내 정치인과 언론의 애국심도, 눈치 볼 여론과 독자도 없다. 다만 북한 주민에 대한 연민 만이 있는 것 같다.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의 주장 중 주목할 만한 몇몇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1.북한 핵 보유론 

"북한은 틀림없이 핵을 계속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계속되는 내부 불안의 위험과 마주하고 있는 북한은 핵무기를 계속 보유하고자 할 것이다. 핵무장을 한 권위주의 정부는 반란이 일어나도 외부세계가 반군을 지원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경제협력을 위해 핵개발을 포기한 카다피의 안타까운 운명은 북한의 의사결정론자들에게 또 다른 교훈이 되었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북한 정권의 핵무기 개발 목적을 잊도록 한다고 말했다. 북한 정부가 핵을 보유하려는 목적은 핵무기 그 자체가 아닌 '핵'이 가진 외교적 레버리지 때문이다. 지리적, 거시적 지표로 볼 때 북한은 아프리카의 가나와 가장 비슷하다. 인구와 1인당 GDP도 유사하다. 하지만 북한의 국제적 영향력은 가나와 비교할 수 없다. 란코프 교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북한 외교관들이 외국 관계자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사담 후세인이 정말로 핵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여전히 그는 자신의 궁전에 있었을 것이다"   



2.북한의 벼랑 끝 전술

“평양의 벼랑 끝 전술은 때때로 위험해 보이기는 하지만, 지금껏 북한의 지도자들은 어디서 멈추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선을 넘지 않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전면전이 발생할 정도로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을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무력 시위를 능란하게(그리고 매우 이성적으로) 전략의 일환으로 구사했으며, 많은 경우 성공적으로 주변국을 조종해왔다...북한은 비이성적인 국가가 아니다.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증거이다. (북한 엘리트야말로) 극단적일 만큼 이성적이며 어쩌면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마키아벨리스트일 것이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 외교의 전형적 플롯을 위기 조장→긴장 확대→현상 유지의 대가로 보상 요구'로 규정하며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고도로 계산된 매우 영리한 외교 수단이라 평가하고 있다. 2011년 유럽피언 널리즘센터 인턴 기자로 활동하며 브뤼쉘 유럽연합(EU) 의회에서 열린 북한 인권 세미나를 참석했었다. 당시 증언을 했던 군 출신 탈북자를 취재했는데 그는 북한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대남 선전에 참여하거나, 외교 일선에서 뛰지만 한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의사나 변호사를 하니 남한이 매번 북한에 당한다며 한탄 아닌 한탄을 했었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이 핵무기 광신도들에 의해 운영되는 비이성적인 국가란 클리셰"는 진실이 아니라 주장한다. 2007년 2·13 합의를 이끌어낸 6자 회담을 성공적으로 평가한 이종적 전 통일부 장관의 견해와(칼날위의 평화 中),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또 한 번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란 란코프 교수 주장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3.북한의 중국식 개혁 가능성

“보통의 북한 주민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평양의 지도부가 중국을 모방하지 않으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북한 지도부가 고집스레 개혁에 저항하는 것은 그들이 주체사상의 지침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이념적 광신도들이기 때문이 아니며(주체사상 자체도 실질적인 정책의 안내자가 되기에는 너무 모호하다), 외부세계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들은 비이성적이거나 이념적이지 않다. 북한 지도부는 한반도 분단이라는 특수한 조건을 감안할 때 그러한 개혁은 불안정을 조정할 가능성이 있으며, 지베 엘리트의 입장에서 정치적으로(그리고 어쩌면 물리적으로도) 자살하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알기 때문에 개혁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코프 교수는 북한 지도부가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한다. 개방을 하기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풍요한 남한'이 북한 주민에게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접한 북한 주민들이 북한의 억압적인 정권을 용인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현 체제를 유지할 경우에도 2020년대쯤에는 북한에서 '아랍 혁명'과 유사한 시민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 역시 북한 도쿄신문 고미 요지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경제적 개혁개방이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의 독특한 입장을 고려해보면 경제적 개혁개방이 현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불안감이 있다"며 북한의 중국식 개혁개방은 비현설직이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하지만 란코프 교수는 북한 정권의 지속성엔 매우 비관적이다. 그는 북한 정권의 개혁·개방과 상관없이 북한 정권이 머지않아 붕괴할 것이라 계속해 주장한다. 



4.남북한 통일 후 북한 지도부의 단죄 여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김씨 가문 독재의 수하들을 단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의 수는 너무 많고 그들의 죄악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되어 오늘날에는 철저한 수사가 거의 불가능하다. 슬픈 일이지만 정권의 수하와 부역자들을 거부한다는 것은 유용한 경험을 갖추고 필요한 교육을 받은 거의 대부분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단죄란 단지 불가능한 것일 뿐만 아니라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과거의 과오에 대한 명명백백한 대사면 약속이 전면적인 내전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불분명한 표현은 배제하고 나중에도 철회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란코프 교수는 남북한 통일을 위해선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북한 엘리트의 신변 보장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엘리트를 단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통일 후 그들 없이 북한을 관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해법 중 일부로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를 들었다. 



5.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유일한 장기적 해법은 정권의 변화를 일으킬 내부의 압력을 키우는 것이며, 이를 위한 주요한 방법은 북한 사람들이 외부 세계를 더 많이 알게 하는 것이다. 만일 북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엄격하고 궁핍한 삶 말고도 매력적이면서 실현 가능한 대안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필연적으로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질 것이다”



식상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적 북한 전문가라면 무엇인가 놀랍고도 명쾌한 해법을 내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 색다르지 않았다. 그는 북한을 변화시킬 유일한 방법은 북한 주민에게 외부 세계를 알려, 북한 정권의 내부적 압력을 키우자는 것이라 말한다. 북한 주민의 마음에 더 잘 살고 싶다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심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란코프 교수는 남북한 경제협력, 북한 엘리트 층에 대한 학술 지원, 미디어 활용 전략 등을 내세운다. 그는 러시아인 학자 답게 소련의 몰락을 예로 든다. "공산주의 최후의 시대에 소련인들의 상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미국 슈퍼마켓 매대의 광경이었지 미국의 선거 개표 광경이 아니었다고 확언할 수 있다”



   



그의 책에선 "좋은 싫든"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동아시아 정치에서 북한이 의미하는 바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싫든 북한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고 좋든 싫든 북한의 핵무기를 부정할 수 없다. 좋든 싫든 북한의 주변 국가에겐 김정은 정권의 붕괴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을 모두 고려한 현실적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물론 이중 가장 절실한 국가는 한국일 것이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의 붕괴가 멀지 않았다는 경고를 책의 여러 부분에서 하고 있다. 그리고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서울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과 중국의 통제를 받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위성 정권의 등장. 후자의 시나리오는 남북한이 영구적으로 갈라선다는 것을 뜻한다. 분단을 막고 '통일 대박'을 위한 한국 정부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얼마만큼 대비하고 있을까? 기회가 된다면 '현실의 눈'을 가진 러시아인 북한 학자에게 묻고 싶다. "플리즈 텔미 리얼 사우스코리아 디스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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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더러운 과거사 2015.04.23 23:38

    저는 개인적으로 주성하기자님의 블로그를 보면 과장된 글이 많지않아서 좋은데 문제는 네티즌들의 과장된 북한이야기글로 인해 주성하기자님이 피해를 보시는걸 느끼게 되더군요?

    • addr | edit/del 탈북자 2015.05.02 02:54

      뭐가 더러운 과거사라는거지요?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 더럽다는건지??? 배고프면 탈출하지도 말고 그냥 굶어죽어야 하는지 ?

  2. addr | edit/del | reply 탈북자 2015.05.02 02:53

    주성하 기껏해서 김일성종합대학 다녔다는 것 외에 별로 크게 아는 것도 없어요. 진짜 북한은 북한 고위층이었던 강명도씨한테 물어보는게 정답입니다.
    주성하씨 아는 것 만큼은 저도 압니다. 저도 김대 못지지 않은 좋은 대학 다녔거던요...
    어떻게 한 사람의 증언이 다른 3만명 탈북자들의 증언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주성하씨보다 더 고위층에 있어서 비밀을 더 많이 알았던 사람도 많았고, 주성하씨 보다 북한에서 더 오래 살아서 북한에 대해서 더 잘아는 사람도 많을 텐데....

  3. addr | edit/del | reply 더러운 과거사 2015.06.03 10:36

    강명도라는 사람 김일성의 친척이고 칠골강씨이며 강성산 전 북한총리의 사위였다고하나 실제로는 북한내에서도 악명높은 사기꾼이었다고합니다~!!!! 자기가 북한에 있을때 만수대재정경리부실장이라고 해대던데 그거 위조일수 있습니다~!!!! 그가 대한민국에 올수있었던게 바로 중국에서 밀수행위를 저지르다가 북한정부에게 미운털박히자 결국에는 여기 대한민국으로 도망쳐 살수밖에 없다는것이 제의견인것 같습니다~!!!!

  4. addr | edit/del | reply 더러운 과거사 2015.06.20 22:23

    그럼에도 강명도는 이제만나러갑니다에 출연해서 때돈을 벌어왔고 심지어는 경민대 북한학과 교수라는 간판을 달며 온갖 거짓말을 해대는등 선량한 탈북자사회에서도 악명높은 탈북자로 알려져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