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에세이를 모으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왜 투표하는지에 관해 묻고 그 이유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대세론과 심판론 그리고 인적 쇄신이라는 정당들의 허울뿐인 변화속에 개개인의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이번 총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쓰고싶은 만큼의 분량을 적어 필자에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Parktaeinn@gmail.com


"부정부패의 상징인 아프리카 정치인보다 우리나라 정치인이 더 부끄럽다."

By 육숙희 (@sukirization)

완벽한 경험주의자, 그래서 끝없는 호기심에 여전히 떠돌아다니지만, 이젠 체력이 떨어져 당분간 정착하고 싶은 아프리카 친구들이 세미 아프리칸이라고 말하는 서른 하나 평범한 정통 한국인!


*육숙희씨는 현재 튀니지에서 거주하고 있다. Make Africa Better NGO의 창립자이기도 한 그녀는 올해 첫 총선 재외국인 투표에 참가할 예정이다. 출처:육숙희.

Make Africa Better 홈페이지 바로가기http://www.facebook.com/www.MAB.org?sk=wall


참정권을 가진 이후에, 내 표 하나가 행사할 수 있는 거대한 위력을 차마 깨닫지 못했었다. 내 손으로 처음으로 뽑을 수 있던 대통령을 난 전날 시작한 술자리를 간신히 선거 당일에 마치고, 투표 마감 직전에 간신히 일어나 눈곱을 제대로 떼지도 못한 채 선거 투표소로 향했다. 기호 1번과 2번이 내세우는 공약이 내 눈엔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나의 이 행동이 부끄러운지 모르고 기호 1번에 나의 권리를 그렇게 이양했다.


당시 난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복지국가를 꿈꾸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면서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힘이 있어야 하고 돈이 있어야 하고 내 편이 훨씬 많아야 한다는 그 종잇장처럼 가벼운 지식과 개똥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객기와 입만 살았기에 사회의 다른 면을 보려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해 봤자 대한민국에서 혁명은 일어나기 힘들어,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거야 그래도 아직까지 기호1번은 믿을만해. 정치는 아무나 하냐?” 라며 밑도 끝도 없는 이유를 가지고 아집을 세우기에 바빴다. 그렇게 나는 내 권리를 스스로 무참히 짓밟았다.


내 한 표에 대한 자부심도 없었던 이십대 초반을 거쳐, 이십대 중반에 다시 한번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그 해에는 재외국민으로서 나는 대사관도 없는 아프리카의 어느 국가에 거주하고 있었다. 한국땅과 이억 만리 떨어져 있으면서, 투표할 기회가 재외국민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사실에 억울해하지도 않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난 그렇게 내 조국이 선성장 후분배에 빠져 있을 때(사실 분배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그 때의 대통령 후보가 국가 경제 성장은커녕 개인의 성장만을 추구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타자의 관점에서 방관했다.


그렇게 나의 이십 대에 몇 번이나 주어진 나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도 못하고, 난 어영부영 서른이 되었고, 내 나이 서른하나 올해 이렇게 먼 타국 아프리카 땅에서 다시 한번 내 권리 행사의 기회가 주어졌다.


*육숙희씨는 부정부패의 상징인 아프리카 정치인만큼이나 우리나라 정치인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들을 뽑아왔던 자신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출처:육숙희

1960 년대 대한민국의 소득수준과는 비슷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은 빈곤을 탈피하고 이젠 세계적 브랜드를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좀 잘 나가 보이는 대한민국 좀 보라고 서로 이야기한다. 우리 아프리카도 이젠 과거의 서구적 개발모델 및 원조의 의존도도 높고, 숨이 턱 막히는 국가 부채도 어서 탕감해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아시아의 용(Asian’ Dragon) 의 국가 중 가장 성공적인 대한민국 개발 방식을 모델 삼아야 한다고 입이 마르게 칭찬한다.(시니컬하게 들리겠지만, 중국에겐 중국의 경제성장을 따라야 한다고, 브라질에겐 남남협력(South-South Cooperation)의 최대의 파트너는 브라질 만한 국가도 없다고 그쪽에도 러브콜을 보내니 적당히 걸러 듣자.)


*2011년 1월 시작된 튀니지 혁명은 아랍 스프링의 시발점이었다.


거대한 잠재적 소비시장과 풍부한 자원으로 점점 매력적 대륙으로 다가오는 아프리카에 한국도 이젠 뒷짐지고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만 올리려고 기회만 노릴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나 아프리카 대륙에 침을 흘리는 신흥 경제국 및 서구사회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이 상황에서 이 매력적인 대륙에 어떻게 러브콜을 보내야 할까? 중국처럼 물자와 인해전술로 대응하는 대륙의 스케일로 아프리카를 공략할 수 없기에 한국은 KSP(Knowledge Sharing Program)를 중심으로 개발 경험을 나누려는 차별적 전략을 세우고 있다. 언론이 통제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것이 역행하고 있는 이 시기에 누가 누구를 가르치겠다는 건지 때론 의구심이 든다.


모든 것이 역행하는 시기에 누가(한국)이 누구(아프리카)를 가르치겠다는 것인가?-육숙희 
한국은 경제성장에 초점을 두느라 그 사이에 겪을 성장통을 지난 삼십년동안 겪고 있다는 이야기는 쏙 빼고 너희들도 우리가 해온 방식으로 경제 한번 발전시켜볼래? 라고 말할 것인가? 가끔은 내 나라 정치인이 부정부패의 상징이라고 흔히 일컫는 아프리카 정치인들보다 더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표를 던졌거나 방관해왔던 내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2011 년 1월 중동의 봄이 시작된 이곳 튀니지에서 작년 여름부터 거주하고 있으면서 혁명 이후의 시민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값비싼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지만 중동의 민주주의에 불씨를 던진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많은 튀니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평범한 튀니지인 중 한 명인 직장동료가 두 달 전 미국의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에 경찰이 무력진압을 하는 사진을 패러디해서 자스민 혁명 당시의 사진을 함께 편집해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보여줬다.


튀니지의 벤 알리(Ben Ali)대통령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경찰이 자국민을 폭행하고 심하게 탄압하는데 공통점을 지녔다고 조롱하는 댓글을 보여줬다. 만약 한겨울 무시무시한 물대포의 위력에 맞선 대한민국 시민의 사진을 봤더라면, 피 끓는 이 튀니지 친구 나에게 한국으로 돌아가 혁명을 일으키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튀니지 등 아랍권 영향을 많이 받은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국가들과는 또 다르게,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국가에서는 수 백년 동안 이루어진 인적 물적 착취로 지금도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나 1960년대 독립 이후 내 나라 국민보단 내 안위를 우선시 하는 지도자들은 나라의 자원과 국민을 담보 삼아 빈곤을 더 악화시켜왔다. 당장 배고파 먹고 살 걱정에, 내 눈앞의 남편이 말라리아로 죽어가고 줄줄이 딸린 자식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학교 문턱은 밟아보지도 못하는 자식들 걱정이 먼저인 최빈곤의 사람들이 이 아프리카 대륙에만 1억명이 넘는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판국에 이 1억이 넘는 사람들에게 내 나라 정치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는 관심 밖의 일이다. 배고픔도 해결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글을 배워본적도 없다. 최고급 몇 만 불짜리 도요타(Toyota) 사륜구동을 타고 다니며, 자기 자식은 외국으로 유학 보내고, 돈 되는 일이라면 사돈의 팔촌의 이름까지 빌려 카지노 개발사업의 최대 지분을 소유한 동아프리카 모 국가의 개국공신의 장관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선의의 베풀며 그 우정은 돈으로 보답하길 바라는 뻔뻔한 수많은 아프리카 정치인들은 또 한편으로 세계 각지에서 오는 원조금액을 떡 주무르듯 제 손으로 수많은 부패를 저지르고 있다.


이들은 또 이미 맛본 권력이라는 위스키에 취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다시 권력을 탐한다. 종교가 다르지 않냐, 자원 분배의 형평성이라는 허울좋은 명목을 가지고, 혹은 우리와 다른 종족이라며 파벌을 조장하고 결국 피를 흘려 상처만 남게한다.


아프리카의 개발을 고민하고, 공부하고, 동아프리카에서 서아프리카로 이제 북아프리카까지 다니면서 본 이 아프리카 실상에 이 놈의 대륙이 도대체 발전할 수 있을까? 하며 넌절머리가 나는게 아니라, 난 이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는 내 조국의 모습에 더 가슴이 아프다. 이미 내가 이억만리 친구와 부모님과 떨어져 아프리카에 거주하고 있지만, 적어도 그동안 지키지 못한 내 권리를 앞으로는 놓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난 4월 변할 수 있다는 그 희망을 품고, 바로 여기 중동의 봄이 시작된 튀니지에서 한 표의 위력을 보여줄거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하고 있는 아프리카 개발 분야에서도 당당하게 한마디 더 보태면서, 한국은 성장통을 겪으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말이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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