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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17 우리에게 필요한 결심

미시간 디트로이트에 사는 제임스 로버트(56)씨는 자동차가 없어 매일 8시간을 걸어 출퇴근했다. 이런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한 대학생은 인터넷 모금 운동을 벌여 3억 원을 모았고 이런 기회를 놓칠세라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는 그에게 중형차를 선물했다. 모금액은 자산 관리를 해본 적이 없는 그를 위해 신탁기금으로 운용될 예정이다. 



차가 없는 사람에게 공짜로 차가 생긴 훈훈한 이야기. 하지만 이런 로버트씨의 이야기가 아닌 그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왜 디트로이트엔 출퇴근을 위한 대중교통이 충분치 않을까. 왜 수십년 간 일해온 '숙련공' 로버트씨의 시간당 임금은 최저 임금보다 약간 높은 10.5불에 불과할까. 왜 평생 성실하게 일한 그가 자산관리를 할 줄 몰라 3억 원을 신탁기금에 맡겼을까.



하나씩 답하자면, 디트로이트에 대중교통이 부족한 이유는 같은 도시에 기반을 둔 미국의 빅3 자동차 회사 포드·GM·크라이슬러가 자사의 이익을 위한 로비를 벌여 대중교통 지원 법안을 저지했기 때문이다. 숙련공인 로버트씨의 임금이 낮은 이유는 그가 대학을 나오지 못해서인데 지방세로 운영되는 미국의 공공교육시스템이 아마 저소득층의 부모와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 살았을 그의 대학 진학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자산 관리를 할 줄 모르는 이유는 저학력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받아온 임금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당장 그에게 차를 공짜로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에게 차가 없는 이유와 그런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문제는 몹시 어렵다.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강력한 이해관계자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표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뿐 문제의 근본적 개선을 외면하는 태도는 로버트씨 일화에 머물지 않는다. 증세, 복지, 청년 실업, 소득 불평등, 교육 격차, 가계 부채, 높은 부동산 가격 등 구조적 개혁이 필요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이를 위한 해결책을 제안하는 정부와 정치인은 드물다. 개혁은 오랜 시간이 걸리며 그 성과가 늦게 드러나고 현재 기득권의 희생을 담보하기에 그런 주장을 하는 정치인은 지금 당장 생활이 불편해진 유권자의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시카고 대학 경영대학원 석좌 교수인 라구람 G. 라잔 교수는 저서「폴트라인」에서 이런 경우 정부와 정치권이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가계 대출 확대'를 즐겨 사용한다고 말한다. 마치 선거철 인도나 태국 정부가 농부를 위한 지원금을 늘리듯, 정부의 추가적 지출 없이 저금리로 싼값에 돈을 빌려주면 시민들의 소비 여력이 생기고 순간 자산 가격이 올라 부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도록해 불평불만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정책은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됨에 따라 실업 급여 등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국가 정치인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로 사용된다. 그 대표적 예가 1990년대부터 저금리 기조를 유지한 미국이다. 








1990년 이전만 해도 미국 경제는 경제 저점을 찍은 후 생산량은 2분기 만에, 고용은 8개월 후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1991년 경기 불황 후 고용 회복은 8개월의 3배 가량되는 23개월이 걸렸고 당시 일자리를 잃은 유권자의 불만으로 조지 H.W부시는 걸프전의 승리에도 재선에 실패했다. 당시도, 지금도 미국 정치에서 큰 비중이 없는 아칸소 주 최연소 주지사 빌 클린턴이 대선에 승리한 이유로 한국 언론에서 지겹게 인용되는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란 슬로건이 꼽히는데 그만큼 당시 일자리를 잃은 미국 시민들의 불만은 대단했다. 



이후 클린턴 정부는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을 내세워 대표적 사회안전망 중 하나인 공공의료보험을 도입하려했지만 업계의 로비에 포섭당한 양당 정치인의 반대로 실패했다. 이후 중산층과 서민들의 불만을 달래는 임시방편으로 '진보적'이라 평가 받은 클린턴 정부는 중앙은행의 저금리 기조를 유도하고 저소득층 가계에 부동산 대출 확대를 통한 서민 입 틀어막기에 총력을 가했다. 소득이 불안정한 저소득층에게 가계 대출을 해주지 않는 은행들을 일일이 찾아 벌금까지 매겼으니 말이다. 이런 대출 확대가 머 그리 큰 효과를 거두겠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저금리 대출을 받아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집을 살 수 있고, 차를 바꿀 수 있고, 해외 여행을 갈 수 있으며 빚을 내서 산 집의 가격이 올라 또 다른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중산층을 포함한 서민들의 불만은 잦아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라잔 교수는 이런 정부의 정책은 결국 "모든 비용을 미래로 미루는 것"이라 말한다. 저금리 기조와 정부가 지원하는 가계 대출 완화 정책은 리스크를 보상하는 금융 업계에게 부실 대출을 부추겨 부채의 위험성을 높이며, 쇼트 포지션이 없이 낙관론자가 가격 상승을 이끄는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일으킬 뿐 아니라 고용의 증대 역시 비정규직이 다수인 건설 업계에 한정되기 때문에 자산 시장의 거품이 터질경우 더 큰 위기를 막기위해 2007년 금융위기처럼 결국 국민의 막대한 세금이 낭비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이런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리스크에 배팅을 건 금융업계의 고약한 행태는 차차 이야기하자) 



정부는 이런 현실과 달리 저금리가 기업의 투자를 늘리고 다양한 분야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 희망했다. 하지만 기술과 무역 발전으로 비숙련 노동자의 수요가 줄거나 외주화됐고 고용 유연화와 인터넷이 채용 과정을 간편화해 기업의 장기적 투자가 아닌 경기에 맞는 즉각 대처가 가능해져 실제 저금리로 인한 고용 창출 효과가 별로 없었다. 이런 현상은 미국처럼 내수 중심의 국가가 아닌 일본이나 한국처럼 수출 의존형 국가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1985년 플라자 합의 후 초저금리 정책으로 기업의 투자를 유도한 일본 정부는, 기업들이 거의 무이자로 돈을 빌려 인도네시아 등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국가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며 쓴맛을 다셔야했다.

 


2010년에 쓰여진 라잔 교수의「폴트라인」을 4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언급하는 것은 가계 대출 확대 정책의 위험성을 비판한 그의 주장이 2015년 한국 사회에 매우 유효하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사회안전망이 미국처럼 취약하다. 특히 노동 복지가 취약한데, 한국의 실업급여는 미국의 평균 지급기간인 26주보다 더 짧은 최대 6개월이며 지급 금액은 하루 최대 5만원, 한달 최대 150만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80%로 기존 임금의 50%를 실업급여로 지급하고 정치권이 합의해 그 기간을 최대 99주까지 임시적으로 늘린 미국의 안전망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 



여기에 청년 실업과, 이민자 유입 없는 고령화, 부동산 거품까지 겹친 한국 경제 상황에 가계부채 1060조란 비현실적 숫자는 정부와 정치권의 입장에서 가계 대출 완화 정책과 저금리 기조란 시한 폭탄을 계속 유지하게금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기축 통화국이 아니고 수출에 의존하는 구조적 문제로 한국의 저금리 기조는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 대출 완화 정책으로 부채 비율이 높아진 가구들의 디폴트 위험이 단기간에 커질 수 있다.  



라잔은 대출이란 임시방편을 넘어 사회 안전망 확대를 통한 고용 유지로 정부의 무분별한 시장 개입을 방지하고 교육 개혁을 통해 시장 수요에 맞는 노동력을 보충하며, 리스크를 보상하는 금융계의 인센티브 시스템 변화시켜 저금리 상황에서 경제 리스크 확대를 예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정부 개입의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제학자 라잔의 해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의사를 반영해 사회적 타협을 절충하는 정치권의 몫으로 돌아간다.  라잔은 "이런 개혁을 모색하면서 우리가 인정해야할 사실은 바람직한 경제학과 바람직한 정치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정치권의 몫이란 뜻은 그 정치인을 선택하는 유권자의 몫이란 뜻도 되니 결국 해법은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엔 수많은 제임스 로버트가 있다. 매일 8시간을 걸어 출퇴근했지만 직장이 있고, 돌아갈 집이 있었으니 그의 사정은 금융위기 후 직장을 잃고 은행에 집을 압류당한 수백만의 미국인보단 나을지도 모른다.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오랜 시간 걸어 출퇴근하는 한국인은 별로 없지만, 그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으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한국인도 수백만이다. 그런 우리에게 차가 필요하니 차를 주고, 돈이 필요하니 공짜에 가깝게 빌려주겠다는 달콤한 유혹들이 다가온다. 어디선가 현재를 즐기며 돈을 쓰고 미래는 잊으라 말한다. 이젠,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어렵지만 필요한 결심을 해야 한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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