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에세이를 모으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왜 투표하는지에 관해 묻고 그 이유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대세론과 심판론 그리고 인적 쇄신이라는 정당들의 허울뿐인 변화속에 개개인의 유권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 이번 총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 쓰고싶은 만큼의 분량을 적어 필자에게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Parktaeinn@gmail.com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20조 원 이상을 ‘공구리’에 쏟아부은 4대강, 정권 말기 10조 원대의 무기 도입이 아니라 더 많은 취업기회, 더 많은 임대주택, 더 많은 육아시설을 통한 ‘더 이상 결혼을 미룰 필요가 없는 사회’다."


By 송영훈(@Song_Younghoon)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생. <공익과 인권> 재창간호(2010) 편집장. 트위터를 통해 법,시사, 축구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예비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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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했어요>의 폐지를 위해, 나는 투표한다

KBS의 대표적 장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체험 삶의 현장>이 25일 막을 내렸다. 1993년 10월 첫 방송을 시작한 <체험 삶의 현장>은 연예인을 비롯한 사회 각 분야의 유명인사들이 출연해 주로 농ㆍ어업이나 축산업, 공장의 생산직 근로 현장 등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하루치 노동의 대가를 기부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TV브라운관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혹은 TV에서조차 잘 볼 수 없는) 유명인사들의 ‘궂은 일’ 하는 모습은 대중에게 큰 볼거리였다. 지금은 비록 시청률 부진으로 폐지되는 운명을 맞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1990년대 <체험 삶의 현장>은 한때 시청률 30%를 넘나드는 KBS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PD수첩에서 결혼 후 빚더미에 올라 앉은 허니문 푸어를 보도했다.

90년대 ‘체험 삶의 현장’, 그리고 2000년대의 ‘우리 결혼했어요’


눈여겨볼만한 것은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TV프로그램이 탄생한 시점이다. <체험 삶의 현장>이 처음으로 전파를 탄 1993년은 공교롭게도 한국의 산업구조상 3차 산업의 산출구성이 전체의 2/3를 차지하게 된 시점이다(참고로 1960년 한국은 1, 2차 산업 비중이 합계 57%였다). 1, 2차 산업을 합하여 처음으로 3분의 1을 밑돌게 된 시점을 배경으로 1, 2차 산업에서의 노동을 ‘관상(觀賞)’하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프로그램을 보고 싶어하는 시청자가 몇이나 될지 생각해보면 이는 프로그램 탄생의 필수적인 요소였음을 알 수 있다. 모두가 소를 키우고 돼지를 치는 사회에서 한 시간 내내 소 키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아무리 그 주인공이 소녀시대라고 해도 큰 볼거리가 되기는 어려운 법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탄생과 인기의 배경을 음미해봄직한 2000년대의 방송 프로그램이 있으니 바로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이다. 2008년 2월 설 특집 프로그램으로 첫 방송된 ‘우결’은 이후 독립된 프로그램으로 편성될 만큼 높은 인기를 누리며 출연한 연예인 가상 커플마다 숱한 화제를 뿌렸다. 그런데 노동이 관상의 대상이 된 <체험 삶의 현장>의 등장 배경에는 그나마 경제성장과 산업구조 고도화라는 긍정적 요소가 있다면, ‘우결’의 배경에는 사회경제적 이유로 인한 ‘결혼 유예’와 ‘반강제적 비혼’의 증가라는 씁쓸한 현상이 있다. 물론 ‘우결’에는 톱스타들의 가상 결혼생활을 시청자에게 일종의 훔쳐보기의 대상으로 제공함으로써 즐거움을 준다는 인기 요소가 있다. 그러나 누구나 소를 키우는 사회에서 소 키우는 것이 볼거리가 될 수 없듯, 누구나 원하는 ‘때’가 되면 아무 어려움 없이 쉽게 결혼하는 사회에서는 ‘가상 결혼생활’을 보여준다고 해서 폭발적인 인기에까지 이르기는 어렵다.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으로서의 요소는 전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결’이 인기를 모은 2008-2010년을 전후하여 결혼에 관한 각종 통계는 급격한 결혼유예현상과 ‘결혼장벽’의 존재를 보여준다. 한국의 평균 초혼 연령은 1990년 남자 27.8세, 여자 24.8세였던 것이 2010년에는 남자 31.6세, 여자 28.7세로 급격히 높아졌고, 그 중에서도 집값이 가장 높은 서울에서는 남자 32.0세, 여자 29.6세에 이르렀다. 특히 2008년에서 2010년에 이르는 2년 사이에 15세 이상 서울시민 중 결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대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5.1%p나 증가했다(28.2% -> 33.3%). 절반에 가까운 미혼 남녀가 ‘경제적 기반을 쌓은 후 결혼하기 위해서’ 결혼을 미룬다고 응답한다는 통계를 굳이 가져올 것도 없이,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치솟은 집값과 전세대란, 청년실업, 취업을 위해 가방끈이 점점 길어질 것을 강요하는 사회구조에 있음은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서른이 되어도 자력으로는 결혼에 필요한 경제적 기반을 갖추기 어려운 사회에서, ‘30세 = 이립(而立)’은 옛말이 되어가고, 그렇게 결혼이 유예되어가는 세대의 형성을 배경으로 <우리 결혼했어요>가 등장한 것이다.

‘우결’을 아무도 볼 필요가 없어지는 사회를 위해, 나는 투표한다

멀리 돌아왔다. 이제 ‘당신은 왜 투표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자면, 나는 “ ‘우리 결혼했어요’의 폐지를 위해 투표한다”고 주저없이 답할 것이다. 물론 프로그램이 진짜로 폐지되기를 원해서 투표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결’과 같은 프로그램이 출현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대리만족을 얻어야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사회는 얼마나 불행한 사회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거권’을 주장하면서 청년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던 유럽에 비해 투표조차 기피하는 한국의 2030은 너무나도 온순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20조 원 이상을 ‘공구리’에 쏟아부은 4대강, 정권 말기 10조 원대의 무기 도입이 아니라 더 많은 취업기회, 더 많은 임대주택, 더 많은 육아시설을 통한 ‘더 이상 결혼을 미룰 필요가 없는 사회’다.

그러나 투표조차 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은 현상유지, 아니 ‘현상악화’일 뿐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높은 결혼비용의 부담 때문에 동경의 신혼부부 중 47%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채 혼인신고만 하고 산다는 통계가 발표된 바 있다. 한국은 장차 이러한 양상이 더 극단적으로 나타날 여지가 있다. 이대로 가면 ‘결혼식’을 못 올리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결혼’을 못하는 사회로 진입할 가능성마저 있는 것이다. 그 경고등을 이제는 투표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제때에 결혼하고 걱정없이 아이를 낳고 싶으니 20대를 ‘얼굴마담’으로 기용하면서 수십조 원을 강바닥에 뿌리는 정당과는 미래를 함께 하지 않겠다는 경고등을 켜려면 결국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투표다. <체험 삶의 현장>이 폐지되었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농업국가로 돌아가지는 않지만, <우리 결혼했어요>를 아무도 보지 않는 사회는 훨씬 행복한 사회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 사회를 위해, 나는 투표한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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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subinspa 2012.03.06 09:07

    "결혼하기 무서운 세상이 '우결'을 낳았다. '우결'을 보지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나는 투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