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최근 박정근씨가 북한을 패러디한 포스터와 북한 관련 트윗을 적었다는 이유로 구속당했다.
이에 뉴욕타임스가 매우 강한 어조를 담은 비판 기사를 썼다.

외신번역프로젝트가 돌아왔다.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원기사: http://nyti.ms/yGCNGI

*기사에 대한 의견을 댓글로 적어 주시면 정말 감사 하겠습니다.

*추천/리트윗 해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한국의 국가보안법. 북한을 풍자한 시민들을 간첩 혐의로 체포하다.

뉴욕타임스 미국판 1월 8일 자 8면 기사.

By Choe Sang Hun

번역:이기은(@Lazynomad)

대한민국 수원 —  2007년 5월 1일, 경찰은 팔을 뻗으면 양 벽에 손이 닿는 매우 작은 감방에 김명수 씨를 구금하였다. 그 방 한쪽 벽에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한국 전쟁 이후 처음으로 다시 남북한 철도 연결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남한이 북한에 40만 톤의 쌀을 원조한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김명수 씨는 그가 처한 상황에 분노했고 남한과 북한의 화해 소식에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인터넷을 통해 친북 성향의 중고 서적을 판매하는 ‘이적 행위’를 했다는 것이 김명수 씨에게 적용된 혐의였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책 목록에는 카를 마르크스 전기와 미국 언론인 에드가 스노우가 중국 공산주의의 기원에 대해 쓴 <중국의 붉은 별>도 포함되어 있었다.

김명수 씨는 나중에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여전히 법정공방 중이다. 김명수 씨는 증거로 압수된 책이 정부가 지원하는 도서관에서 쉽게 빌릴 수 있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서울 및 수도권에 있는 거의 모든 공공 도서관을 방문했다.


김명수(56세) 씨는 “이건 비극적 코미디 입니다. 이런 정권 아래에서 사는 건 암담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급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으나 검찰이 고등 법원에 항소했다.

수 년간 한국은 사회에 파고드는 공산주의 사상을 단속하면서, 동시에 북한과의 화해를 모색해왔다. 이러한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충돌하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1948년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이다. 김명수 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박정근씨가 만든 북한 패러디 포스터. 한국 정부는 이 포스터를 근거로 박정근씨가 북한을 돕고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출처 박정근/뉴욕타임스)

이러한 갈등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 이후 최근 몇 주 사이에 불거져 나왔다. 한국 정부는 생전에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만났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평양 조문 방문을 허용하였으나, 대부분의 한국인 방북을 막고 평양을 방문했던 전직 학생운동가를 체포하려 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북한과의 화해를 추진하기 위해 김정일의 분향소를 설치하려는 시민 단체를 보수 단체가 저지하였고, 서울대학교는 한 학생이 교내에 설치한 임시분향소를 철거했다. 지난 12월 19일에 발표된 김정일의 죽음 이후 몇몇 블로거들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관용을 시험하기라도 하는 듯 조의를 표하자 한국 정부는 인터넷 감시를 강화하였다.


*박정근씨 면회 동영상. 출처: YouTube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몇몇 사람들을 변호하고 있는 변호사 이광철 씨는, 국가보안법의 적용은 정부의 대북 정책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말했다.


이광철 변호사는 “한때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이라고 불렸던 것이 지금은 ‘이적행위’가 되었다.” 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좀 더 진보적이었던 지난 정권이 허가한 방북 도중 북한 공직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 때문에 유죄를 선고받은 판례를 언급했다.

수 년간 유엔 인권 위원회를 비롯한 국제 인권 단체는 한국 정부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였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1950-53년에 한국 전쟁을 겪은 세대가 여전히 공산주의를 경계하고 있으며 그 두려움은 북한군의 도발이나 국내 정치적 목적의 부추김에 다시 부활하곤 한다.

2007년 39명에 불과했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는 2010년 151명으로 늘었고, 인터넷에서 친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람들의 수는 2008년 5명에서 2010년 82명으로 증가했다. 친북성향 게시물을 올렸다는 이유로 차단된 국내 웹 사이트의 숫자는 2009년 18건에서 2010년 178건으로 증가했다.

2011년 1월부터 10월까지 ‘북한을 찬양하고 한국과 미국 정부를 비난’하여 국가보안을 위협했다고 판단하여 경찰이 삭제한 인터넷 게시물은 67,300건으로 이는 2009년의 14,430건에 비해 급격히 늘어났다. 정부규제기관인 한국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국가보안법에 어긋나는 인터넷 게시물을 삭제하라는 경찰이나 정보 당국의 요청을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야당 국회의원인 이용경 의원에게 제출된 정부의 자료를 보면, 2010년에 국가보안법에 따라 수사한 사건 중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비율은 20퍼센트에 불과했다.

지난 5월 유엔 의사 및 표현의 자유 보호 및 촉진 특별 조사 위원 프랑크 라 뤼는 한국의 온라인 콘텐츠 규제를 ‘매우 우려되는 사안’이라고 언급했다. 과거 한국 군부 독재자들이 국가보안법을 간첩을 기소하는 목적뿐만 아니라 정치적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이용하였다. 인권 단체에 따르면 1961년에서 2002년까지 최소 13,178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고, 그 중 182명이 처형되었다.

1998 년부터 2007년까지 북한과의 화해를 추진하였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느슨하게 적용했지만, 보수 성향인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한 2008년 초부터 이러한 전임 정부의 정책을 폐기하였다. 남북 관계는 2010년 한국 정부가 천안함 침몰의 주범으로 북한을 지목한 것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더욱 경직되었다. 한국 정부는 남북 간 철도를 폐쇄하고 북한에 대한 원조를 중지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북한의 선전 선동이 침투하고 있다는 이유로 인터넷 감시를 강화하였다.

정부는 정치적 반대의견에 대한 무기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한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 단체들은 검찰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부터 국가보안법 적용을 강화하였다며  이는  북한에 대한 회유정책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에 대한 찬양, 동조, 협력하여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 행위 등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이 조항은 매우 모호해서 술에 취해서 북한을 찬양하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잡혀간 사람들도 있다.

법원 기록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저서 ‘공산당 선언’은 담당 검사나 판사에 따라 역사적 자료일 수도 있고, 소지한 것만으로 징역 7년형에 처할 수도 있는 ‘불온 선전물’로 간주할 수도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인터넷에서 북한 선전물을 내려받거나 장난으로 북한을 찬양한 블로거를 체포하거나 수사하기 시작했다.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연구원 라지브 나라얀은 이러한 행위가 ‘표현의 자유를 경직되게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한상대 검찰 총장은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이는 마땅히 응징되고 제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달 뒤, 사복 경찰이 서울에 있는 박정근의 사진관과 자택을 압수 수색을 했다. 경찰은 박정근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휴대 전화에 저장된 데이터를 복사하고, 수상해 보이는 사진과 책을 압수했다. 경찰은 그를 다섯 차례에 걸쳐 소환했으며, 매번 몇 시간 동안 왜 북한 노래 인터넷 링크를 트위터 계정에 올렸는지, 트위터가 ‘강력한 북한 선전선동 수단’임을 몰랐는지 심문하였다.

박정근은 그저 재미로 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수정해서 트위터에 올린 북한 선전 포스터에는 그의 냉소적인 태도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는 웃고 있는 북한 군인의 얼굴을 자신의 시무룩한 표정으로, 군인의 무기는 위스키병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재미로 보지 않았다. 올해 만 23세인 박정근 씨는 “나는 내 신념을 설명해야 하고, 언어능력에 이상이 없다면 누구나 뻔히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우스갯소리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졌습니다. 국가보안법은 국민의 뇌와 혀까지 모두 국가의 것으로 만들려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박정근 씨는 검찰의 기소를 앞두고 있으며 스트레스와 불면증으로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최근 트위터에서 박정근 씨는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주장했고 욕설로 검찰을 조롱했다.

*“김정일 만세다 개갞기들아”

*이는 박정근씨의 트위터 글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뉴욕타임스는 ”Hear me loud and clear-Hurray for Kim Jong il”로 보도했습니다.


*사진가 박정근씨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서한 전문도 첨부하였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명박 대통령 각하. 초등학교 시절 군인 아저씨한테 위문편지를 보내본 적은 있지만 대통령님께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은 처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럴만한 일도 없었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누가 시킨 적도 없었기 때문이겠죠. 이런 제가 대통령님께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작년에 어떤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제 소개부터 좀 하겠습니다. 저는 올해 25세의 서울 시민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찬양, 고무 및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현재까지 구속되어 총 6차례의 경찰조사를 받은 활동가이며 사진가인 박정근이라 합니다.

제 신상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1988년 봄에 서울에서 태어나 이런 저런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다가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등록금이 비싸더라도 대학은 입학해야 하니 안하던 공부도 열심히 하고 모의고사 등급도 신나게 오르던 중, 2006년 가을 다리에 큰 병이 생겨 몸져눕는 바람에 사경을 헤메게 되었습니다. 서 있을 수도 없었지만 병상에 누워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하는 긍정&도전 정신”을 생각하며 병원을 살짝 나와 양호실에서 수능을 보고 그럭저럭 서울에 있는 모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다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학교가 딱히 재미가 없어서 때려치고 굶지 않기 위해 뭘 했냐면,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사진은 집에서 해온 가업이거든요. 방에 굴러다니는게 카메라였다 보니 어릴 적부터 이것저것 찍는 게 놀이였거든요. 대통령님과 달리 어릴 때부터 구석에서 커온 저는 당신께서 들여다 보지 못한 것들, 안 본 것들, 구석에 있는 것들을 많이 찍고 다녔을 겁니다. 그래서 제 하드디스크엔 당신이 보기엔 불온해 보이고 심기가 불편해지는 사진도 몇 장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살면서 본 것들을 찍은 것을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사진은 거짓말을 못하니까요. 그렇게 지금 현재 아버지가 물려주신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의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며 동네장사와 이런저런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덤벙대는 성격이라 기록같은 건 잘 못하는데 가게에 찾아온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에 제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기록이 잘 나와있더라고요. 하나하나 읊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정부의 개발정책에 반대하는 철거농성장 홍대 두리반에서 ‘소비에트 사진사’ 등의 사진강의, ‘두리반 1주년 기념 행사’ 기획 등을 맡았다.
2. 서울시 강남구 포이동판자촌 주거복구 공대위 활동을 하였다.
3. 반값등록금 집회에 참여하였다.
4. 겨울에 홍대청소노동자 농성 투쟁에 연대하였다.
5.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희망버스 등 기타등등의 집회에 참여해 불법 가두시위 및 행진을 하였다.

검찰인지 경찰인지 보안수사대인지 여튼 제 이런행적들을 어떻게 찾으셨는지 정말 신기하지만 이건 영장의 주 내용이 아니고, 주 내용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국가보안법 위반, 찬양 및 고무, 그리고 이적표현물 소지였습니다.

세세하게는 트위터에 북한 조평통인지 뭔지 이름도 헷갈리는 @uriminzok 계정의 글을 리트윗하고 “트위터라는 4명만 구독해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SNS매체”를 이용해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하고 선전선동을 유도했다는 내용이 주 내용이었습니다만 일일이 다 설명드리긴 좀 제가 게으른 성격인지라 각하께서 직접 지난 기사들을 검색 해 주셨으면 합니다. 체제찬양으로 보이는 글들은 대부분 농담이었으나 저는 이 편지에서 농담을 일일이 설명하진 않을 것입니다. 농담을 변명하는 건 농담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그렇게 하면 농담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되니까요.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저에게 지금 중요한 건 제게 씌워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자체가 아닙니다. 저는 이 편지로 대통령님께 제가 국가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는 청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는 조사장소가 수원에 있는 경기보안수사대인데, 여기까지 제가 편도 1시간 반을 이동해 여섯 시간 조사를 받고 와야 하기 때문에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매출이 뚝 떨어진 것.

둘째로는 집과 가게를 압수수색한 이후로 집과 가게에서 제대로 된 업무를 보기 힘들다는 것.

셋째로는 제 방을 압수수색한 이후로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제가 제 방에서 잠을 거의 못 잔다는 것.

넷째로는 이 불면증으로 인해 신경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

다섯째로는 이 일로 인해 모든 제 신상정보가 털려버렸다는 것.

여섯째로는 제 방에서 잠을 못 자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신세를 지게 돼서 주위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

일곱째로는 보안수사대 경찰들이 제 방의 물건들을 압수수색하는 동안 제 필름 중 하나를 훼손했는데 그 필름이 저에게 아주 소중한 아직 현상도 안한 필름이었다는 것.

여덟째로는 제가 이 압수수색과 경찰조사 이후 성욕마저 감퇴되었다는 것. 저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신정아에게 추근대는 변양균 같이 변변치 못한 남자가 된 기분입니다.

아홉째로는 이런 고통을 병원에 호소하면 “그냥 이런 짓 하지 마세요~” 하는 잔소리만 의사에게 듣고 낙담하고 집에 가서 고통을 호소한다는 것.

열번째로는 이상의 이유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는 것.

열한번째로는 이 사건 이후 막 이상한 활동, 예를 들면 ‘뉴타운 간첩파티’ 같은 걸 하는 사람들과도 연계되어버렸다는 것.

열두번째로는 판사와 검찰조차 저의 트윗이 '농담'인 것을 알면서도 저를 고향땅에서 수 시간 거리에 있는 수원남부경찰서에 구속 한 것 등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저는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경찰들에게 무한한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트위터에 몇 개의 글을 올렸냐면 무려 7만 여 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걸 다 보느라 애쓴 보안수사대 경찰님들, 정말 일 많이 하셨구요. 경찰 수사관 분들 정말 수고하셨는데, 너무 하찮은 일을 하신 것 같아서 보기가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오죽하면 조사 중에 조사관이 저에게 손목아픔과 목결림을 호소하겠습니까? 이런 모습을 보는 것도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뉴스보니 곽노현 조서가 1000페이지 정도였다 합니다. 제 조서도 150페이지는 족히 되는 것 같았습니다.

존경하는 각하! 저는 이제 25살입니다. 그런데 아직 조사가 많이 남았으며 여론은 이미 저에게 죄가 없다는 쪽으로 가고 있고 저도 대충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사를 받으면서 정말 제게 죄가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 곰곰이 고민해 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고민으로는 죄가 될 일은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만일 이 글을 읽고 제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시면 그냥 한 징역 7년 정도 살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겠지요.

저는 사진관 운영 몇 년으로 제 인생을 끝낼 생각은 없습니다. 아직 저는 해야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해야할 사랑도 많고 각하께서 일자리를 잘 창출해주시면 회사에 입사할 능력과 의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한 성욕감퇴도 어떻게든 기필코 해결해야 합니다. 에리카 김 같은 멋진 여성을 만나 일생의 사랑을 해보고도 싶고, 내곡동같은 천혜의 자연으로 둘러싸인 멋진 녹지 안에 집을 짓고 거스 히딩크에게 제 자식을 소개해 주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지금 많은 이들이 저를 지켜보고 있으며, 이미 이 사건으로 인해 저는 국가보안법 위반자라는 낙인이 찍혀버렸습니다. 저같은 청년을 국가가 보살펴주지는 못할망정 범법자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아래 글귀는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참 좋은 글귀다 싶어 집에 붙여놓은 것입니다. 아마 수십년도 더 지난 글귀일 것입니다.

“한 젊은이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데, 국가가 그 길을 막는다면 국가는 젊은이에게 영원한 빚을 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귀가 진리라고 생각하며, 이게 진리가 아니라면 그냥 국가가 저에게 진 빚 그냥 잊어버리고 이 나라의 국적을 포기할 생각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저에게 지금 현재 가해지는 일들을 바라보면 저 글귀를 보며 꿈꾸던 조국의 현실이 얼마나 먼지 통탄을 금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나라, 내 조국 대한민국에서 살 날이 아직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저 글귀 속의 젊은이와 똑같은 젊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젊은이가 청운의 꿈을 펼치던 조국이 대한민국이듯이 저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답변을 앙망합니다...

2012년 1월 16일 수원남부경찰서유치장에서
사진가 박정근 드림



*기사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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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및 번역 감수:  이기은 (@Lazynomad) 박태인 (@TellYouMore)

트위터 외신 프로젝트팀 드림.

기사 편집자 및 주 번역자: 박태인 (@TellYouMore)
번역자문 및 감수 위원단: 김민주(@Spring_llullaby) 이기은(@lazynomad), 이호준(@DanielHojoon),

조효석(@promene),서규화(@nicefairy_),진소연(@Dal_Fishing713),이자연(@jayeon22), 여동혁(@Tonghyeo), 김가현 (@HelloKaHyun) 박현태(@underbaron)

원 기사 작성 기자: Choe Sang Hun
기사 원본 및 사진 출처: http://nyti.ms/yGCNGI
출처: NYTIMES.COM
번역: 트위터 외신 번역프로젝트팀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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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미쿡바라기분들 2012.01.30 19:55

    미쿡 바라기분들은 이런 기사를 보고 어떤 생각하시려나?
    만감이 교차하려나?
    ㅋㅋ

  2. addr | edit/del | reply this link 2012.03.29 10:11

    바나나 이트 할 것 아요.56개는먹야먹 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