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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11 [외신번역프로젝트] 오바마의 하버드 시절 들춰보기. (1)

*편집자 주: 미국 양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오바마 현 대통령과 미트 롬니 전 메사추세츠 주지사의 유일한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이다. 과연 이들은 학창 시절, 주변 교수와 학생들에게 예비 대통령의 풍모를 풍겼을까? 미국공영라디오(NPR)에서 미국 양당 대통령 후보들의 학창 시절을 들춰봤다. 이번엔 오바마, 다음번엔 미트 롬니의 하버드 시절을 번역해 공개할 예정이다.



외신번역프로젝트가 돌아왔다.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원기사: http://n.pr/MB5M5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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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하버드에 남겼던 강한 인상.
 미국공영라디오 5월 12일 자 기사.

By Ari Sharpiro 
번역 by 진소연(@Dal_Fishing713)

*편집자 주:오바마의 하버드 로스쿨 학창 시절의 모습. 그는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줄 아는 학생이었다. 


지금부터 11월까지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대통령 후보 롬니는 자신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할 것이다. 그러나 남자의 인생은 사실 정말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 미국 공영라디오(NPR)평행한 삶들시리즈 이번 회에서는 이들의 모교인 하버드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살펴 볼 것이다.


하버드 교수 로렌스 트라이브는 특히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선 일종의 법적으로 명망이 높은 락 스타이다. 1989년 3월 31일 전 까지, 그를 만나본적 없는 로스쿨 1학년 학생들 중 그의 사무실에 나타나교수님 밑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트라이브는 교수는 최근 1989 썼던 달력을 꺼내와 당시 3 마지막 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엔머리를 자를까?"와 "연방법무장관에게 글쓰기" 그리고아침 11. 버락 오바마(로스쿨 1학년)이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트라이브 교수는 그리고 여기 당시 오바마의 전화번호가 있습니다. 생각엔 그의 기숙사 전화번호일 것입니다. 그리고 옆에 감탄표를 적어 놓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흔적들로 트라이브는 아프로겐 머리를 하고 스웨터 셔츠와 청바지를 입었던 마른 청년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를 기억한다.  


하버드 로스쿨에서부터 오바마는 전국적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롬니가 오바마가 너무 오랫동안 하버드에 머물렀다고 비난하지만 학교가 둘이 가진 유일한 공통점이다. 


룸니가 로스쿨과 비즈니스 스쿨에서 공동 학위 과정을 마쳤고 20 오바마가 하버드 캠퍼스에 등장했다.


롬니처럼 오바마는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롬니는 하버드에 입학하기 전에 

프랑스에서 몰몬교 선교 활동을 했고 오바마는 시카고 지역사회 조직위원회에서 

일했다. 오바마가 하버드에 입학했을 확실히 그는 차이를 만들고 싶어했고 

세상이라는 체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했다고 트라이브 교수는 말했다.


공통점 찾기



*당시 트라이브 교수가 오바마에 관해 남겨놓은 메모. 감탄표시를 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트라이브 교수와 당시 오바마는 시간동안 대화를 했고 오바마는 트라이브 교수 밑에서 기사와 책을 쓰는 일을 도왔다 그 책 중에는 [낙태: 근본주의자들과의 충돌] 이라는 책도 있었다. 


트라이브는 오바마가 교육과 산아 제안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낙태 논란에 대한 깊고 견고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회상한다.  “오바마는 스펙트럼 중간에서 요점을 찾고 직선적인 줄의 논점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극적인 선택 이외의 것을 얻을 있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사람은 현재까지 비공식적인 멘토와 멘티의 관계로 가깝게 지내고 있다.


찰스 오글레트리 교수도 오바마 인생에서 이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1989 오글레트리 교수는 학점이 없는 토요일 수업을 했다. 이는 일학년 학생들에게 로스쿨에서 기본적인 기술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오글레트리 교수는 오바마가 제 시간에 나타나 앞줄에 앉은, 지나칠 정도로 프로페셜날한 모습을 보여준 학생으로 기억한다. 질문에 대답을 하고 나면 오바마는그런데요, 앞에서 이야기 했던 알은 좋은 관점을 가졌어요 그가 이렇게 이야기 했을 때요. 그리고 사라는 생각에 ~~라고 이야기 했을 그것을 집어냈어요. 그리고 라토야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그녀가 분석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럴 때면 오글레트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버락, 수업에서 선생은 나네. 자네가 아니고!”


오바마가 당시 오만하게 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오글레트리 교수는 학생이 모두를 대화에 참여시키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화해 조정자 그리고 욕쟁이.


당시 친구였던 맥은 오바마가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고 기억한다. 맥은 지금은 하버드 로스쿨 교수이자 [인종을 대표하기: 시민권 변호사의 창조] 저자이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아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스스로를 잘 알았죠.” 사람들이 베리라고 부르던 아이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맥은 만약 누군가가 오바마를 베리라고 부르는 것을 내가 들었더라면 나는 놀랐을 겁니다. 베리는 약간 체구가 작으니까요. 그건 그에게 맞지 않았어요.” 라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면 오바마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친구들 사이를 조정해 주던 오바마는 왼손잡이 점프 슛을 쏘면서 다른 사람에게 막말을 하고 기를 죽이는 사람으로 변했다. 


오바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법대 학생들의 팀을 포함해서 있는 모든 농구 경기를 뛰었다. 


어느 그의팀이 월폴 감옥에서 경기를 하기로 했다. 오바마는 주요 선수 였고 그는 그보다 훨씬 큰 상대편 선수와 맞섰다.


그리고 버락이 평소 하듯이 상대편을 껴안으면서행운을 빕니다. 여기 계시죠?” 라고 묻자 사람은살인 2회이라고 대답했죠”. 오글레트리 교수가 말했다.


버락은 경기 내내 수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잘하던 점프슛도 하지 않고요. 내가 알기로는 그때가 유일하게 오바마가 농구를 다른 사람을 기죽이는 말을 하지 않았던 같습니다교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지도자 되기


2학년을 거의 끝나갈 , 오바마의 뛰어난 성적과 명성에 힘입어 그는 로스쿨에서 이름있는 자리의 하나인 로스쿨 학술지하버드 리뷰’(Harvard Law Review) 회장으로 출마했다. 


잡지의 편집자들은 편파적이고 논란을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학교 친구였던 브래드 베렌은 오바마를 하와이에서 온 자유로운 청년으로 기억한다. 계속해서 머리에 남는 장면 하나는 그가 스타일로 가죽 자켓에 청바지를 입고 게네트 하우스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입니다.”


길고 논쟁이 많았던 선거에서 베렌을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은 궁극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오바마를 지지했습니다. 오바마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고 우리들의 말에 기울여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후보자와 다르게 오바마가 보수주의자의 헌신을 가치롭게 여기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브렌손은 전에 조지 부시 대통령을 위해 일했고 지금은 롬니의 법적 정책 자문 위원회 회원이다.


우리들의 직감은 정확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우익성향을 가진 우리들보다는 좌익성향의 동료를 무척 나게 했습니다.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 회장으로서 그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최고의 출판물을 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브렌손이 말했다. 

 

정직한 성적


하버드 로 리뷰의 첫번째 아프리카계 미국인 회장이 된 오바마는 다른 혜택들을 얻었다. 오바마는 전국적인 언론의 관심과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그는 메사추세츠 주에 있는 캠브리지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앞에 모든 문이 열렸있었다. 


오바마의 학교 친구인 맥은 무언가를 먹으면서 오바마와 하버드 광장을 걸어 돌아왔던 것을 기억한다. “모두가 그가 대법원에 일할 있고 월급이 좋은 변호사 회사에서 일하거나 적어도 떠나서 다른 것을 하기 전까지 동안 돈을 많이 있을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바마는 그렇게 하지 않고 시카고로 돌아가 그가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카고에 돌아온 하버드 졸업장을 가진 오바마는 지역사회 조직 일을 시작했고 결국에는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오글레트리 교수는 자신의 학생이 대통령 집무실에 일하는 첫번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될지 몰랐다. “나는 그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시장이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오글레트리 교수의 말이다. 


오바마는 최근 이 평가에 대해 이렇게 농담을 했다. “ 나를 그렇게 과소평가했어요?”


오글레트리 교수는 대답했다, “ 그것은 과소평가가 아니였네. 그것은 현실적인 것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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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감수:  박태인 (@TellYouMore)



트위터 외신 프로젝트팀 드림. 
기사 편집자 및 주 번역자: 박태인 (@TellYouMore)

번역자문 및 감수 위원단: 김진영(@Go_JennyKim), 김민주(@Spring_llullaby), 이기은(@lazynomad), 이호준(@DanielHojoon), 조효석(@promene), 서규화(@nicefairy_), 진소연(@Dal_Fishing713), 이자연(@Yeonfeel_), 여동혁(@Tonghyeo), 김가현 (@HelloKaHyun) 박현태(@underbaron) 



원 기사 작성 기자: 
Ari Sharpiro 
기사 원본 및 사진 출처: 
http://n.pr/MB5M5Y
출처: NYTIMES.COM
번역: 트위터 외신 번역프로젝트팀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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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sj 2012.07.01 02:17

    요즘 너무 잘보고 있는데 새로운 뉴스가 안떠서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