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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08 가이트너가 구해낸 세상 (1)

티모시 가이트너는 말한다. 내가 옳았다고. 나의 정책이 미국 경제를 위기의 수렁에서 구했다고.



<스트레스 테스트>는 금융 위기와 함께 한 그의 재무장관 시절(2009년 1월~2013년 1월)이 담긴 회고록이다. 하지만 다른 회고록과 달리 가이트너의 기록엔 네개의 적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쏟아진다. 그가 겨냥한 적들이란 첫째:빌 클린턴 정부가 물려준 흑자 재정을 8년간 낭비한 공화당. 둘째:뉴욕타임스를 비롯해 흑백논리에 매몰된 하이에나 같은 언론. 셋째:월가의 도적적 해이를 지적할뿐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를 포괄하지 못하는 운동가들. 마지막으로 위기의 심각성을 모른 채 은행가에 구약성격적 심판론만 제기한 대중들이다.






작심하고 쓴 듯한 저서에서 가이트너는 자신이 주도한 정부의 두 가지 프로그램으로 위 네개 집단의 논리를 갈파한다. 그 두 가지 프로그램이란 줄도산 위기에 처한 대형 은행의 부실 자산을 매입한 '부실자산구제금융프로그램(TARP)'과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 상황을 가정하고 은행의 재정 안정성을 평가한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가이트너는 이 정책들의 결과로 미국 경제가 2009년 6월 대공황을 빠져나왔다고 말한다. 

같은 해 12월엔 자신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경제의 뇌관이라 보고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TARP 자금 전액을 상환했다. 이로서 미국 경제는 대침체에서 탈출했단 주장이다.



가이트너는 "일부의 방화범들이 채찍을 피해가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구해내야 했다"고 말했다. 은행가를 처벌하고 그들의 탐욕에 심판을 내리는 것이 당장은 매력적 방안이나 "재앙 속에서 진정한 과업은 재앙을 끝내는 것"이라 말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선 방화범을 처벌할 것이 아니라 먼저 불을 꺼야 했단 것이다. 2009년 경제 위기는 도덕적 심판론을 주장하기엔 그 규모가 너무나 컸다. 이럴 땐, 직관엔 배치되나 '탐욕스러운 은행에 세금을 투입해 신용을 투입하는 정책'만이 유일한 해답이라 주장한다.




2009년 5월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가 실시된 후, 은행에 대한 불신은 정부의 보증으로 사그라들었다. 또한, 평가 대상 중 다수의 은행이 정부의 보증 없이 민간에서 부족한 자본을 확충했다. 같은 해 1분기 -5.4%성장한 미국 경제는 2분기 -0.4%수준으로 회복하며 안정을 찾았다. 당시 가이트너는 오바마 정부가 10%가 넘는 실업률 때문에 당당히 '위기 탈출' 선언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가 책을 출간한 시점인 2014년 실업률은 6%대였다. 지난 달 미국 노동부 고용 지표를 보면 실업률은 5%까지 하락했다. 선물 시장에서 연내 금리 인상 확률은 72%까지 상승했다. 이런 실증적 결과와 함께 논리로 무장한 가이트너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에게 감탄하고 설복된다. 뉴욕타임스는 좌파 포퓰리즘 언론으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벌인 청년들은 무식한 대중으로, 그의 정책에 반기를 든 공화당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위기 속에서 선거만 생각하는 혐오스러운 정치꾼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가이트너만이 옳고 나머진 모두 틀렸단 것일까? 만약 그의 말이 맞다면, 2009년 앨리자베스 워런이 주재하고 가이트너가 출석한 TARP 의회 감독위원회에서 그의 뒤편으로 "우리의 돈을 돌려달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던 코드핑크 NGO 회원들은 뭘하고 있었단 말인가. 가이트너의 말처럼 곧 미국 정부가 그들의 요구를 "이자를 포함하여 이행하게 될 것"인데 말이다. 가이트너는 회고록에서 "위기란 과학보다는 기술, 분명한 흑백이기보다는 회색으로서, 검증된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절대 부동의 원칙보다는 융통성과 창의력, 겸손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전혀 겸손하지 않은 확신에 가득찬 주장엔 일견 거부감이 들었다. 그의 논리와 내 경험이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2009년 당시 난 미국에서 언론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3시간 떨어진 미주리의 한 시골 마을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던 삼촌은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영난을 겪었다. 매출은 자츰 줄어들었고 삼촌은 최저 임금을 주던 직원들의 해고 여부를 두고 고민했다. 한국에서 등록금을 송금해 주시던 부모님 역시 금융 위기 후 원화 가치가 급락해 은행에서 빚을 내 등록금을 부치셨다. 당시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동기들도 몇몇 보였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제쳐두고라도 당시 삼촌은 가이트너와 오바마에게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을 떠나던 2012년에도 삼촌의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물론, 그가 조언을 구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말처럼 가이트너가 "골드만삭스 CEO 목에 칼을 긋는다고 해도 대중은 또 다른 피에 굶주릴 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구해낸 세상이 주유소를 운영하던 삼촌과, 삼촌에게서 최저 임금을 받던 백인 저학력 노동자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문학적인 세금을 투입해 은행을 살려냈고 대공황에서 벗어났다고 하자. 하지만 최근 앵거스 디턴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서 드러난 것처럼 고졸 이하 백인 남성 10만 명당 사망률이 1999년 이후 30% 이상 가파르게 늘어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답답했다. 고졸 이하 백인 남성은 흑인, 히스패닉계와 함께 금융위기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인구 계층이다.




물론 다시 가이트너의 논리로 돌아오면 답은 쉽다. 정부가 은행의 부실자산을 매입하지 않아 망하게 내버려 뒀다면 미국 경제는 유럽이나 일본처럼 더 큰 수렁에 빠져 백인 남성의 사망률이 지금보다 가파르게 증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책에서 밝힌 것처럼 미국 자본주의엔 "시스템 개선을 위한 노력에도 다음 위기가 또 찾아올 것"이다. 이는 정부가 어차피 또 무너질 시스템에 천문학적 세금을 들였단 뜻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탐욕과 낙관이 허망과 비관으로 순환되며 굴러가는 이 불안정하고 불안한 체재를 유지하려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가이트너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면, 그가 "좌파 선동가"라 지칭한 버니 샌더스 민주당 대통령 예비 후보처럼 정부의 정책을 방해하는 무책임한 여론 선동가처럼 보일까. 내가 미국 유권자라면 버니 샌더스보다 힐러리 클린턴에게, 테드 크루즈보단 젭 부시에게 마음이 갔을 것이다. 단숨에 모든 것을 뒤집을 기세인 '혁명'에 찬동하기 보단 가이트너의 점진적인 개혁이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이트너가 자신감 가득찬 목소리로 역설한 '금융위기 이후의 세상'이 별로 멋져 보이지도, 그 세상을 구해준 것이 그리 고맙지도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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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etweenTheLines 2015.11.10 07:58 신고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