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달 뉴욕주는 동성애자 간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지난주 일요일 (7월 24일) 부터 실제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뉴욕에선 지금까지 수백 명의 동성 연인들이 결혼식을 올렸다. 뉴욕에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에겐 당연히 주어지는 결혼권을 미국이 건국된 지 232년 만에 획득했다. 다수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권리를 소수자가 획득하기 위해선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아직 성소수자가 넘어야 할 사회의 장벽들은 많이 남아 있다. '이혼권'도 그중 하나이다. 아직 미국 사회 내에서 결혼한 동성 연인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이혼하지 못한다. 미국 연방 정부는 동성 간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합법화하지 않은 상태이며 50개의 미국 주 중 동성 간의 결혼이 가능한 주는 6개 곳에 불과하다. 동성 결혼이 가능한 매사추세츠 주에서 결혼한 동성 연인이 결혼 후, 동성 결혼이 불법인 다른 주로 옮겨가 가정을 꾸렸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들의 합법적 이혼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결혼한 동성 연인들이 겪는 '이혼'의 어려움을 미국 공영라디오에서 취재했다. 그리고 트위터 외신번역프로젝트팀이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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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이혼, 결혼보다도 넘기 어려운 장애물. By NPR 7월 20일 자 기사.

2008년 매사추세츠주에서 결혼을 한 런트의 모습이다. 이 후,파트너와 결별한 런트는 아직도 '결혼 중'이다.


뉴욕에선 수천 명의 게이, 레즈비언 연인들이 결혼을 계획 중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힙겹게 싸워서 얻어낸 동성결혼의 권리에 큰 환호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미국 반대편에 사는 동성 연인들은 이혼권을 얻어내기 위해 싸우고 있다. 현재 미국 주 대부분과 연방정부는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동성 연인은 공식적으로 이혼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결혼 하기 위해 동성 결혼이 합법인 매사추세츠주로 이사를 온 동성 연인이거나, 매사추세츠 주 출신이지만 다른 주로 이사해 살는 동성 연인들은 매사추세츠주에서 이혼을 할 수가 없다. 법적 이혼이 가능하려면, 매사추세츠주에서 최소 1년 이상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합법적으로 결혼한 동성 연인들이 사는 주가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이혼은 그 주에서도 불가능하다.


로드아일랜드 주에 살는 리사 런트는 약 3년 전 매사추세츠에서 결혼했었던 한 여인과 이별했다. 그 이후 그녀는 이 결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 이상해요, 이별은 저에게 감정적 그리고 법적인 어려움에 빠지게 했어요" 런트의 말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가 가져올 결과들은 매우 심각하다. 만약에 어느 날 런트가 다시 결혼 하려한다면, 그것은 한 번의 여러 부인을 두는 경우가 될 수 있다. 또한 법적으로 그녀의 전 배우자는 그녀의 퇴직금에 절반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런트와 그의 전 부인은 양육권과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지 않았지만, 양육권 혹은 재산권을 공유한 많은 동성 연인들은 가정법원 도움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에미이"(익명)는 그녀의 파트너와 코네티컷에서 결혼을 했다. 그 뒤 가정을 꾸리기 위하여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그녀의 고향 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의 아이가 태어난 몇 달뒤, 에이미의 파트너는 이혼을 원했다. 그리고 어떠한 법정도 에이미에게 그녀의 성을 가진 아이의 양육권을 보장하지 않았다.

“정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어요. 눈물도 참 많이 흘렸죠.” 에이미의 말이다.


에이미가 익명으로 인터뷰하기를 원했던 이유는, 판사가 그녀의 이혼을 승인해주길 기다리고 있기 떄문이다. 그녀는 판사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했다.  법정이 양육권이나 재산권 분쟁을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그녀는 마음씨 좋은 판사가 그녀의 분쟁에 소지가 없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모든 일이 조용히만 넘어갈 수 있다면 말이다.

“이는 도박과 비슷해요. 저의 운명은 판사에 기분에 달렸죠. 하지만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판사의 결정이 제 삶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을 수 있어요. 제 마음의 평화까지도 말이죠." 에이미의 말이다.


그러나 여러 법적 문제점을 남겨둔 채 승인된 동성간의 이혼 판결들은 종종 상위 법원에 의해 뒤집혔다. 동성 간 이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플로리다 엘리자베스 슈와츠 변호사는 동성연인들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말 많은 동성 연인들이 법정에서 하루도 보내지 못한 체 바로 걸어나와야만 해요" 슈와츠의 말이다.


심지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주에서도 동성 이혼의 법적 문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다.  아직 연방 정부와 국세청에서 동성 결혼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자료는 대개 면세의 혜택을 받지만 매사추세츠 변호사 조이스 커프만에 따르면 미국 국세청은 동성 이혼에 대한 세금 정책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그저 행운을 빌고 있을 뿐이죠. 세금을 내지 않길 바라면서요.” 커프만의 말이다.

동성이혼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복잡한 문제는 그들의 결혼 기간을 어떻게 계산하는가이다. 법정은 이혼한 연인의 재산을 나누는 데 있어서 그들이 2년을 같이 살았는지 혹은 20년을 같이 살았는지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하지만 만약 동성 연인들이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기 10년 전부터 결혼생활을 해왔다면 둘 간의 결혼 생활은 몇 년으로 계산되어야 할까? 일부 판사들은 연인 간 공식적으로 결혼하지 않았던 기간 또한 결혼 기간 고려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커프만은 종종 이 문제는 전 연인이 과거에
같이 살아왔던 시간을 “둘 사이가 그냥 친구였던 시기”라고 치부하는 순간 매우 보기 흉한 문제로 변질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변호사들은 지금부터라도 혼전 합의서를 빼먹지 말라고 말한다.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몇몇 주에서도 동성 이혼을 허용하려는 노력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러한 움직임이 결과적으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움직임으로 확장될 수 있다며 반대 하고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는 런트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분노하게 한다.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동성이혼을 반대함으로써 동성 결혼을 지속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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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및 번역 감수: 박태인(TellYouMore), 이호준 (@Danielhojoon)


트위터 외신 프로젝트팀 드림. 
기사 편집자 및 주 번역자: 박태인 (@TellYouMore)
번역자문 및 감수 위원단: (일본 특파원)황혜빈(@coketazi) 김민주(@Spring_llullaby) 이기은(@lazynomad), 김진영(@Go_Jennykim), 이호준(@DanielHojoon), 조효석(@promene), 서규화(@nicefairy_),  진소연(@radiokid713), 이자연(@jayeon22), 여동혁(@Tonghyeo)

원 기사 작성 기자: Tovia Smith
기사 원본 및 사진 출처: http://n.pr/q9HEBi
출처: NPR
번역: 트위터 외신 번역프로젝트팀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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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디디 2011.07.29 01:27

    또한 합법적으로 결혼한 동성 연인들이 살는 주가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면ㅡ>에서 '살는'아니라 '사는'입니다. ^^

  2. addr | edit/del | reply 해삼의정열 2011.08.01 17:52

    오 이런 문제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네요. 좋은 기사 번역 감사합니다^^

벨기에에서 네덜란드로 여행을 떠나던 길. 유럽의 기차역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이들로 항상 넘쳐난다. 그들은 이번 키스가 마지막인양 서로의 입술에 사랑 자국을 남기곤 한다. 그리고 거기엔 서로에게 키스를 하던 게이 커플도 있었다. 처음이었다. 남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담아 키스하는 모습을 본 건 말이다.


최근 주목해서 읽고 있는 한겨레의 <낮은 목소리>가 동성애자의 사랑을 다루었다. 7월 7일자, ‘동성커플의 사랑과 삶’ 기사에 당당히 자신들을 공개한 동거 4년차의 신정한씨와 박재완씨 커플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은 ‘보통 사람’이며 자신들이 하고 있는 사랑은 ‘보통 사랑’이라고 말했다.


정한씨와 재완씨의 사랑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한국과, 기차역에서 당당히 키스를 하는 게이커플이 살고 있는 유럽.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유럽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얼마만큼 보호하고 있을까?


한겨레에 자신들의 사랑을 당당히 공개한 정한씨와 재완씨 커플. 사진 출처: 한겨레, 류우종 기자.


현재 유럽피언 저널리즘 센터 인턴 기자로 일하는 필자는 지난 14일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 국회의원 마이클 캐쉬먼을 만나 그에게 유럽연합(EU)의 성소수자 정책과, 유럽 내 성소수자(LGBT) 인권 실태를 물었다.

 

8 살 때, 한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소년. BBC 드라마 역사상 처음으로 동성애 키스장면을 찍었던 배우. 유럽 최대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스톤월(Stone Wall)의 창립자이자 1999년부터 영국 노동당 소속 유럽연합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인 마이클 캐쉬먼은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736명의 유럽연합 국회의원 중 자신의 성적지향성(Sexual Orientation)을 공개한 몇 안 되는 ‘동성애자 정치인’이다.


캐쉬먼은 2007년 유럽연합 국회, 정의 및 인권 부분에서 올해의 국회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한, 일 잘하는 국회의원이다. 그는 한국 정치인에게 “다름을 옹호하고 전세계에 한국이 얼마나 진보적인 국가인지를 보여달라.”라며 성소수자 권리 보호에 앞장서 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캐쉬먼은 한국에 있는 성소수자에게 “스스로를 절대 부끄럽게 여기지 마라.”라는 말을 전했다.


     인터뷰는 브리쉘에 위치한 유럽연합 국회 마이클 캐쉬먼 의원 방에서 이루어졌다. 사진: 박태인

 


박태인: 지난 6월 30일에 있었던 유럽연합 국회 성소수자 인권 공청회에서 “문명화된 사회에서 성적지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라고 강경하게 발언하셨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미국이나 한국 국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언입니다. 용기가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마이클 캐쉬먼: 하하, 아마 제가 멍청한 것일 수도 있지요. 단기적으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동성애자로서 과거 영국의 보수 정부로부터 동성애자의 평등권을 위해 싸워왔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비롯한 종교, 인종 때문에 차별받아서는 안 됩니다. 유럽연합 국회는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는 폴란드, 몰타, 독일, 그리고 대한민국의 성소수자들의 인권 보호에 앞장설 것입니다.


 

박태인: 유럽에서도 성소수자는 차별을 겪고 있나요?


마이클 캐쉬먼: 물론입니다. 유럽에서 여전히 성소수자들은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된 영국에선 저와 제 파트너가 호텔에 갈 때 법적으로 호텔이 우리를 거부할 수 없지요. 하지만 만약 우리가 폴란드나, 이탈리아, 몰타에 있는 호텔로 가려고 한다면 차별받을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차별을 받는 사실보다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큰 위력을 발휘할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이런 차별의 가능성 때문에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검열하고 정체를 숨기기 때문이죠. 특히 이는 어린 성소수자들의 자존감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아직도 유럽 내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는 존재합니다. 증오 발언(hate speech)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지도 않고요.

 

박태인: 현재 유럽 국회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성소수자 문제는 무엇입니까?


마이클 캐쉬먼: 유럽 국회의 초점은 세계를 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범죄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에요. 범죄에 침묵하는 것은 그 범죄를 동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연합 국회는 국제 조약이나 통상 조약을 맺는 데 있어서 성소수자를 포함한 기본 인권문제를 항상 중요시하게 생각합니다. 유럽국회는 인권문제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명확히 포함하고 있습니다.


 

박태인: 1969년까지 독일에서는 동성애가 범죄행위였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유럽 내 성소수자 인권이 크게 증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가장 큰 공을 돌리고 싶으신지요?


마이클 캐쉬먼: 1960년대, 성소수자 인권 운동 초기 때 활동했던 운동가들의 공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그들은 그 당시 정치인과 종교기관이 가지고 있었던 보수적인 태도에 도전했었죠. 결국 변화를 일으킨 것도 그들이고요. 그들은 성소수자 인권 단체를 조직하는 것이 불법인 시기에도 용기를 내서 조직을 만들고 대중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발언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사회가 변한 후에야 움직이기 마련이에요. 정치인이 대중보다 앞서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죠.


 

박태인: 한국에선 아직도 성소수자에 대한 다양한 편견이 존재합니다. 자연스럽지 않다거나, 정신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마이클 캐쉬먼: 유럽도 똑같습니다. 아직 유럽의 많은 나라 그리고 여러 세계에 사는 많은 사람은 성소수자들이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죠. 그들은 자신들의 이웃이 성소수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해요. 이런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커밍아웃을 해도 잃을 것이 적은 성소수자들이 앞장서서 커밍아웃을 해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 기업가, 영화배우, 정치인들 말입니다. 그들의 커밍아웃을 통해 성소수자도 이성애자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라는 걸 계속해서 보여줘야 합니다. 사회가 성소수자의 섹스 문제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어요. 우리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사랑하고, 소리지르고, 울고, 희망에부풀어 오르기도 하며 절망에 빠지는 똑같은 사람 말입니다. 성소수자 또한 평범한 남녀 사이에 태어난 평범한 남자와 여자 사람입니다.


지난 6월 30일 있었던 유럽연합 국회 성소수자 인권 공청회의 모습이다. 성소수자 권리연합의 공동 회장 울리케 루나섹 (왼쪽)과 마이클 캐쉬먼 (오른쪽)이 사회를 맡았다.


 

박태인: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은 초기 단계입니다. 주로 성소수자들만이 자신들의 권리증진을 위해 나서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누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나요? 성소수자 운동가들? 정치인? 이성애자들?


마이클 캐쉬먼: 영국에서의 제 경험으로는, 우선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가 싸움(battle)을 시작합니다. 그 후, 여성인권 단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단체, 장애인 권리 단체 등과 연대를 맺으면서 강한 힘을 갖게 되죠. 성소수자의 부모, 형제, 자매, 친구들이 성소수자 인권 시위에 같이 참여한 것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 변화해야 하는 법들이 있다고 말이죠. 사람들에게 성소수자들도 똑같이 세금을 내고, 같은 법을 준수하며, 같은 기차를타고,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은 공원을 이용하는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야 해요. 한국에 있는 정치인들에게 한 마디 전하고 싶습니다. “보다 더 앞서 가셔야 합니다. 다름을 옹호하고 전 세계에 한국이 얼마나 진보적인 국가인지를 보여주십시오.”


 

박태인: 동성애자로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까지 어려우신 점이 있으셨는지요? 한국에선 2009년 총선 당시 한국 정치의 중심 종로구에서 레즈비언 최현숙 후보가 출사표를 냈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1.5%의 득표를 받는데 그쳤습니다.


마이클 캐쉬먼: 제가 게이라는 것은 저라는 사람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해요. 하지만 사회는 저를 ‘게이’라고 정의하죠. 전 선거운동 때 성소수자 인권뿐 아니라 사회 전체 내에 만연한 차별과 가난에 초점을 맞추어 선거 운동을 펼쳤습니다. 전 성차별, 인종차별 그리고 가난을 위해 싸웁니다. 최현숙씨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어요. “또 선거에 도전하세요. 다음에는 2등을 하실 수도 그리고 또 다음에는 승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요.


2009년 총선, 레즈비언 후보로 종로구 국회의원에 출사표를 던졌던 최현숙 후보. 숱한 화제를 뿌렸지만 낙선했다. 그녀는 성소수자 인권 단체 '친구사이'가 성소수자 인권 증진에 힘쓴 사람에게 수여하는 무지개 인권상을 수상하였다.



박태인: 정치에 성소수자들이 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마이클 캐쉬먼: 정치는 사회를 대변해야 합니다. 중산층 출신의 넥타이를 맨 남성만이 정치하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이젠 많은 여성이 그리고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의 문제도 이런 다양성에 측면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물론 개개인의 능력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성소수자라서가 아니라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 정치에 입문해야겠죠. 정치는 사회를 대변해야 합니다. 훌륭한 정치인이라면, 국회 내에서 대변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합니다.


 

박태인: BBC 드라마 역사상 처음 게이 키스장면을 찍은 배우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대중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At BBC East Enders)


마이클 캐쉬먼: 당시 영국 대중의 반응은 정치인들이나, 일부 대중지(타블로이드)보다 다 훨씬 더 긍정적이었습니다. 게이 키스장면을 찍은 후 한 여성에게 편지를 받았어요. 그녀는 편지에서 “일요일 두 아들과 함께 그 장면을 같이 보았습니다. 제 아들이 이렇게 묻더군요. ‘왜 콜린 (그때 당시 마이클 캐쉬먼이 맡았던 캐릭터)이 베리에게 키스를 하죠?’라고요. 그래서 전 이렇게 대답했죠. ‘콜린이 베리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엄마가 아빠를 사랑하는 것처럼.’”이라고 썼어요. 전 소수자가 평범하게 여겨지고 사람들이 사랑의 특권을 깨달아 가는 것이 진보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은 아름다워에선 태섭과 경수 두 남자의 사랑을 다루었었다.


박태인: 한국에서도 작년 동성애를 다룬 드라마가 방영됐습니다. 간접적인 키스장면이 나와 상당히 논란이 되었는데요.


마이클 캐쉬먼: 그런 장면들이 더 많이 보도될수록 사람들은 성소수자의 사랑을 더 평범한 것으로 생각할 거예요. 처음 한 두 번은 논란이 되겠지요. 하지만 그런 논란들은 곧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영화 내에서도 그 문맥과 이야기가 중요해요. 키스할 만한 상황에서 키스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박태인: 성소수자의 인권 운동이 필요하지 않은 날을 꿈꾸시는지요?


마이클 캐쉬먼: 물론입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제가 유럽연합 국회에 있는 동안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참여하면서 최근 들어 다시 여성의 인권, 낙태 권리, 성소수자 인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소수자가 가지고 있는 권리는 언제든 빼앗길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소수자들은 항상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박태인: 한국에 있는 성소수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마이클 캐쉬먼: 자신의 성적지향성을 공개하는 것이 힘드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솔직해지셔야 합니다. 거울을 보며 ‘난 대단한 사람이다.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세요. 당신은 사랑하고, 웃고, 울 수 있는 가족에게도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비록 정의가 우리 생애에는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다음 세대는 우리에게 고마워할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세요. 그리고 절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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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해삼의정열 2011.07.28 17:38

    좋은 인터뷰 잘 봤습니다. '정치는 사회를 대변해야 합니다. 중산층 출신의 넥타이를 맨 남성만이 정치하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네요^^

  2. addr | edit/del | reply radiokid 2011.08.01 23:03

    마지막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