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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12 김군의 선택은 자발적이었나?

김군(18)은 '자발적'으로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에 합류했고 현재 시리아나 이라크 어딘가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실종과 납치로 시작해 결국 본인의 선택으로 끝난 한국인 첫 IS 가담자 이야기의 결론이다.김군의'자발성'은 귀국 시 정부가 그를 처벌할 근거가 됐다. 



그러나 설령 김군이 자신의 두 발과 의지로 터키의 국경을 넘었다 한 듯, 그의 선택을 과연 자발적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18세 소년의 소용돌이 같은 마음. 삶의 변화를 약속할 누군가의 손이라도 붙잡고 싶었을 취약은 마음을 포획한 IS에 '납치'된 것은 아닐까? 김군은 터키로 떠나기 하루 전 "이 나라와 가족을 떠나 단지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10명 중 1명이 자살을 고민하는(2014년 통계청) 한국 10대 청소년인 그에게 죽음이 아닌 삶을 약속한 것은 IS였다.한국 사회는 김군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어린 소년은 IS에 가담했다. 



현재 중동에는 김군처럼 수많은 무슬림 청년이 자신의 선택이라 믿는 성전에 참여하며 목숨을 내던지고 있다. 저유가, 독재와 부패, 중동 지역의 건조화, 청년 일자리의 부재가 자신을 전쟁으로 떠밀었단 사실을 외면한 채 이들은 강요된 대의를 증명하려 더욱더 잔혹한 칼질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대 중동대전의 시작은 사실 이슬람의 것이 아니었다. 무자헤딘, 탈레반, 알카에다, 누스라전선, 이슬람국가로 연결되는 이슬람 전사의 탄생 역시 중동의 선택이 아니었다. 미국과 소련이란 제국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는 배태됐다. 무슬림 청년에게 코란이 아닌 총을 쥐여준 것도 이들이었다. 



한겨레 정의길 국제분쟁전문기자는 자신의 저서 <이슬람 전사의 탄생>에서 현대 중동대전의 시작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1978년 유혈쿠데타로 세워진 아프가니스탄민주공화국은 이슬람권 국가 중 최초로 설립된 친소련 사회주의 정부였다. 하지만 집권 세력의 통치력 부재와 이슬람을 배격하는 급진적 정책으로, 지역 이슬람 부족 세력의 반발에 휩싸여 정부가 전복되려 하자 소련이 개입한 것이다. 이에 미국 CIA는 중동 국가 사이의 사회주의 혁명을 저지하려 아프가니스탄 부족 이슬람 의용군인 무자헤딘에게 무기와 게릴라전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당시 미국 관료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인도를 견제하려 파키스탄의 핵 확보 필요성까지 언급한다. 







이런 미국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 사이 거점을 마련한 이슬람 전사들은 소련을 몰아내고 아프가니스탄 사회주의 정부를 무너뜨린 탈레반이 된다. 하지만 소련의 철군 후, 미국의 전략 부재로 아프가니스탄엔 부족을 통합할 친서방 정부가 설립되지 못했고 중동의 땅은 이슬람 전사들의 광활한 전쟁터가 된다. 이후 이란의 이슬람 혁명과 그 여파를 두려워한 이라크의 이란 침공. 전쟁 후 빚에 허덕이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이를 저지한 미국의 1차 중동전쟁인 걸프전이 발발한다. 미국은 무자헤딘을 지원해 소련의 침공을 저지하고, 쿠웨이트에서도 이라크를 몰아내는 등 전쟁승리에 취해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키워낸 이슬람 전사들의 최대 적으로 부상한다. '성스러운 중동'의 땅에 침입해 무슬림 형제들을 폭격하는 미국을 적대시한 이들 중엔 빈라덴도 있었다. 그는 2001년 뉴욕 월드트레이트센터 테러를 주도한다.



빈라덴의 뉴욕 테러 이후의 중동은 다시 전쟁에 휩싸인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사담 후세인 정부와 탈레반의 몰락지속된 국지전과 테러미국 주도하에 선출된 이라크 말라키 정부의 소수 수니파 탄압→아랍의 봄→시리아 내전→이라크 내전→IS의 탄생→말라키 정부의 몰락→현대 중동대전까지, 이슬람 무장 단체는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을 포함해 아프리카까지 세력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김군도 그 범위 속에 포획돼 시리아와 이라크의 참혹한 내전 속 어딘가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이처럼 중동대전은 이슬람의 것이 아니었다. 지하드를 외치며 칼리프 국가의 건설을 주장하는 IS는 소련과 미국,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힘겨루기에서 잉태됐다. 제국의 전쟁터가 돼버린 중동의 땅에 넘쳐난 석유는 오히려 이들 국가의 발목을 잡았다. 풍부한 자원은 독점됐고 전쟁의 이유와 수단으로 전락했다. 1979년 소련의 침공 후 지속된 중동전쟁 속에서 태어난 무슬림 청년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전사가 되거나, 죽거나, 나라를 떠나 이민자로 차별을 받거나, 차별로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와 다시 전사가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지하드란 대의는 절망 속에 남은 삶의 이유일 뿐이다. 

 


그런 포화 속으로 김군은 들어갔다. 휴전 중인 나라에 태어난 김군에겐 분명 중동의 청년보다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하지만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페미니스트가 싫어 IS가 좋다"던 어린 소년에게 불확실한 미래는 답답한 삶의 숨통을 조여왔을 것이다. IS합류한 그의 자발적 선택은 착취된 것일 수도 강요받은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삶 속에서 벌어지는 선택 중 사실 자발적인 것이 얼마나 되겠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선택이란 가치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김군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달리 하자는 것이다. 김군을 향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이미 김군은 여론으로 처벌받았고 법적 처벌 대상인 피의자가 돼버렸다. 그리고 그 근거는 그의 선택이다. 언론 보도에서 실종과 납치가 가담이란 단어로 바뀐 것 역시 그의 자발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년의 선택은 오로지 자발적이었을까? "단지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어린 소년의 마음에 IS가 먼저 들어왔던 것은 아닐까?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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