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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7.20 일본의 고향세(故鄕稅)와 그리스




일본엔 후루사토(ふるさと) 세금이 있다. 후루사토는 한국말로 고향(故鄕)이니 고향세란 뜻이다. 단어에 세금이 붙지만, 정확히는 세금감면 제도다. 자신의 고향 혹은 자신이 원하는 시골 마을에 특정 액수를 기부하면 소득세와 주민세를 기부 액수와 가깝게 감면해준다. 기부를 받은 지방 소도시는 기부자에게 지역 특산물을 답례로 제공한다. 조금만 에돌면이 일본의 독특한 세금감면 제도에서 그리스와 유로존 위기의 본질을 읽을 수 있다. 



후루사토 세금(이하 후루사토)은 아베 총리가 2007년 1차 내각 시, 지방과 도시의 격차를 줄이는 방안으로 제안했고, 이듬해 시행돼 2012년에만 10만 6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이유로, 세금 혜택도 크지만,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고향 경제를 되살린다는 보람이 꼽힌다. 최근엔 기부자에게 소고기와 고급 해산물 등을 제공하는 지방 소도시간의 경쟁이 과열돼 일본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자체적인 절제'를 요구할 만큼, 후루사토 열풍이 대단하다. 



기부자에게 제공하는 지방 소도시의 특산물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성공한 정책 사례로 꼽은 이 후루사코의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바로 애국심. 일본인이 일본인을 돕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사는 도시에 쓰여야 할 세금이, 나의 고향 혹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방 소도시에 쓰여도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다. 또한, 지방 경제가 살아나면 결국 일본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라, 그 혜택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믿음도 있다. 한 국가, 한 국민이란 의식은 후루사토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기본 뼈대다. 우리가 내는 세금 대부분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쓰인다. 



하지만 유럽엔 그런 의식이 없다. 독일인은 독일인이고, 그리스인은 그리스인이다.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독일 사업가가 그리스 아테네 연금 생활자를 위해 후루사토를 할 이유는 없다. 청년 실업률이 20~40%에 달하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와 그리스보다 못 사는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 시민들은 사실 도울 여유도 없다.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세금으로 부도 위기에 처한 말레이시아를 돕자는 후보가 있다면, 참으로 황당할 것이다. 한국인이 말레이시아를 타국으로 생각하는 것과 유럽인이 그리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리스를 제외한 유럽연합 국가들의 지도자는 자국민에게 유럽연합을 지키려 그리스를 위한 후루사쿠를 설득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이를 뉴욕타임스는 "네덜란드가 동부 코네티컷 주가 되어 남부 앨라배마 주(그리스)를 돕는 것"이라 지적했다. 문제는 지금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 시민들에게, 유럽연합이란 거대한 대의는 공허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2011년 유로존 위기가 본격화될 당시, 브뤼셀 비영리 언론단체에서 일하며 유럽연합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만난 많은 사람들 중 중 자신을 "유럽 시민(European Citizen)"이라고 소개한 사람은 없었다. 함께 근무하던 스코틀랜드인은 자신이 영국이 아닌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강조할 만큼 유럽인들의 국가별 정체성은 단단하다. 1993년 유럽연합이 출범하고 2002년 유로화가 도입됐을 땐 제러미 리프킨의 낙관적 저작 '유러피언 드림'의 주장처럼 미국의 세기는 가고 유럽의 시대가 올 것 같았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유럽 시민들을 배제한 채, 독일을 끌어안고 미국을 겨냥한 유럽 엘리트 정치인만의 작품이었다. 



물론 현재로선, 그리스 치프라스 정권의 치킨 게임이 일단락되고, 트로이카와의 구제 금융 협상이 시작돼 그렉시트의 고비는 일견 넘긴 듯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리스를 위한 유럽연합의 '후루사토'가 지속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후루사토가 지키려는 유럽의 통합은 실업에 허덕이는 유럽 청년들과 5년간의 긴축 재정으로 GDP가 25%나 감소한 그리스 시민이 감내할만한 것인가. 



트로이카라 불리는 채권단은 2010년부터 현재까지 그리스에 2,330억 유로를 지원했고 이번 달 협상이 체결되면 3년간 최대 860억 유로(약 108조원)를 제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각자의 애국심으로 거리로 나선 각국의 유럽인들은 외친다. 우리는 서로의 후루사토가 아니라고.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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