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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11 고 장영희 교수 에세이. "희망을 너무 크게 말했나."

*편집자 주: 필자는 고 장영희 교수의 글을 좋아한다 소아마비와 3번의 암 투병을 겪은 사람이었음에도 '담담한 희망'을 하는 그녀의 글엔 참 큰 울림이 있다. 담담함 속에 숨겨진 담대함이라고나 할까?


감희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참 어둡고 답답한 세상이다. 무용을 꿈꾸던 학생은 로또 당첨을 꿈꾸고 등록금을 내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학생은 연어알이 담긴 개음식을 만드는 참 기가막힌 세상.

그럼에도 누군가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헛된 꿈을 심어주지 않는 담담한 희망 이야기 말이다.


고 장영희 교수의 저작 <살아온 기적 살아길 기적>에 에필로그 부분을 필사했다.

오늘 하루도 건승하시길 빈다.


"희망을 너무 크게 말했나?"

By 장영희 교수.


*편집자 주: 장영희 교수님이 보고 싶은 세상이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질문자가 내게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이 있다. 신체장애, 암 투병 등을 극복하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이다. 그럴 때마다 난 참으로 난감하다. 그래서 그냥 본능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의지와 노력으로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라 내 안에서 절로 생기는 내공의 힘, 세상에서 제일 멋진 축복이라고, 난 그렇게 희망을 아주 크게 떠들었다. 여러분이여 희망을 가져라,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에피소드도 인용했다. 두 개의 독에 쥐 한 마리씩 넣고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밀봉한 후 한쪽 독에만 바늘구멍을 뚫는다. 똑같은 조건 하에서, 완전히 깜깜한 독 안의 쥐는 1주일 만에 죽지만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오는 독의 쥐는 2주일을 더 산다. 그 한 줄기 빛이 독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이 되고, 희망의 힘이 생명까지 연장시킨 것이다.

대학교 2학년 때 읽은 헨리 제임스의 <미국인>이라는 책의 앞부분에는, 한 남자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무서워 살금살금 걸었다'라고 표현한 문장이 있다. 나는 그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꺠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 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걸으며 살 것이다, 라고.

아닌 게 아니라 내 발자국 소리는 10미터 밖에서도 사람들이 알아들을 정도로 크다. 낡은 목발에 쇠로 된 다리보조기까지, 정그렁 찌그덩 정그렁 찌그덩, 아무리 조용하게 걸으려 해도 그렇게 걸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돌이켜 보면 내 삶은 요란한 발자국 소리에 좋은 운명, 나쁜 운명이 모조리 다 꺠어나 마구 뒤섞인 혼동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흑백을 가리듯 '좋은' 운명과 '나쁜'운명을 가리기는 참 힘들다. 좋은 일이 나쁜 일로 이어지는가 하면 나쁜 일은 다시 좋은 일로 이어지고....끝없이 이어지는 운명행진곡 속에 나는 그래도 참 용감하고 의연하게 열심히 살아왔다.

*편집자 주: 그녀가 떠나던 날, 세상과 운명은 참 모진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래도 분명 '나쁜 운명'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마 지난 2001년 내가 암에 걸린 일일 것이다. 방사선 치료로 완쾌 판정을 받았으나 2004년 다시 척추로 전이, 거의 2년간 나는 어렵사리 항암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2006년 5월, 중단했던 월간지 칼럼 '새벽 창가에서'로 나는 다시 돌아왔다. 그때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글에서 썼듯이 나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3년 만에 '홀연히' 다시 나타난 것이다.

나는 그게 희망의 힘이라고 떠들었다. 내 병은 어쩌면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아름다운' 경력일 거라고 쓰기도 했다. 췌장암에서 기적처럼 일어난 스티브 잡스 흉내를 내,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어쩌면 삶을 리모델링해서 더욱 의미 있고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전제 조건일지도 모른다고도 썼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에 대한 생각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나의 희망 이야기를 스스로 즐겼다. 미국 사람들은 좋은 일을 크게 말하면 공기 속에 떠다니는 나쁜 혼령이 시샘해서 훼방을 놓는다고 믿는다. 난 나쁜 혼령이 듣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크게 떠들었다. 그런데 나는 암이 다시 척추에서 간으로 전이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 난 다시 나의 싸움터, 병원으로 돌아와 있다. 살금살금 조심조심 삶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는데, 나는 저벅저벅 큰 발자국으로 소리내며 걸었고, 그래서 다시 나쁜 운명이 깨어난 모양이다.

지난번보다 훨씬 강도 높은 항암제를 처음 맞는 날, 난 무서웠다.'아드레마이신'이라는 정식 이름보다 '빨간약'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항암제. 환자들이 빨간색을 보기만 해도 공포를 느끼고, 한 번 맞으면 눈물도 소변도, 하다못해 땀까지도 빨갛게 나온다는 독한 약. 온몸에 매캐한 화학물질 냄새와 함께 빨간약이 내 몸에 퍼져 갈 때, 최루탄을 맞은 듯 눈이 따가웠다.

그날 밤 문득 잠을 깼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옆 침대에서는 동생 둘이 간병인 용 침대 하나에 비좁게 누워 잠이 들었고, 쌕쌕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에 천장의 흐릿한 얼룩이 보였다. 비가 샌 자국인가 보다.

그런데 문득 그 얼굴이 미치도록 정겨웠다. 지저분한 얼룩마저도 정답고 아름다운 이 세상, 사랑하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 세상을 결국 이렇게 떠나야 하는구나. 순간 나는 침대가 흔들린다고 느꼈다. 악착같이 침내 난간을 꼭 붙잡았다. 마치 누군가 이 지구에서 나를 밀어내듯. 어디 흔들어 보라지, 내가 떨어지나, 난 완강하게 버텼다.

이 세상에서 나는 그다지 잘나지도 또 못나지도 않은 평균적인 삶을 살았으니 무슨 일이 있어더 그다지 길지도 짧지도 않은 평균 수명은 채우고 가리라. 종족 보존의 의무도 못 지켜 닮은 꼴 자식 하나도 남겨두지 못했는데, 악착같이 장영희의 흔적을 더 남기고 가리라.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떄.....'생각하고 좋은 일 하나 못했는데 손톱만큼이라도 장영희가 기억될 수 있는 좋은 흔적 만들리라.

언젠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이 내게 물었다. "한 눈먼 소녀가 아주 작은 섬 꼭대기에 앉아서 비파를 커면서 언젠가 배가 와서 구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비파로 켜는 음악은 아름답고 낭만적은 희망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물이 자꾸 차올라서 잠기고 급기야는 소녀가 앉아 있는 곳까지 와서 찰랑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는 자기가 어떤 운명에 처한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 노래만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그녀는 자기가 죽는 것조차 모르고 죽어 갈 것입니다. 이런 허망한 희망은 너무나 비참하지 않나요?"

그때 나는 대답했다. 아니, 비참하지 않다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든 안 부르든 어차피 물은 차오를 것이고, 그럴 바엔 노래를 부르는 게 낫다고. 갑자기 물때가 바뀌어 물이 빠질 수도 있고 소녀 머리 위로 지나가던 헬리콥터가 소녀를 구해 줄 수도 있다고. 그리고 희망의 힘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듯이 분명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그 말은 어쩌면 그 학생보다는 나를 향해 한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여전히 그 위대한 힘을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

*장영희 교수는 2009년 9월 9일 항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Posted by @TellYouMore 박태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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